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강효진
주연 : 엄정화, 송승헌, 김상호, 서신애
개봉 : 2015년 8월 13일
관람 : 2015년 8월 20일
등급 : 15세 관람가
요즘 나는 영화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제 블로그의 소개글에 쓰여 있듯이 영화를 보는데 있어서 제 목표는 이 세상 모든 영화를 재미있게 즐기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저는 영화를 볼 때 영화에 대한 장점을 먼저 찾고, 그러한 장점에 포커스를 맞춰 영화를 감상하려 애씁니다. 하지만 아무리 제가 영화를 재미있게 즐기려 노력을 해도 제 목표처럼 세상 모든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이번주 내내 그랬습니다.
일요일 저녁에 본 [백 투 더 비기닝]부터 실망스러웠습니다. 시간여행 소재의 영화라서 기대가 컸는데, 막상 영화의 구성은 허술했고, 마지막 장면은 영화의 첫 설정과 전혀 맞지 않아 혼란스럽기만 했습니다. 월요일 저녁 구피와 함께 극장에서 본 [협녀, 칼의 기억]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분명 장점도 있는 영화였지만, 복수를 위한 주인공들의 행동이 공감되지 않으니 장점보다는 단점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말았습니다.
결정타는 수요일 저녁에 본 한중 합작영화인 [적도]입니다. 국제 테러리스트를 막기 위해 모인 중국, 한국, 홍콩 툭수요원의 액션을 담은 이 영화는 테러리스트를 멋진 괴도 루팡처럼 표현하는 것부터 제 심기를 건드리더니 결국 주인공은 모조리 죽이고 테러리스트의 최종 승리로 영화를 끝냄으로써 속시원한 액션을 기대한 저를 찝찝하게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날씨 탓인지도 모릅니다. 불쾌지수를 최고치로 올려 놓은 불볕더위가 연일 저를 지치게 했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너그러운 제 시선이 불쾌지수에 의한 짜증으로 날카로워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더욱더 어서 빨리 재미있는 영화를 봐야만 했습니다. 특히 [적도]를 보고난 후의 찝찝한 기분만큼은 최대한 빨리 씻어내고 싶었습니다.
후보작은 정해졌습니다. 엄정화 주연의 코미디 [미쓰 와이프]와 한효주 주연의 판타지 로맨스 [뷰티 인사이드]가 제가 정한 후보작입니다. 우선 저는 [뷰티 인사이드]를 예매한 후 목요일 밤, 혼자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뷰티 인사이드]를 보기 위해서는 극장에서 30분 정도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 결국 저는 극장으로 향하던 도중 급하게 [뷰티 인사이드]의 예매를 취소하고 [미쓰 와이프]로 예매를 바꿨습니다.
사실 [미쓰 와이프]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불안한 면도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지난 주에 개봉했지만 주말동안 25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치며 주말 박스오피스 5위라는 부진한 흥행성적을 보였습니다. 대부분 흥행이 좋지 않은 영화는 재미도 없습니다. 그런데 [미쓰 와이프]는 코미디영화입니다. 코미디영화가 재미없다는 것은 웃기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전 개인적으로 웃기지 않는 코미디영화가 가장 짜증납니다. 그렇기에 [미쓰 와이프]를 보러 가며 제가 걱정한 것은 바로 '이 영화가 기대만큼 웃기지 못하면 어쩌나?'라는 점입니다.
기대만큼 웃기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는 재미있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솔직히 [미쓰 와이프]는 제가 기대한만큼 웃기는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화 자체가 재미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미쓰 와이프]는 적당히 웃겼고, 적당히 속시원했으며, 적당히 감동적이었습니다. 이렇게 적당한 재미들이 모여서 [미쓰 와이프]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깔끔한 오락영화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미쓰 와이프]의 기본적인 스토리는 이러합니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아픈 기억 때문에 남자는 여자인생의 걸림돌이라고 생각하는 연우(엄정화). 그녀는 독하게 공부해서 승소율 100%의 잘나가는 싱글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뉴욕본사 발령을 며칠 앞두고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를 당하고 맙니다. 죽음의 문턱에 가게된 연우. 그런데 저승과 이승 사이를 관리하는 이소장(김상호)이 한가지 제안을 합니다. 한달동안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면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려보내겠다는 것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연우는 이소장의 제안을 승낙합니다. 그런데 아뿔사, 한달동안 그녀가 살아야할 다른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애 둘 딸린 억척스러운 아줌마의 인생이었던 것입니다. 남자도, 애들도 질색인 연우는 "이렇게 구질구질한 인생을 살수는 없어."라고 외치지만 다시 럭셔리한 싱글녀의 인생으로 돌아가려면 어떻게든 한달을 버텨야 합니다. [미쓰 와이프]의 코믹 코드는 바로 그러한 연우의 바뀐 처지에서 나옵니다.
변호사 연우는 아침부터 우아하게 와인에 스테이크를 먹습니다. 그런데 아줌마 인생을 살게된 연우는 아침부터 밥달라고 조르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시달립니다. 고급 브랜드의 옷만 입었던 연우가 남편의 사각팬티에 김치국물이 묻은 티셔츠를 입은 자신의 모습에 아연실색하는 모습은 이 영화가 표현할 수 있는 코미디의 모든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럭셔리 싱글 변호사 연우와 애 둘 딸린 아줌마 연우의 바뀐 처지만으로 [미쓰 와이프]는 2시간동안 웃기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영화의 코믹 코드가 힘을 다할 때쯤이면 법률 지식을 이용한 연우의 통쾌한 한방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우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부녀회장(고수희)을 혼비백산하게 하는 장면, 하늘(서신애)을 성추행하려 했던 남학생에게 멋진 한방을 날리는 장면, 후반부 성환(송승헌)에게 보복인사를 감행한 최과장(이준혁)을 혼쭐내주는 장면은 [베테랑]만큼이나 속시원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만약 연우가 변호사가 아니고 그냥 평범한 아줌마였다면... 이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랬다면 부녀회장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었을 것이며, 딸이 당한 성추행에도 무기력했을 것이고, 남편이 부당한 인사발령을 받았어도 무릎꿇고 비는 것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미쓰 와이프]를 보고나서 '나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법률을 공부해야 하나?' 라는 생각까지 들어 씁쓸했습니다.
이 영화가 감동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
갑자기 뒤바뀐 인생을 살아야 하는 연우의 좌충우돌 코미디와 법률 지식을 이용한 속시원한 한방을 유쾌하게 즐기다가 문득 저는 [미쓰 와이프]가 절대로 코미디 영화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연우는 한달이라는 시간이 정해진 시한부 엄마일 뿐이고, 하늘과 하루는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엄마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영화는 처음부터 감동 코드를 가지고 있었던 셈입니다.
연우가 성환과 하늘, 하루에게 정이 들어가는 가운데 이소장이 정한 한달이라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는 장면에서부터 영화의 분위기는 서서히 바뀌어갑니다. 특히 하루를 연기한 아역배우 정지훈의 귀여운 연기를 이용한 후반부 장면은 탁월했습니다. 갑자기 성격이 바뀐 엄마를 위해 약국에서 용돈을 모아 갱년기약(사실은 비타민제)을 사는 하루. 하루는 그렇게 귀여웠던 아이였기에 하루가 갑자기 쓰러지는 장면에서는 저 역시도 가슴이 아파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미쓰 와이프]의 재미는 바로 모든 장면들이 억지스럽지 않다는 점에서 비롯됩니다. 잘나가는 변호사에서 억척스러운 아줌마가 된 연우의 바뀐 처지를 이용한 코믹 코드도 억지스럽지 않고, 법률 지식을 이용해서 연우가 불합리한 세상에 한방 먹이는 것도 억지스럽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의한 마지막 감동 코드도 자연스러워 영화를 보고나서 깔끔한 영화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연우가 하늘의 성추행 사건으로 변호사 시절 자신이 얼마나 쓰레기였는지 깨닫는 장면은 굉장히 공감되었습니다. 사실 사람은 이기적인 편이라 남의 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변호사 시절 연우가 그러했습니다. 연우가 재벌 2세의 성추행 사건을 가해자의 편에서 해결하는데 있어서 피해자에게 합의를 강요하고, 검사 선배에게 감성이 아닌 이성적으로 대처하라고 충고하는 장면은 연우의 캐릭터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연우는 뜩같은 상황을 이번엔 피해자의 어머니 입장에서 당하게 됩니다. 그제서야 딸이 그런 몹쓸짓을 당해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서민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연우가 두 사람의 인생을 사는 판타지같은 일을 겪지 않았다면 결코 피해자의 억울함과 상처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미쓰 와이프]는 이러한 두 가지의 상반된 인생을 통해 연우의 변화를 억지스럽지 않고 세밀하게 잡아냅니다.
이렇게 연우의 캐릭터 성격의 변화가 공감이 되다보니 영화의 후반부 성환 가족과 이별하고 다시 변호사로 돌아가야 하는 장면에서는 연우의 뜨거운 눈물 또한 이해가 되었습니다. 변호사의 삶을 버리고서라도 하늘과 하루의 엄마로 남고 싶었던 연우의 울부짖음. 그 장면에서 관객의 눈시울을 뜨겁게 할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미쓰 와이프]는 성공한 영화인 셈입니다.
단언컨데 성환은 송승헌의 가장 멋진 모습이었다.
엄정화의 연기는 이미 정평이 나있습니다. 그녀는 어느덧 데뷔 23년차 중견 배우입니다. 그러면서 [싱글즈], [Mr. 로빈 꼬시기], [댄싱퀀], [관능의 법칙]과 같은 발랄한 캐릭터에서부터 [결혼은 미친 짓이다], [오로라 공주], [몽타주], [끝과 시작]과 같은 진지한 연기로 연기스펙트럼을 넓혀 갔습니다. 발랄함과 진지함을 자유자재로 오고갈 수 있는 엄정화의 연기가 있었기에 [미쓰 와이프]의 연우도 어색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송승헌은 의외였습니다. 사실 [미쓰 와이프]를 보기 이전, 송승헌이 이 영화의 가장 불안요소일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애 둘 딸린 억척스러운 아줌마로 한달간 살아야 하는데 남편이 꽃미남 송승헌이라니... 이건 말도 안됩니다. 분명 성환의 자리는 꽃미남 배우가 아닌 정말 아저씨스러운 배우가 맡아야 영화의 설정에 적합합니다. [미쓰 와이프]를 보기 전, 저는 송승헌 캐스팅이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니 송승헌은 이 영화와 의외로 잘 어울렸습니다. 서울 법대를 다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법대를 중퇴해야 했던 성환. 그는 비록 구청의 말단 공무원이지만 가족을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합니다. 그가 경찰서에서 연우를 막대하는 경찰에게 연우를 변호하고, 연우를 욕하는 직장 상사에게 주먹을 날리는 장면은 같은 남자가 봐도 "송승헌이 저렇게 멋졌나?'라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송승헌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대부분 멋진 캐릭터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무적자]의 영춘처럼 겉멋만 든 캐릭터보다 [미쓰 와이프]에서 가장으로써의 책임을 다하는 성환의 모습이 더 멋졌습니다. 연우를 욕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직장 상사라도 결코 참지는 않고, 연우가 남의 신용카드를 훔쳤다는 의심을 받아도 "난 너를 믿어."라며 연우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습, 성환의 모습을 보며 진정 멋진 남편이란 바로 성환같은 남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쓰 와이프]는 영화의 불안요소마저도 캐릭터의 힘으로 오히려 영화의 장점으로 만들어버릴줄 아는 영화입니다. 코미디 영화이면서 기대만큼 덜 웃겼지만 속시원한 서민의 한방과 감동 코드로 부족한 코미디를 보완하고, 송승헌의 캐스팅이 미스 캐스팅이 아닐지 걱정스러웠지만, 성환이라는 멋진 캐릭터로 오히려 송승헌을 돋보이게 하는... 이것이 바로 재미있는 영화의 힘이 아닐까요?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와서 영화에 대한 여운을 곱씹으며 가볍게 캔맥주 한잔했습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다짐해봅니다. 저도 성환처럼 구피에게 멋진 남편이 되어야 겠다는... 그 누구보다 구피를 믿고, 그 누가 구피을 업신여기거나 욕을 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멋지게 한방을 날릴줄 아는 멋진 남편. [미쓰 와이프]를 보기 전엔 무더위에 의한 짜증이 저를 지배했는데, [미쓰 와이프]를 보고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역시 재미있는 영화는 제 삶의 활력소입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미쓰'가 되는 것과 행복한 가정을 이룬 '와이프'가 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행복한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미쓰'이건, '와이프'이건,
혼자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인생이 가장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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