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노덕
주연 : 조정석, 이미숙, 이하나, 배성우, 김대명
개봉 : 2015년 10월 22일
관람 : 2016년 1월 25일
등급 : 15세 관람가
뭐야! 이 영화 코미디였어?
월요병 그리고 강추위에 부하 직원의 폭탄선언까지 겹쳤던 1월 25일은 그야말로 피곤한 하루였습니다. 게다가 은행 직원의 단순실수로 급여가 늦게 지급이 되어서 구피에게 "회사에 뭔 일이 있어?"라는 걱정어린 문자와 회사 직원들의 "급여 왜 안들어와요?"라는 항의성 전화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무엇하나 제대로 풀리는 것이 없었던 그날, 저는 구피에게 "맛난거 사줘."라며 애교를 부렸습니다. 하지만 맛집을 찾아 밖으로 나가기엔 너무 추웠고, 배달을 시키기엔 딱히 땡기는 음식이 없어서 그냥 소시지에 맥주 한캔으로 유난히 피곤했던 하루를 마감했습니다.
맥주 한캔 마시고 멍하니 TV를 보며 앉아 있다가 영화나 보자는 심정으로 오랫동안 보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우선순위에서 자꾸 밀려났던 영화 [특종 : 량첸살인기]를 플레이시켰습니다. 구피는 이 영화의 제목만 듣고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잔인한 영화는 싫어."라며 보기를 거부하더군요. 사실 저 역시도 이 영화를 기대했음에도 관람 우선순위에서 자꾸 뒤로 밀린 이유가 살인이라는 잔인한 소재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특종 : 량첸살인기]를 보다보니 잔인한 설정의 스릴러 영화라기보다는 코미디 영화에 가깝게 영화가 흘러갔습니다. [특종 : 량첸살인기]는 이혼과 해고 위기에 몰린 기자 허무혁(조정석)이 일상일대의 특종을 잡으며 인생역전의 기회를 잡지만, 자신이 잡은 특종이 실수임을 깨닫게 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고 있습니다. 얼핏 이선균의 코믹연기가 돋보였던 [끝까지 간다]를 연상시켰습니다.
납득이의 코믹연기... 살아있네.
사실 이 영화의 초반이 코미디영화처럼 보였던 이유는 주연을 맡은 조정석 때문입니다. 조정석은 [건축학개론]으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입니다. 가슴 절절한 첫사랑 이야기를 다룬 [건축학개론]에서 조정석은 주인공의 친구인 납득이로 출연하여 관객을 웃겼었습니다. 이후에도 그의 코믹연기는 빛을 발했는데, [관상]에서는 영화의 분위기가 너무 묵직하게 흘러가지 않도록 붙잡아줬고,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는 신민아와의 달달한 코믹 케미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물론 [역린]에서는 정조(현빈)의 암살을 위해 궁에 잠입하는 을수역으로 이미지 변신을 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조정석에게는 납득이의 이미지가 남아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특종 : 량첸살인기]는 그러한 조정석의 납득이 이미지를 잘 이용합니다. 허무혁은 연쇄살인범의 친필 메모가 중국의 소설 '량첸살인기'를 연극화한 연극배우의 메모임을 뒤늦게 알게 되자, 좌절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모습이 너무 웃겼습니다. 마치 납득이가 커서 기자가 된다면 허무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허무혁은 자신의 실수를 덮기 위해 연쇄살인마의 두번째 편지를 조작하는 등, 엉뚱한 행동을 서슴치 않습니다. 그런데 허무혁의 의도와는 달리 특종에 눈이 먼 백국장(이미숙)으로 인하여 오히려 사건은 점점 부풀려집니다. 게다가 연쇄살인사건의 담당형사인 오반장(배성우)까지 허무혁을 압박함으로써 허무혁을 점점 궁지에 몰아넣습니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조정석의 코믹 연기는 저를 웃겼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 영화는 스릴러 영화이다.
만약 [특종 : 량첸살인기]가 자신의 거짓 보도를 덮기 위한 허무혁의 원맨쇼 영화였다면 이 영화는 꽤 흥미진진한 블랙 코미디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노덕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었고, 그러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블랙코미디가 아닌 스릴러 영화여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특종 : 량첸살인기]는 영화의 중반부터 연쇄살인마가 직접 허무혁 앞에 나타나며 영화의 웃음끼를 걷어내고 긴장감을 흩뿌려 놓습니다.
영화의 중반에 허무혁과 연쇄살인마의 첫 만남은 그래서 중요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극의 분위기가 바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김대명의 연기는 신의 한수였습니다. 두리뭉실하게 생긴 그는 사람좋은 미소와 목소리로 오히려 허무혁에게 고마움을 표시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진정한 량첸장군이 되기 위한 마지막 계획에 동참해달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극의 분위기가 갑자기 확 바뀌는 것이 아닌, 서서히 긴장감을 끌어 올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데에서 발생하고 맙니다. 후반부에 영화의 긴장감을 한층 더 끌어올리기 위해 허무혁의 부인인 수진(이하나)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사실 수진이 연쇄살인마가 있는 곳에 스스로 간다는 설정 자체가 너무 억지스러웠습니다. 그러면서 영화 초, 중반의 분위기와 후반의 분위기가 너무 딴판이 되어 버렸습니다.
뉴스와 신문기사를 있는 그대로 믿어도 될까?
수진이 연쇄살인마한테 잡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허무혁은 갑자기 영웅이 되어 연쇄살인마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입니다. 그러면서 납득이같았던 허무혁이 사라지고, 스릴러 주인공으로써의 허무혁만 남게 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변화가 자연스럽지 않고 억지스럽게 느껴졌기에 오히려 후반부의 긴장감이 [특종 : 량첸살인기]의 재미를 해쳐버리는 역할을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합격점을 주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억지스럽게 분위기가 전환되었지만 그 덕분에 노덕 감독이 하고 싶었던 영화의 주제는 잘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믿는 진실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뉴스와 신문기사를 있는 그대로 믿습니다. 뉴스에서 누가 나쁜 놈이라고 나오면 함께 손가락질 하고, 뉴스에서 누가 영웅이라고 나오면 함께 칭송합니다. 그렇기에 권력자들은 언론을 장악하기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뉴스와 신문기사는 있는 그대로를 우리 일반인들에게 전달하는 것일까요?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허무혁이 그랬던 것처럼 특종 욕심에 의한 오보도 적지 않고, 최근 화제가 되었던 영화 [내부자들]처럼 여론조작을 목표로한 의도적인 조작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조작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특종 : 량첸살인기]는 바로 그러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
[특종 : 량첸살인기]의 결말은 결국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허무혁이 사표를 내면서 사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실수로 벌여진 오보였음을 실토하지만 백국장은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최소한 나는 허기자가 취재한 것이 전부 진실이라 생각해서 보도한거야."라며 "뭐가 진짜이고, 뭐가 가짜인지 가려내는 것은 우리 일이 아냐. 보는 사람의 일이지. 그들이 진짜라고 믿으면 그게 진실인거야."라며 자기합리화를 합니다.
백국장이 시청률 때문에 허무혁의 오보가 진실이었다고 믿듯이 오반장 역시 끝까지 서두호가 범인이라고 믿습니다. 허무혁이 그는 범인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줘도 들으려 하지 않고, 모든 증거가 서두호가 범인이 아니라고 말해도 그는 "차차 보강수사를 해나가겠다."며 귀를 닫아 버립니다. 사람들은 허무혁에게 죽은 연쇄살인마가 용감한 시민이라 믿으며 그를 추모하고, 허무혁 또한 수진이 낳은 아기가 자신의 아기일 것이라 그냥 믿어버립니다. 그의 손에는 진실을 가려낼 유전자 검사 확인서가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보지 않고 태웁니다. 진시링 어떻든 그냥 믿고 싶었던 것입니다.
진실이 무엇이든,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 그것은 비단 영화 속의 캐릭터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특종 : 량첸살인기]는 바로 그러한 우리들의 모습을 때론 블랙코미디로, 때론 스릴러로 반영하며 보여준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에 합격점을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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