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정훈
주연 : 권상우, 성동일, 서영희
개봉 : 2015년 9월 24일
관람 : 2015년 10월 14일
등급 : 15세 관람가
[성난 변호사]가 비슷하지만 완전 다른...
CGV VVIP 회원들에게 선물로 증정된 원데이 프리패스 카드를 이용해서 세편의 영화를 몰아서 본 지난 수요일. [탐정 : 더 비기닝]은 [성난 변호사]에 이어 두번째로 제 선택을 받은 영화입니다. 사실 저는 [탐정 : 더 비기닝]이 다운로드 시장에 출시하면 보려고 마음 먹었었습니다. 하지만 개봉 3주째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 상영에 돌입한 의외의 흥행 성적 때문에 마음을 고쳐 먹은 것입니다.
그런데 [탐정 : 더 비기닝]을 예매하고나니 [성난 변호사]와 너무 비슷한 장르의 영화를 연달아 보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두 영화는 똑같이 코믹 스릴러라는 장르를 취하고 있고, 정의롭다고 하기엔 2% 부족한 주인공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물론 [성난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법정 스릴러의 장르를 취하고 있고, [탐정 : 더 비기닝]은 추리 스릴러를 내세웠지만, 아무래도 [탐정 : 더 비기닝]을 보면서 자꾸만 [성난 변호사]와 비교를 하게 되더군요.
하지만 막상 [탐정 : 더 비기닝]을 보고나니, [탐정 : 더 비기닝]과 [성난 변호사]는 분위기가 비슷하긴 하지만 완전 다른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난 변호사]는 처음엔 자존심 때문에, 나중엔 정의를 위해 거대 제약회사와 싸우게 되는 변호사 고건수(이선균)의 성장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탐정 : 더 비기닝]은 연쇄살인마를 내세웠지만, 그보다는 강대만(권상우)과 노태수(성동일)을 앞세워 힘없는 남편들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치중합니다.
이러한 두 영화의 차이는 참 아이러니합니다. 왜냐하면 영화의 중심이 되는 사건의 심각성만 놓고본다면 [성난 변호사]보다 [탐정 : 더 비기닝]이 더욱 심각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성난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갑의 횡포를 담은 영화입니다. 그에 비해 [탐정 : 더 비기닝]은 부녀자를 대상으로한 연쇄살인사건이 소재입니다. 그런데 막상 사건이 해결되고나면 [성난 변호사]는 거대해 보이지만, [탐정 : 더 비기닝]은 사소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만든 것은 [탐정 : 더 비기닝]의 캐릭터입니다. 우선 주인공인 대만을 살펴보죠. 대만은 경찰이 되고 싶었지만, 체력 검사에서 불합격하는 바람에 지금은 만화방을 운영하는 처지입니다. 문제는 대만이 만화방 운영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툭하면 경찰서에 기웃거리며 수사에 간섭하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여긴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생업에는 관심이 없는 대만 때문에 대만의 아내인 미옥(서영희)은 부업으로 방문교사 일을 해야합니다.
동물의 세계에서 사냥을 못하는 수컷은 자연적으로 도태되기 마련이듯이, 우리 인간 사회에서도 생활력이 없는 남자는 여자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렇기에 대만은 생활력이 강한 아내의 눈치를 보는 전형적인 초식 남편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초식 남편인 대만은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경찰서에 기웃거리며 시간을 떼웁니다. 그리고 그러한 대만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베테랑 형사 태수와 부딪치게 됩니다.
초식 남편들의 버디무비
[탐정 : 더 비기닝]은 기본적으로 버디무비입니다. 버디무비란 남자들의 우정을 다룬 영화를 총칭하는 장르입니다. 그러한 버디무비 중에서 리처드 도너 감독의 [리쎌 웨폰]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멜 깁슨을 스타로 만들었고, 1987년부터 1998년까지 네편의 시리즈가 제작되었던 [리쎌 웨폰]은 버디무비이면서도 서로 성격이 너무나도 다른 두 캐릭터를 내세움으로써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냈습니다.
영화의 초반, [탐정 : 더 비기닝]도 [리쎌 웨폰]과 비슷한 길을 걷습니다. 전형적인 초식 남편 대만과 광역수사대의 전설이자 베테랑 경찰인 상남자 태수가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호흡을 맞추는 콤비 플레이는 [리쎌 웨폰]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러한 대만과 태수의 상반된 모습은 영화 초반 웃음을 책임지지만, 달라도 너무다른 대만과 태수가 결국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게 되는 계기를 만드는 것을 중반의 숙제로 남겨둡니다. .
여기에서 [탐정 : 더 비기닝]은 한가지 흥미로운 해결책을 찾아냅니다. 그것은 바로 사실 태수도 대만과 비슷한 초식 남편이라는 설정입니다. 한때 광역수사대의 전설이었지만 지금은 후배 밑에서 눈칫밥을 먹는 신세가 된 태수. 그는 집에서도 아내(이일화)에게 잡혀 삽니다. 비록 대만 앞에서는 상남자 행세를 했지만, 자신도 초식 남편이라는 사실을 밝혀지는 순간, 대만과 태수는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태수가 대만에게 울먹이면서 여자들은 왜 결혼하기 전에는 초식이었다가, 결혼만 하고나면 육식으로 바뀌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장면은 대만과 태수가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게 되는 결정적인 동기가 됩니다. 결국 그들은 사회 생활에서도 소외되었고, 그로인해 집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으로 서로에 대한 우정을 쌓아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리쎌 웨폰]식의 버디무비가 한순간 또 다른 재미로 진화한 셈입니다.
문제는 초식 남편이라는 키워드가 대만과 태수에 머물지 않고 영화 전체의 주제를 감싸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그것이 부녀자를 대상으로한 연쇄살인사건이라는 거창한 소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탐정 : 더 비기닝]이 끝나고나면 오히려 갑의 횡포라는 주제를 가진 [성난 변호사]보다 사소해보이는 이유입니다.
대만과 태수가 서로 의기투합하게 되는 첫번째 사건부터 되짚어 보겠습니다. 대만의 친한 동네형인 용규(이승준)의 아내가 처참하게 살해당한 이 사건에서 범인은 대만의 친구이자, 태수의 부하 경찰인 준수(박해준)가 지목됩니다. 준수가 누명을 썼다고 확신하는 대만과 태수는 준수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공동 수사를 시작한 것이죠.
초식 남편들의 반격 (이후 영화에 대한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대만과 태수가 사건을 파헤치면 칠수록 이 사건은 서로 별개인 듯 보이는 여러 사건들이 서로 얽혀 있음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 사건들 사이에는 피해자의 남편들이 깊숙히 개입되어 있었던 것이죠. 이미 태수는 첫번째 사건이 벌어지자 "아내가 죽으면 가장 먼저 남편을 의심해봐야 한다."라며 용규를 의심합니다. 하지만 사건 발생 시점에서 용규는 대만과 술을 마시고 있었기에 대만은 용규가 범인이 아니라 확신합니다.
[탐정 : 더 비기닝]의 트릭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 영화는 '준수는 범인이 아니다. 그는 누명을 썼다.'라는 전제조건에서 시작합니다. 이러한 전제조건이 없다면 대만과 태수가 손을 잡고 사건을 파헤칠 이유가 전혀 없었기에 당연합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당연한 전제조건에 은근슬쩍 또 하나의 전제조건이 끼어든 것입니다. 그것은 '용규도 범인이 아니다.'입니다. 이미 태수는 용규를 범인으로 의심하지만, 대만이 용규의 완벽한 알리바이가 되어 줌으로써 관객을 헷갈리게 만들어 놓습니다. 그리고 이 트릭은 영화의 마지막 반전이 됩니다.
결국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는 순간, 이 모든 잔인한 살인사건은 초식 남편들의 반격이었음이 밝혀집니다. 초식 동물의 특징이라면 육식 동물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집단 활동을 한다는 점입니다. 초식 남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무리를 지어 서로의 아내를 죽여주고, 가장 의심을 받을만한 피해자의 남편들은 각자 알아서 알리바이를 만들게끔 꾸며 놓습니다.
꽤 그럴싸한 반전입니다. 관객 스스로 '용규도 범인이 아니다'라는 트릭에 빠지게 만들어 놓고, 아내를 죽이고 싶은 남편들을 짝지어 사건의 진실을 복잡하게 뒤섞어 놓은 것이죠. 거기에 교환살인이라는 조금은 생소한 소재를 이용해서 영화의 마지막 반전을 완성합니다. 사실 이 영화의 반전에는 현실성이 없습니다. 살인이라는 행위가 일반인에게 쉬운 것이 아님을 감안한다면 초식 남편들의 교환살인은 헛점이 많은 계획임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저는 [탐정 : 더 비기닝]의 부족한 현실성을 지목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장르는 코믹 스릴러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고, 연쇄살인마가 설쳐대는 영화에서 코미디라는 장르가 개입되려면 오히려 영화의 현실성이 없는 것이 더 낫습니다. 현실성이 있는 스릴러 영화가 웃기다는 것은 처음부터 말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탐정 : 더 비기닝]은 꽤 잘 만들어진 코믹 스릴러 영화입니다. [리쎌 웨폰]식 버디무비로 시작해서 초식 남편의 비애로 대만과 태수가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부분도 매끄러웠고, '용규도 범인이 아니다.'라는 트릭을 통해 영화의 마지막 반전을 완성한 것도 노련했습니다. 초식 남편들의 교환 살인이라는 비현실적 소재 역시 코믹 스릴러라는 장르의 특성이 있었기에 오히려 영화와 잘 어울렸습니다.
육식 아내를 대하는 초식 남편들의 대처 방법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고나니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묘한 여운이 남았습니다. 그것은 아마 저 역시도 초식 남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탐정 : 더 비기닝]은 그저 웃고 넘길 영화였겠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 때문에 못된 가장이 되는 대만의 처지가 이해가 되었고, 늙었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소외되는 태수의 입장이 안쓰러웠기에 저는 묘한 여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때 저도 영화 기자가 되겠다며 결혼 후, 몇달간 집에서 뒹굴거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땐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직업을 너무나도 가지고 싶었지만, 영화 기자가 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모르는채 그저 방황만 했습니다. 만화방을 내버려두고 경찰서를 기웃거리는 대만처럼 말이죠. 결국 영화 기자라는 제 꿈은 채 3개월이 되기도 전에 일찌감치 접어야 했지만, 그 3개월동안 저는 가장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채 구피의 눈치만 봐야 했습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회사는 정년이 55세였는데, 최근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며 정년을 60세로 늘리는 대신 연봉을 70% 삭감시킵니다. 임금피크제는 정부에서 적극도입하는 노동개혁이라고 하는데, 문제는 제가 55세가 되는 시점에 웅이는 대학생이라는 점입니다. 대학 등록금 등 들어갈 돈은 많은데 오히려 회사에서는 연봉을 70% 삭감하며 그것도 감지덕지하라며 눈치를 주는 것이죠. 딱 태수와 비슷한 처지가 되는 셈입니다.
이렇게 남편들이 약해지는 시점에서 아내들은 강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영화 기자라는 허황된 꿈을 쫓으며 집에서 뒹굴거리던 시절, 구피는 직장해서 열심히 일하며 저 대신 가장 노릇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회사에서 은퇴해야 하는 시점이 오면 제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알뜰살뜰 저축한 구피의 선견지명이 또 한차례 저희 가족을 위기에서 구해줄지도 모를 일입니다.
육식 아내라고요? 맞습니다. 저도 구피가 화를 내면 세상 그 누구보다 무섭고 두렵습니다. 하지만 아내들이 육식이 되는 것은 남편의 탓입니다. 남자들보다 생활력이 강한 여자들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스스로 육식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탐정 : 더 비기닝]은 육식 아내에게 대처하는 두 종류의 초식 남편들이 있습니다. 교환 살인을 한 초식 남편들은 육식 아내를 세상에서 없애버리는 것을 선택했고, 대만과 태수는 육식 아내에게 순응하며 가정을 지키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교환살인을 선택한 초식 남편들의 처참한 최후를 보여주며, 어찌보면 찌질하다고 할 수도 있는 대만과 태수를 응원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앞으로 이어질 초식 남편들의 대활약이 기대됩니다. 물론 2편이 만들어진다면 여전히 코믹 스릴러라는 장르 때문에 이야기에 현실성은 없고, 치밀한 스릴러적 재미도 부족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 대표 초식 남편인 대만과 태수의 활약을 통해 저는 대리만족을 하고 싶습니다.
이 영화를 스릴러 영화의 재미로 보려고 하면
여기저기 드러난 헛점들 때문에 짜증이 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육식 아내에 대처하는 초식 남편들 위주로 영화를 본다면
스스로 초식 남편일 수 밖에 없는 우리 남자들을 위한 절묘한 코믹 영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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