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천성일
주연 : 설경구, 여진구
개봉 : 2015년 9월 24일
관람 : 2015년 11월 4일
등급 : 12세 관람가
올시즌 추석극장가의 유일한 흥행실패작
지난 9월 24일, 추석 대목을 앞두고 여러편의 흥행 기대작들이 일제히 개봉했습니다. 전통적으로 명절은 한국영화가 대세이기에 한국영화의 개봉이 두드러졌는데, 이미 한주전에 개봉해서 박스오피스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던 [사도]를 비롯하여, 24일에는 [탐정 : 더 비기닝]과 [서부전선]이 흥행전쟁에 새롭게 합류했습니다.
이러한 한국영화에 맞선 외국영화들의 기세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사도]와 같은 날 개봉해서 맞대결을 펼쳤던 [메이즈 러너 : 스코치 트라이얼]과 24일 개봉한 [인턴]이 그 주인공입니다. 특히 [인턴]은 예상 외로 추석시즌을 넘어 장기흥행에 돌입하며 비수기인 지금도 꾸준히 관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모든 영화가 좋은 흥행을 기록할 수는 없는 법이죠.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있다면 흥행에 실패한 영화도 당연히 존재하는 법입니다. 올해 추석 극장가에는 [사도]를 제외하고는 대박 흥행영화는 없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관객을 모은 중박 흥행영화는 풍성했습니다. 그러한 와중에 추석극장가의 최고 흥행 기대작이었던 [서부전선]만큼은 누적관객 60만명이라는 실망스러운 흥행 결과를 떠안아야 했습니다.
한국전쟁이 어떻게 웃길 수가 있지?
사실 저는 [서부전선]이 개봉하기전, 이 영화의 흥행을 예상했습니다. 연기력과 흥행력을 두루 갖춘 베테랑 배우 설경구와 [새드무비]의 아역 배우에서 이젠 어엿한 성인 배우로 잘 성장해준 여진구의 케미가 기대되었고, 한국전쟁을 소재로 웃음과 감동을 주겠다는 연출 의도 역시 슬픈 코미디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관객의 입맛에 잘 맞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서부전선]의 흥행결과가 말해주듯이 그러한 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그렇다면 [서부전선]의 그 무엇이 관객을 외면하게 만든 것일까요? 그것은 [서부전선]이 한국전쟁을 소재로한 코미디 영화라는 제 짧은 설명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구피가 내던진 한마디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한국전쟁이 어떻게 웃길 수가 있지?"
저는 미처 몰랐지만 막상 [서부전선]을 보다보니 구피의 지적이 아주 정확했음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한국전쟁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가장 아픈 부분입니다. 이념이라는 허울아래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누며 서로 죽고 죽여야 했던 그날의 아픔을 코미디로 승화시키겠다는 천성일 감독의 도전이 우리나라 관객에겐 먹혀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슬픈 역사가 코미디와 만났을 때
한국전쟁이라는 아프고도 슬픈 역사와 코미디의 만남은 [서부전선]을 초반부터 어색하게 만들어 놓습니다. 일급 기밀문서를 정해진 장소, 정해진 시간까지 전달해야 하는 남한군 남복(설경구)과 북한군 탱크병 영광(여진구)의 첫 만남부터가 그러합니다. 남복과 영광은 서로 만나기 전에 적군의 공격으로 아군을 모두 잃는 아픔을 겪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겐 슬퍼할 겨를이 없습니다. 각각 비밀문서와 탱크를 잃는다면 살아서 부대로 복귀한다고해도 총살을 당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서부전선]은 웃음을 이끌어내려하니 아무래도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남복과 영광은 어설픈 슬랩스틱 코미디를 구사하고, 어색한 욕설를 난무합니다. 이런 시대착오적인 코미디 코드들이 관객에게 먹힐리가 없습니다. 저 역시 영화 초반 난데없는 슬랩스틱 코미디와 난무하는 욕설을 들으며 웃기는 커녕 짜증만 올라왔으니까요.
[서부전선]은 계속 이런 식입니다. 상황은 전혀 웃기지 않는데, 배우들은 코미디 연기를 선보입니다. 이 불협화음은 영화의 재미를 애매하게 만듭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한국전쟁 기간 중에 만난 남한군 남복과 북한군 영광의 우정으로 감동적인 전쟁 드라마를 만들었다면 훨씬 나앗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나마 탱크가 선전했다.
그렇다면 저는 [서부전선]을 보며 전혀 웃지 못햇을까요?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영화 중반 저는 간간히 웃음을 터트렸는데, 그러한 웃음의 대부분은 남복과 영광에 의한 것이 아닌 영광의 북한군 탱크에 의한 것입니다.
[서부전선]이 그나마 코미디 영화로써 재미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탱크 덕분입니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을 맡았던 2차 대전 탱크 액션영화 [퓨리]만 봐도 알수 있듯이 탱크는 전쟁영화에서 묵직한 카리스마를 동반한 절대적인 무기입니다. 그런데 [서부전선]은 그렇게 무시무시한 탱크를 코미디의 도구로 가볍게 비틀어버린 것입니다.
특히 영화 후반쯤 부대원들을 몰살시킨 무스탕기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막무가내로 탱크를 모는 영광과 그 뒤를 쫓는 남복의 황소 장면은 [서부전선]의 최고 명장면입니다. 전투기를 쫓는 탱크, 탱크를 쫓는 황소라니... [서부전선]은 이렇게 우리나라 영화로는 드문 탱크를 이용한 명장면을 몇장면 연출합니다. 만약 이 영화에 탱크조차 없었다면 어쩔뻔 했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의 억지 감동만이라도 자제했다면...
[서부전선]을 보면서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멈춤 버튼을 누르고 다른 영화를 볼까? 라는 고민을 여러번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 중반부터 맹활약하는 탱크 덕분에 저는 단 한번도 멈춤 버튼을 누르지 않고 1시간 50분 동안 영화에 집중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갈수록 저를 언습하는 불안감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억지 감동입니다.
과연 영광은 무사히 북에 있는 어머니 곁으로, 그리고 남복은 무사히 남에 있는 아내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분명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을 소재로 하였지만 영화는 내내 가벼운 코미디로 진행되었기에 이 분위기대로라면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어야합니다. 하지만 우리 코미디만의 독특한 특성이라 할 수 있는 슬픈 코미디라는 장르가 있기에 영화가 끝나갈수록 저는 불안감을 느낀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서부전선]은 갑작스러운 비극으로 서둘러 영화를 끝맺음하네요. 비극적인 소재를 코미디로 풀어넣다가, 마지막엔 코미디의 분위기를 뒤집어 비극으로 끝을 내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 아무리 우리나라 관객들이 슬픈 코미디를 좋아한다고해도 이런 식의 막무가내는 심했습니다. 결국 [서부전선]은 탱크를 내세운 코미디는 신선했지만, 비극과 코미디를 엇박자로 풀어내는 연출은 많이 아쉬웠던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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