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봉주
주연 : 손현주, 엄지원, 배성우
개봉 : 2015년 10월 22일
관람 : 2015년 10월 25일
등급 : 15세 관람가
호기심 유발 영화... [더 폰]을 만나다!
제가 [더 폰]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영화 홍보사의 메일을 받고나서였습니다. [더 폰]이라는 생소한 제목의 영화에 대한 기대평을 블로그에 써달라는 내용의 메일을 받은 저는 처음엔 시큰둥했습니다. 일주일에 두세건씩 시사회나 제작발표회 초대와 개봉 예정작의 기대평을 써달라는 메일을 받지만 회사일이 너무 바빠서 대부분 정중하게 거절하는 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사회나 제작발표회 참가는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지만, 제가 정말로 기대하는 영화의 경우는 제 블로그 이웃들에게 영화를 소개할겸 가끔 기대평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 폰]은 홍보사의 메일을 받기 전까지는 그런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을만큼 제가 정말로 기대하는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나처럼 정중하게 거절을 하려 했습니다.
그러다가 [더 폰]의 티저 포스터와 예고편을 본 것입니다. [더 폰]은 요즘 들어서 과도하게 넘쳐나는 한국형 스릴러 영화이고, 이미 [숨바꼭질]과 [악의 연대기]를 통해 손현주의 스릴러는 익숙한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국형 스릴러 영화와는 조금 달라 보였습니다. 그것은 이 영화가 전화를 통한 타임슬립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아내가 살해당한 1년전의 과거와 현재를 교묘하게 엮어놓았기 꺠문입니다. 유난히 시간여행 소재의 영화를 좋아하는 제 입장에서는 그러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더 폰]은 충분히 기대할만한 영화가 되었던 것입니다.
거의 두달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지난 일요일 저녁 [더 폰]을 제 눈으로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피곤하다며 극장 가기를 꺼려하던 구피도 [더 폰]의 주연이 손현주라는 말에 솔깃해하며, "손현주 하나 믿고 본다."라며 저와 함께 동행을 해주더군요. 이렇게 저는 타임 스릴러라는 장르에 대한 호기심 덕분에, 구피는 손현주에 대한 믿음 덕분에 오랜만에 함께 극장 데이트를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일단 [더 폰]에 대한 총평을 나름대로 해보자면 꽤 재미있었던 영화입니다. 1년 간격으로 벌어진 태양 폭발 덕분에 1년전 살해당한 아내 연수(엄지원)와 1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통화를 할 수 있게된 동호(손현주). 동호는 연수와의 통화를 통해 1년전의 비극을 되돌릴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동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연수에게 전화로 위험을 경고하는 것 뿐입니다. 살인자인 재현(배성우)과 직접 맞서 싸우는 것은 연수가 직접 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 폰]은 연약한 연수와 잔혹한 재현의 대결을 통해 영화의 긴장감을 조성합니다.
하지만 [더 폰]은 분명 아쉬운 점도 있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아쉬움은 영화 속의 모든 비밀이 너무 쉽게 벗겨진다는 점입니다. [더 폰]은 연수를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 연수를 죽인 이유가 무엇인지 감추려 하지 않습니다. 영화 오프닝씬에서부터 모든 진실을 관객 앞에 까발려 놓고, 그저 연수와 동호, 그리고 재현의 대결을 지켜보라고 말합니다. 스릴러 영화의 재미라면 관객 스스로 진실을 추리하는 과정인데, [더 폰]은 그것이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이후 영화의 내용이 전부 까발려집니다.)
비밀은 없다.
[더 폰]에 대한 영화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 있어서 우선 이 영화의 좋았던 점보다 아쉬웠던 점을 먼저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더 폰]은 처음부터 너무 영화에 대한 비밀을 관객 앞에 너무 쉽게 까발려 버립니다. 자! 영화를 천천히 다시한번 되짚어 보죠. [더 폰]의 오프닝씬은 동호 가족의 평화로운 일상이 아닌 박세문(김종구)이 노조에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하는 장면입니다.
박세문의 불법적 폭력이 영화의 오프닝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장면이 [더 폰]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동호 가족의 평화로운 일상. 하지만 동호와 연수가 겪어야 했던 모든 고난이 몰래 카메라 화면으로 구성된 박세문의 불법적 폭력 때문이라는 사실을 감추기에는 이미 때는 늦은 것입니다. 동호는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이 광현(황석정)에게 박세문의 폭력이 담긴 사진을 건네받으며, 원본은 우리 집으로 보내라고 장난스럽게 말합니다. 그리고 후배 변호사인 규수(조달환)에게 원본은 집에 있다는 사실을 지나가듯이 밝힙니다.
이로써 영화가 지니고 잇어야할 모든 비밀을 끝장이 납니다. 연수를 죽인 범인이 재현이라는 사실은 영화의 포스터와 예고편에서조차 굳이 감추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재현이 왜 연수를 죽였는지 그 이유라도 감춰야 했는데 [더 폰]은 영화 시작과 동시에 그냥 싱겁게 모든 비밀을 밝혀버린 것입니다.
영화 후반, 동호의 절친한 후배인 규수가 사실은 박세문의 사주를 받은 내부의 적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장면은 그렇기에 그다지 놀랍지도 않습니다. 이미 동호가 규수에게 원본은 집에 있다고 지나가듯이 말하는 장면만으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반전 아닌 반전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더 폰]은 스릴러 영화로써의 재미를 제대로 발휘되지 못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재현의 살인도 저를 납득시키지 못했습니다. 애초에 재현의 목적은 박세문의 폭력이 담긴 원본 사진입니다. 규수를 통해 사본은 이미 손에 넣었을 것이고, 원본만 손에 넣으면 되는 재현 입장에서는 몰래 동호의 집에 침입하여 원본을 찾는 것이 가장 합리적입니다. 그런데 그는 굳이 연수가 집에 있을 때 침입했고, 연수를 살해했습니다. 재현은 전직 경찰입니다. 그리고 영화 후반, 동호의 딸이 자신의 얼굴을 봤다는 이유로 죽이려 했을만큼 치밀한 인간입니다. 그런 그가 절도라는 가벼운 범죄를 위해 살인이라는 무거운 죄를 일부러 저질렀다고요? 말이 안됩니다.
구피는 재현이 연수에게 원본 사진을 어디에 감췄는지 묻기 위해 기다렸을 것이라 추리했습니다만, 만약 그랬다면 재현은 1차적으로 아무도 없는 동호의 집에서 원본을 찾다가 실패하고, 2차적으로 연수나 동호를 기다렸어야 맞습니다. 폭력 행위가 담은 원본 사진 찾기라는 단순한 범죄가 살인이라는 너무 큰 범죄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니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스릴은 있다.
[더 폰]이 재미있는 스릴러 영화가 되려면 모든 진실은 마치 양파 껍질을 벗기듯이 서서히 밝혀져야 했고, 영화 후반부 규수가 내부의 적임을 밝혀질땐 관객들이 깜짝 놀래야 했습니다. 그리고 재현의 캐릭터 구축도 조금 문제가 있는데, 재현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려면 재현의 범죄를 관객에게 납득시켜야 했고, 재현의 잔인한 범죄를 부각시키려면 재현을 사이코패스로 설정하던가, 아니면 아예 캐릭터 설명을 생략했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더 폰]은 스릴러 영화로써 안타까운 헛점이 많은 영화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영화의 재미에 대해서는 합격점을 주고 싶습니다. 제가 [더 폰]을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추격전 덕분입니다. [더 폰]은 크게 두개의 추격전이 펼쳐집니다. 2014년 재현에게 쫓기는 연수와 2015년 경찰에게 쫓기는 동호입니다. 연수의 경우는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 잔인한 살인마를 피해 도망가야하는 만큼 영화를 보는 제 마음을 졸이게 만듭니다.
그와는 달리 동호의 경우는 경찰에 쫓기는 와중에 연수와의 통화로 그녀를 구해야 하고, 재현도 뒤쫓아야 하기 때문에 더욱 박진감이 넘칩니다. 특히 연등제에서의 추격전은 한국영화로는 드문 장면입니다. 연등제의 화려함과 동호의 절박감이 교묘하게 교차되고, 동호를 뒤쫓는 경찰과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서는 동호를 죽여야 하는 재현의 추격이 동호를 강하게 압박해 들어옵니다. 그러한 와중에 저는 스릴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더 폰]을 보고나서 구피는 손현주에 대해서 '한국의 맷 데이먼'이라고 이야기하더군요. 맷 데이먼은 [본 아이덴티티]를 시작으로한 이른바 '본 시리즈'를 통해 액션 배우로 각인된 배우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맷 데이먼의 액션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오히려 보호본능을 자극시키는 착한 외모를 지녔다는 점입니다. 그러한 맷 데이먼의 착한 외모는 '본 시리즈'를 색다른 액션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손현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무명의 그가 스타로 발돋음할 수 있었던 것은 2005년 방영되었던 KBS 드라마 <장밋빛 인생>입니다. 이 드라마에서 손현주는 故 최진실의 남편으로 출연하여 단번에 '국민남편' 칭호까지 얻어냈습니다. 이후 손현주는 옆집 아저씨같은 푸근한 연기로 안방극장을 사로잡았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달랐습니다. 그는 영화에서 푸근한 이미지를 단번에 벗어버린 것입니다.
시작은 2013년 [은밀하게 위대하게]였습니다. 이 영화에서 북한의 남파특수공작 5446부대의 교관 김태원으로 출연한 손현주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발휘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숨바꼭질]에서 '국민남편'의 이미지를 스릴러에 접목시키며 560만 관객을 불러 모았고, 지난 5월 개봉했던 [악의 연대기]에서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은폐하려다 위기에 빠진 경찰을 연기했습니다. [더 폰]에서도 예외는 아닌데, 이번 영화에서는 이전의 영화보다 액션이 강조되면서 '한국의 맷 데이먼'이라는 칭호까지 얻게 된 것입니다.
타임 스릴러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했다.
[더 폰]은 스릴러영화이면서 스릴러영화의 재미보다는 추격전을 통해 액션영화의 재미를 더 탄탄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액션영화로써의 재미때문만은 아닙니다. 애초에 저는 타임스릴러 장르로써의 [더 폰]을 기대했고, [더 폰]은 그러한 제 기대를 완벽하게 채워주었습니다.
우선 이 영화의 설정부터 보죠. 2015년을 살고 있는 동호가 1년이라는 시간를 뛰어넘어 2014년의 연수와 통화를 할 수 있었던 것은 1년 간격으로 벌어진 태양 폭발 때문입니다. [더 폰]은 태양 폭발이 핸드폰 등 전자기기에 이상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뉴스화면을 통해 지속적으로 내보냄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더 폰]의 설정을 이해시킵니다. 아무리 영화라고할지라도 터무니없는 설정은 영화의 재미를 떨어뜨립니다. 그렇기에 1년 간격으로 벌어진 태양 폭발 때문에 1년이라는 시간을 뛰어 넘어 핸드폰 통화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설정은 꽤나 영리했습니다.
동호와 연수가 통화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더 폰]은 더욱 치밀한 전개를 준비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동호와 연수가 통화를 하게 됨으로써 과거는 바뀔 수밖에 없을 것이고, 과거가 바뀐다면 현재 또한 필연적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더 폰]은 이렇게 과거가 바뀜으로써 현재가 바뀌는 상황을 사건현장이기도한 동호의 집 내부 인테리어의 변화와 연수의 살인사건을 메모한 동호의 수첩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됩니다.
제가 [더 폰]이 타임 스릴러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고 느낀 것은 과거의 변화를 통해 현재의 동호의 처지가 바뀌는 부분입니다. 처음에 동호는 그저 끔찍한 살인사건으로 아내를 잃은 불쌍한 남편일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동정합니다. 하지만 2014년 재현이 연수와 동호의 통화 사실을 알고 동호에게 누명을 씌울 계획을 세우면서 사정은 갑자기 바뀝니다. 동호는 일순간 불쌍한 남편에서 아내를 살해하고 도망친 용의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동호의 처지가 바뀌면서 영화는 더욱 긴박하게 돌아갑니다. 사실 동호와 연수의 통화만으로 러닝타임 2시간 가까운 영화를 채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동호의 처지가 바뀜으로써 [더 폰]은 도망자가된 동호로 새로운 재미의 동력을 확보합니다. 동호는 경찰을 피해 도망을 다녀야 하고, 연수와 통화해서 끔찍한 과거를 바뀌야하며, 연수를 살해한 재현도 붙잡아야합니다. 타임 스릴러 장르를 이용해서 [더 폰]은 더욱 강력한 영화적 재미를 구축한 셈입니다.
저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2015년의 동호가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2014년의 동호가 해내는 장면은 제게 묘한 쾌감마저 느끼게 했습니다. 이렇듯 [더 폰]은 스릴러적 관점에서는 분명 아쉬운 부분도 있는 영화이지만, 그러한 아쉬움을 덮을 수 있을만큼 영화는 재미있었습니다. 김봉주 감독이 조금 더 비밀을 만들어놓고 관객으로 하여금 비밀을 파헤칠 수 있는 기회를 줬다면 더 좋은 스릴러 영화가 되었을텐데... 하지만 우리는 [더 폰]처럼 과거를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냥 있는 그대로 즐길 수 밖에요.
1년 전의 내 자신과 통화를 할 수 있다면...
나는 내 자신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글쎄, 딱히 해줘야할 이야기는 없다.
바꾸고 싶은 과거가 없다는 것,
그것이 영화속 고동호와는 달리 지금 내가 행복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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