영화이야기/2016년 영화이야기

[검사외전] - 검사보다 사기꾼이 매력적인 이유

쭈니-1 2016. 2. 15. 18:11

 

 

감독 : 이일형

주연 : 황정민, 강동원, 이성민, 박성웅

개봉 : 2016년 2월 3일

관람 : 2016년 2월 12일

등급 : 15세 관람가

 

 

2016년 첫 천만영화?

 

지난 설 연휴, 저희 가족은 어머니와 함께 오랜만에 극장 나들이를 계획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집 근처의 멀티플렉스 대부분의 상영관에서 [검사외전]을 상영하고 있어서 마땅히 볼 영화가 없었습니다. 15세 관람가인 [검사외전]을 관람하기엔 이제 13세인 웅이가 마음에 걸렸던 것입니다. 다행히 [로봇, 소리]의 상영시간대가 맞아서 어머니와의 7년만의 극장 나들이가 성사되었지만, 남은 설 연휴동안 볼 영화가 없어서 저희 가족은 집에서 뒹굴거려야 했습니다.

이번 설 연휴 극장가는 [검사외전]이 완벽하게 장악했습니다. 그나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 [쿵푸팬더 3]가 가까스로 체면치레를 했을 뿐, 다른 영화들은 [검사외전]의 독주에 맥을 못추고 쓰러지기 일쑤였습니다. 이러한 독주 속에 [검사외전]은 설 연휴가 끝나고 나니 누적관객수가 무려 500만명을 훌쩍 넘겨 버렸습니다. 이쯤되면 2016년 첫 천만영화는 [검사외전]의 차지가 될 것이 분명해보입니다.

저 역시 [검사외전]은 개봉 전부터 기대작이었습니다. 2015년 한해동안 [국제시장]과 [베테랑] 두 편을 천만영화에 올려 놓았고, 2015년 연말에 개봉한 [히말라야]도 현재 775만 관객을 동원했을 정도로 흥행 보증수표가 된 황정민과 [군도 : 민란의 시대], [검은 사제들]을 연속 흥행시킨 강동원이 주연을 맡은 범죄 코미디 영화이니 기대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치고 받고 싸우는 액션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구피도 [검사외전]만큼은 보고 싶다고합니다. (유아인이 악역으로 나왔던 [베테랑]도 극장에서 본 구피. 영화가 보고 싶은 것인지, 꽃미남 배우가 보고 싶은 것인지...) 그래서 저는 설 연휴 마지막날 구피와 함께 [검사외전]을 보기로했습니다. 하지만 기나긴 설 연휴가 끝나갈때쯤 구피는 이미 명절 후유증에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맏며느리와 맏딸 역할을 동시에 하는 것은 참 힘듭니다.)

결국 제가 구피와 [검사외전]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이 영화가 개봉한지 일주일이 지나버린 지난 금요일 밤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금요일 밤에 영화를 보면 토요일 아침에 늦잠을 잘 수가 있으니 피곤함을 무릅쓰고 영화를 봐도 후유증이 오래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천만을 향해 뚜벅 뚜벅 걸어가고 있는 [검사외전]을 저는 다른 분들보다 늦게 확인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구피는 "재밌네."라는 짧은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검사외전]은 분명 재미있기는 했지만 천만관객을 넘볼 정도로 빅재미를 안겨준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비슷한 장르에다가 황정민이 주연을 맡았다는 점까지 닮은 [베테랑]과 비교해서도 [검사외전]의 짜임새는 조금 헐거워보였고, 영화의 마지막 반전은 너무 눈에 훤히 보여서 쾌감을 느끼기에 부족했습니다. 결국 이 영화의 흥행이 배우들 덕분이라는 다른 분들의 평가에 저도 어느정도는 공감할 수 밖에 없네요.

 

 

폭력 검사 감옥에 갇히다.

 

[검사외전]의 주인공은 다혈질 검사 변재욱(황정민)과 꽃미남 사기꾼 한치원(강동원)입니다. 우선 변재욱이라는 캐릭터부터 살펴본다면... 변재욱은 [베테랑]에서 황정민이 연기한 서도철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캐릭터입니다. 쉽게 비교를 하자면 서도철이 [공공의 적]의 꼴통 형사 강철중(설경구)라면 변재욱은 [공공의 적 2]의 꼴통 검사 강철중(설경구)인 셈입니다. 이 둘의 차이는 형사와 검사인데 얼핏 비슷해보이지만 두 직업의 차이는 엄청나게 큽니다.

형사와 검사의 차이는 바로 권력의 크기입니다. 형사가 직접 발로 뛰며 범죄를 해결하는 서민형 직업이라면 검사는 뒤에서 조종하며 서류 뭉치와 법원에서 범죄를 해결하는 권력형 직업입니다. 뭐 반론의 여지는 분명 있겠지만 그것이 저와 같은 일반인들의 인식입니다. [공공의 적 2]가 강철중을 형사에서 검사로 신분상승을 시켰다가 [강철중 : 공공의 적 1-1]에서 다시 형사로 원위치시킨 것도 관객이 검사보다는 형사에 더 친근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변재욱은 검사입니다. 그는 취조 중이던 피의자에게 폭행을 가하면서 "내가 검사가 된 이유는 너 같은 범죄자를 합법적으로 때릴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당당하게 밝힐 정도로 검사라는 권력을 이용해서 맘껏 폭력을 휘두르는 폭력검사입니다.  그런 그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힙니다. 그런데 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은 변재욱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진 자들입니다. 결국 변재욱이 검사인 탓에 [검사외전]은 권력과 권력의 맞대결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검사외전]과 [베테랑]의 차이입니다. [베테랑]은 세상 무서울 것이 없는 안하무인 성격의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에 맞서는 광역수사대 형사 서도철의 활약을 통해 서민 관객의 가려움을 시원하게 긁어준 영화입니다. 하지만 [검사외전]은 음모로 인하여 나락에 떨어진 변재욱의 개인적 복수가 주요 내용입니다. 영화에 의한 관객의 쾌감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물론 변재욱의 복수는 5년전 철새 도래지 개발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 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변재욱이 자신의 살인 누명을 벗고,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댓가로 부장검사에서 집권당의 국회의원 후보로 승승장구하는 우종길(이성민)에게 복수를 하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습니다. 애초에 철새 도래지 개발 사건에 연루된 정치계의 비리 파헤치기는 변재욱의 복수 목록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나마 변재욱이 영화 후반부 마지막 변론에서 자신은 폭력 검사였으며 그렇기에 자신은 유죄라며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장면을 통해 변재욱이라는 캐릭터가 한층 성숙해지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하지만 이미 변재욱의 복수가 막바지에 이른 이후였고, 영화가 끝나갈 즈음이었습니다. [검사외전]이 속편을 만들어 철새 도래지 개발에 연루된 정치계의 비리를 파헤치지 않는 이상, 변재욱의 활약은 개인적인 복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셈입니다.

 

 

꽃미남 사기꾼 감옥에서 풀려나다.

 

많은 매체에서 [검사외전] 흥행의 일등공신으로 황정민보다는 강동원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분명 그동안의 영화에서 보여준 흥행 성적은 황정민이 강동원보다 월등히 높지만(황정민이 두편의 천만영화를 가진 것과는 달리 강동원은 아직 천만 영화를 갖지 못했습니다.) [검사외전]에서만큼은 강동원의 흥행성이 더 인정받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는 한치원이라는 캐릭터의 힘이 컸습니다.

황정민이 앞선 흥행작인 [베테랑]의 서도철을 연상하게 하는 변재욱을 연기했지만 검사라는 직업 탓에 친근감이 덜했고, 그의 활약도 정의보다는 개인적 복수에 치중되다보니 관객에게 어필할만한 것이 부족했습니다. 그와는 달리 강동원은 한치원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자신의 매력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냅니다. 강동원의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난 영화를 하나 고르자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전우치]를 선택할 것입니다. 그런데 한치원은 '전우치'를 연상시킵니다. '전우치'처럼 천방지축에 망나니이지만 결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한치원. 강동원은 한치원을 '전우치'보다 훨씬 매력적이고 친근감이 있는 캐릭터로 탈바꿈시킵니다.

한치원은 사기꾼입니다. 다시말해서 엄연한 범죄자입니다. 하지만 [검사외전]에서 한치원이 사기를 치는 대상은 돈 많은 부자집 딸 김하나(신소율)뿐입니다. 한치원이 능글맞은 표정으로 싸구려 영어를 구사하며 김하나를 유혹하는 장면은 거부감보다는 오히려 웃음이 나올정도입니다. 그만큼 강동원은 한치원이라는 캐릭터를 잘 포장한 셈입니다.

 

한치원이 검사를 사칭해서 양민우(박성웅)에게 접근하는 장면도 영화를 보는 제 속을 후련하게 만듭니다. 학연, 지연에 얽매인 검사 집단을 통렬하게 풍자하면서 권력지향형 검사 양민우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한치원의 모습은 사기라는 범죄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오히려 [검사외전]에서 가장 통쾌하고 유쾌한 장면이 됩니다.

학력은 중학교 중퇴에 가진 것도 없고, 내세울 것이라고는 잘 생긴 얼굴과 말빨뿐인 한치원. 하지만 그런 겉만 번지르한 한치원의 외모에 넘어가는 기득권 사람들. 변재욱이 하지 못했던 속시원한 한방을 한낱 사기꾼에 불과한 한치원이 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베테랑]이 광역수사대 서도철의 활약으로 서민 관객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다면, 한치원은 능글맞은 사기 행각으로 영화를 보는 제 마음을 후련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분명 [검사외전]을 보기 전에는 황정민과 강동원의 케미에서 품어져 나오는 영화적 재미와 쾌감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감옥에 갇힌 변재욱과 밖에서 활발하게 활약하는 한치원의 콤비 플레이는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합니다. 그 대신 변재욱이 영화를 시작하고 끝낸 반면, 한치원은 중간에서 영화를 진행시키며 두 캐릭터의 비중은 나뉘는데, 그 중 저는 한치원이 활약하는 영화의 중간 부분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마지막 한방이 아쉽다. 

 

솔직히 변재욱이 [검사외전]에서 한치원보다 돋보이려면 우종길에 대한 복수에서 통쾌한 반전의 한방이 준비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러한 한방이 이 영화엔 없습니다. 분명 우종길의 범행을 증명할 마지막 증인과 증거가 영화 후반에 등장하지만 그것은 영화 중반에 이미 예상 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변재욱은 이미 예고된 평범한 복수를 할 뿐입니다.

그래도 영화가 끝나고나니 [검사외전]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긴 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변재욱은 최후 변론을 통해 과거 폭력 검사였던 자기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그런 그였기에 누명을 벗고 감옥에서 출소한 변재욱이 진정한 서민을 위한 법 집행자가 되어 5년전 우종길에 의해 묻혀진 철새 도래지 개발 사건의 비리를 케낸다면 그제서야 변재욱의 진정한 활약이 시작될 것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길. [검사외전]에 대해서는 짧게 "재미있었어."라며 말을 아꼈던 구피는 "그래도 강동원은 멋있었지?"라는 제 유도 질문에 "맞아. 강동원은 정말 멋졌어!"라며 감탄에 감탄을 쏟아냈습니다. 하긴 남자인 내가 봐도 참 매력적인 배우이니... 그래도 제 마음 한 구석엔 변재욱의 매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짙게 남았습니다. 역시 변재욱을 위해서라도 [검사외전 2]를 기다리는 수 밖에요.

 

한치원의 매력은 십분 발휘된 반면

변재욱의 매력은 아직 시작도 못했다.

이러한 불균형이 검사보다 사기꾼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