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낸시 마이어스
주연 : 앤 해서웨이, 로버트 드 니로
개봉 : 2015년 9월 24일
관람 : 2015년 10월 14일
등급 : 12세 관람가
[인턴]이 의외로 흥행에 성공한 이유
자! 이제 지난 10월 14일에 본 세편의 영화 중 마지막 영화인 [인턴]입니다. 영화를 본지 무려 일주일만의 영화 이야기인만큼 지금 저는 영화를 봤을 때의 기억과 감정을 되살리려 무지 애쓰고 있는 중입니다. 역시 영화를 하루에 몰아서 보는 것은 무리가 따르네요. 앞으로는 기대작이 나오면 뒤로 밀어뒀다가 한꺼번에 몰아보지 말고, 계획을 세워 그날 그날 기대작들을 봐야 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암튼 [인턴]의 국내 개봉일은 [탐정 : 더 비기닝]과 마찬가지로 지난 9월 24일 이었습니다. 9월 24일은 추석 연휴를 앞두고 무려 네편의 기대작이 한꺼번에 개봉했던 날입니다. 그 중에서 저는 웅이와 [에베레스트]만 보고, 남은 기대작인 [서부전선], [탐정 : 더 비기닝], [인턴]은 나중에 봐야겠다고 미뤄뒀습니다. 그리고 결국 흥행부진으로 일찌감치 극장 상영이 종료된 [서부전선]을 제외하고 [탐정 : 더 비기닝]과 [인턴]은 3주가 지나서야 이렇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저는 [인턴]의 흥행성공이 정말 놀랍습니다. 사실 저는 개봉 전까지만해도 연기파 배우인 앤 해서웨이와 로버트 드 니로가 주연을 맡아 기대가 되기는 했지만, 영화 자체는 흥행에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 예상했었습니다. 하지만 [인턴]은 개봉 첫주말 [서부전선]과 [에베레스트]를 앞지른 박스오피스 4위를 기록하더니, 개봉 둘째주말에는 1위로 껑충 뛰어 오르는 작은 기적을 연출했습니다. 이후에도 [마션]에 이어 2주 연속 2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어느덧 누적관객 300만명을 육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턴]이 이렇게 예상 외의 흥행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턴]은 개봉 첫째주에 박스오피스 4위에 그칠 정도로 개봉 전부터 관객의 관심을 받았던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개봉 2주차에 1위로 뛰어 오르며 관객의 입소문을 제대로 타기 시작했음을 보여줬습니다. 그렇습니다. [인턴]의 예상 외의 흥행 돌풍은 오로지 관객의 입소문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가 10월 14일의 마지막 영화로 [인턴]을 선택한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인턴]의 그 무엇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우리나라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것일까요? 영화의 내용만 놓고 본다면 젊은 CEO와 늙은 '인턴' 사원의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인턴]에는 할리우드 영화의 전매특허인 거대한 스펙타클과 특수효과도 없습니다. 하지만 '에베레스트'의 거대한 스펙타클을 과시한 [에베레스트], 네버랜드를 환상적으로 재현한 특수효과 영화 [팬]이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낸 것입니다.
저는 [인턴]의 입소문은 지금 현재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과 가난을 겪은 구세대와 풍족함 속에 자랐지만 최악의 취업난에 직면한 신세대. 정치적으로 보수가 절대적으로 많은 구세대와 진보를 지지하는 신세대. 구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이 만연한 우리나라에서 [인턴]은 그 어떤 영화보다 착하고 이상적인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벤과 같은 구세대만 있다면...
앞서 이야기했듯이 [인턴]은 그다지 특별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사회 생활에서는 은퇴했고, 아내와는 사별했으며, 아들 내외와는 떨어져 살고 있는 70대 노인 벤 휘태커(로버트 드 니로)가 열정적인 30대 여성 CEO 줄스 오스틴(앤 해서웨이)의 회사에 '인턴'으로 채용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잔잔한 웃음 속에 담아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인턴]은 특별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특별함은 사려깊은 벤 덕분입니다.
사실 저는 [인턴]이 벤과 줄스의 갈등, 그리고 화해로 이어지는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벤과 줄스는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든 부분이 서로 다릅니다. 벤은 구시대 유물이라 할 수 있는 전화번호부를 만드는 회사를 다녔고, 사회 경험이 많은 남성입니다. 그와는 달리 줄스는 여성 의류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으며, 창업한지 1년 반밖에 지나지 않은 초짜에 여성 경영인입니다. 아무리 줄스는 CEO이고 벤은 '인턴'이라고 할지라도 서로 다름은 줄스와 벤을 서로 부딪히고 갈등하게 만들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 예상은 벤의 행동으로 무너집니다. 벤은 자신의 사회적 경험을 모두 무시하고 철저하게 줄스의 방식을 따릅니다. 그는 줄스를 존중하고, 마음 속 깊이 여성의 몸으로 1년 반만에 직원 220명의 성공신화를 쓴 줄스를 존경합니다. 벤이 한번이라도 자신의 경험을 내세워 잘난척 했다면 줄스와 갈등이 빚어졌을텐데, 벤은 철저하게 줄스의 부하직원으로 충실히 행동할 따름입니다.
처음 줄스는 벤을 부담스럽게 생각합니다. 당연합니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부하직원은 부담스럽기 마련인데, 한두살 많은 것이 아닌 자신의 아버지뻘되는 벤을 부하직원으로 맞이했으니 부담스럽지 않다면 비정상입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벤에게 "제가 필요할때 메일로 호출할께요."라고 말은 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벤을 찾지 않습니다. 그녀에게 벤은 부담스럽기만할뿐, 필요한 존재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벤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면 어땠을까요? 기껏 채용해놓고 아무 일도 안시키고, 멍하니 자리에 앉혀놓은다면... 회사에 다녀보신 분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그것만큼 눈치보이고, 힘든 것도 없습니다. 아마 저라면 며칠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사표를 쓰고 회사를 나가며 상사에게 욕을 한바가지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벤은 묵묵히 기다립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이 할 수 있을 일을 찾아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그 일을 합니다.
줄스가 야근을 하면 "보스가 아직 퇴근하지 않았는데 먼저 퇴근할 수 없다."며 기다리는 벤의 모습에 줄스도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엽니다. 그녀가 먼저 벤에게 페이스북하는 것을 알려주고, 친구신청을 하는 장면은 벤과 줄스 사이의 장벽이 허물어졌음을 보여주는 명장면입니다. 저는 [인턴]을 보며 벤이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한때 잘나갔는데...'라며 과거 영광에만 빠져 있지 않고, 자신이 지금 현재 본분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진정 프로다웠습니다.
줄스가 겪어야 했을 사회적 편견
줄스는 분명 성공신화를 이룬 젊은 여성 CEO입니다. 일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젊은 여성 CEO라는 사회적 편견은 여전히 그녀를 괴롭힙니다. 투자자들은 젊은 여성 CEO인 줄스보다는 노련하고 경험많은 전문 경영인을 원합니다. 줄스의 아이디어로 세워진 회사이고, 매출 역시 나날이 늘어나지만, 사회적 편견에 휩싸인 투자자들에게 줄스는 불안해 보였던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회사를 운영해야 하는 줄스는 가정 문제에서도 문제에 봉착합니다. 어린 딸의 엄마이지만, 회사 일이 바빠 집안 일보다 회사 일에 몰두해야 하는 줄스. 그로인하여 남편은 직장을 그만두고 줄스 대신 가사일을 도맡아 합니다. 그러한 남편에게 대한 죄책감에 휩싸인 줄스는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면서도 혼자 끙끙 앓기만 할 뿐입니다. 만약 그녀가 남성이었다면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괴로워했을까요? 아마 투자자들은 젊은 CEO의 성공신화라며 그를 추켜세웠을 것이고, 아내는 성공한 사업가인 남편의 내조를 당연하게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졌다고는 하지만 이것이 현실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줄스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갑니다. 투자자들이 노련한 전문 경영인을 원한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리며 "나도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라고 항변합니다. 하지만 전문 경영인을 구하면 자신은 가정에 조금 더 충실할 수 있다는 사실에 결국 자신을 대신해서 회사를 운영할 전문 경영인을 구하러 다닙니다. 그리고 남편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기만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회적 편견에 휩싸여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는 줄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 것은 다름아닌 벤입니다. 영화의 초반, 줄스는 벤이 너무 오지랖에 넓다며 벤의 부서를 옮길 것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벤이 없자 그녀는 깨닫습니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에게 용기를 복돋아주고, 진솔한 충고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벤이라는 사실을...
벤은 줄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주고, 그녀가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응원해줍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벤은 비록 '인턴'에 불과하지만, 그가 자신의 본분에 맞게 행동하고,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상사를 진정으로 존경하며, 자신의 경험을 그저 진솔하게 이야기함으로써 벤은 줄스에게 그 누구보다도 필요한 회사의 인재가 됩니다.
우리나라의 세대간 갈등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구세대들은 '전쟁과 가난에서 우리가 어떻게 이 나라를 일으켜 세웠는데...' 라며 과거에 집착하고, '요즘 젊은 것들은 아무 것도 몰라.'라며 신세대를 무시합니다. 신세대들은 전쟁과 가난 때문에 제대로 배우지 못한 구세대를 무시하고, 과거에만 연연하는 구세대의 사고방식을 답답해합니다. 하지만 [인턴]처럼 구세대와 신세대 모두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켜나간다면 세대간 갈등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입니다.
나는 벤에게서 은퇴 후를 배웠다.
[인턴]을 보며 저는 회사의 경비 아저씨가 떠올랐습니다. 한때 규모가 큰 부동산중개업을 운영하셨던 그 분은 이제 저희 회사의 야간 경비원이십니다. 면접 당시 그 분의 과거 화려한 경력 때문에 걱정했는데, 막상 채용하고나니 나이 어린 직원들에게 까듯이 대하며 경비원으로써 자신의 본분을 충실히 지키시고 계십니다. 저는 그러한 경비 아저씨가 너무 고마워 제주도 야유회에 돌아오는 길에 면세점에서 선물을 사다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만약 제가 회사에서 은퇴를 하고 다니던 회사의 경비원으로 재취업을 한다면 과연 제 기분은 어떨까요? 줄스의 회사는 벤이 다녔던 전화번호부 회사의 건물을 인수했습니다. 다시말해 벤은 한때 부사장으로 있었던 건물에 '인턴'으로 재취업한 것입니다. 벤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편안한 고향에 다시 돌아온 느낌도 있었겠지만, 부사장이었던 예전과는 너무나도 달라진 지금의 처지에 굴욕감을 느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벤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에게 다시 주어진 기회를 만족하고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지금 저희 회사의 경비 아저씨도, 그리고 어쩌면 웅이의 대학 등록금을 위해 회사에서 정년퇴직을 한 후에도 계속 일을 해야할지도 모르는 저도, [인턴]의 벤은 배울 점이 많은 캐릭터입니다. 앞으로 먼 훗날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이제 고작 10년, 15년후면 제게 닥쳐올 일이기에 [인턴]은 더욱 제게 소중한 영화였습니다.
벤 휘태커처럼 늙어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화려했던 시절을 추억하며, 비루한 현실에 낙담하면 할수록
우리는 젊은 시절 우리가 비웃었던 '꼰대'가 되어갈 것이다.
벤 휘태커처럼 늙어서 진정 존경받고 싶다면,
남이 아닌 내가 먼저 존경받도록 행동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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