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마르탕 탈보
주연 : 빅터 안드레 튀르종-트렐레, 소피 드마레
개봉 : 2015년 10월 29일
관람 : 2016년 1월 19일
등급 : 12세 관람가
내 생일은 착한 영화로...
지난 1월 19일은 나의 43번째 생일이었습니다. 젊었을땐 생일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떠들썩하게 보냈는데, 결혼하고나니 생일은 가족과 함께 오붓이 보내는 날이 되었습니다. 제 43번째 생일날도 아침에 구피가 끓여준 미역국과 불고기로 오랜만에 아침식사를 했고, 저녁에 퇴근해서는 족발과 보쌈을 시켜놓고 우리 가족만의 조촐한 파티를 했습니다.
이렇게 배에 기름기가 주루륵 흐를 정도로 고기를 먹고나니 재미있는 영화 한편으로 생일을 마무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난히도 추운 날이었고, 맥주까지 한잔했기에 극장에 가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 대신 hoppin에서 오래 전에 다운로드 받았지만 영화보기를 차일피일 미루었던 [앙리 앙리]가 제 43번째 생일의 영화가 되었습니다.
제가 [앙리 앙리]를 선택한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착한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전날 본 [타이밍]이 조금은 잔인한 내용의 애니메이션이었기에 그날만큼은 마음이 훈훈해지는 착한 영화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앙리 앙리]는 그러한 제 기대대로 착해도 나무 착한, 그래서 영화를 보고나면 나도 모르게 미소짓게 되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그러고보니 작년에는 [컬러풀 웨뎅즈]를 봤으니 저는 생일날때마다 착한 영화가 땡기나봅니다.)
사람들에게 빛을 가져다 주는 남자 앙리
[앙리 앙리]는 수녀원에서 자란 앙리라는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수녀원의 전구를 갈이 끼우는 임무를 맡고 있는데, 스스로 자신은 사람들에게 빛을 가져다 주는 능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한 앙리의 순수함은 그가 청년이 되어서도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수녀원이 다른 곳으로 팔리며 앙리(빅터 안드레 튀르종-트렐레)는 수녀원이라는 울타리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세상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순수한 청년 앙리. 그가 살아가기엔 세상은 너무 험악했습니다. 실제 앙리는 원장 수녀가 선물해준 소중한 손목시계를 강도당합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앙리는 조명가게에서 일을 하고 친구들을 사귀면서 점점 세상에 적응해나갑니다.
앙리는 어찌보면 약간은 모자란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그의 모자람은 오히려 순수함으로 주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변화시킵니다. 로버트 저멕키스 감독의 [포레스트 검프]에서처럼 말입니다. 조명가게에서 앙리와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 모리스가 그랬고, 한때는 잘나가는 피클 사업가였지만 지금은 오래된 저택에 홀로 남겨진 괴팍한 노인 비노가 그랬으며, 어느날 갑자기 시력을 잃어버린 성인극장 매표원 헬렌(소피 마레)가 그러합니다.
잃어버린 것을 찾아주는 수호 성인 안토니오
앙리가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큰 방법은 믿음입니다. 앙이가 처음 조명가게에서 일을 하게 된 계기고 길을 잃으면 주님의 신호를 따라가면 된다는 순수한 믿음 덕분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비웃을테지만, 바보스러울만큼 순수한 앙리에겐 그러한 믿음은 큰 힘이 됩니다.
앙리는 시력을 잃은 헬렌에게 잃어버린 것을 찾아주는 수호 성인 안토니오 석상을 선물로 줍니다. 하지만 이미 희망을 잃은 헬렌은 그 선물을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앙리의 믿음대로 앙리의 주변 사람들은 잃어버린 그 무엇을 되찾게 됩니다.
괴팍한 노인 비노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과거의 추억을 되찾고, 잃어버렸던 헬렌은 시력을 되찾습니다. 그리고 앙리 또한 어린 시절 떠난 아버지를 만납니다. 냉정하게 영화를 본다면 그러한 과정들이 너무 우연에 치우쳐져 '말도 안되'라고 치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앙리의 순수에 푹 빠져 영화를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행복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저렇게 순수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앙리 앙리]는 그런 의미에서 완벽한 판타지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현실의 세계를 그리고 있지만 앙리가 사는 곳은 우리가 아는 현실과는 전혀 달라 보입니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수한 앙리의 순진한 믿음이 완벽하게 이뤄지는 곳, 그것이 [앙리 앙리]의 세계입니다. 어쩌면 이 영화가 판타지라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제가 세상의 때가 많이 묻어있다는 반증일지도...
하지만 판타지라면 또 어떻습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행복했는 걸요. 앙리의 순수함에 푹 빠져 영화를 보다보면 요즘처럼 점점 더 잔인하고, 점점 더 자극적으로 바뀌는 영화들 사이에서 가끔 이런 영화를 보는 것도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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