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6년 영화이야기

[빅쇼트] - 확실히 안다는 착각때문에 우리는 곤경에 빠진다.

쭈니-1 2016. 1. 29. 18:28

 

 

감독 : 아담 맥케이

주연 : 크리스찬 베일, 스티브 카렐, 라이언 고슬링, 브래드 피트

개봉 : 2016년 1월 21일

관람 : 2016년 1월 28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우리가 세금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

 

매년 1월은 직장인들에게 13번째 월급이라는 연말정산을 하는 달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연말정산을 하고나면 세금환급 대신 세금을 더 토해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말정산 결과 세금을 내야하는 직원들은 저희 부서로 와서 따집니다. 그럴때마다  저와 저희 부서 직원들은 진땀을 흘리며 그 직원이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하지만 저희의 설명을 이해하는 직원은 별로 없습니다. 그냥 대충 듣고 툴툴거리며 자리로 돌아가버립니다.

사실 저도 처음 직장 생활을 할때 그랬습니다. 그냥 회사에서 연말정산 서류를 제출하라고해서 제출했고, 2월 급여에 연말정산 환급분이 있어서 좋아라하며 받기만 했었습니다. 그러다 연말정산 결과 세금을 더 내야하는 경우가 생기면 왜 나만 세금을 더 내냐며 투덜거렸습니다. 연말정산을 왜 해야하고, 어떤 사람은 환급을 받고, 어떤 사람은 세금을 더 내야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세금인데 잘 알지도 못했고, 제대로 알려고 하지도 않은 셈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세금을 냅니다. 회사에서 월급을 받을 때에도 소득세라는 세금을 내야 하고, 물건을 팔때아 이득을 볼 때도 부가가치세라는 세금을 내야합니다. 물건을 살 때도 물건값에 포함된 세금을 나도 모르게 내고 있으며, 영화를 볼때도, 목욕을 할때도, 운전을 할때도 세금을 냅니다. 우리의 생활 하나하나에 모두 세금을 붙어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선거를 잘 해야하고 선거후에도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우리의 주머니에서 나간 세금을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을 잘 운영하라고 맡겼기 때문입니다.     

 

연말정산은 직작인들이 낸 1년치 세금을 정산하는 것입니다. 매월 우리는 월급을 받을 때마다 소득세라는 명목으로 세금을 뗍니다. 그리고 매년 12월이 지나면 지난 1년동안의 소득과 1년동안 낸 세금을 계산해서 세금을 더 낸 직장인들에게는 세금을 환급해주고, 세금을 덜 낸 직장인들에게는 세금을 더 걷어가는 것이죠. 결국 연말정산으로 돌려 받는 세금은 공짜돈이 아닌, 우리에게 과다징수된 세금을 국가로부터 돌려받는 것일 뿐입니다. 

연말정산 결과 세금을 더낸 직원이 저희 부서로 와서 "나는 왜 세금을 더 내야 하냐?"라고 따지면 저는 그 직원에게 매월나가는 월급에서  소득세를 더 징수합니다. 그러면 그 직원은 다음년도 연말정산에서 세금을 환급받을 것입니다. 결국 내는 세금은 똑같지만 직원들은 매월 세금을 적게낸후 연말정산에서 세금을 내야하는 것보다, 매월 세금을 더 내고 연말정산에서 세금을 환급을 받을 때 더 좋아합니다. 결과적으로는 조삼모사(朝三暮四)일 뿐인데 말이죠.

과연 우리는 우리가 내는 막대한 세금을 대해서 잘 알고 있을까요? 월급을 지급할때마다 명세서를 직원들에게 나눠주지만 대부분 자신이 받을 최종 금액만 확인하고 맙니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내 월급에서 왜 소득세가 이만큼 빠져 나가는 것인지 제게 물었던 직원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그저 연말정산 결과 세금을 환급해주면 공짜돈 생겼다고 좋아할 뿐입니다. 직장인들의 대표적인 세금인 소득세도 이러한데, 우리가 내는 수 많은 세금에 대해서는 오죽할까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왜 일어났을까?

 

지난 목요일 [빅쇼트]를 봤습니다. 이 영화는 2007년 미국 경제 뿐만 아니라 세계경제까지 휘청이게 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의 실화를 소재로한 영화입니다. 당시 제가 다니는 회사도 미국발 외환 위기로 휘청였고, 그 여파로 많은 직원들이 정리해고를 당했으며, 남은 직원들도 연봉이 일정부분 삭감된채 1년을 버텨야 했습니다. 제가 [빅쇼트]를 본 이유는 이렇게 제 생활에 악몽을 안겨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왜 일어났는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빅쇼트]는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라는 <톰 소여의 모험>의 작가 마크 트웨인의 명언으로 시작합니다. 사실이 그러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은 복잡하게 꼬여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가 사는 사회 시스템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착각일 뿐입니다. 복잡하게 꼬여진 사회 시스템을 이용해서 권력자들은 끊임없이 부정부패를 저지르며 부를 쌓아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권력자들이 부를 쌓아가도 눈치챌 수가 없습니다. 그저 한참 지난 후에 뉴스에서 부정부패 뉴스가 나오면 아주 잠깐 분노할 뿐입니다.

그것은 미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빅쇼트]의 소재가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만 봐도 그러합니다.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에게 주택 자금을 빌려주는 주택담보대출인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은 태생적으로 위험부담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모기지론 업체들은 신용등급이 높은 고소득층과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을 복잡하게 섞어 한데 묶은 후 위험부담이 적은 대출 상품으로 둔갑을 시킨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보이는 것을 복잡하게 꼬아서 사기를 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왜 일어난 것일까요? [빅쇼트]를 재미있게 보려면 그러한 이유를 어느정도는 알고 영화를 봐야합니다. 사태의 발단은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2000년대 초반 미국 경기가 악화되자 정부는 경기부양책으로 초저금리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에 따라 주택융자 금리가 인하되었고, 부동산 가격은 상승하였습니다. 주택담보대출인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은 대출금리보다 부동산 가격이 높은 상승률을 보이자 거래량이 대폭 증가하였습니다.

하지만 2004년 미국의 저금리 정책이 종료하면서 미국 부동산 거픔이 꺼지기 시작했고,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금리가 올라가면서 저소득층 대출자들은 원리금을 제대로 갚지 못하게 됩니다. 증권화되어 거래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구매한 금융기관들은 대출금 회수 불능사태에 빠져 손실이 발생했고, 그러한 과정에서 대형 금융사, 증권회사의 파산이 이어진 것입니다. 그것이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이어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실체입니다.

결국 미국 정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공적 자금을 투입합니다. 공적 자금이 투입되었다는 것은 국민이 낸 세금이 욕심으로 인하여 스스로 몰락한 대형 금융기관의 문제를 해결해야함을 뜻합니다. 이에 대해서 뉴욕대의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시스템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하며 경영 잘못으로 어려움에 빠진 기업들을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구제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지기 사태에 대한 친절한 설명서

 

[빅쇼트]는 차근차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관객에게 설명합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이 사태를 미리 예측하여 큰 돈을 번 괴짜 천재들을 보여줍니다. 그러한 면에서 아마 많은 분들이 [오션스 일레븐]과 같은 통쾌한 범죄 스릴러를 기대하셨을 것입니다.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했던 [오션스 일레븐]과 마찬가지로, [빅쇼트] 역시 크리스찬 베일, 스티브 카렐, 라이언 고슬링과 브래드 피트까지 블록버스터 영화가 부럽지않은 초호화 캐스팅을 완성했으니까요.

하지만 [빅쇼트]는 결코 [오션스 일레븐]과 같은 영화가 아닙니다. 아예 이 영화는 범죄 스릴러가 아닐 뿐더러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거액의 이익을 본 괴짜 천재들의 각각의 이야기를 그냥 담담하게 담아낼 뿐입니다. 그들의 활약에 그 어떤 통쾌함도 없습니다. 오히려 영화를 보고나면 씁쓸함만 남습니다. 왜냐하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결국 피해를 본 것은 부정부패를 저지른 금융기관의 간부들이 아닌 아무 것도 몰랐던 일반인들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월가에 환멸을 느끼고 떠났지만 젊은 펀드매니저 찰리와 제이미를 돕기 위해 돌아온 전직 트레이더 벤 리커트(브래드 피트)의 한마디는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계약을 성사시킨 후 큰 돈을 벌 생각에 춤을 추며 좋아하는 찰리와 제이미에게 벤은 "넌 지금 미국경제가 무너진다에 돈을 걸었어. 미국 경제가 무너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수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퇴직금을 잃고, 직장을 잃어." 라며 춤을 추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영화의 결말이 결코 통쾌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러한 벤의 우려가 현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빅쇼트]는 어떤 면에서는 마치 서브프라임 모지기 사태를 소재로한 다큐멘터리 영화같기도 합니다. 실제 이 영화는 극영화로써는 조금은 색다른 장면들을 영화 속에 삽입합니다. 예를 들어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어려운 경제 용어들을 익숙한 배우들이 직접 관객에게 설명하는 식입니다. 마고 로비는 거품목욕을 하며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관객에게 설명합니다. 그리고는 "설명 다 들었으면 이제 꺼져."라며 빅펀치를 날립니다.

세계적 셰프 안소니 부르댕은 팔 수 없는 해산물들을 해산물 스튜에 넣어 파는 음식업계의 행위로 CDO(자산담보부증권)를 설명하고, 세계적인 경제학자 리차드 탈러 박사와 여배우 셀레나 고메즈는 자산담보부증권의 붕괴가 가져올 도미노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블랙잭 테이블에 앉아 본 게임에 걸린 사이드 배팅을 예로 들어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영화 중간중간 영화 속 캐릭터들은 영화를 보는 관객과의 대화를 시도합니다. 괴팍한 성격의 마크 바움(스티브 카렐)이 라스베가스에서 개최한 경제인 포럼에서 연설자의 연설을 방해하며 질문 공세를 퍼붓자, 그의 부하 직원은 관객에게 "실제로 그는 그랬었다."라며 괴팍한 상사를 모셔야하는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찰리와 제이미는 은행 로비에서 투자 설명서를 우연히 줍는 장면에서 갑자기 관객을 향해 "실제로는 안그랬다."라며 설명하는 식입니다.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우리와 같은 소시민이다. 

 

사실 저는 [빅쇼트]를 보기 전, 이 영화가 [오션스 일레븐]과는 전혀 다른 영화이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소재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닌, 오히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새로운 시도를 한 영화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영화를 봤습니다. 그렇기에 기존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뜻밖의 장면들이 흥미로웠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대해서 쉽게 설명해주는 장면들이 고마웠습니다.

애초에 제가 [빅쇼트]를 보기로 결심한 이유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궁금증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빅쇼트]를 굉장히 만족하면서 봤습니다. 물론 제가 이 영화를 봤다고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완벽히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막연히 글로만 읽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친절한 설명과 함께 실화를 바탕으로 꼼꼼히 보여주니 2시간 1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영화가 끝난 이후 씁쓸함의 여운도 꽤 짙었습니다. 마크 바움 일행에게 집주인이 주택담보대출을 연체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은 오락부락하게 생긴 세입자는 "그럼 우린 쫓겨나는 건가요? 난 월세를 전부 냈단 말이예요. 이제 겨우 우리 애들이 학교에 적응하고 있는데..."라며 안절부절합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 세입자는 결국 집에서 쫓겨나 어린 아이들을 안쓰럽게 안아줍니다. 돈 많은 자들이 벌인 부정부패로 돈 없는 자들이 입어야 하는 치명적 피해를 적절하게 보여준 장면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어떤 분들은 "이에 뭐야. 영화가 너무 지루했어."라고 투덜거리며 극장 밖을 나섭니다. 만약 제가 [오션스 일레븐]과 같은 오락영화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았다면 저 역시 그 분과 같은 반응을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빅쇼트]는 단순한 영화적 재미와는 결코 비교할 수 없는 묵직한 여운을 제게 안겨줬습니다. 저 역시  확실히 안다는 착각때문에 종종 곤경에 빠지는 소시민에 불과하기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크나큰 상처를 입게 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남이야기같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보며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문에 제가 겪어야 했던 고충들이 새삼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당시 저는 정든 회사 직원들에게 직접 정리해고 통보를 해야 했고, 회사에 남는 조건으로 연봉의 20% 삭감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때의 막막했던 심정이 [빅쇼트]를 보며 되살아났습니다. 다시는 저런 일들이 일어나지 말아야 할텐데... 하지만 영화는 마지막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라며 [빅쇼트]는 일침을 날립니다.

이제 완전히 브루스 웨인의 옷을 벗어버린 크리스찬 베일의 완벽한 연기와 [폭스캐처]에 이어 이젠 연기파 배우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스트브 카렐의 연기까지... [빅쇼트]는 모든 것이 인상적인 영화였습니다. [빅쇼트]는 지난 23일 미국 제작자협회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고합니다. 이 영화를 보기전 이번 아카데미는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무혈입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빅쇼트]의 수상도 개인적으로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간단해 보이지만 복잡하게 꼬여버린 우리가 사는 사회 시스템은

가진 자들이 더 쉽게 비리를 저지르기 위한 비열한 짓거리일지도 모른다.

그럴수록 우리는 확실히 안다는 자만심을 버리고

좀 더 세세히, 그리고 관심있게 사회를 바라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