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조쉬 트랭크
주연 : 마일즈 텔러, 케이트 마라, 마이클 B. 조던, 제이미 벨, 토비 켑벨
개봉 : 2015년 8월 20일
관람 : 2015년 8월 23일
등급 : 12세 관람가
이 영화는 정말 엉망인 영화일까?
저희 가족은 말 그대로 마블의 광팬입니다. 저는 두말할 필요도 없고, 웅이는 뒤늦게 마블 광팬의 세계에 들어섰지만, 요즘 마블 영웅들에 대한 지식은 저를 훨씬 뛰어넘을 정도입니다. SF영화라면 저만큼이나 열광하는 구피도 피곤하다며 영화보러 극장가는 것을 거부하면서도 마블 영화라면 만사 제쳐두고 저와 함께 영화관을 찾아나섭니다.
영화에 대한 판권이 마블이 아닌 20세기 폭스사에 넘어간 탓에 비록 마블의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는 빠져 있지만, 마블 코믹스의 중요한 영웅중의 하나인 '판타스틱 4'의 세번째 영화 [판타스틱 4]가 개봉했던 지난주 저희 가족의 마블 영화에 대한 사랑은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저와 웅이는 [판타스틱 4]의 개봉을 손꼽아 기다렸기에 [판타스틱 4]가 개봉하자마자 극장으로 달려갈 채비를 마친 것은 당연했지만, 요즘 열대야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 컨디션이 최악인 구피도 [판타스틱 4]를 보겠다며 일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극장을 따라 나선 것입니다. 이로써 지난 5월 31일 [투모로우 랜드] 이후 오랜만에 저희 가족의 단체 영화 관람이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판타스틱 4]를 보러 가는 길에 구피와 웅이에게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최대한 낮추라고 몇번이나 충고했습니다. 제가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판타스틱 4]가 이미 북미 개봉에서 망작 판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판타스틱 4]는 국내개봉 이후에도 관객 리뷰의 대부분이 영화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하는 것이었는데, 어느 인터넷 신문사의 리뷰에서는 '이럴거면 마블에 판권을 넘겨라.'라는 극단적인 평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자! 그렇다면 과연 마블 광팬인 저희 가족의 [판타스틱 4]에 대한 평은 어떠할까요? 우선 저는 우려했던 것만큼 최악은 아니었습니다. 워낙 이 영화에 대한 안좋은 평들이 많아서 영화를 보기 전부터 기대도를 잔뜩 내렸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팀 스토리 감독의 [판타스틱 4]와 [판타스틱 4 : 실버서퍼의 위협]보다는 재미있었습니다.
웅이는 영화를 본 후 재미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못했나봅니다. [판타스틱 4]를 보고나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는 것을 보면... 구피는 초반에 살짝 졸았다고 하네요. 물론 저희 가족이 [판타스틱 4]를 보기 위해 일요일 아침 7시에 일어나 오전 8시 10분 조조타임으로 관람하긴 했지만 그래도 구피가 졸았다는 것은 그만큼 이 영화가 블록버스터 SF 액션영화로써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음을 뜻합니다. 결국 [판타스틱 4]를 기대보다 만족했던 사람은 저희 가족 중에서 저뿐인 셈입니다.
[판타스틱 4]를 보고나서 왜 이 영화가 이토록 많은 분들의 악평에 시달려야 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았습니다. 사실 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구피가 영화를 보며 졸았을만큼 이 영화는 슈퍼 히어로 액션에 대한 관객의 기대를 채우지 못한 것입니다. 그 대신 [판타스틱 4]는 갑자기 원하지 않는 슈퍼 능력을 가지게된 10대 소년, 소녀들의 심리를 잡아내는데 주력합니다. 어느 영화 기자가 [판타스틱 4]를 두고 1시간 40분짜리 거대한 예고편이라고 한 이유는 거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이 영화의 선택이 과연 잘못된 것일까요?
팀 스토리의 [판타스틱 4]와 정반대의 영화
'판타스틱 4'는 2005년 처음 영화화되었습니다. (비디오, DVD용으로 제작되었다는 1994년 [판타스틱 4]는 제외시켰습니다.) 제작사인 20세기 폭스는 [판타스틱 4]의 메가폰을 흑인 코미디 [우리 동네 이발소에 무슨 일이]를 흥행시킨 팀 스토리 감독에게 쥐어주었는데, 이는 20세기 폭스가 원하는 [판타스틱 4]의 분위기를 잘 드러내는 선택입니다.
팀 스토리는 20세기 폭스가 원하는대로 [판타스틱 4]를 발랄한 분위기의 SF 액션영화로 만들어냈습니다. 그 결과 우주탐사 도중 예상하지 못한 우주폭풍으로 슈퍼 능력을 가지게된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제대로 담겨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온 몸이 바위로 뒤덮인 흉측한 몸을 가지게된 벤 그림(마이클 치클리스)의 고뇌가 아주 짧게 소개되었을 뿐입니다. 그 대신 자기과시형 영웅인 쟈니 스톰(크리스 에반스)의 유쾌한 입담과 수 스톰을 연기한 제시카 알바의 섹시한 몸매만이 영화를 가득 채웠습니다.
팀 스토리의 [판타스틱 4]는 북미 흥행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20세기 폭스는 좀 더 나은 흥행 성적을 기대하며 2편 제작에 돌입했습니다. 그 결과 나온 영화가 2007년 개봉된 [판타스틱 4 : 실버 서퍼의 위협]입니다. 마블 코믹스에서 가장 강력하고 불가사의한 캐릭터 중 하나인 '실버 서퍼'를 내세웠지만 영화는 여전히 가볍기만 했고, 흥행 역시 20세기 폭스가 기대했던만큼 나오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팀 스토리가 연출한 두 편의 [판타스틱 4]의 미지근한 흥행 성적은 20세가 폭스로 하여금 3편 제작을 포기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마도 20세기 폭스는 팀 스토리의 [판타스틱 4]가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가 너무 가벼운 분위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영화 판권이 마블에 넘어가기 이전에 서둘러 리부트를 결정하면서 팀 스토리의 [판타스틱 4]와는 전혀 다른 무거운 분위기의 영화를 기획하였고, 그 결과 태어난 것이 조쉬 트랭크 감독의 [판타스틱 4]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조쉬 트랭크 감독의 이력입니다. 그는 저예산 SF영화인 [크로니클]로 주목을 받은 인물입니다. [크로니클]은 평범한 고등학생인 세 친구가 우연히 신비스러운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로인하여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크로니클]의 설정은 [판타스틱 4]와 매우 흡사합니다. 하지만 분위기는 팀 스토리의 [판타스틱 4]와 정반대입니다. [크로니클]은 20세기 폭스가 정확하게 원하는 스타일의 영화인 셈입니다.
조쉬 트랭크 감독은 [판타스틱 4]의 감독을 맡으며 많은 것을 바뀌어 버렸습니다. 우선 주인공들을 [크로니클]처럼 10대로 설정했고, 그들의 활약상보다는 원치 않은 슈퍼 능력으로 인한 방황과 고뇌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항간에는 제작비 절감으로 인하여 조쉬 트랭크 감독이 원한 스펙타클한 액션을 담을 수 없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확실한 것은 조쉬 트랭크의 [판타스틱 4]는 팀 스토리의 [판타스틱 4]와는 정반대의 영화로 재탄생되었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원하지 않은 능력을 갖게된 10대 소년, 소녀들
우리는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라고 한다면 [어벤져스]와 같은 블록버스터 액션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판타스틱 4]는 그러한 우리들의 예상과는 달리 [크로니클]과 같은 작은 규모의 SF 액션영화로 완성되었습니다. 바로 그 부분에서 [판타스틱 4]에 실망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직 [판타스틱 4]를 보지 못하신 분이라면 [판타스틱 4]를 보는데 있어서 지금까지의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모두 지우고 영화를 보길 권합니다. 그 대신 [크로니클]을 먼저 보시고, [판타스틱 4]와 [크로니클]을 서로 비교하며 영화를 감상한다면 더욱 풍성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조쉬 프랭크가 담아낸 10대 소년, 소녀의 [판타스틱 4]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쉬 트랭크는 [판타스틱 4]를 연출하는데 있어서 주인공들의 캐릭터를 세세하게 잡아내는데 주력을 다합니다. 우선 리드 리차드(마일즈 텔러)의 경우는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이지만 아무도 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반친구들은 물론, 선생님과 부모까지도... 그렇기에 리드는 자신을 유일하게 이해해준 친구인 벤 그림(제이미 벨)과 친구 이상의 특별한 교감을 나눕니다. 그리고 이러한 리드와 벤의 관계는 영화 중반부 리드가 떠안게되는 고뇌의 원인이 됩니다.
수 스톰(케이트 마라)은 프랭클린 스톰 박사의 입양아입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을 입양해준 프랭클린의 기대를 저버려서는 안된다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가 철저하게 모범생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입양아라는 자신의 처지 때문입니다. 조니 스톰(마이클 B. 조던)은 수와는 정 반대입니다. 프랭클린의 친아들이지만, 아버지의 기대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수에 대한 열등감이 그를 반항아로 만듭니다.
사실 수와 조니는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원작팬들에게 많은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남매지간인 수와 조니를 조쉬 트랭크 감독이 수는 백인배우로, 조니는 흑인배우로 캐스팅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범생일 수 밖에 없었던 수와 반항아일 수 밖에 없었던 조니의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충격요법도 꽤 효과적이었습니다. 단지 아쉬운 것은 리드의 캐릭터 완성을 위해 수와 조니의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많은 부분 생략되어졌다는 점입니다.
리드와 벤, 수와 조니는 10대 청소년답게 단순한 성격을 가졌습니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갈 뿐입니다. 그와는 달리 빅터 본 돔(토비 켑벨)은 좀 더 복잡한 캐릭터입니다. 뛰어난 두뇌를 가졌지만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가득한 그는 어쩌면 리드의 성인 버전입니다. 결국 [판타스틱 4]는 아직 사회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10대 청소년과 사회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가득한 20대 청년의 싸움이 됩니다.
마블 역사상 최악의 빌런 중의 하나인 닥터 둠
팀 스토리의 [판타스틱 4]에서 개인적으로 제가 가장 마음에 안들었던 것은 닥터 둠(줄리안 맥마혼)의 존재감입니다. 닥터 둠은 '판타스틱 4' 뿐만 아니라 마블 코믹스에서도 여러 슈퍼 히어로들을 괴롭히는 대표적인 악당입니다. 그는 라트베리아라는 가상의 국가의 지배자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어벤져스'라고해도 외교적 문제때문에 쉽사리 닥터 둠을 공격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팀 스토리의 [판타스틱 4]에서 닥터 둠은 그냥 찌질한 사업가일 뿐이었습니다. 슈퍼 히어로 영화에서 빌런은 중요합니다. 빌런이 얼마나 막강한가에 따라서 슈퍼 히어로 영화의 승패가 좌지우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슈퍼 히어로 영화들은 최악을 악당을 내세우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합니다. 그러나 팀 스토리는 닥터 둠이라는 막강한 빌런을 처음부터 손에 쥐고 영화를 만들었지만, 닥터 둠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고, 그 결과 영화 역시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사실 조쉬 트랭크의 [판타스틱 4]에서도 닥터 둠은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합니다. 닥터 둠과 '판타스틱 4'의 대결이 제대로 벌어지기도 전에 영화가 서둘러 막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쉬 트랭크는 닥터 둠의 캐릭터만큼은 제대로 완성해냈습니다. 비록 그는 사회에 불만이 가득한 과학자에 불과하지만(원안은 닥터 둠이 라트베리아의 지배자로 설정되었다고 하네요.) 우연한 사고로 지구와 다른 차원의 세계에 1년간 갇혀 있게 되고, 그로인해 그 누구보다 강한 능력과 인간에 대한 분노를 갖게 됩니다.
잠시 동안 다른 차원에서의 에너지원의 폭발에 노출된 리드와 조니, 벤과 수는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그로인한 혼란도 겪게 됩니다. 리드는 혼자 도망쳐서 스스로 해결방법을 연구하고, 리드의 도망으로 혼자가 된 벤은 리드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며 군에 이용되어 최종병기로 활동합니다. 수는 모범생처럼 자신의 능력을 적응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반항아인 조니는 어서 빨리 자신도 벤처럼 전쟁터로 투입되어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합니다. 영화 초반에 완성된 그들의 캐릭터가 특별한 능력을 갖게되고부터 제대로 활용되고 있는 셈입니다.
그들과는 달리 빅터는 혼자 다른 차원에 낙오됩니다. 1년동안 그곳에서 자신을 구해줄 사람들을 기다리며 그가 느꼈을 분노와 배신감은 대단했을 것입니다. 결국 그의 분노와 배신감, 그리고 인간에 대한 불신은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지구를 파괴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게다가 아주 잠시 에너지원에 노출된 리드 일행과는 달리 1년동안 에너지원에 노출된 빅터의 능력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만큼 대단했고, 이는 빅터에서 닥터 둠으로의 새로운 탄생이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캐릭터를 제대로 완성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판타스틱 4]는 많은 것을 2편으로 밀어버립니다. 그로인하여 이 영화는 2편을 위한 거대한 예고편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2편 제작은 1편의 흥행성공을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판타스틱 4]의 흥행실패를 아쉬워하는 이유입니다. 팀 스토리의 [판타스틱 4]는 1편의 흥행부진에도 불구하고 2편이 만들어졌습니다. 과연 20세기 폭스는 그때와 같은 선택을 할까요? 아직 완전히 성장하지 못한 10대 슈퍼 히어로의 활약을 보며 그들의 성장을 한번 더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10대 소년, 소녀인 '판타스틱 4'의 성장과
인류에 대한 불신과 분노로 가득한 닥터 둠의 제대로된 진검승부를 보고 싶습니다.
이 영화가 또 한편의 망작으로 기록되어질지...
아니면 1편의 실패를 딛고 성장을 이어나갈 수 있을런지는 20세기 폭스의 결정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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