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주연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톰 하디, 돔놀 글리슨, 윌 폴터
개봉 : 2016년 1월 14일
관람 : 2016년 1월 20일
등급 : 15세 관람가
너무 과한 계획을 세웠다.
2016년 들어서 제 영화보기 계획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겨울방학을 맞이한 웅이와 구피가 주말마다 함께 영화를 봐주니 2016년에 개봉한 기대작을 놓치지 않고 꼬박꼬박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웅이와 함께 볼 수 없고, 그렇다고 구피도 함께 보기를 거부한 영화들입니다. 그런 영화의 경우는 혼자 보러 가야하는데 아무래도 혼자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은 귀찮아서 뒤로 밀리고 있습니다.
혼자 보러 가야하지만 귀찮아서 관람을 미루고 있는 영화는 [헤이트풀 8]과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입니다. [헤이트풀 8]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영화이고,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15세 관람가 등급의 영화입니다. 다시말해 웅이와 함께 볼 수 없는 영화라는 뜻입니다. 게다가 두 영화 모두 러닝타임이 2시간 30분을 훌쩍 넘으니 구피 역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난 저렇게 긴 영화는 절대 못 봐."를 선언해 버렸습니다.
결국 저는 [헤이트풀 8]과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를 몰아서 하루에 한꺼번에 보기 위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첫번째 계획은 연차 휴가를 내는 것이었는데 회사 업무가 바빠서 포기해야 했고, 두번째 계획은 퇴근하자마자 곧장 극장으로 달려가서 [헤이트풀 8]과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보는 것입니다. 두번째 계획을 위해서는 저녁식사도 굶어야 하고, 영화가 끝나고나면 거의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라는 단점이 있습니다.
저는 두번째 계획을 위해 저희 회사 근처 멀티플렉스 극장과 집 근처 멀티플렉스 극장의 상영시간표를 이리저리 비교하며 계획을 짰습니다. 두편 모두 워낙 러닝타임이 길어서 하루에 두편을 모두 보려면 1시간 정도 일찍 퇴근을 해야했지만, 그 정도 위험부담은 어느정도 감수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영화를 볼땐 배고픔도 잊을 수 있으니 저녁식사를 굶어야 하는 것도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국 [헤이트풀 8]을 포기하고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만 보는 것으로 막바지에 계획을 변경했습니다. 그 이유는 두 영화가 제겐 너무 쎈 영화라는 점 때문입니다. 쎈 영화를 두편 연달아 그것도 3시간 넘게 관람을 하고나면 심적으로 너무 힘들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결국 [헤이트풀 8]은 아쉽지만 나중에 다운로드 서비스가 오픈되면 보고, 아카데미 수상이 유력한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만 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를 보고나니 그러한 제 선택이 옳았음을 다시한번 깨달았습니다.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무려 2시간 30분동안 쉴새없이 관객을 몰아치는 영화입니다. [헤이트풀 8]이 파갑칠 영화로 유명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임을 감안한다면 이 두 영화를 연달아 봤다면 아마 저는 며칠동안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릴뻔 했습니다.
아들을 지키지 못한 아빠의 분노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서부개척시대 이전인 19세기 아메리카 대륙을 무대로 전설적인 모험가 휴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1823년 어느 모피 회사에서 사냥꾼으로 일하던 그는 회색곰의 습격으로 큰 부상을 당하게 되고, 동료들이 그를 버리고 떠나자 그들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상처와 고통, 그리고 추위와 배고픔과 싸워가며 4천 킬러미터가 넘는 기나긴 여정을 지나 살아 돌아왔다고 합니다.
영화는 여기에 극적인 이야기를 하나 더 보탭니다. 글래스를 버리고 달아난 동료 존 피츠제럴드(톰 하디)가 글래스의 아들 호크를 죽였다는 설정입니다. 아들의 죽음으로 글래스의 복수심은 극대화되었고, 어떻게든 살아 돌아가 피츠제럴드에게 복수하겠다는 글래스의 의지는 더욱 굳건히집니다.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피츠제럴드에게 복수하기 위해 겪어야 했던 글래스의 극한 생존기를 2시간 30분동안 잡아냅니다.
여기에서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호크가 백인과 인디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라는 점입니다. 백인은 아메리카 대륙을 차지하기 위해 이미 아메리카 대륙에 터를 잡고 그들만의 문화를 이루었던 인디언 부족을 학살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백인과 인디언의 전쟁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영화에서도 글래스는 인디언 여성과 결혼하여 인디언 부족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지만 백인 군부대의 공격으로 모두 몰살당하고, 글래스와 호크만 살아남는 장면이 나옵니다.
글래스는 호크를 죽으려는 백인 장교를 죽입니다. 그러면서 호크에게 끊임없이 다짐합니다. 아빠가 널 지켜주겠다고... 호크가 자신을 짐승같은 인디언이라고 비하하는 피츠제럴드를 공격하려하자 글래스는 호크를 막습니다. 그리고는 "유령처럼 조용히 살아라. 사람들은 너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저 너의 피부색만 본다."라고 충고합니다. 그것이 바로 호크를 지키기 위한 글래스의 방법입니다.
하지만 결국 글래스는 호크를 지키지 못합니다. 회색곰에게 습격을 받아 자신의 몸조차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처지가 된 글래스는 눈 앞에서 호크가 피츠제럴드에게 살해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호크를 지키기 위해 백인 장교를 죽였고, 짐승같은 인디언이라는 동료의 비하도 참았지만, 결국 글래스는 아빠로써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아들을 지키지 못한 아빠의 분노입니다.
만약 휴 글래스의 실화대로 그저 자신을 버리고 도망친 동료에게 복수하기 위해 글래스가 모든 역경을 딛고 살아 돌아왔다면 영화는 조금 허망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기에 부성애라는 모든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키워드를 삽입함으로써 영화에 대한 몰입감을 높였습니다. 죽음보다 괴로운 생존의 고통을 겪으면서 글래스는 아들을 죽인 원수를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복수는 신의 몫이다.
저 역시 한 아이의 아버지이기에 아들을 죽인 피츠제럴드에게 복수하기 위해 끝까지 살아남는 글래스의 이야기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글래스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바람에 2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제겐 끔찍했습니다.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글래스가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역경을 겪는 과정을 너무나도 리얼하게 잡아냈기 때문입니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글래스를 끝까지 몰아부칩니다. 글래스가 회색곰에게 습격을 당하는 장면은 너무 사실적이어서 영화를 보는 제 등이 얼얼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글래스는 회색곰에게 몸이 찢기는 부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일어서야 합니다. 게다가 백인에게 납치된 딸을 되찾기 위해 글래스 일행을 끝까지 추격하는 인디언 부족 아리카라족의 공격에서도 살아남아야 합니다. 극한의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썩어들어가는 상처 부위 등, 이 영화가 실화가 아니었다면 저는 글래스의 상황이 너무 과장이 심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글래스는 아리카라족의 공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폭포수에 뛰어들고, 말을 탄채 절벽에서 떨어지고, 추위를 피하기 위해 죽은 말의 내장을 전부 제거한 후 그 속에서 하룻밤을 지새기도 합니다. 이쯤되면 피츠제럴드가 글래스에게 "편안하게 죽여주겠다."라는 속삭임을 유혹으로 받아들일만합니다. 아들을 잃은 분노, 그리고 복수심만 아니었다면 차라리 생존을 포기하고 편안한 죽음을 선택하고 싶을만큼 글래스의 상황은 여러모로 최악이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글래스는 복수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글래스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 도망친 피츠제럴드를 붙잡기 위해 리더인 앤드류 헨리(돔놀 글리슨)와 글래스가 함께 나서지만 결국 이 영화의 마지막은 글래스와 피츠제럴드의 1대1 대결이 됩니다. 글래스의 생존기가 극한의 고통으로 표현되었다면 글래스의 복수는 극도의 긴장감으로 표현됩니다. 특히 롱테이크로 완성된 글래스와 피츠제럴드의 최후 격투씬은 그야말로 최고였습니다.
제87회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한 [버드맨]에서도 그랬습니다. 한때 슈퍼히어로 '버드맨'으로 할리우드 톱스타에 올랐지만 지금은 잊혀진 배우에 불과한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의 불안정한 내면을 롱테이크 기법으로 세세하게 잡아냈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에서도 롱테이크와 더불어 근접촬영으로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복수를 위해 온갖 고행을 참고 견디는 글래스의 얼굴에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는 장면이 많은데 추위에 의한 글래스의 입김이 카메라를 흐릿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카메라가 흐릿해지면 영화를 보는 저도 추위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글래스와 피츠제럴드의 격투씬도 마찬가지입니다. 손도끼를 든 글래스와 단검을 든 피츠제럴드의 격투씬은 카메라에 피가 튀겨도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영화를 보며 정말 끝까지 간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뿌리가 단단한 나무
결국 복수는 신의 몫이었습니다. 복수를 위해 그 어떤 고난도 참아내고 쉬지않고 달려왔건만 글래스는 복수의 순간을 신의 몫으로 남겨둡니다. 그렇게 모든 복수가 끝난 이후의 글래스의 표정은 가히 압도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글래스를 연기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몸을 사리지 않는 명연기에 저는 마음속으로 맘껏 박수를 쳤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아카데미 잔혹사는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길버트 그레이프]를 시작으로 [에비에이터], [블러드 다이아몬드], [더 울프 오브 윌스트리트]로 네번이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번번히 수상에는 실패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를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아카데미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는 골든글로브에서 드라마부문 남우주연상을 움켜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과연 오는 2월 28일에는 활짝 웃을 수 있을까요?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에서 뿌리가 단단한 나무는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그것은 복수를 위해 결코 쓰러지지 않는 글래스를 지칭한 말이기도 하지만 저는 그것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도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타이타닉]으로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에 올랐지만 흥행에 유리한 블록버스터 영화보다는 마틴 스콜세지, 샘 멘데스, 크리스토퍼 놀란, 쿠엔틴 타란티노, 바즈 루어만 등 거장의 걸작에 주로 출연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거장과 함께 하며 단단하게 뿌리내린 그의 연기는 결코 흔들림없이 올해 아카데미를 빛내지 않을까요?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를 보고나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저절로 응원하게 되네요.
영화를 보고 극장 밖을 나서는데 온 몸이 아프고, 춥고, 배고팠다.
2시간 30분동안 글래스에 감정이입을 하고나니 너무나도 힘들었던 것이다.
따뜻한 집에 돌아와 구피와 함께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나니 행복감이 밀려왔다.
어쩌면 복수를 마친 글래스가 죽은 아내의 환영을 봤을 때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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