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6년 영화이야기

[구스범스] - 내 안의 괴물과 마주할 시간.

쭈니-1 2016. 1. 19. 15:46

 

 

감독 : 롭 레터맨

주연 : 잭 블랙, 딜런 미네트, 오데야 러쉬, 라이언 리

개봉 : 2016년 1월 14일

관람 : 2016년 1월 17일

등급 : 12세 관람가

 

 

쭈니네 가족의 2016년 첫 여행 남해에 다녀와서...

 

지난 금요일 저희 가족은 밤 11시에 관광버스를 타고 남해에 갔다가 그 다음날 토요일 밤에 집으로 돌아오는 무박2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2016년 저희 가족의 첫 여행인 셈입니다. 새벽 4시에 삼천포항에 도착해서 갓 잡은 생선을 경매하는 것도 구경하고, 다랭이 마을에 가서 일출을 보고, 보리암에 갔다가 멸치 쌈밥으로 점심식사를 해결, 독일마을에서 독일맥주와 수제 소시지로 마무리하는 일정이었습니다.

비록 날씨가 너무 흐려 일출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나름 재미있는 여행이었습니다. 특히 맥주 애호가인 저로써는 독일마을에서 마신 독일맥주가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독일마을에서 마신 독일맥주는 만약 관광버스 여행이 아닌, 제 차로 떠난 여행이었다면 결코 누리지 못했을 호사였기때문입니다.

남해여행의 유일한 문제는 무박2일의 후유증이 생각보다 깊었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관광버스에서 잤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시끄럽고 불편했기에 집에 돌아오니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팠습니다. 그래서 토요일 밤에는 저희 가족 모두 관광버스 의자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편안한 침대에서 아주 깊은 꿀잠을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

 

다음날인 일요일, 저와 구피는 무박2일 여행의 후유증으로 쉽게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지 못했지만 웅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저와 구피가 일어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저희 가족 모두 [구스범스]를 보기로 약속한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구피는 "난 그냥 집에서 쉬면 안될까?"라며 간절한 눈빛을 보냈지만, 엄마, 아빠랑 영화보러 간다고 좋아하는 웅이의 바람을 거부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렇게해서 2016년들어서 [셜록 : 유령신부]에 이은 저희 가족의 두번째 영화가 [구스범스]로 결정되었습니다. [구스범스]는 잭 블랙 주연의 판타지, 모험 영화입니다.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구스범스'의 원고에서 온갖 괴물들이 튀어 나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다는 내용으로 어찌보면 [쥬만지]와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 [쥬만지]를 정말 재미있게 봤기에 [구스범스]는 일찌감치 저와 웅이의 기대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저희 가족의 기대대로 [구스범스]는 [쥬만지]보다는 떨어지지만 그래도 비슷한 재미를 가진 오락영화였습니다. 설인, 늑대인간, 거대한 사마귀, 외계인, 좀비, 그리고 말하는 인형등 온갖 괴물들이 총동원되고, 괴짜 소설가 스타인(잭 블랙)을 비롯한 캐릭터들이 괴물들을 다시 책 속으로 집어넣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에 빠지다보면 1시간 4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훌쩍 지나가버립니다.

 

 

기본적으로 캐릭터들의 성장담

 

비록 저는 읽어보지 못했지만 [구스범스]는 1992년 첫 출간된 이후 30여년 동안 100권이 넘는 시리즈가 출간된 동명의 베스트셀러 시리즈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구스범스> 시리즈는 미국에서는 TV 시리즈로 제작되어 3년동안 방송되었으며, 2001년과 2003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어린이 책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고 합니다. 

[구스범스]는 이렇게 대단한 베스트셀러 시리즈를 원작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독특한 선택을 합니다. 그것은 바로 원작의 시리즈를 차근차근 영화화함으로써 영화도 시리즈화하는 안전한 선택이 아닌, 원작은 그저 영화의 모티브로 삼고 그 대신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내는 것입니다. 그 결과 <구스범스>의 원작자인 R.L. 스타인이 영화속 주인공이 되고, <구스범스> 시리즈의 괴물들이 영화에 총 출동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괴물에 집중되었던 <구스범스>와는 달리 영화는 캐릭터들의 성장담에 주목합니다. 어렸을적부터 알레르기때문에 외부 출입을 하지 못했던 스타인은 자신을 놀려대는 아이들에게서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상상속 괴물들을 만들어냅니다. 그렇게 그가 만들어낸 상상속 괴물들은 그를 세계적 베스트셀러 소설가로 만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주가 되어 성인이 되어서도 외부 사람들과의 관계를 꺼리는 폐쇄적인 외톨이로 만듭니다.

 

사정은 스타인의 옆집에 새로 이사온 잭(딜런 미네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잭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겉으로는 괜찮은척 하지만 마음 속의 상처는 곪고 있습니다. 잭의 어머니(에이미 라이언)는 그러한 잭을 위해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로 이사오며 환경을 바꿔보려 하지만 한번 닫혀진 잭의 마음은 결코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내적 성장이 멈춰버린 스타인과 내적 성장이 멈춰버릴 위기에 처한 잭은 '구스범스'의 원고에서 튀어나온 괴물들과 맞서 싸우면서 점차 변해갑니다. 스타인은 한때 필요로 인하여 창조했지만, 이젠 책 속에 영원히 가두어 외면하고 싶은 괴물들과 마주하며 어린 시절의 상처를 스스로 극복해내고, 잭은 스타인의 딸인 헤나(오데야 러쉬)와의 관계를 통해 닫혀진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됩니다.

[구스범스]는 스타인과 잭을 중심으로 캐릭터들의 성장담을 담아냅니다. 그러한 와중에 자신을 집안에만 가둬놓고 키우는 아버지 스타인에게 반항하는 헤나와 잭의 친구로 영화의 코믹한 부분을 담당하는 챔프(라이언 리)의 코믹 연기로 영화의 분위기를 띄웁니다. 잭과 헤나, 그리고 챔프로 이어지는 남자 둘, 여자 하나의 조합은 [해리 포터 시리즈]를 비롯하여 최근 [뮨 : 달의 요정]까지 이어지는 황금조합임을 감안한다면 [구스범스]의 의도가 다분히 보이기도 했습니다.

 

 

내 안의 괴물과 마주할 시간

 

[구스범스]가 스타인과 잭의 성장담이 주요 내용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이 영화의 재미는 '구스범스' 원고에서 튀어나온 온갖 괴물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잭과 챔프의 실수로 맨 처음 튀어나온 설인을 시작으로 늑대인간, 거대한 사마귀, 좀비 등 그동안 공포영화의 단골 소재였던 괴물들이 단체로 저희 가족을 재미있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의 최고 괴물은 말하는 인형 슬래피입니다. 슬래피는 마치 [쏘우]에 나오는 섬뜩한 인형을 연상시키는데, 슬래피가 거대하고 위력적인 [구스범스] 속 다양한 괴물 중에서 가장 돋보일 수 있었던 것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사악함 때문입니다. '구스범스'의 원고 속 괴물들이 모두 튀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슬래피의 계략 때문인데, 그는 자신을 책 속에 가두려는 스타인에게 제대로 복수를 한 셈입니다.

슬래피가 인상적일 수 밖에 없는 또다른 이유는 슬래피가 스타인 내면의 어두운 면을 의미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놀림 때문에 자신을 지켜줄 상상속 괴물을 만들었던 스타인. 그런 스타인의 유일한 친구는 슬래피입니다. 슬래피는 괴롭힘을 당하는 스타인과는 달리 남을 괴롭힐 수 있는 사악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슬래피의 사악함이 점점 도가 넘어서며 스타인에게는 또다른 괴롭힘이 되고맙니다.

 

그렇기에 스타인 입장에서 슬래피와의 대결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의 싸움이 됩니다. 한때는 스타인에게 있어서 가장 친한, 그리고 든든한 친구였지만, 이제는 스타인을 괴롭히는 괴물에 불과한 슬래피. 스타인은 그러한 슬래피와의 대결을 피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용감히 맞서 싸움으로써 그의 발목을 잡았던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겐 누구나 내면의 어두운 부분이 있습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상상속 세계에서 완벽하게 처리해주는 나와는 전혀 다른 내면의 또다른 나. 저 역시 직장 상사한테 혼나거나, 짜증나고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는 상상속에서 몇번이나 통쾌하게 복수를 합니다. 분명 그러한 상상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도가 지나치면 슬래피와 같은 괴물이 탄생합니다. 그러한 사실을 잘 알기에 [구스범스]의 스타인과 슬래피의 대결이 저는 흥미진진했습니다.

이렇듯 [구스범스]는 전세계적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오락영화로 탄생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과거의 악몽과 맞닿아 있는 슬래피와 정면 대결을 해야하는 스타인과 헤나와의 관계를 통해 성장해가는 잭의 이야기가 영화의 재미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었습니다.

 

 

[쥬만지]보다는 실망스럽다.

 

하지만 [구스범스]의 재미는 딱 거기까지입니다.  물론 단순하게 즐기기 위해 [구스범스]를 선택했다면 딱 그만큼의 재미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지만, 만약 [쥬만지]를 넘어서는 재미와 감동을 원한다면 실망감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스타인과 잭의 성장담을 담고는 있으면서도 그들의 캐릭터를 제대로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구스범스]와 비교될 수 밖에 없는 [쥬만지]는 마법의 보드게임인 '쥬만지'에서 정글속 동, 식물들이 튀어나오기 이전에 먼저 1969년을 배경으로 12세 소년 알랜(애덤 한 버드)과 그의 무뚝뚝한 아버지의 갈등, 그리고 1995년을 배경으로 교통사고로 부모를 여읜 주디(커스틴 던스트)와 피터(브래들리 피어스)의 상황을 꽤 자세하게 관객에게 소개합니다. 그렇기에 거의 30년 만에 '쥬만지'에서 빠져 나온 앨런(로빈 윌리엄스)이 30년전 자신과 함께 '쥬만지'를 했던 사라(보니 헌트)와 새로운 멤버 주디, 피터와 함께 '쥬만지'를 하면서 겪는 소동극은 영화적 재미와 함께 가슴 찡한 감동도 전해줬습니다.

하지만 [구스범스]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생략합니다. 스타인의 어린시절 트라우마는 그의 몇마디 말로 처리되고, 아버지를 잃은 잭의 닫힌 마음은 그의 어머니의 걱정 한마디로 간단하게 묘사됩니다. 잭과 헤나의 관계도 단 한번의 데이트가 끝이고, 챔프의 등장도 그다지 설득력이 없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끔 영화는 처리되어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이 영화의 감동으로 연결되지는 못합니다. 만약 스타인의 어린시절이 [쥬만지]가 알랜의 어린시절을 보여줬듯이 좀 더 자세히 표현되었다면 슬래피와의 대결로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스타인의 모습이 좀 더 감동적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잭과 헤나의 풋풋한 사랑을 좀 더 자세히 보여줬다면 괴물을 물리치기 위한 헤나의 희생과 헤나의 희생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잭의 선택에 코끝이 찡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캐릭터의 성장담을 담고 있지만, 캐릭터를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구스범스]는 영화를 보는 내내 유쾌하게 웃을 수 있을런지는 몰라도 [쥬만지]처럼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오래 남을만한 영화는 안타깝게도 되지 못했습니다.

영화가 끝나자 저희 가족의 앞 좌석에 앉은 어린 꼬마 관객은 함께 온 아빠에게 "벌써 끝났어요?"라며 아쉬워하더군요. 그만큼 [구스범스]는 어린이 관객의 눈높이에 충실한 영화입니다. 아쉽게도 그 이상의 재미는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1시간 40분동안 웅이를 비롯한 저희 가족 모두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던 영화라는 점에서 저는 만족합니다.

 

[구스범스]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투명인간의 복수'를 통한 속편을 은근히 암시한다.

만약 이 영화의 속편이 만들어진다면 그땐 캐릭터를 좀 더 세세하게 완성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