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웨스 볼
주연 : 딜런 오브라이언, 카야 스코델라리오, 토마스 생스터, 이기홍
개봉 : 2015년 9월 16일
관람 : 2015년 9월 20일
등급 : 12세 관람가
과정이 중요할까? 결과가 중요할까?
여러분은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과정을 중요시하나요? 아니면 결과를 중요시하나요? 물론 과정과 결과가 모두 좋으면 최상이겠지만, 세상 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좋은 과정을 거치면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렵고,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안좋은 과정을 선택해야할 때가 많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과정과 결과 중 하나를 선택해야는 순간이 오면 결과의 중요성에 따라 선택이 갈라집니다. 만약 꼭 이뤄내야하는 결과라면 과정을 무시하는 선택을 하고나선 스스로 '어쩔 수 없었어!'라는 변명을 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서 중요한 시험을 앞둔 학생들은 좋은 시험 성적이라는 결과를 얻기 위해 컨닝이라는 나쁜 과정을 선택합니다. 이러한 선택은 비단 학생들 뿐만이 아닙니다. 성인이 되고나면 과정과 결과의 선택에 대한 갈림길에 서는 경우가 더욱 많아 집니다.
몇년전 우연히 제 블로그에서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었습니다. 토론의 내용은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시키는 것은 정당할까?'였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느 한사람만 희생시켜 수십, 수백명의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그 한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은 정당할까?'라는 내용이었는데 놀랍게도 많은 분들이 '다수를 위한 소수의 어쩔 수 없다.'라는 의견을 냈었습니다. 다시말해 그 분들은 과정이 아닌 결과가 중요하다고 선탹한 것입니다.
만약 희생되어야 하는 한사람이 스스로 희생을 선택했다면 그의 희생은 수십, 수백명을 살리는 숭고한 희생이 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희생을 거부한다면 그의 희생은 살인이 됩니다. 내 자신이 다수에 포함되어 있기에 소수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할테지만, 만약 내 자신이, 혹은 사랑하는 내 가족이 다수가 아닌 희생되어야하는 소수라고해도 '어쩔 수 없다'며 소수의 희생을 수긍할 수 있을까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여러분은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결과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이건 매우 어려운 질문같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사실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는 사실입니다. 결과를 얻기 위해 과정을 무시한다면 우리 사회는 자기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마음에 다른 사람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무질서한 상태가 될 것입니다.
[메이즈 러너 : 스코치 트라이얼]은 과정과 결과에 대한 영화입니다. 영화의 배경은 태양 흑점의 폭발로 인하여 폐허가된 가까운 미래의 지구입니다. 도시는 파괴되었고, 지구는 사막화되었습니다. 게다가 원인을 알 수 없는 플레어 바이러스로 인하여 다수의 사람들은 크랭크라 불리우는 괴물이 되어 있습니다. 인류 최악의 위기상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플레어 바이러스의 백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와중에 결과에만 매달리는 사람들과 과정을 중요시하는 사람들로 나뉘게 됩니다.
위키드는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후 스포가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메이즈 러너 : 스코치 트라리얼]은 지난 2014년 9월에 개봉해서 국내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던 [메이즈 러너]의 속편입니다. [메이즈 러너]는 기억이 삭제된 상태에서 거대한 미로에 갇힌 아이들의 이야기였습니다. 미로에 갇힌 아이들은 내가 왜 미로에 갇혔는지, 누가 나를 미로에 가뒀는지, 미로 밖에는 무엇이 있는지 아무 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아이들은 미로 밖으로 탈출해야한다고 주장하는 토마스(딜런 오브라이언)와 미로 안에 남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갤리(윌 폴터)로 나뉘어 대립을 하게 됩니다. 결국 [메이즈 러너]는 이유도 모르는채 미로에 갇힌 아이들이라는 소재로 관객의 궁금증을 유발하고, 토마스와 갤리의 대립과 미로에 갇힌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미로 감시 로봇인 그로버를 통해 영화의 긴장감을 조성합니다.
그와는 달리 [메이즈 러너 : 스코치 트라이얼]은 [메이즈 러너]에 가졌던 모든 궁금증들을 해소시킵니다. 더이상 아이들이 왜 미로에 갇혔는지, 누가 미로에 가뒀는지, 미로 밖에는 무엇이 있는지는 관객의 호기심을 끌어내지 못합니다. 그 대신 이 모든 배후라고 할 수 있는 위키드라는 조직이 전면적으로 부상됩니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질문은 한가지로 축약됩니다. '위키드는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위키드는 [메이즈 러너]에서부터 중요하게 언급됩니다. 미로에 갇힌 아이들이 정기적으로 배급받는 물품에 위키드 마크가 찍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토마스는 기억이 삭제된 상태에서도 '위키드는 좋은 일을 하는거다.'라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기억해냅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자신하는 위키드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위키드의 주요 목적은 플레어 바이러스의 백신을 만드는 것입니다. 나이가 어릴 수록 플레어 바이러스에 감염될 위험이 적다는 사실을 발견한 에바 페이지(패트리시아 클락슨) 박사는 어린 아이들을 모아 백신 개발에 착수한 것입니다. 이렇듯 그들의 목표는 선합니다. 플레어 바이러스로부터 인류를 지켜내는 것, 이것이 위키드의 목적입니다.
하지만 위키드는 플레어 바이러스 백신 개발이라는 결과를 위해 과정을 무시하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을 실험도구로 이용하며 희생을 강요합니다. [메이즈 러너]의 무대였던 거대한 미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플레어 바이러스를 이겨낼 수 있는 항체를 지닌 아이들을 가려내기 위해 위키드는 아이들을 가뒀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자기 스스로에게 체면을 걸듯이 말합니다. '위키드는 좋은 일을 하는거다.' 그런데 정말 결과를 위해 과정을 무시한 위키드는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토마스와 트리사의 선택
결과를 위해 과정을 무시한 위키드의 행위에 대해 영화속 사람들은 딱 두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하나는 아무리 결과가 중요해도 과정이 무시된 위키드의 행위는 잘못된 것이라며 반기를 드는 사람들과,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 아이들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위키드와 위키드의 지지자들. 그들은 서로 대립하며 싸움을 벌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영화에서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면 위키드에 반기를 들까요? 아니면 지지를 보낼까요? 아마도 플레어 바이러스 백신을 만드는데 희생되는 아이들이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 위키드에 지지를 보낼 것입니다. 플레어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하는 것이 남아 있는 사람들의 유일한 희망일테니까요.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희생을 강요당하는 당사자라거나, 희생당하는 아이들이 여러분의 가족이라면 위키드에 반기를 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토마스의 선택입니다. 토마스는 위키드에서 일하며 자신 또래 아이들이 희생되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그는 선택을 합니다. 결과를 위해 과정을 무시한 위키드는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한 토마스는 위키드에 대항해 싸우는 힘든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희생당하는 아이들은 토마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아이들을 위해 싸우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러한 토마스의 선택은 트리사(카야 스코델라리오)와 대조됩니다. 트리사는 플레어 바이러스로 인하여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누구보다도 플레어 바이러스의 백신 개발이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바 페이지 박사처럼 백신 개발이라는 결과를 위해 자신과 또래 아이들의 희생이라는 과정을 애써 외면한 것입니다.
트리사의 배신으로 저항군 기지가 위키드 군사에 의해 쑥대밭이 되었을때 트리사는 이야기합니다. 어쩔 수 없었다고... 플레어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었다고... 그녀는 위키드에 저항군 기지를 알려주며 아무도 다치지 않게 하겠다는 조건을 내결었지만 그녀 자신도 아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것은 그저 스스로를 위한 변명입니다. 친구들의 죽음은 배신한 자신 때문이 아닌, 약속을 지키지 않은 위키드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변명하며 죄책감에서 벗어나려 할 것입니다.
영화를 보며 저는 트리사의 배신을 비난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만약 영화와 같은 상황에 처해있다면 인류의 마지막 희망인 플레어 바이러스 백신 개발을 간절히 원했을 것이고, 그렇기에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아이들의 희생은 외면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뤄내야할 결과가 간절할수록 우리는 과정을 외면합니다. 그것이 우리 보통의 사람들이며, 우리와 다른 선택을 한 토마스가 특별한 이유입니다.
이제는 전면전이다.
[메이즈 러너]의 원작은 3부작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1편의 제목이 <메이즈 러너>이고, 2편은 <스코치 트라이얼>, 3편은 <데스 큐어>입니다. 영화 역시 큰 이변이 없는한 3부작으로 만들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1편인 [메이즈 러너]가 순수 제작비 3천4백만 달러라는 비교적 적은 제작비로 북미에서만 1억2백만 달러, 월드와이드 성적은 순수 제작비의 10배인 3억4천만 달러를 벌어들었습니다.
지난 주말에 북미에서 개봉한 [메이즈 러너 : 스코치 트라이얼]도 북미 박스오피스 첫주에 3천만 달러의 성적을 올렸고, 월드와이드는 이미 1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제작사인 20세기 폭스입장에서는 3편을 안만들 이유가 없는 셈입니다. 문제는 요즘의 추세대로 3편을 1부와 2부로 나눌 것인지, 아니면 그냥 [메이즈 러너 : 데스 큐어] 한편만 만들어질지 결정하는 것만 남은 것입니다.
만약 3편이 만들어진다면 주요 내용은 위키드에 잡혀간 민호(이기홍)를 구하기 위한 토마스의 모험이 될 것입니다. 위키드와 토마스를 중심으로한 저항군의 전면전이 펼쳐지는 것이죠. 하지만 토마스가 위키드를 무너뜨린다고해서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승리는 결과를 위해 과정울 무시한 위키드를 무너뜨림과 동시에 플레어 바이러스 백신 개발이라는 결과도 이뤄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이이지만 결국 서로 대립할 수 밖에 없는 토마스와 트리사의 운명도 3편에서 결정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메이즈 러너 3부작]은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1편은 거대한 미로라는 제한된 공간을 통해 호기심을 유발하고, 미로 밖으로 탈출해야한다는 토마스와 미로에 남아야 한다는 갤리의 갈등을 잡아냅니다. 미로 감시 로봇인 그리버는 영화의 재미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장치입니다.
2편도 비슷합니다. 2편은 폐허가된 도시를 무대로 토마스와 위키드의 대립을 잡아냅니다. 그리고 플레어 바이러스로 인하여 크랭크라는 괴물이된 사람들을 통해 영화의 재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듭니다. 사실 그리버와 크랭크는 영화의 긴장감을 높이는 장치에 불과합니다. 영화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토마스 VS 갤리, 토마스 VS 위키드의 대립구도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메이즈 러너]와 [메이즈 러너 : 스코치 트라이얼]은 영화의 주제와 재미를 동시에 잡아냅니다.
그렇다면 3편은 어떨까요? 토마스가 위키드와 전면전을 선언한 이상 영화의 규모는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1편의 순수제작비가 3천4백만 달러였고, 2편은 6천1백만 달러였음을 감안한다면 3편의 제작비는 1억 달러를 육박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는 재미는 무엇일까요? 1편의 그리버, 2편의 크랭크와 버금가는 긴장감을 조성할 수 있는 장치는 무엇일까요? 벌써부터 3편이 보고 싶어 온 몸이 근질거립니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하는 사회가 온다면
우리는 서로가 원하는 결과를 위해 온갖 추잡한 불법 행위들을 자행하고도
결과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며 떳떳해할 것이다. (위키드처럼)
그런 무법사회를 바라지 않는다면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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