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페이튼 리드
주연 : 폴 러드, 마이클 더글라스, 에반젤린 릴리, 코리 스톨
개봉 : 2015년 9월 3일
관람 : 2015년 9월 5일
등급 : 12세 관람가
웅이의 12번째 생일선물
지난 9월 4일은 웅이의 12번째 생일이었습니다. 구피와 저는 웅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생일 파티를 해주려 했지만 웅이는 "됐어요. 제가 어린애도 아니고..."라며 거부하네요. 친구들도 이제 생일파티는 안한다며 거부하는 웅이의 모습을 보며 "오늘 제 생일이라서 친구들과 밤새 놀다 들어갈꺼예요."라는 전화를 받는 날이 멀지 않았음을 느꼈습니다.
비록 웅이의 생일 파티를 해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 웅이의 생일을 위해 저와 구피는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저는 9월 4일 제주도 출장을 9월 6일로 미뤘고, 구피는 웅이가 좋아하는 닌텐도 Wii <월-E> 게임타이틀을 선물로 사줬으며, 저도 '아이언맨 마크 1' 피규어를 사줬습니다. 그리고 9월 4일 밤에는 저희 가족만의 조촐한 생일 파티가 열렸고, 다음날인 9월 5일에는 웅이가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렸던 영화 [앤트맨]을 온가족이 함께 보러 갔습니다.
[앤트맨]은 웅이의 생일선물입니다. 물론 저 역시 [앤트맨]을 기대했고 구피도 토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앤트맨]을 보기 위해 나섰지만, 아무래도 [앤트맨]을 가장 간절히 기다렸고 영화를 보는 내내 열광하며 봤던 것은 웅이였습니다.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 웅이. 웅이가 중학생이 되면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다니기 위해 저와 극장에 가는 것이 뜸해질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렇게 웅이와 영화를 보며 함께 추억을 쌓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답니다.
'앤트맨'... 우리말로 번역하면 개미남자입니다. 세상엔 수 많은 슈퍼 히어로들이 있고, 그들의 능력에 맞춰 이름도 제각각입니다. '슈퍼맨', '배트맨',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등등. 특히 '배트맨'과 '스파이더맨'처럼 동물의 이름을 가진 슈퍼 히어로들은 자신의 모티브가 된 동물의 특별한 능력을 활용하여 악당을 무찌릅니다. 그렇다면 '앤트맨'은 개미의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일까요?
어린 시절, 낡았던 저희 집에는 불개미들이 많았습니다. 음식을 잘못 보관하는 날이면 시뻘겋게 모여든 불개미의 끔찍한 광경이 연출되기도 하고, 가끔 불개미에게 물려 살이 퉁퉁 부어 오르기도 했습니다. (개미한테 물리면 모기한테 물리는 것보다 몇배나 큰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기에 저는 집에서 불개미를 보면 그 즉시 죽였습니다. 개미에 대한 그런 안좋은 인식이 있기에 저는 '앤트맨'이라는 이름이 굉장히 유치하게 보였습니다.
개미에 대한 이런 선입견이 있기에 저는 [앤트맨]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했었습니다. 이건 마치 2011년 [퍼스트 어벤져]가 처음 개봉했을 때와 비슷합니다. [퍼스트 어벤져]는 당시 우리나라 관객에겐 낯설었던 '캡틴 아메리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입니다. 게다가 영웅의 이름에서부터 의상에 이르기까지 미국색이 강했기에 개봉전부터 국내 흥행이 불투명했고, 결국 '캡틴 아메리카'라는 원제대신 '퍼스트 어벤져'라는 부제를 전면으로 내세우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캡틴 아메리카'는 '어벤져스'를 대표하는 영웅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앤트맨]의 재미를 반신반의하면서도 영화를 기대했던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앤트맨'은 딸바보 영웅
제가 '앤트맨'을 처음 접한 것은 제 두번째 마블 코믹스였던 <어벤져스 디스어셈블드>에서였습니다. <어벤져스 디스어셈블드>는 현실왜곡 능력이 있는 '스칼렛 위치'의 광기로 인하여 '어벤져스'가 최악의 위기에 빠진다는 내용인데, '어벤져스'의 창립멤버인 '앤트맨'을 비롯하여 '호크아이'와 '비전'이 안타까운 죽음을 당하는 충격적인 이야기입니다.
<어벤져스 디스어셈블드>에서 '앤트맨'은 어벤저스 맨션에서 '호크아이', '쉬헐크'와 사사로운 대화를 나누다가 누군가 어벤져스 맨션에 침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침입자의 정체는 '잭 오브 하츠'입니다. 문제는 '잭 오브 하츠'가 '앤트맨'의 딸을 아동살해범의 손에서 구해준 후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입니다. 죽은줄 알았던 '잭 오브 하츠'가 돌아오자 '앤트맨'은 반가운 마음에 마중을 나갑니다. 하지만 '잭 오브 하츠'는 "미안해."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자폭을 하고, '잭 오브 하츠'의 자폭으로 '앤트맨'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제가 수십권의 마블 코믹스를 소장중이지만 제가 소장중인 마블 코믹스에서 '앤트맨'이 등장하는 것은 <어벤져스 디스어셈블드>의 초반부가 전부입니다. 그 중에서 제 눈에 띄었던 것은 '앤트맨'에게 딸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슈퍼 히어로들은 대의를 위해 사생활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기에 딸을 둔 '앤트맨'의 존재가 조금 특이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앤트맨]의 시작은 바로 그러한 딸바보 스콧 랭(폴 러드)의 사정에서부터입니다. 그는 하나뿐인 딸에게 멋진 아빠이고 싶지만 현실은 전과기록 때문에 취업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생계형 도둑일 뿐입니다. 그의 어린 딸은 아직도 아빠를 영웅이라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냉담합니다. 딸의 생일 파티에 초대조차 되지 못한 스콧. 그는 마지막으로 한탕 더 하기로 결심합니다.
스콧이 마지막 한탕을 하기로 결심한 곳은 행크 핌(마이클 더글라스)의 금고. 그런데 그 금고에는 스콧이 기대한 돈대신 '앤트맨' 슈트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영화는 자연스럽게 1대 '앤트맨' 행크 핌(마이클 더글라스)에서 2대 '앤트맨' 스콧 랭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잡아냅니다. 여기에서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스콧과 행크가 많이 닮아 있다는 점입니다. 스콧과 마찬가지로 행크 역시도 딸이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호프 반 다인(에반젤린 릴리). 행크는 호프를 끔찍히 아끼지만, 호프에게 행크는 애증의 관계일 뿐입니다. 만약 스콧이 행크를 만나 '앤트맨'이 되지 못했다면 스콧 역시 딸에게 실망만 안겨주는 행크와 같은 아빠가 되었을 것입니다.
행크는 스콧에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안전한 미래를 남겨주자고... 결국 [앤트맨]은 아빠들의 활약을 담은 영화입니다. 과거의 과오로 아내를 잃었지만 호프만큼은 지키고 싶었던 행크와 딸에게 멋진 영웅이고 싶었던 스콧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가 인류의 평화라는 큰 이야기를 했다면, [앤트맨]은 가족이라는 작은 이야기를 꺼내든 것입니다.
왜 개미인가?
[앤트맨]은 가족이라는 작은 이야기입니다. 인류의 평화라는 큰 임무를 띈 슈퍼 히어로에게 가족은 항상 걸림돌이 됩니다. 빌런들이 슈퍼 히어로의 가족을 인질로 잡아 슈퍼 히어로의 발목을 잡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스파이더맨'이 자신의 정체를 감출 수 밖에 없었던 것도 그에겐 메리 숙모와 메리 제인이라는 목숨보다 소중한 가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앤트맨]은 처음부터 가족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당연히 빌런인 대런 크로스(코리 스톨)은 스콧의 어린 딸을 인질로 잡고, 스콧은 딸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걸어야 합니다. 어쩌면 뻔한 스토리이지만, 뻔한 만큼 공감이 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인류의 평화라는 큰 임무가 아닌, 어린 딸을 구하기 위한 작은 임무에 뛰어든 스콧. 그렇기에 [앤트맨]의 후반부가 더욱 긴장감 넘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에서 스콧의 활약은 개미와 겹쳐집니다. 개미는 집단 생활을 하는 대표적인 곤충입니다. 여왕 개미를 필두로 각각의 개미들이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집단을 유지합니다. 개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개별 활동이 아닌, 가족이라 할 수 있는 집단의 이익을 위한 행동입니다. 그렇기에 개미는 가족을 위한 영웅에게 가장 알맞은 존재인 것입니다.
가족이라는 작은 이야기와 개미라는 작은 곤충을 대입하는 것은 꽤 흥미로운 접근법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작다고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크다고 무조건 강하고 할 수 없고, 작다고 무조건 약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공룡은 큰 덩치를 가졌지만 결국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했으며, 우리 인간을 위협하는 가장 두려운 존재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미생물임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개미만 해도 그렇습니다. 한마리의 개미는 작고 힘없는 곤충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런 작은 개미들이 뭉치면 큰 짐승도 위협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힘을 갖게 됩니다. [앤트맨]은 바로 그런 개미의 특징을 이용합니다. 스콧에겐 처음부터 행크와 호프라는 든든한 조력자가 있고, 좀도둑 삼총사인 루이스(마이클 페나) 일당도 스콧에게 큰 힘이 됩니다. 결국 스콧은 처음부터 혼자 활동하는 것이 아닌 가족과도 같은 동료들과 함께 활동을 함으로써 더 큰 활약을 하는 힘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딸을 향한 스콧의 사랑은 결국 인류를 향한 '앤트맨'의 활약이 됩니다. 큰 것은 이렇게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앤트맨]은 그런 작은 것의 위대함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생소한 '앤트맨'을 효과적으로 소개합니다. [퍼스트 어벤져]이후 '캡틴 아메리카'가 그러했듯이 더이상 '앤트맨'은 낯설고 못미더운 영웅이 아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당당한 일원으로 합류를 하게 됩니다.
'어벤져스'의 일원으로써의 '앤트맨'이 기대된다.
이제 '앤트맨'의 소개는 끝이 났습니다. '앤트맨'은 천적이라 할 수 있는 '옐로우 자켓'을 무찔렀고, 어린 딸을 구함으로써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딸을 위한 영웅이 되었습니다. 행크와 호프의 화해는 덤입니다. 가족을 위한 작은 이야기의 '앤트맨'은 [앤트맨] 한편으로 막을 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입니다. 이제 이 작은 영웅은 좀 더 큰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을 것입니다.
이미 떡밥은 뿌려져 있습니다. [퍼스트 어벤져]이후 '캡틴 아메리카'가 [어벤져스]에 연착륙했던 것처럼 '앤트맨'은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를 통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더 큰 세상으로 나올 것입니다. 이를 위해 '팔콘'(안소니 마키)이 몸을 아끼지 않고 망가져주는데, [앤트맨]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장면은 '팔콘'과 '앤트맨'의 대결입니다. 이는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 '앤트맨'이 어떻게 활약을 펼칠지 살짝 보여준 관객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영화 후반 대런이 히드라에 핌 입자를 토대로 자신이 개발한 몸을 자유자재로 줄이는 약물을 팔려고 하는 장면입니다. 스콧과 행크의 활약으로 이 거래는 저지되지만, 히드라의 멤버인 미첼 카슨이 약물 중 하나를 슬쩍 주머니에 넣음으로써 작음의 전쟁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큰 후푹풍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됩니다.
[앤트맨]에는 두개의 쿠키 영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첫번째 쿠키영상은 엔딩 크레딧 중간에 호프에게 '와스프' 의상을 보여주며 "이제 이걸 네게 줄 때가 되었구나."라고 말하는 행크의 모습입니다. 비록 [앤트맨]에서 '와스프'는 행크의 과거 회상씬으로 짧게 등장했지만 호프가 어머니의 뒤를 이어 2대 '와스프'가 됨으로써 더 많은 활약이 기대됩니다.
두번째 쿠키영상은 엔딩 크레딧이 전부 올라간 이후 나옵니다. 많은 분들이 첫번째 쿠키영상만 보고 극장 밖으로 나가서 아쉬웠는데, 진정한 쿠키영상은 뒤에 숨겨져 있었던 셈입니다. 두번째 쿠키영상은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를 위한 예고인데, 부상을 입은 '윈터솔져'(세바스찬 스탠)를 찾아낸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에게 '팔콘'은 우리를 도와줄 새로운 친구를 알고 있다며 미소를 짓는 장면입니다. '팔콘'이 말한 새로운 친구는 당연히 '앤트맨'이고요.
자! 이제 '앤트맨'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소개하는 과정은 끝이 났습니다. 남은 것은 '앤트맨'의 활약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가 될 것입니다. 이쯤되면 마블의 치밀한 영화 계획이 경이롭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가 개봉하는 2016년 5월을 또 어떻게 기다려야할까요? 언제나 기다림에 대한 보답을 영화의 재미로 하는 마블이기에 저는 이 기다림이 또다시 즐겁게만 느껴집니다.
[앤트맨]은 거대함에 집착하는 할리우드에
작은 것의 위대함을 보여준 블록버스터이다.
어쩌면 그 자체만으로도 [앤트맨]은 의미가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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