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6년 아짧평

[타이밍] - 우리나라의 척박한 애니메이션 환경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 숙제

쭈니-1 2016. 1. 20. 11:17

 

 

감독 : 민경조

더빙 : 박지윤, 엄상현, 류승곤, 여민정, 성완경

개봉 : 2015년 12월 10일

관람 : 2016년 1월 18일

등급 : 15세 관람가

 

 

강풀 웹툰의 7번째 영화... 이번에는 애니메이션이다.

 

저는 웹툰을 즐깁니다. 요즘은 바빠서 예전처럼 많은 웹툰을 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아침에 출근하면 포털 사이트에 연재되는 웹툰을 하루에 한, 두편 정도는 꼭 보고난 후에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제가 이렇게 웹툰을 즐기게된 것은 인기 웹툰 작가인 강풀의 영향이 큽니다. 강풀의 웹툰은 재미와 감동이 두루 갖춰져 있어서 제가 웹툰의 매력에 흠뻑 빠지도록 이끌어준 것이죠. 

강풀 웹툰의 인기는 웹툰을 넘어 영화로도 이어졌습니다. 고소영 주연의 [아파트], 차태현, 하지원 주연의 [바보]를 시작으로 [순정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이웃사람], [26년]이 강풀의 웹툰을 원작으로한 영화들입니다. 그리고 2015년 12월에 개봉한 [타이밍]은 강풀의 웹툰을 원작으로한 일곱번째 영화입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타이밍]은 애니메이션입니다. 영화의 소재 자체가 초현실적인 시간능력자의 모험을 담고 있기에 블록버스터급 제작비로 특수효과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관객들이 유치하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차라리 그럴바에는 표현의 한계가 무궁무진한 애니메이션으로 완성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죠.

 

 

 

척박한 국내 애니메이션 환경이 문제일까?

 

웹툰 <타이밍>을 재미있게 봤던 저는 당연히 영화 [타이밍]의 개봉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타이밍]은 제가 극장으로 달려가기도 전에 극장 상영이 끝나버렸습니다. 이 영화의 누적관객수는 고작 3만8천명. 말 그대로 폭삭 망했다고해도 과언이 아닌 처참한 성적입니다. 저처럼 강풀의 웹툰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들이 절반만 극장을 찾았더라면 흥행성공은 떼논당상이었을텐데...

극장에서 [타이밍]을 놓친 저는 hoppin에 다운로드 서비스가 오픈되자마자 얼른 [타이밍]을 다운로드 받았고, 월요일 밤에 영화를 봤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타이밍]은 많이 실망스러운 영화였습니다. 국내 특수효과의 한계 때문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지만, 오히려 국내 애니메이션 환경의 한계에 부딪혀 버렸습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더빙입니다. [타이밍]은 전문 성우들에게 영화의 더빙을 맡겼습니다. 여기까지는 개인적으로 환영할만한 선택입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전문 성우의 목소리가 입혀진 [타이밍]의 캐릭터들은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도대체 어찌된 영문일까요?

 

 

 

스토리는 긴박한데 목소리는 느긋하다.

 

영화에서 배우의 연기는 영화의 재미를 높이는 결정적인 요인이 됩니다. 미친 연기력을 뿜어내는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와 발연기가 주특기인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는 같은 영화라도 천지차이입니다.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가 배우의 연기로 이뤄졌다면 애니메이션은 성우의 목소리가 연기가 됩니다. 그런데 [타이밍]은 결정적으로 목소리가 전혀 매력적이지 못합니다.

아마도 박지윤, 엄상현, 여민정 등 전문 성우들은 [타이밍]의 캐릭터 성격에 목소리를 맞춘 듯합니다. 사실 영화의 주인공인 박자기(박지윤), 강민혁(류승곤), 장세윤(여민정)은 그다지 활발한 캐릭터가 아닙니다. 각자 시간능력자이지만 자신의 능력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조차 살리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상처받고, 위축되어 있습니다. 캐릭터가 그러하다보니 캐릭터들의 목소리 역시 의도적으로 위축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영화의 스토리는 상당히 긴박하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긴박한 상황과는 달리 캐릭터들의 목소리는 느긋합니다. 그러한 캐릭터들의 목소리는 오히려 영화의 긴박함을 해치는데, 영화를 보며 짜증이 밀려왔습니다. 전문 성우가 아닌 비전문 배우들이 더빙을 했다면 차라리 '전문 성우가 아니니까...'라고 이해라도 했을텐데...

 

 

 

결국 가장 큰 문제는 분량 조절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박자기의 예지몽속에 나타난 강민혁의 목소리는 제게 "어색해."라며 푸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장세윤의 목소리는 "이게 뭐야?"라며 저를 포기하게 만들더군요. 김영탁의 목소리의 경우는 이 영화가 15세 관람가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이 애니메이션의 느낌이 강했습니다. 암튼 전체적으로 저는 [타이밍]의 더빙이 너무 마음에 안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영화의 분량조절입니다. 사실 이것은 원작이 있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방대한 원작을 짧은 러닝타임 안에 넣으려다보니 선택과 생략의 문제는 항상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강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은 더욱 심합니다. 강풀의 웹툰은 대부분 캐릭터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정성껏 잡아내고, 그들을 한데 묶어 이야기를 진행시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캐릭터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잡아내다가는 러닝타임이 길어질 수 밖에없으니 자연스럽게 그들의 사연이 생략합니다.

문제는 캐릭터의 사연을 완전히 생략해버리면 이야기 진행이 안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타이밍]은 고백을 통해 캐릭터의 사연을 소개하는데, 그러한 장면이 반복되다보면 영화 자체가 어색해지고 유치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실소가 터졌던 이유

 

아마도 강풀의 웹툰을 원작으로한 영화들이 흥행에서 성공하는 영화보다 실패한 영화가 많은 이유도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타이밍]은 강풀의 웹툰을 원작으로한 다른 영화들보다 그러한 문제점이 가장 심합니다.

일단 [타이밍]에는 캐릭터들이 많습니다. 시간능력자만 네명이고, 거기에 현대판 저승사자 양성식 형사(성완경)까지 더한다면 주인공만 다섯입니다. 게다가 영화 후반부에 끔찍한 사건을 저지른 범인의 사연까지 소개되어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결국 [타이밍]은 최악의 실수를 저지르는데... "왜 이런 짓을 저지르는 거지?"라고 묻는 양성식에게 "어차피 죽을테니 가르쳐주지."라며 범인은 주저리 주저리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합니다.

그 장면은 영화의 클라이막스입니다. 하지만 저는 실소를 터트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범인이 자신의 사연을 양성식에게 이야기하는 동안 양성식을 붙잡고 있던 시체들의 움직임이 너무나도 우스꽝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범인의 사연에서 뭔가 가슴 찡한 감정을 느껴야 하는데(원작에서는 느꼈었습니다.) 오히려 실소만 터져 나오니 결코 [타이밍]을 좋게 봐줄 수가 없었습니다.

 

 

 

앞으로는 조금씩 나아지길 기대하며...

 

어쩌면 제가 강풀의 웹툰 <타이밍>을 너무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기대도가 높았던 것이 진짜 문제였는지도 모릅니다. 분명 [타이밍]은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미래를 바꾸는 박자기의 마지막 선택이 인상깊었고, 끔찍한 사건을 막은 후 다시 모인 멤버들의 모습이 훈훈했습니다. 비록 영화의 시작은 더빙 때문에 짜증났고, 클라이막스는 실소가 터져나왔지만, 영화의 마지막 만큼은 꽤 좋았습니다.

분명 우리나라의 척박한 애니메이션 환경에서 이렇게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만으로도 박수를 쳐줄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민경조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언제까지 척박한 환경 탓만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척박한 환경을 딛고 최선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 선구자들의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타이밍]은 개인적으로 분명 아쉬움이 짙게 남은 영화였지만, 민경조 감독처럼 끊임없이 도전을 시도한다면 언젠가 우리나라 관객들도 "한국 애니메이션도 재미있네."라고 인정해주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타이밍]을 보며 속으로 많이 짜증내고 한숨을 쉬었지만, 다 보고 나서는 그래도 마음 속으로 박수를 쳐주며 영화의 멈춤 버튼을 눌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