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6년 영화이야기

[굿 다이노] - 두려움을 견뎌낼 때 생기는 진정한 용기

쭈니-1 2016. 1. 12. 14:13

 

 

감독 : 피터 손

더빙 : 레이몬드 오초아, 제프리 라이트, 프란시스 맥도먼드, 샘 엘리어트

개봉 : 2016년 1월 7일

관람 : 2016년 1월 10일

등급 : 전체 관람가

 

 

픽사 애니메이션은 무조건 봐야 한다.

 

웅이의 초등학생으로써 마지막 겨울방학이 어느덧 2주가 지났습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연휴에 앞서 구피가 덜컥 감기에 걸리고, 곧이어 웅이도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저희 가족은 주말에도 외출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도 겨울방학인데 이대로 방구석에서만 보내는 것은 아쉬워 웅이와 함께 열심히 극장 나들이를 다녔습니다. 겨울방학동안 벌써 [어린왕자], [히말라야], [셜록 : 유령신부], [몬스터 호텔 2]를 웅이와 함께 봤으니 주말마다 두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본 것입니다. 

구피와 웅이의 감기가 드디어 나은 지난 토요일에는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모네, 빛을 그리다> 전시회도 가고, 부천 법원앞 맛집에서 얼큰한 '대구탕'을 먹으며 오랜만의 가족 외출을 즐겼습니다. 하지만 웅이와의 극장 나들이를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구피는 요즘 들어서 너무 자주 극장에 갔다는 이유로 웅이와 저의 겨울방학 다섯번째 극장 나들이를 반대했지만 저는 "픽사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극장에 안 볼 수가 있어?"라며 고집을 피웠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구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피웠던 이유는 [굿 다이노]가 픽사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픽사 애니메이션을 한편도 빠뜨리지 않고 관람했습니다. 특히 2009년 8월 [업]을 웅이와 함께 극장에서 관람한 이후에는 국내 개봉한 모든 픽사 애니메이션을 웅이와 함께 극장에서 봤습니다. 그러니 [굿 다이노]도 예외일 수는 없었습니다.

 

[굿 다이노]는 1995년 픽사가 디즈니와 함께 [토이 스토리]를 제작한 이래 픽사의 16번째 애니메이션이며, 동양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픽사 최초의 영화입니다. 특히 [굿 다이노]의 연출을 맡은 피터 손 감독이 한국계 미국인이라 국내에서는 더욱 화제가 되었는데, 피터 손 감독은 지난 1월 4일 내한하여 국내 영화팬과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1월 7일에 국내 개봉한 [굿 다이노]는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굿 다이노]는 안좋은 기록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픽사 애니메이션 중 북미 박스오피스 성적이 꼴찌라는 불명예입니다. 북미에서 2015년 11월 25일에 개봉한 [굿 다이노]는 [헝거게임 : 더 파이널]에 막혀 개봉 첫주 북미박스오피스 2위에 그쳤고,  현재까지 1억1천7백만 달러를 벌어들였을 뿐입니다. 이는 지금까지 꼴찌였던 1998년 영화 [벅스 라이프]의 1억6천2백만 달러의 기록에 한참 못미치는 성적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저와 웅이에겐 그저 의미없는 숫자에 불과했습니다. 장래희망이 고생물학자인 웅이와 픽사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는 제겐 공룡 소재의 영화를 그것도 픽사 애니메이션으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당장 극장으로 달려가야할 마땅한 이유였던 것입니다.

 

 

만약 공룡이 멸종하지 않았다면...

 

공룡은 왜 멸종되었을까요? 그것은 우리 인류에겐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입니다. 지금까지 가장 유력한 공룡 멸종의 이유는 약 6천5백만년전 거대한 운석이 지구와 충돌하면서 그 충격파로 공룡이 멸종되었다는 운석충돌설입니다. [굿 다이노]는 '만약 이 운석이 지구를 비껴 갔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시작합니다. 그랬다면 공룡은 멸종되지 않았을 것이며, 오랜 세월을 거쳐 공룡은 점점 진화해서 인간처럼 초식 공룡들은 농사를 짓고, 육식 공룡들은 가축을 사육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굿 다이노]는 단순한 공룡의 의인화가 아닌, 공룡이 멸종되지 않고 인간처럼 진화했다는 가정아래 영화를 진행시킵니다. 이러한 설정은 [굿 다이노]를 특별하게 만듭니다. 지금까지 동물을 의인화한 애니메이션은 많았습니다. 그들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동물이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어린이를 상대로한 영화이니만큼 논리적인 설명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굿 다이노]는 '만약'이라는 가정을 통해 공룡 의인화를 논리적으로 설명했고, 공룡의 의인화를 통해 또다른 상상력으로 발휘합니다. 그것은 바로 공룡과 인간의 관계입니다. [굿 다이노]의 인간은 '으르렁'거리는 것밖에 할줄모르는 야생 늑대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이것이 공룡을 소재로한 수 많은 애니메이션 중에서 [굿 다이노]가 특별한 이유입니다.

 

사실 공룡과 인간은 결코 만날 수가 없는 사이입니다. 공룡은 약 6천5백만년 전에 멸종했고, 인류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가 처음 등장한 것은 약 200만년 전으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공룡과 인간은 절대 같은 시기에 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공룡이 멸종되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정은 공룡과 인간을 조우시켰고, [굿 다이노]를 통해 겁 많은 공룡 알로(레이몬드 오초아)와 야생 인간 꼬마 스팟의 우정을 판생시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설정에서 [굿 다이노]의 또다른 특별한 점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 공룡과는 달리 이제 막 진화를 시작한 인간은 공룡에 비해 원시적인 동물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것은 제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굿 다이노]에서 공룡과 인간의 관계가 최소한 동등한 관계일 것이라 예상했는데, [굿 다이노]는 인간같은 공룡과 마치 귀여운 애완 강아지같은 인간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굿 다이노]가 가지고 있는 '만약'이라는 상상력의 힘이 발휘됩니다. 만약 공룡이 멸종되지 않았다면, 그래서 만약 공룡이 진화를 통해 인간처럼 높은 지능을 갖게 되었다면 과연 우리 인간은 지금과 같은 문명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굿 다이노]를 보고나서 저와 웅이는 공룡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을 이야기하며, 이 영화가 선사한 상상력의 매력을 맘껏 만끽했습니다.

 

 

환상적인 자연 풍경에 매료되다.

 

저는 나이 마흔을 넘긴 중년의 남성이지만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애니메이션을 좋아합니다. 특히 저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데, 이유는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부담없이 웃으며 즐길 수 있고, 거대한 자본력으로 탄생한 판타스틱한 영상이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굿 다이노]가 그러합니다. 사실 [굿 다이노]의 알로는 인형 제작을 염두에 둔 것처럼 단순하고, 스팟은 너무 야생적으로 표현해서 매력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영화의 배경만큼은 저도 모르게 탄성이 나올만큼 정말 완벽한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영화 초반 알로의 아빠(제프리 라이트)가 겁 많은 알로에게 두려움을 극복했을 때 만날 수 있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반딧불의 숲에 데려가는 장면이 그러합니다. 화면 가득 채운 반딧불의 향연은 인간들이 저지른 환경 오염으로 지금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광경이기에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그 외에도 [굿 다이노] 후반에 나오는 알로와 스팟이 하얀 물새들 사이로 뛰는 장면과 어마무시한 위력을 자랑하는 태풍 장면 등 [굿 다이노]는 압도적인 자연의 아름다움을 제게 선사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오를때 영화의 배경들이 다시한번 펼쳐집니다. 엔딩크레딧 뒤에 쿠키 영상이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와 웅이는 영화의 배경 장면이 사라질때까지 극장 좌석을 지키고 앉아있었답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의 최고 장점이 압도적인 기술력을 앞세운 판타스틱한 영상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장점은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주는 스토리 전개와 캐릭터들의 활약입니다. [굿 다이노]도 마찬가지인데, 겁 많은 공룡 알로와 야생 꼬마 스팟 외에도 영화의 재미를 풍부하게 하는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 중 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알로 만큼이나 겁이 많은 공룡 우드부시입니다. 우드부시는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보드가드를 광적으로 수집하는데, 그의 뿔에는 온갖 동물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우드부시는 참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입니다. 자신보다 작은 동물들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허황된 믿음이 그러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보험, 연금 등으로 불안한 미래에 대한 대비에 몰두하는 현대인을 풍자했고, 알로가 스팟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결정적인 동기를 부여하는 중요한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알로가 여행 도중 만나는 무시무시한 육식 공룡 부치(샘 엘리어트)도 인상깊었습니다. 대부분의 공룡 영화에서 초식공룡의 최대 위험은 육식공룡입니다. 그렇기에 부치와 그의 가족이 처음 등장할때 저는 알로가 큰 위기에 처했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진화한 공룡을 다룬 [굿 다이노]에서는 지금까지의 상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치로 인하여 알로는 두려움은 사라지는 것이 아닌 견뎌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웁니다.

 

 

두려움을 견뎌낼 때 생기는 진정한 용기

 

거대한 악어와 싸워 이긴 탓에 얼굴에 무시무시한 흉터가 남은 부치. 알로는 그런 부치를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두려움이 없는 그의 모습을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부치는 알로에게 자신도 악어와 싸웠을 때 두려웠다고 털어놓습니다. 그리고는 두려움은 본능이기 때문에 없어지는 것이 아닌 참고 견뎌내는 것이라 충고합니다. 그렇게 두려움을 견뎌내다보면 진정한 용기와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치의 한마디는 알로에게, 그리고 겁이 많은 제게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저는 정말 겁이 많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귀신이 너무 무서워서 화장실 가는 것을 꺼려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는 화장실이 대부분 집 밖에 있었고, 요즘과 같은 수세식 화장실이 아닌 일명 '푸세식' 화장실이었습니다. 그래서 화장실에 쭈그리고 앉아 대변을 볼땐 화장실 맨 밑에서 귀신이 올라와 "빨간 휴지를 줄까? 파란 휴지를 줄까?"라며 제 엉덩이를 툭툭 칠 것 같아서 최대한 빨리 볼 일을 보고 화장실을 뛰쳐 나오곤 했습니다. 

지금도 저는 겁이 많습니다. 그래서 공포영화를 못봅니다. 한때는 두려움을 극복하겠다고 공포영화를 억지로 보곤 했지만, 지금은 아예 공포영화 보기를 포기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성인이 되어서도 두려움을 없애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젠 귀신이 마냥 무섭지는 않습니다. 물론 지금도 가끔 악몽을 꾸고, 혼자 집에 있다보면 섬뜩한 인기척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냥 참고 견딥니다. 그러다보면 두려움은 그냥 별 일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웅이도 저를 닮아 겁이 많습니다. 어쩌면 [굿 다이노]의 알로가 웅이와 비슷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웅이에게 두려움을 극복하고 이겨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제가 더욱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대신 웅이가 느끼는 두려움이 사실 별것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서 웅이가 무서운 영화를 보고와서 겁에 질려 있으면, 무서운 영화 속의 장면이 그저 우스꽝스러운 변장에 의한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해주며 두려움을 별 것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알로의 여정도 그러합니다. 알로는 스팟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여행을 떠나며 온갖 두려운 존재들을 만납니다. 태풍이 자신에게 계시를 줬다고 믿는 미친 광신도같은 익룡에서부터 부치의 소떼를 훔쳐간 소도둑 공룡까지... 알로는 여전히 두려워하지만, 사랑하는 친구 스팟을 위해 두려움을 참고 견뎌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빠를 죽음으로 몰고간 태풍의 두려움을 이겨내는 알로의 모습은 그렇기에 뿌듯했습니다. 사랑으로, 우정으로, 두려움은 그렇게 참고 견뎌낼 수 있는 것입니다. [굿 다이노]는 '공룡이 멸종하지 않았다면?'이라는 상상력에서부터 시작해서 알로와 스팟의 우정과 모험을 통해 두려움에 대한 속 깊은 이야기를 펼쳐 보여줍니다. 역시 픽사 애니메이션은 이렇게 저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모든 인생의 진리를 깨닫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애니메이션을 볼 것이다.

애니메이션 속의 어린이를 위한 교훈도 마음을 열고 보면

어른에게도 충분히 통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