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5년 영화이야기

[뷰티 인사이드] -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같을까?

쭈니-1 2015. 9. 3. 14:34

 

 

감독 : 백감독

주연 : 한효주, 이범수, 박서준, 김상호, 천우희, 이진욱, 고아성, 김주혁, 유연석

개봉 : 2015년 8월 20일

관람 : 2015년 9월 1일

등급 : 12세 관람가

 

 

미안하다! 늦게 와서...

 

저는 로맨스영화를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행복해집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감정이 이입되어 설레이는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가슴 아픈 이별의 감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영화가 새드엔딩으로 끝나면 사춘기시절 제게 가슴앓이를 안겨준 첫사랑의 아련한 여운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고,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사랑을 쟁취한 주인공처럼 제 기분도 들뜹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 저는 로맨스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것이 뜸해지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이유는 구피가 로맨스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로맨스영화를 보며 한동안 잊고 있었던 젊은 시절의 사랑을 다시한번 느껴보고 싶지만, 삶에 지친 구피에겐 그것이 사치처럼 느껴지나봅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로맨스영화는 혼자 봐야합니다. 문제는 커플들이 득실대는 극장에서 40대 중년 아저씨인 저 혼자 영화를 본다는 것은 조금 낯뜨거운 일이다보니 저 역시도 극장에서 로맨스영화보는 것을 자연스럽게 기피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뷰티 인사이드]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뷰티 인사이드]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다른 사람이 되는 남자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일단 소재가 독특합니다. 주인공인 우진은 매일 아침 남자가 되었다가 여자가 되기도 하고, 할아버지가 되었다가 할머니가 되기도 합니다. 급기야는 외국인도 됩니다. 그의 내면은 그냥 우진이라는 29살 남자인데, 겉모습은 매일 매일 다릅니다. 뻔한 사랑, 이별공식으로 전개될 수 밖에 없는 로맨스영화에서 이런 독특한 설정은 큰 장점이 됩니다.

 

그렇기에 저는 [뷰티 인사이드]의 개봉 소식을 듣고 기대작 리스트에 일찌감치 올려 놓았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구피는 [뷰티 인사이드]를 극장으로 보러갈 생각이 없었습니다. 제가 시간이 은근히 구피에게 [뷰티 인사이드]를 같이 보러 가자고 졸랐지만 구피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저 역시도 [뷰티 인사이드]를 보기위해 극장으로 가는 것을 차일피일 미뤄졌습니다.

솔직히 저는 [뷰티 인사이드]가 흥행에 실패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앞서 개봉한 [협녀, 칼의 기억]이 이병헌 논란을 이기지 못하고 흥행에 참패한 이후 다운로드 시장에 일찌감치 출시된 것처럼, [뷰티 인사이드]도 한효주 논란을 이기지 못하고 조만간 다운로드 시장으로 직행할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제가 [뷰티 인사이드]를 기대하면서도 극장에 가는 것을 서두르지 않은 것은 조만간 다운로드로 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혼자 극장에서 로맨스영화를 보는 것보다는 혼자 거실에서 로맨스영화를 보는 것이 낫습니다.

그런데 제 예상과는 달리 [뷰티 인사이드]는 조용하게 흥행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개봉 첫주 48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베테랑]에 이은 주말 박스오피스 2위 자리를 차지했고, 개봉 2주차에도 40만명의 주말관객을 동원하며 2위 자리를 굳게 지켜냈습니다. 한효주 논란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찾는다는 것은 그만큼 영화가 재미있음을 뜻하는 것이죠. 결국 저는 [뷰티 인사이드]가 개봉된지 12일만에 [뷰티 인사이드]를 보기위해 뒤늦게 극장을 찾았습니다.

 

 

잘 적응하던 우진에게 문제가 생겼다.

 

사실 저는 [뷰티 인사이드]의 감상 포인트를 우진에게 맞췄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진은 열여덟살 이후 매일 아침마다 모습이 바뀌는 굉장히 특별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영화의 모든 초점이 특별함을 지닌 우진에게 맞춰질 것이고, 그러한 우진의 캐릭터를 제가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지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제 예상과는 달리 우진의 캐릭터는 그다지 특별함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너무나도 잘 적응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처음 중년 남성(배성우) 모습으로 바뀐 자신의 얼굴을 처음 발견한 우진은 너무나도 혼란스러워합니다. 하지만 그때 뿐입니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이후의 우진은 가구 디자이너라는 멋진 직업을 가졌으며, 매일 바뀌는 자신의 모습에 맞춰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잘 생긴 남자의 얼굴로 아침에 일어나면 클럽에 가서 처음 만난 여자와 하룻밤을 가볍게 즐길 정도로 우진은 그냥 평범한 20대 청년처럼 보일 뿐이었습니다. 

물론 우진이 그렇게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문숙)와 친구 상백(이동휘) 덕분입니다. 우진의 어머니는 갑자기 모습이 바뀌어버린 우진을 침착하게 잘 보듬어줬습니다. 그리고 상백은 우진의 특별한 능력을 큰 웃음으로 넘겨버립니다. 그 중 상백의 존재는 우진이 적응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합니다. 매일 모습이 바뀌는 탓에 학교에 갈 수 없고, 친구들과 만날 수도 없는 우진에게 상백은 유일한, 그리고 특별한 친구가 되어 준 것입니다. 친구가 한명도 없는 것과 단 한명이라도 있는 것의 차이는 사회에 적응하는데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영화 초반, 우진이 아름다운 20대 여성(박신혜)의 모습으로 상백과 술을 마시는 장면은 상백의 가치를 드러내는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한 우진에게 한번만 대주면 안되냐고 조르는 상백. 그는 우진을 별다른 선입견없이 그냥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대한 것입니다. 그러한 상백 덕분에 우진은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잘 적응하며 지금까지 별 탈없이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 우진에게 문제가 생깁니다. 자주 가던 대형 가구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이수(한효주)를 남몰래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과연 그는 사랑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요? 하룻밤 가볍게 즐기는 상대라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우진에게 불가능합니다. [첫 키스만 50번째]의 헨리(아담 샌들러)가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루시(드류 배리모어)에게 매일 데이트 신청을 했던 것처럼, 우진이 매일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이수에게 데이트를 신청하지 않는한 우진과 이수의 사랑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죠.

하지만 이수에 대한 끌림을 참지 못한 우진은 잘생긴 20대 남성(박서준)의 모습으로 아침에 일어나던 날 이수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이수와 좋은 감정으로 첫 만남을 성공적으로 이끕니다. 그러나 자고 일어나면 이수와의 관계는 물거품이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기에 우진은 잠을 자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잠을 자지 않으면 모습이 바뀔 염려가 없으니까요. 문제는 사람이 잠을 안자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는 점입니다. 결국 우진은 지하철에서 졸게 되고 중년 남성(김상호)의 모습으로 깨어남으로써 이수와의 관계는 끝이 납니다.

 

 

이제 모든 초점은 이수에게 넘어간다.

 

우진의 방황은 길지 않습니다. 그가 열여덞 생일날 처음 자신의 모습이 자고 일어나면 바뀐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어머니의 도움으로 극복했고, 자신의 특별한 능력 때문에 사회 생활이 불가능했을 때도 상백의 도움으로 가구 디자이너라는 어엿한 직업을 갖게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 바뀐 모습에 맞춰 옷을 입고, 잘 생긴 남자의 모습으로 일어난 날은 클럽에 여자들과 즐기기도 합니다.

이수을 남몰래 짝사랑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잘생긴 20대 남자의 모습으로 아침에 일어나길 기다렸다가 이수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이수와 사랑에 빠집니다. 가만히 영화를 보고 있으면 우진은 자신의 능력을 즐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진짜 우진의 모습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잘 생긴 남자로 아침에 일어나길 기다리기만 한다면 만사오케이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연 우진과 사랑에 빠진 이수도 마찬가지일까요?

저는 [뷰티 인사이드]가 매일 아침 모습이 바뀌는 우진의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 생각은 틀렸습니다. 이 영화는 우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매일 아침 모습이 바뀌는 우진을 사랑한 이수의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우진은 10년이라는 세월동안 자신의 능력에 적응했고, 그에 맞춰 즐기고 있지만, 이수는 다릅니다. 매일 아침 모습이 바뀌는 사람과 과연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요? 어떤 날은 노인이 되었다가, 어떤 날은 여성이 되기도 하는데 말입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우진이 20대 여성(천우희)의 모습으로 이수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 놓는 장면입니다. 그 장면을 기점으로 영화의 초점은 우진에게서 이수에게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처음엔 우진의 말을 믿지 않았던 이수. 하지만 일본인 여성(우에노 주리)의 모습으로 변한 우진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고, 우진이 변하는 모습을 실제로 지켜보며 이수는 우진의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됩니다.

[뷰티 인사이드]의 초점이 우진에게서 이수에게로 넘어갔지만 한동안 경쾌한 분위기는 바뀌지 않습니다. 이수는 날마다 변하는 우진과 달콤한 데이트를 즐깁니다. 그러나 그들의 달콤한 사랑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이수의 직장 동료들은 이수가 매일 남자를 바뀌가며 만나고 있다고 수근거립니다. 하지만 이수는 그들에게 어떠한 항변도 할 수 없습니다. 누가 우진의 특별한 능력을 믿을 수 있을까요? 가족에게마저도 이수는 우진을 소개할 수 없습니다. 그저 혼자 가슴앓이를 할 뿐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수의 처지가 이해가 됩니다. 우진에게는 어머니와 친구 상백,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 이수가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이해해줬지만, 이수에게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녀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남자를 사랑한 댓가를 혼자 짊어져야 했습니다. 우진의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뷰티 인사이드]는 영화의 중반까지 경쾌한 로맨틱 코미디의 분위기를 유지시켰지만, 그러한 가운데에도 이수의 아픔을 서서히 드러냅니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 우진이 이수에게 청혼을 하는 그 순간 폭발시킵니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같을까?

 

흔히 연애가 이상이라면 결혼은 현실이라고 합니다. 연애는 사랑하는 두 사람의 관계 문제이지만, 결혼을 결심하는 그 순간부터는 두 사람의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끼어듭니다. 우진과 이수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사람이 연애를 할때에는 우진의 특별한 능력은 두 사람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결혼을 결심하는 그 순간 이수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결국 두 사람은 헤어집니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매일 아침마다 모습이 바뀌는 우진을 이수는 어떻게 자신의 가족들에게 소개해야할까요? 직장동료들에게는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까요? 지금까지 이수에게 대한 사랑 때문에 그러한 문제들을 미처 알지 못했던 우진은 자신과 똑같은 능력을 가졌던 아버지(이경영)를 사랑한 댓가로 어머니가 겪었던 아픔과 상처를 듣고 난 후에야 이수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우진도 이수를 위해 이별을 결심합니다.

영화 후반부, 이수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우진이 헤어지자고 말했을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안도감이 들었다고... 우진을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남들과는 너무 다른 우진과의 사랑을 끝까지 지켜낼 자신이 없었던 이수. 저는 그녀가 느꼈을 안도감이 이해가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서로 사랑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이별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동안 떨어져지냅니다. 그리고 우진과의 이별 후에야 이수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수를 향한 변함없는 우진의 사랑입니다. 비록 우진은 매일 모습이 바뀌지만, 그의 마음 속의 사랑은 한결같이 이수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이수는 한결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우진을 향한 그의 마음 속의 사랑은 매일 변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매일 변하는 것은 우진이 아닌 이수였던 셈입니다.

이 영화의 제목은 '뷰티 인사이드'입니다. 아름다운 내면 쯤으로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분들은 우진과 이수의 관계에서 중요한 장면은 우진이 잘 생긴 남성이었을 때만 일어난다며 이 영화가 아름다운 내면이 아닌, 아름다운 외모에 집착한다고 비꼽니다. 그러나 저는 우진 입장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수와의 중요한 데이트가 있을때, 못생긴 얼굴로 하는 것보다는 잘 생긴 얼굴이 될때까지 기다렸다가 하는 것은 우진 입장에서는 당연합니다. 우리가 중요한 데이트를 하기 전에 머리를 새로 하고, 옷을 새로 사는 것처럼, 우진은 잘생긴 얼굴로 깨어나길 기다린 것입니다.

이 영화가 뜻하는 아름다운 내면은 이수를 향한 우진의 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우진과는 달리 매일 같은 얼굴로 아침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인가요? 우진을 향한 이수의 사랑이 두려움으로 바뀌듯이, 우리들 역시 어제의 마음과는 다른 오늘을 매일 맞이합니다. [뷰티 인사이드]는 두 남녀의 사랑과 이별이라는 뻔한 로맨스영화의 공식 속에 우리들의 마음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과연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같을까?" 여러분은 이 질문에 자신있게 "YES"라고 대답하실 수 있나요? 저는 그럴 수 없기에 [뷰티 인사이드]의 마지막 장면이 여운으로 남았습니다.

 

P.S. 영화가 끝난 후에 서둘러 일어나지 마세요. 엔딩크레딧 중간에 우진의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답니다.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와서 로맨스영화를 보고나면 항상 그랬듯이 

구피를 한참동안 멍하니 쳐다봤다.

구피를 향한 나의 사랑은 이수를 향한 우진의 사랑처럼 한결같을까?

나의 얼굴은 그대로이지만 마음은 매일 바뀌는 것은 아닐까?

나도 우진과 같은 사랑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