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5년 영화이야기

[성난 변호사] - 이기는 것이 정의가 아닌, 정의가 이기는 날을 위하여...

쭈니-1 2015. 10. 15. 22:48

 

 

감독 : 허종호

주연 : 이선균, 김고은, 임원희, 장현성, 김윤혜, 최재웅

개봉 : 2015년 10월 8일

관람 : 2015년 10월 14일

등급 : 15세 관람가

 

 

그들이 진실을 추적하는 이유

 

거의 10여년을 CGV VIP회원 자격을 유지했더니 올해는 CGV에서 좀 더 특별한 선물을 제게 선사하더군요. 그 중 제 마음을 가장 사로잡았던 것은 원데이 프리패스  카드입니다. 원데이 프리패스 카드를 CGV에 가서 직접 등록하면 당일에 한해서 무제한으로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습니다. 비록 2015년 들어서 극장에 자주 가지 못하고 있지만 원데이 프리패스 카드를 이용해서 하루종일 공짜 영화를 볼 생각을 하니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원데이 프리패스 카드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제게 왔습니다. 회사에서 제주도로 2박3일 가을 야유회를 가기전인 지난 수요일. 저는 그날을 D-DAY로 정하고 회사에 연차 휴가를 냈습니다. 하루종일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제가 보고 싶은 영화는 단 세편뿐. [성난 변호사], [탐정 : 더 비기닝], [인턴]이 그 주인공입니다.

우선 가장 먼저 [성난 변호사]를 봤습니다. [성난 변호사]는 이선균 주연의 범죄 액션영화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분위기는 이선균의 전작인 [끝까지 간다]처럼 밝고, 코믹했습니다. 그렇기에 평일 아침 부담없이 영화를 즐기기에 딱 적합한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성난 변호사]를 보는 내내 저는 [화차]와 [끝까지 간다]가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이들 영화는 모두 이선균이 주연을 맡았으며, 주인공이 감춰진 진실을 쫓는다는 기본 설정을 가진 영화입니다.

 

우선 [화차]부터 살펴보죠. [화차]의 주인공인 장문호(이선균)는 결혼을 한달 앞둔 약혼녀 차경선(김민희)과 부모님 댁으로 내려가던 도중 휴게소에서 약혼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황당한 일을 당합니다. 문호는 경선이 납치되었다고 확신을 하고  전직경찰인 사촌형 김종근(조성하)과 함께 경선의 행방을 찾아나섭니다. 하지만 경선의 비밀이 밝혀질수록 문호에겐 가슴 아픈 진실만이 기다릴 뿐입니다.

[화차]를 보며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차라리 진실을 밝히지 않는 것이 문호에게 나은 선택이 아니었을까요? 분명 문호는 사랑하는 약혼녀 경선의 실종 사건을 캐내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만, 모든 진실이 밝혀진 후에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의 모든 것이 가짜였다는 믿을 수 없는 상처만 남아버립니다. 이렇게 [화차]에서 진실이라는 것은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나았을 뻔한 아픔입니다.

그렇다면 [끝까지 간다]는 어떨까요? [끝까지 간다]의 주인공인 고건수(이선균)는 비리 경찰입니다. 어머니의 장례식날 자신의 비리에 대한 내사 소식을 접하게 되고, 아내는 이혼을 통보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건수는 교통사고를 내고 마는데, 그날부터 목격자 박창민(조진웅)의 협박에 시달리게 됩니다. 결국 건수는 살기위해 진실을 뒤쫓고, 그 진실을 토대로 창민에게 반격을 합니다. 이렇듯 [끝까지 간다]의 진실은 건수에게 살기위한 희망이 됩니다. [화차]와 [끝까지 간다]에서 알 수 있듯이 진실은 때로 상처가 되고, 때론 희망이 됩니다. 그렇다면 [성난 변호사]에서 진실은 어떤 역할을 할까요? (이후 영화의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변호성은 왜 진실을 쫓는가?

 

이기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속물 변호사 변호성(이선균). 그는 타고난 입담과 승부사 기질을 토대로 대형 제약회사인 우수제약의 소송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짓습니다. 그런 그에게 로펌의 주대표(박지영)가 맡긴 새로운 사건은 어이없게도 신촌여대생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김정환(최재웅)을 변호하는 것입니다. 정환의 변호사가 되라는 주대표의 말에 호성은 묻습니다. "걔네집 부자예요?"

살해당한 여대생 한민정(김윤혜)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정황상 정환이 민정을 살해한 범인임이 거의 확실합니다. 게다가 정환은 폭력 전과가 있고, 가난한 운전기사에 불과합니다. 평소라면 호성이 정환의 변호를 맡는 일은 절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의뢰인이 우수제약의 대표 문지훈(장현성)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지훈은 자신의 운전기사인 정환을 위해 손수 호성을 변호사로 채용한 것입니다.

자!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정환과 처음만난 호성의 태도입니다. 호성은 정환에게 "시체는 잘 처리한거죠?'라고 물을 정도로 정환이 저지른, 혹은 누명을 쓴 범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이 재판의 주인공은 바로 나다!"라고 선언을 하며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일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호성은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캐릭터입니다. 그에게 재판은 그저 이기기 위한 게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거의 이길뻔한 게임에서 패배를 당했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편이었던 정환의 난데없는 자백 때문에 말입니다.

 

정환의 자백으로 자존심이 구겨질대로 구겨진 호성. 그는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진실을 캐내기 시작합니다. 정환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밝힘으로써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호성은 진실을 뒤쫓기 시작한 것입니다. [화차]의 진실이 상처이고, [끝까지 간다]의 진실이 희망이라면, [성난 변호사]의 진실은 패배라는 것을 몰랐던 호성의 자존심입니다.

그러한 호성의 자존심은 [성난 변호사]를 이끌어나가는 기본적인 설정이 됩니다. 자신의 자존심을 위해 진실을 캐내기 시작한 호성. 그는 그렇게해서 밝혀진 진실로 인하여 오히려 위기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호성이 맞이한 위기는 바로 지훈과의 대결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지훈도 호성과 마찬가지로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인물입니다. 자수성가한 사업가인 지훈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다른 이들을 짓밟는 일쯤은 서슴치 않는 인물입니다.

지훈이 처음 호성을 짓밟은 장면은 그렇기에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키우는 개에게 채우는 짖음 방지기를 호성의 목에 채운 것입니다. 그것은 호성이 자신이 키우는 개와도 같은 존재임을 일깨워줌으로써 호성의 자존심을 밟아버리려는 의도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역효과를 냅니다. 정환의 자백으로 변호사로서의 자존심이 구겨진 호성이 관심도 없던 진실을 밝해냈듯이, 지훈의 과도한 행동은 오히려 호성을 자극하여 지훈과 맞서게 만듭니다.

 

 

이 영화의 반전이, 반전이 아닌 이유

 

호성과 지훈의 자존심 대결. 이 대결에서 흥미로운 것은 호성의 태도입니다. 호성은 지훈이라는 강적을 상대하는데 있어서 우선 자존심을 구기고 들어갑니다. 진정한 승리를 위해 지금 당장의 자존심을 포기할 수 있을 정도로 호성은 영리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호성의 모습에 지훈은 경계심을 늦추게 되고, 그것이 호성의 승리 요인이 됩니다.

하지만 [성난 변호사]는 그러한 호성의 승부수를 감추려합니다. 호성이 돈이 아닌,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눈치챘다면, 지훈에게 숙이고 들어가는 호성의 행동에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것은 굳이 감추지 않아도 뻔히 보이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성난 변호사]는 그렇게 뻔히 보이는 호성의 꿍꿍이를 관객에게마저 애써 감추려 함으로써 영화를 복잡하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리고 그러한 복잡함을 관객에게 설명하기 위해 영화의 후반부에는 구구절절하게 호성이 꾸민 트릭을 설명합니다.

[성난 변호사]의 아쉬움 점은 바로 그것입니다. 차라리 반전이라며 감추지 말고 호성과 지훈의 대결을 당당하게 관객 앞에 보여줬다면 호성의 마지막 한방에서 [베테랑]과 같은 쾌감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반전 강박증에 걸린 허종호 감독은 굳이 감추지 않아도 될 호성의 속내를 반전이라며 꽁꽁 숨김으로써 오히려 [성난 변호사]의 재미를 반감시키고 맙니다.

 

하지만 그러한 반전 강박증만 제외한다면 [성난 변호사]는 분명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오락영화가 됩니다. [끝까지 간다]에서 능글맞은 비리 경찰을 연기했던 이선균은 [성난 변호사]에서도 능글맞은 속물 변호사를 연기하며 결코 선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캐릭터에 일가견이 있음을 다시 한번 증명해 보였습니다.

여기에 적재적소에 배치된 조연 캐릭터들도 영화의 재미에 한 몫을 합니다. 특히 박사무장을 연기한 임원희는 영화의 웃음을 주도하며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호성이 진실을 캐내야 하는 임무를 짊어진 주인공임을 감안한다면 무턱대고 코믹한 행동만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박사무장의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박사무장은 영화의 초반 코믹한 분위기를 이끌다가, 호성이 지훈과 본격적으로 대결을 하는 중반부에는 영화의 긴장감을 위해 빠집니다. 그러다가 다시 영화의 후반에 나타나 분위기를 반전시킵니다. 스릴러 영화이면서 코믹한 분위기를 가진 [성난 변호사]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캐릭터인 셈입니다.

호성의 후배이자, 정환 사건의 검사인 진선민(김고은)도 영화를 더욱 맛깔스럽게 만들었습니다. 호성과 티격태격하면서도 러브라인을 살짝 보임으로써 영화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김고은은 너무 강한 캐릭터만 연기했었는데, [성난 변호사]를 통해 가벼운 분위기의 영화에도 잘 어울림을 스스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어리버리 악당 콤비 용식과 갑수를 연기한 배유람, 민진웅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기는 것이 정의가 아닌, 정의가 이기는 날을 위하여...

 

[성난 변호사]는 분명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코믹 스릴러 영화입니다.  영화 자체가 반전 강박증에 걸려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영화적 재미에 합격점을 줘도 모자람이 없는 오락영화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마냥 웃고 즐길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특히 악역인 지훈의 자기 변명은 우리가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지훈은 우수제약의 대표로 류마티스를 획기적으로 고칠 수 있는 약을 개발합니다. 하지만 이 약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으니 부작용으로 암에 걸릴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지훈은 호성에게 말합니다. "99명의 류마티스 환자를 고칠 수 있다면 1, 2명의 환자가 부작용으로 죽는 것은 감당해야하는 부분이 아닌가?"라고 말입니다. 얼핏 들으면 지훈의 변명이 그럴 듯해보입니다. 하지만 영화 초반 호성이 법정에서 한 최후 변론을 우리는 주목해야합니다. "10명의 범죄자를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1명의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 법정의 중요한 임무입니다."

우리는 가끔 숫자에 현혹됩니다. 99에 비하면 1이라는 숫자는 굉장히 작게 보이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큰 숫자라고 하더라도 1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안됩니다. 우리는 다수결 원칙이 중요시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해서 다수를 위해 소수를 무시하고 희생시켜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소수의 희생을 묵인하는 순간 우리 사회의 질서는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성난 변호사]에서 또 한가지 인상적인 대사는 영화의 홍보 카피에도 쓰인 '이기는 것이 정의이다.' 라는 문구입니다. 이것은 영화 초반 호성이 재판에서 승소를 가두고 한 말입니다. 어쩌면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엄연히 법치주의 국가이고, 결국 모든 시시비비는 법에 의해 옳고 그름이 결정됩니다. 그렇기에 법에서 옳다라고 판단되면 그것이 곧 정의가 되곤 합니다.

하지만 법도 인간이 만든 것이다보니 헛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헛점을 이용해서 죄를 짓고도 잘 먹고 잘 사는 인간들도 존재하고요. 호성은 "정의는 승리한다."라고 부르짓는 상대편 변호사를 보며 "이기는 것이 정의지."라며 비웃습니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니지만 법으로 이겼다고해서 모든 것이 정의가 될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법을 고쳐나가고, 새로운 법을 제정하고, 낡은 법은 폐기하는 것이죠. 그러한 과정을 통해 법이 곧 정의가 되고, 진정 정의가 이기는 날을 실현해 나가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호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비록 자신의 자존심을 위해 진실을 캐냈고, 지훈과의 대결에서 이기기 위해 위험한 모험을 했지만, 그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정의로운 인물로 재탄생합니다. 결국 그는 이겼기 때문에 정의로운 변호사가 아닌, 정의를 지켰기 때문에 이기는 변호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호성은 변호사법 위반으로 변호사 자격증을 박탈당할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했지만, 정의로운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호성의 미소가 [성난 변호사]를 단순히 웃고 즐기는 오락영화 그 이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자존심이 구겨져 변호사는 화가 났다.

하지만 나중에는 법 위에 군림하는 나쁜 놈들 때문에 변호사는 화를 냈다.

이렇게 변호사가 돈이 아닌, 자신의 자존심이 아닌 정의를 위해 화를 낸다면

성난 변호사로 인하여 우리 사회는 좀 더 정의로운 곳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