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5년 영화이야기

[협녀, 칼의 기억] - 새로움이 어설픔으로 느껴지는 이유

쭈니-1 2015. 8. 19. 17:40

 

 

감독 : 박흥식

주연 : 이병헌, 전도연, 김고은

개봉 : 2015년 8월 13일

관람 : 2015년 8월 17일

등급 : 15세 관람가

 

 

영화는 배우 한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난 토요일 웅이와 함께 [숀더쉽]을 본 후 집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엘리베이터에는 극장을 찾은 많은 분들이 계셨는데, 그들 중 여성 두분의 대화가 제 귀에 들어왔습니다. 그 분들은 [협녀, 칼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계셨는데, 한분이 이제 안본 영화는 [협녀, 칼의 기억] 뿐이라고 이야기하자, 다른 한분은 이병헌을 돈내고 보고 싶지 않다며 고개를 가로저으시더군요.

그 분들의 대화는 [협녀, 칼의 기억]이 현재 처한 상황을 보여줍니다. [협녀, 칼의 기억]은 제작비가 100억이 넘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이지만 이병헌 스캔들이라는 악재에 휘말려 작년 12월 개봉이 무기한 연기되는 불운을 맞이했습니다. 사실 법적으로만 따진다면 이번 스캔들에서 이병헌은 협박을 당한 피해자입니다. 하지만 대중은 결혼한 이병헌이 나이 어린 모델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것에 실망했고, 이는 이병헌이 출연한 영화들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미 이병헌이 T-1000으로 출연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2009년 개봉했던 [터미네이터 : 미래전쟁의 시작]이 기록한 누적관객인 456만(공식통계)의 기록에 훨씬 못미치는 323만 관객 동원에 그쳤습니다. 주연을 맡은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에밀리아 클라크가 내한까지 하며 국내 흥행을 위해 애썼지만, 결국 기대에 못미치는 흥행성적을 올리고 말았습니다. 만약 이병헌 스캔들이 없었고, 이병헌이 아놀드 슈왈제네거, 에밀리아 클라크와 함께 홍보활동을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분명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의 국내 흥행성적은 훨씬 좋아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병헌 스캔들의 여파는 [협녀, 칼의 기억]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미 개봉일이 2014년 12월에서 2015년 8월로 연기되며 1차적으로 타격을 한번 받은 [협녀, 칼의 기억]은 개봉 후에도 이병헌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이기지 못하고, 개봉 첫주말 24만명이라는 참담한 성적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협녀, 칼의 기억]의 흥행실패를 이병헌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협녀, 칼의 기억]을 보신 많은 분들이 영화적 완성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봉 첫주말의 흥행성적은 영화의 완성도에 의한 입소문보다는, 영화 개봉전 관객들이 가지고 있었던 기대도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감안해야할 것입니다. 결국 이병헌 스캔들은 [협녀, 칼의 기억]에 대한 대중의 기대를 떨어뜨렸고, 그것이 개봉 첫주말의 흥행참패로 이어진 셈입니다. 

그런데 이병헌으로 인하여 [협녀, 칼의 기억]이 직격탄을 맞고 있는 현상황을 보며 저는 영화에 대한 동정심이 생겼습니다. [협녀, 칼의 기억]은 이병헌 개인의 영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인어 공주], [사랑해, 말순씨] 등 잔잔한 영화를 연출했던 박흥식 감독의 영화이며, [밀양]을 통해 한국 여배우 처음으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전도연과 [은교], [몬스터], [차이나타운]을 통해 나이답지 않는 묵직한 연기를 선보인 김고은의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를 위한 변명을 해주고 싶었지만...

 

전도연의 연기를 좋아하고, 김고은이라는 젊은 배우를 눈여겨 보고 있는 저는 이병헌 스캔들이라는 영화 외적인 문제로 흥행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협녀, 칼의 기억]을 응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기에 한여름 무더위로 만사가 귀찮은 와중에도 [협녀, 칼의 기억]을 보겠다면 월요일 밤, 극장을 찾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구피도 저를 따라 나섰다는 점입니다. 이로써 [협녀, 칼의 기억]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모든 조건이 갖춰졌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호의적인 자세로 영화를 감상하면 웬만하면 영화를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게 됩니다. 게다가 예상하지도 못했던 구피와의 극장 데이트까지 겹쳤으니 제 기분은 더욱 UP되었고, 이는 곧바로 영화에 대한 만족도 상승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협녀, 칼의 기억]을 보는 내내 저는 아쉬움의 한숨을 지어야 했습니다. 제가 [협녀, 칼의 기억]에 아쉬움을 느껴야만 했던 것은 전도연이 연기한 월소와 김고은이 연기한 홍이 때문입니다. 이 두 배우는 이병헌 스캔들 논란에도 불구하고 [협녀, 칼의 기억]을 기대하게끔 이끈 요인이었기에 저를 더욱 실망시켰습니다.

그런데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것이 이병헌의 연기라는 점입니다. 애초에 이병헌은 [협녀, 칼의 기억]의 흥행실패 원흉으로 지목되었는데, 막상 영화에서는 이병헌이 연기한 유백이라는 캐릭터가 가장 공감되었고, 선과 악을 오가는 이병헌의 연기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만약 이병헌 스캔들 논란이 없었다면 "역시 이병헌"이라는 찬사가 이어지며 이병헌의 연기는 [협녀, 칼의 기억]의 흥행 요인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협녀, 칼의 기억]은 고려 말기를 무대한 무협영화입니다. 이미 박흥식 감독은 유백의 캐릭터가 고려 무인시대 권력을 잡았던 이의민을 모델로 하고 있음을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바가 있습니다. 이의민은 아버지가 소금 장수였고, 어머니는 사찰의 노비로 천민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의민은 무신정변으로 폐위된 의종을 직접 살해하고 최고 권력을 움켜쥐었습니다. 

유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풍진삼협으로 함께 의를 나눈 풍천(배수빈), 그리고 연인인 월소와 함께 농민반란을 주도합니다. 하지만 천민 출신인 그는 권력에 대한 욕심으로 풍천과 월소를 배신합니다. 그로인하여 유백은 왕을 위협하는 최고 권력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잡지만, 풍천은 죽음을 맞이하고, 월소는 복수를 다짐하며 자취를 감춥니다. [협녀, 칼의 기억]은 그로부터 18년 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결국 [협녀, 칼의 기억]은 배신과 복수의 이야기입니다. 배신과 복수는 무협소설, 영화에서 자주 다뤄온 일반적인 소재입니다. 하지만 [협녀, 칼의 복수]에는 일반적인 무협영화와는 한가지 다른 차별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홍이입니다. 홍이는 풍천의 딸로 월소에 의해 키워집니다. 월소는 유백에 대한 복수를 홍이를 통해 이루려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월소는 18년이라는 긴세월동안 유백에 대한 복수심을 억누르며 굳이 홍이를 통해 유백의 배신을 벌하려 했던 것일까요? 바로 그 이유가 [협녀, 칼의 기억]이 다른 무협영화와 차별점을 가짐과 동시에 제게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이후 영화의 마지막 반전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매력적일 수 있었던 월소의 캐릭터를 망친 것은 사랑이다.

 

[협녀, 칼의 기억]에서 가장 복잡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는 월소입니다. 그녀는 풍천, 유백과 함께 정의를 위한 뜻을 세웠지만 유백의 배신으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유백에게 복수를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유백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풍천을 죽인 것은 유백이 아닌 월소 자신입니다. 풍천이 유백을 죽이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날의 선택은 월소에게 평생의 죄책감이 됩니다. 월소가 풍천의 딸인 홍이를 키운 것도 유백에 대한 복수심과 풍천에 대한 죄책감 때문입니다. 유백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에게 직접 복수를 할 수 없었던 월소는 유백에게 부모님을 잃은 홍이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러면서 자신도 홍이의 복수대상이 됨으로써 풍천에 대한 죄책감을 씻으려 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만해도 월소는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가 됩니다. 복수와 사랑, 그리고 죄책감이 한데 뒤엉켜 있는 그녀는 홍이를 통해 모든 것을 이루려합니다. 하지만 여기엔 한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홍이가 사실 월소와 유백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부터입니다. 결국 월소는 자신의 친딸에게 복수라는 무거운 짐과 부모를 죽여야 한다는 잔인한 운명을 떠안긴 셈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이 밝혀지며 월소 캐릭터의 매력은 급속도로 힘을 잃어버립니다.

 

문제는 사랑입니다. 월소는 유백을 사랑합니다. 그렇기에 그를 증오하면서도 그를 죽일 수 없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영화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설정입니다. 하지만 월소는 홍이도 사랑합니다. 홍이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월소는 홍이에게 잔인한 복수와 운명을 떠안깁니다. 어머니로써는 절대 해서는 안될...

남녀간의 사랑과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 중에서 더 강력한 것을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저는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이 더 강력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남녀간의 사랑 또한 자식을 낳아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한 본능임을 감안한다면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은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부모 자식간의 사랑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금수만도 못하다.'며 손가락질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월소는 유백을 향한 복수와 풍천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금수만도 못한 선택을 한 것입니다. 홍이가 차라리 풍천의 딸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이지만, 홍이가 월소의 딸이라는 사실을 밝혀진만큼 월소의 선택은 그 어떤 명분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유백을 죽이러간 홍이 역시 복수의 명분을 잃어버립니다. 결국 [협녀, 칼의 기억]은 홍이가 월소와 유백의 딸이었다는 반전 하나로 월소의 캐릭터적 매력과 홍이의 복수에 대한 명분을 모두 잃어버리고 맙니다. 도대체 왜 이런 반전을 선택했는지 저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새로움이 어설픔으로 느껴지는 이유

 

[협녀, 칼의 기억]은 캐릭터의 영화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세 캐릭터인 유백, 월소, 홍이 중에서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는 뒤늦은 탐욕에 눈이 멀어 모두를 배신한 유백 뿐입니다. 가장 매력적이어야 했을 월소와 홍이는 뜬금없는 반전 탓에 매력도 잃고 명분도 잃어버립니다. 그럼으로써 홍이의 마지막 복수에 대한 관객과의 공감대 형성이 실패하고 맙니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닙니다. 분명 박흥식 감독은 한국식 무협영화라는 새로움에 도전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도전한 새로움은 굉장히 어설픕니다. 영화 첫 장면인 홍이가 해바라기를 뛰어 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이 영화는 꽤 많은 분량의 와이어 액션을 선보입니다. 와이어 액션은 한국액션영화에서는 드문 선택으로 [협녀, 칼의 기억]이 시대극임과 동시에 무협영화가 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선보인 와이어 액션은 어설펐습니다.

이미 학창시절부터 중국 무협영화를 보며 열광했던 저로써는 와이어 액션에 대한 눈높이가 높은 편입니다. 검객이 하늘을 날아다녀도 진짜 무공이 뛰어나 하늘을 나는 것처럼 느껴져야 영화 속 와이어 액션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협녀, 칼의 기억]은 그러지 못합니다. 와이어를 달고 대결을 펼쳐는 영화 속 캐릭터들의 동작이 어색했고, 그러한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사용된 슬로우모션은 너무 자주 사용되어 오히려 무협액션 쾌감을 느끼는데 방해가 될 뿐입니다. 영화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딧에서 도대체 무술감독이 누구인지 저는 확인까지 했습니다. 무협영화에서 와이어 액션이 어설퍼 보인다면 그것만으로도 무협영화로써 실격입니다.

 

[협녀, 칼의 기억]은 배우들의 연기 변신으로도 새로운 모험을 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연기변신에 성공한 배우는 이병헌 뿐입니다. 순수함과 탐욕을 오고가는 유백은 이병헌의 연기 덕분에 매력적인 캐릭터가 됩니다. 이병헌이 스캔들 때문에 연기력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받을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그 외에 전도연과 김고은이 연기는 뭔가 어설펐습니다. 그나마 전도연은 워낙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이니 어설픈 캐릭터가 커버되지만, 김고은은 전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이전 영화에서는 "우와! 저 배우, 젊은데 연기도 잘하네."라고 생각했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왜 저렇게 연기를 못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것은 부실한 캐릭터 탓도 컸습니다. 하지만 영화 초반엔 자신의 무공을 믿고 무작정 무술 대회로 뛰어드는 천방지축 소녀였다가 갑자기 복수를 위한 비장한 캐릭터가 되어야 하는 홍이라는 캐릭터의 폭넓은 감정을 연기하기엔 분명 김고은의 연기력이 아직은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협녀, 칼의 기억]이 잘 만든 영화가 되려면 영화의 마지막 홍이의 복수가 완성되는 시점에서 관객인 저는 여운을 느껴야 했습니다. 정의를 위해 아버지인 유백에게 칼을 휘둘러야 했고, 어머니인 월소가 자신의 칼에 죽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홍이. 그녀의 아픔과 슬픔을 저 역시 느껴야 했습니다. 하지만 캐릭터는 공감되지 않고, 와이어 액션은 어설프며, 김고은의 연기마저 기대이하이다보니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여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그저 아쉬움의 한숨만 내쉴뿐입니다.

 

이 영화의 흥행 실패는 우선 이병헌 스캔들 탓이 크다.

하지만 모든 것을 이병헌 탓으로 돌리기엔 영화의 완성도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박흥식 감독의 차기작인 [해어화] 역시 논란이 있는 배우인 한효주를 캐스팅했다.

부디 [해어화]에서는 영화의 완성도로 주연 배우에 의한 논란을 이겨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