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5년 영화이야기

[히말라야] - 웃음 뒤에 오는 눈물의 의미를 잘 아는 영화

쭈니-1 2015. 12. 31. 14:48

 

 

감독 : 이석훈

주연 : 황정민, 정우, 조성하, 김인권, 라미란, 김원해, 이해영, 전배수

개봉 : 2015년 12월 16일

관람 : 2015년 12월 27일

등급 : 12세 관람가

 

 

크리스마스 연휴를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구피의 갑작스러운 감기로 제 크리스마스 계획은 무산되고, 그대신 조촐하게 극장에서 [어린왕자]를 관람하는 것으로 대체되었습니다. 하지만 올해 크리스마스 연휴는 무려 3일로 예년에 비해 유난히 길었습니다. 고작 영화 한편으로 떼우기엔 오랜만의 황금연휴가 너무나도 아까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크리스마스 연휴 마지막날인 일요일에 웅이와 함께 한편의 영화를 더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영화가 바로 [히말라야]입니다.

사실 [히말라야]는 2015년 마지막 흥행 기대작인 빅3중에서 제 개인적인 기대도가 가장 낮었던 영화입니다. 저는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를 가장 많이 기대했고, 그 다음으로 [대호], 그리고 마지막으로 [히말라야]를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기대도 순서대로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와 [대호]를 차례대로 봤고, 이제 마지막으로 [히말라야]를 보게 된 것이죠.

제가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와 [대호]에 비해 [히말라야]를 기대하지 않은 이유는 이 영화의 내용이 너무 뻔히 보였기 때문입니다. [히말라야]는 산악인 엄홍길 대장과 동료들이 히말라야 등반중 생을 마감한 동료의 시신을 찾기 위해 결성한 휴먼원정대 실화를 다룬 영화입니다. 영화 자체는 감동적일 것이 분명해보였지만, 그만큼 영화가 어떻게 전개될지 뻔히 보이는 것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지난 추석 연휴날 웅이와 함께 [에베레스트]를 이미 봤습니다. [에베레스트]는 상업등반이 일반화되었던 1996년을 배경으로  상업등반 가이드인 롭 홀(제이슨 클락)과 그의 등반대의 조난을 다룬 영화입니다. '에베레스트'에서의 조난이 소재인만큼 [히말라야]와 겹칠 수 밖에 없는 영화입니다. [에베레스트]를 보면서도 차가운 공기의 싸늘함을 느껴야 했던 저는, 추운 겨울날 [히말라야]를 보며 또다시 싸늘함을 느끼고 싶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히말라야]는 박스오피스에서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 [대호]를 멀찌감치 따돌리며 흥행 대박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관객이 많이 보는 영화라는 것은 그만큼 영화적 재미가 보장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제가 크리스마스 연휴 마지막날의 아쉬움을 [몬스터 호텔 2], [스누피 : 더 피너츠 무비]가 아닌 [히말라야]를 선택한 이유도 흥행으로 인하여 영화적 재미가 보장되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막상 영화를 보고나니 [히말라야]에 대한 제 우려와 기대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했음을 다시한번 느꼈습니다. 실제로 [히말라야]는 영화의 전개가 너무나도 뻔히 보이는 영화였고, 영화를 보는 내내 눈덮인 산 한 가운데에 서있는 차가운 공기의 싸늘함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아마 웅이가 크리스마 연휴 마지막날 감기에 걸린 것도 이 영화 때문은 아닐런지...) 하지만 많은 관객들이 [히말라야]를 선택했을만큼 재미도 충분히 보장된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낯익은 느낌의 정체는 윤제균이었다.

 

[히말리야]는 영화 초반에 관객에게 웃음을 선서하고, 그 웃음을 토대로 영화 후반에 관객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보니 이러한 이 영화의 전개 방식이 상당히 낯익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오르며 낯익은 느낌의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의 제작사가 JK필름이었던 것입니다. JK필름은 윤제균 감독이 설립한 영화사로 [히말라야]의 각본에 윤제균 감독이 일부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윤제균은 [두사부일체]로 감독에 데뷔한 이후 [색즉시공], [1번가의 기적] 등을 연출하며 흥행 감독으로 우뚝 섰습니다. 특히 2009년 극장가를 강타한 [해운대]와 2014년 연말에 개봉했던 [국제시장]을 통해 두편의 천만 영화를 연출한 국내 유일의 감독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윤제균 감독의 주특기는 코미디입니다. 하지만 그의 코미디는 영화 후반의 감동을 위한 포석이기도 합니다.

[히말라야]가 바로 그러합니다. 영화는 뜬금없이 베테랑 산악인인 엄홍길(황정민)과 좌충우돌 신입 산악인인 박무택(정우), 박정복(김인권)의 인연을 코믹하게 보여줍니다. 홍길의 등반대에 들기 위해 벌이는 무택과 정복은 노력은 관객에게 웃음을 안겨줍니다. 그렇게 [히말라야]는 윤제균 감독의 거의 대부분의 영화가 그러했듯이 후반의 감동과 눈물을 위해 초반에는 코믹과 웃음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약방의 감초같은 조연배우 김인권의 힘이 상당히 큽니다. 그는 이미 [해운대]를 통해 웃음과 감동을 조율하는 탁월한 조연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 냈었습니다. [히말라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인권이 연기한 정복은 그저 영화의 웃음을 책임지는 코믹한 조연처럼 보이지만,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제 눈가에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하는 주인공이 됩니다.

영화에서 대학의 강의를 맡은 홍길은 "한국 산악인 중에서 가장 위대한 산악인은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그때 홍길은 숙연한 표정으로 가족과도 같았던 동료 무택을 위한 정복의 마지막 등반 이야기를 해줍니다. 모두들 위험하다며 무택을 구하러 선뜻 나서지 않을때 정복은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면 아무 것도 못한다."며 무작정 무택을 구하러 홀홀단신으로 에베레스트에 오릅니다. 그리고 무택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주고, 그도 생을 마감합니다.

영화 초반부터 보여줬던 정복의 장닌끼 섞인 표정을 알기에, 영화 후반의 정복의 희생은 더욱 감동스러웠습니다. [히말라야]의 힘은 바로 그것입니다. 웃음 뒤에 오는 눈물의 힘. 그리고 그것은 윤제균 감독이 두편의 천만 영화를 가질 수 있는 원동력이 됨과 동시에 [히말라야]가 2015년 연말, 흥행 독주를 하고 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황정민... 이제 믿고 보는 배우가 되었다.

 

저는 [히말라야]를 보며 딱 세번 울었습니다. 첫번째는 홍길이 책 사인회를 하는 도중 무택이 에베레스트에서 조난을 당했다는 뉴스를 보는 장면에서 첫번째 눈물이 주루룩 흘러 내렸습니다. 두번째는 앞에서도 언급한 강의 도중 홍길이 무택을 위한 정복의 마지막 위대한 등반을 소개하는 장면이었고, 세번째는 무택의 시신을 찾았지만, 시신을 에베레스트에 두고 하산해야 했던 홍길에 무택의 아내인 최수영(정유미)에게 미안하다며 오열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제 눈물에는 모두 황정민이 연기한 홍길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영화에서 가장 슬퍼야할 무택의 죽음 장면에서는 눈물이 흐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황정민은 표정과 목소리만으로도 영화를 보는 제 감정선을 사정없이 건드렸다는 것입니다. 무택의 죽음을 처음 알게된 TV 뉴스를 보던 홍길의 그 표정, 그리고 학생들에게 정복의 마지막 등반을 소개하던 그 떨리는 목소리, 수영에게 미안함을 전하던 홍길의 오열, 그것이 제 눈물의 이유였던 것입니다.

황정민은 올해 두편의 천만영화를 가진 흥행 보증수표입니다. 2014년 연말에 개봉했지만, 2015년 연초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국제시장]에서부터 2015년 최고 흥행작으로 우뚝 선 [베테랑]까지... 그리고 그의 빛나는 2015년은 [히말라야]가 찬란하게 마무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히말라야]는 황정민에 의한, 황정민을 위한, 황정민의 영화입니다. [히말라야]는 황정민과 더불어 라이징 스타 정우가 공동 주연이고, 김인권을 비롯하여 조성하, 라미란, 김원해 등 씬스틸러들이 대거 출연합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황정민의 아우라를 넘어서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황정민의 아우라가 너무 강해서 다른 캐릭터들이 가려지기도 했습니다. 출연하는 작품마다 강한 인상을 심어줬던 라미란의 경우는 휴먼원정대의 유일한 홍일점 조명애를 연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이 희미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황정민의 아우라 하나만으로도 [히말라야]는 충분히 영화적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황정민은 2016년 2월에 [검사외전]이 개봉 대기 중이고, 2016년 중에는 [아수라]가 개봉할 예정입니다. 이 두 영화 모두 범죄 액션영화인데,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두 영화에서 황정민과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들이 꽃미남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배우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검사외전]에서는 강동원이 허세남발 꽃미남 사기꾼으로 이미지 변신을 해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검사 재욱을 연기한 황정민과 호흡을 맞췄고, [아수라]에서는 정우성, 주지훈이 황정민과 공동 주연을 맡았습니다. 최고의 2015년을 보낸 황정민, 2016년도 탄탄대로처럼 보이네요.

 

 

정우가 조금만 더 분발했더라면...

 

개인적으로 [히말라야]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정우의 연기였습니다. 물론 정우가 연기를 못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워낙 황정민의 아우라가 강하다보니 정우의 연기가 황정민에게 가려져 버렸습니다. [히말라야]는 동료의 시신을 찾기 위해 휴먼원정대를 결성한 홍길이 주축이된 영화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무택의 캐릭터가 가장 중요했음을 감안한다면 정우의 연기는 최소한 황정민과 어깨를 나란히 했어야 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무택이 아내 수영과 함께 찍은 사진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에베레스트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저는 [히말라야]의 그 어떤 장면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구멍이라도 뚫린 듯이 하염없이 두 뺨을 타고 주책없이 흐르던 눈물이 그 장면에서는 뚝 멈춰버리더군요. 너무 인위적인 장면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영화 전반에 걸쳐 무택의 캐릭터가 제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히밀라야]는 영화의 스토리 전개가 너무 뻔히 보이고, 황정민에 비해 정우의 연기가 조금은 아쉽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웃음과 감동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이렇게 뻔히 보여도 웃음과 감동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히말라야]에 박수를 보내야만 하는 이유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에베레스트]가 산과 사람에 관한 영화라면

[히말라야]는 사람과 사람에 관한 영화이다.

극한 환경의 '에베레스트' 산에 서있는듯한 현장감은 [히말라야]가 부족했지만,

[히말라야]에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뻔하지만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