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 가슴속 칼을 품고 출근을 하는 당신을 위한 영화

 

 

감독 : 홍원찬

주연 : 고아성, 박성웅, 배성우

개봉 : 2015년 9월 3일

관람 : 2015년 12월 8일

등급 : 15세 관람가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를 보고나니 갑자기 보고 싶어진 영화

 

사실 저는 몇 주전에 이미 [오피스]의 오프닝 부분을 봤습니다. [오피스]는 회사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스릴러 영화로 9월 3일 개봉 당시부터 제 주목을 받았던 영화이기에 다운로드 시장에 출시되자마자 제 스마트폰에 다운로드 받아놓은 것입니다. 하지만 앞의 10여분을 본 후 저는 서둘러 영화를 꺼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김병국(배성우) 과장이 무표정한 얼굴로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망치로 자신의 가족을 살해하는 장면 때문이었습니다.

아내와 노모, 그리고 장애가 있는 어린 자식까지 잔인하게 죽인 김병국 과장. 오프닝에서부터 벌어진 이 끔찍한 장면을 참고 보기엔 당시 제 몸과 마음은 많이 지쳐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컨디션이 좋을 때 다시 봐야 겠다는 생각에 멈춤 버튼을 누르고 제 기억속 깊숙이 처박아 놓은 것입니다.

하지만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를 보고 극장을 나오는 길에 문득 [오피스]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두 영화 모두 회사가 영화의 주요 공간입니다. 하지만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는 회사라는 공간을 코미디의 소재로 삼은 반면, [오피스]는 공포, 스릴러의 무대로 활용했습니다. 저 역시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는 직장인이기에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처럼 판타지스러운 낙천적 코미디가 아닌, 공포, 스릴러로 회사라는 공간을 활용한 [오피스]가 궁금해진 것입니다.

 

 

 

악몽같은 직장 경험이 있다면...

 

제가 갑자기 [오피스]를 보고 싶어진 이유는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의 판타지같은 직장인 라이프가 실망스러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 역시도 공포, 스릴러같은 섬뜩한 회사생활의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스스로 굉장히 낙천적인 성격이라 자부합니다. 하지만 10년 전만해도 저를 괴롭히는 직장상사를 잔인하게 죽이는 상상을 하루에도 몇번이나 했을 정도로 하루하루가 끔찍한 악몽같았습니다.

만약 제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사표를 내던지고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처자식을 부양해야하는 가장이었기에 이를 악물고 버텼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당시의 그러한 악몽같은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의 직장에서는 만족감을 느끼며 잘 생활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당시에는 아무리 끔찍한 경험이라고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약이 될수도 있는 것이죠.

[오피스]는 착실한 회사원이었던 김병국 과장이 자신의 가족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사라지면서 시작됩니다. 최종훈(박성웅) 형사는 김병국 과장의 회사 동료들을 위주로 탐문수사를 하는데, 놀랍게도 회사 건물의 CCTV에서 사건 발생이후 김병국 과장이 회사 건물로 들어가는 장면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그가 다시 회사 건물 밖으로 나오는 장면은 없었습니다.

 

 

 

너무 착실하지만 그래서 없어보이는...

 

김병국 과장의 동료들은 한결같이 그렇게 착한 분이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리가 없다도 증언합니다. 하지만 최종훈 형사는 그들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음을 직감합니다. 그리고 수사가 진행되면서 김병국 과장을 향한 동료 직원들의 왕따와 김상규 부장(김의성)의 부당 해고 등의 문제가 서서히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왜 김병국 과장은 동료들과 상사에게 그러한 취급을 받아야 했을까요? 그것은 그가 너무 착했기 때문입니다. 실적을 위해서라면 자신보다 약한 자들을 짓밟아야 했지만 김병국 과장은 너무 착해서 그러지 못했던 것입니다. 착하지만 능력은 없는... 그것이 김병국 과장에 대한 주위의 평가였고, 그를 파멸로 몰고간 올가미였습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정직하고 성실하라고 배웁니다. 하지만 막상 사회에 나가보면 성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직하지도, 성실하지도 않습니다. 그 어떤 거짓을 동원해서라도 악착같이 경쟁자들을 짓밟고 일어서는 자가 최후의 승자가 됩니다. [오피스]는 김병국 과장의 비극을 통해 그러한 우리 사회의 단면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인턴사원 이미례가 살아가는 법

 

[오피스]는 회사 건물에서 홀연히 사라진 살인마 김병국 과장에 의한 공포와 더불어 어떻게든 정직원이 되기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인턴사원 이미례(고아성)의 이야기로 진행됩니다. 지방대 출신에 돈도, 빽도 없는 이미례. 그는 회사에서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하며 정직원이 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하지만 해외 유학파인 신다미(손수현)가 인턴사원으로 새롭게 들어오며 정직원이 되겠다는 이미례의 꿈은 점점 허물어져갑니다.

회사에 몰래 숨어들어서 동료 직원들을 하나씩 죽이는 김병국 괴담에 다른 직원들은 두려움에 떨지만, 이미례에겐 김병국 괴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신다미와의 경쟁입니다. 그리고 그녀와의 경쟁은 이미 승패가 결정된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미례 입장에서 신다미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길 수가 없는 상대인 것입니다. 

영화 초반 그저 평범한 인터사원이었던 이미례. 하지만 그녀의 불안감이 점점 가중되면 될수록 그녀의 얼굴은 일그러져갑니다. 착실하지만 그래서 더욱 없어보이는 이미례는 어느덧 김병국 과장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스릴러 영화로는 실격... 하지만  여운이 남는다. (이후 영화의 반전이 언급됩니다.)

 

솔직히 스릴러 영화로써 냉정하게 [오피스]를 본다면 그다지  높은 점수를 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김병국 과장의 동료들이 하나씩 죽으면서 영화의 헛점은 점점 늘어만갑니다. 정재일(오대환) 대리는 어떻게 죽였고, 그의 목을 어떻게 매달았는지, 홍지선(류현경) 대리는 왜 핸드폰으로 도움을 청하지 않고 화장실 문을 열었는지, 이원석(박정민)은 최종훈 형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왜 오해를 살만한 행동을 멈추지 않았는지, 하나 하나 따지고 보면 앞뒤가 전혀 맞지가 않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반전도 허술합니다. 이미례가 범인이라는 사실은 굳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구피는 [오피스]를 보지 않았지만 대뜸 "고아성이 범인이지?"라고 이야기하더군요. 그것은 구피의 추리력이 뛰어나서가 아닌, 영화의 반전이 스토리 라인만 조금 읽어보면 뻔히 보인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오피스]를 보고나면 묘한 여운이 느껴집니다.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는 영화는 재미있게 봤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금방 잊혀졌다면, [오피스]는 영화를 볼 당시에는 헛점 투성이 전개 때문에 실망했다가도, 영화가 끝나고나면 이미례의 멍한 표정이 자꾸만 생각납니다. 나 역시도 그러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가족을 살해한 김병국 과장과 동료를 살해한 이미례를 이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 우리 사회는 괴물이 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굳게 믿기에...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 절대로 이뤄질리가 없는 사회초년생을 위한 판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