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타셈 싱
주연 : 라이언 레이놀즈, 매튜 구드, 벤 킹슬리
개봉 : 2015년 9월 10일
관람 : 2015년 9월 10일
등급 : 15세 관람가
영원히 살고 싶은 인간의 욕심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 이는 진나라의 진시황입니다. 진시황은 중국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 중 하나로 손꼽히는데, 만약 진시황이 중국을 하나의 거대한 제국으로 통일하지 않았다면 중국은 유럽처럼 여러 나라로 나뉜 채 발전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중국의 역사는 물론 세계의 역사도 크게 달라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중국사를 넘어 세계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진시황이지만 진시황에 대해서는 좋은 이미지보다는 나쁜 이미지가 더 많습니다. 기술서적 외에 모든 경전과 역사서를 불태우고, 모든 유학자를 구덩이에 파묻어 죽여버렸다는 '분서갱유'는 진시황의 최대 악행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영생을 위해 불로초를 구하려 했던 그의 행적은 후세의 우스갯거리가 되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습니다. 그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토록 애타게 불로초를 찾아헤맸던 진시황도 고작 50세의 나이로 객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죽음을 정복하려고 했고, 그 결과 인간의 생명은 예전에 비해 많이 연장되었습니다. 그러나 생명 연장은 가능했지만 결국 죽음을 정복해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영생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가끔 SF영화로 만들어지곤 합니다.
[셀프/리스]는 영생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다룬 전형적인 SF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구축한 영생의 방법은 최첨단 실험실에서 배양된 육체에 자신의 기억을 이식하는 방법입니다.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완벽한 영생이라 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기억을 새로운 육체에 이식함으로써 원하는 만큼 영원히 삶을 이룰 수 있습니다. [셀프/리스]는 그것을 '바디쉐딩'이라고 칭합니다.
뉴욕 최고의 재벌인 데미안(벤 킹슬리)은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처지입니다. 그에게는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느라 관계가 소원해진 딸, 클레어(미셀 도커리)가 있습니다. 뒤늦게 데미안은 클레어와의 관계를 회복하기위해 노력하지만 너무 다른 가치관을 가진 데미안과 클레어의 관계는 쉽게 회복되지 않습니다. 결국 죽음을 눈앞에 둔 데미안은 '바디쉐딩' 전문의 울브라이트(매튜 구드) 박사를 찾아가고 거액의 돈을 들여 젊고 건장한 청년의 몸으로 자신의 기억을 이식시킵니다.
이후 [셀프/리스]는 SF액션스릴러의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젊은 육체를 가진 데미안(라이언 레이놀즈)은 극심한 어지러움증과 새로운 기억에 시달리고, 새로운 기억을 토대로 마들린(나탈리 마르티네즈)이라는 여성을 찾아가자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습격해옵니다. 이제 데미안은 '바디쉐딩'의 진실과 울브라이트 박사의 음모를 파헤쳐야합니다.
이 영화가 다른 영화와 다른 점은 영생에 의한 도덕성이다.
솔직히 [셀프/리스]는 신선한 소재의 SF영화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죽은 육신에 자신의 기억을 이식해서 영원한 삶을 사는 미래 사회를 소재로한 에밀리오 에스테베즈, 믹 재거 주연의 1992년 영화 [프리잭]과 신하균, 변희봉 주연의 2008년 영화 [더 게임]에서도 '바디쉐딩'과 비슷한 소재가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셀프/리스]는 이들 영화와 어떤 차별성이 있을까요?
[셀프/리스]가 [프리잭], [더 게임]과 다른 것은 영생을 선택한 자가 느끼는 도덕성입니다. [프리잭]과 [더 게임]의 영생은 가진 자들의 욕심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들은 돈으로 못가진 자들의 육체를 빼앗아 영생이라는 욕심을 이루려합니다. 그렇기에 영화의 주인공은 가진자들에게 육체를 빼앗길 처지에 놓인 못가진자입니다. 하지만 [셀프/리스]는 그 반대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가진자인 데미안입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대로 새로운 생명의 기회를 얻지만 그로인한 도덕성의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데미안은 자신이 가지게될 육체가 최첨단 실험실에서 배양된 샘플이라 믿습니다. 만약 자신이 가지게될 육체가 살아있는 사람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데미안은 결코 '바디쉐딩'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울브라이트 박사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육체를 이용하여 '바디쉐딩'을 했다는 사실을 은폐하려합니다. 그러나 마들린을 만난 데미안은 자신의 젊은 육체가 그녀의 남편인 마크였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큰 혼란에 빠집니다. [셀프/리스]는 이렇게 진실을 알게된 데미안이 선택한 행동들을 통해 영화의 새로운 재미를 획득합니다.
'만약 내가 데미안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물론 저 역시도 '바디쉐딩'이 살아있는 다른 사람의 육체를 강탈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아무리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더라도 '바디쉐딩'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무시무시한 사실을 몰랐고, 이미 '바디쉐딩'을 해버린 상황에서 불편한 진실을 쫓는 선택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그저 모르는척 하기만하면 됩니다. 내 손에 피를 묻힐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모르는척 하기만하면 울브라이트 박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입니다. 하지만 진실을 쫓기 시작한다면 죄책감 때문에 점점 괴로워질 뿐입니다. 게다가 진실을 은폐하려는 울브라이트 박사의 추적이 점점 과격해지면서 애써 얻은 생명을 다시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결국 데미안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두가지입니다. 영생에 대한 욕망과 도덕적 양심, 데미안은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것이죠.
그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닙니다. 양심을 선택한다면 영생을 포기해야합니다. 영생을 포기한다는 것은 죽음을 뜻합니다. 특히 시한부 인생을 사는 데미안의 입장에서는 먼훗날의 죽음이 아닌 당장의 죽음을 뜻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생을 선택할 수도 없습니다. 이미 진실을 알아버린 상태에서 진실을 외면한다는 것은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야함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로써의 선택
데미안은 결국 진실을 쫓았고, 진실을 알게된 후에도 영생이 아닌 양심을 선택했습니다. 왜 그는 이토록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요? 제가 보기에 그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첫번째는 아버지로써의 선택입니다. 영화 초반 [셀프/리스]는 데미안과 클레어의 서먹한 관계를 보여줍니다. 죽기전 데미안은 마지막으로 클레어를 찾아가지만 관계회복에 실패합니다.
데미안이 '바디쉐딩'으로 젊어진 후에도 클레어와의 관계는 회복할 수가 없습니다. 클레어는 이미 데미안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회복하지 못한 클레어와의 관계는 젊은 몸을 가진 데미안에게도 잊을 수 없는 아쉬움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바디쉐딩'의 비밀을 알게 되었을때, 하필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마들린과 그녀의 어린 딸 안나인 것입니다. 안나에게서 성공을 위해 외면했던 클레어의 어렸을 적 모습을 느낀 데미안은 클레어에게 하지 못했던 아버지 노릇을 안나에게 하게 됩니다.
이것은 꽤나 흥미로운 설정입니다. [셀프/리스]에서 데미안은 육체와 정신이 각각 다른 사람입니다. 육체는 클레어의 젊은 남편인 마크이고, 정신은 늙고 병든 사업가 데미안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육체와 정신이 하나가 되어갑니다. 그리고 그러한 연결고리는 바로 부성애가 됩니다. 클레어에게 아버지의 노릇을 제대로하지 못한 데미안은 안나에게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게 됨으로써 마크와 데미안은 점점 하나가 됩니다.
이렇게 육체와 정신이 동일화되면서 클레어와 안나를 위한 데미안의 모험은 단순한 양심에 의한 행동이 아닌, 가족을 지키기 위한 가장의 처절한 몸부림이 됩니다. 데미안은 자신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울브라이트 박사의 실험실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목숨을 걸고 클레어와 안나를 구해냅니다. 데미안은 단순히 양심만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셀프/리스]는 데미안이 점점 변해가는 과정을 담아냅니다. 데미안은 클레어와 안나에게 마음을 주지 않기 위해 애를 쓰지만 결국 그는 클레어의 남편으로써, 그리고 안나의 아버지로써 변해가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변해가는 자신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임으로써 마지막 선택을 하게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울브라이트 박사를 피해 은신한 마틴(빅터 가버)의 저택에서 데미안이 안나에게 수영을 가르쳐주는 장면입니다. 몸이 약한 안나였기에 수영을 가르쳐줄 수 없었던 마크. 데미안은 마크가 이뤄주지 못했던 안나의 소원을 들어줌으로써 늙고 병든 사업가 데미안이 아닌 안나의 아버지 마크가 되어 갑니다.
영생의 이유
데미안이 진실을 쫓는 위험한 선택을 한 두번째는 영생의 이유입니다. 진시황이 후세의 비웃음을 살 정도로 불로초에 집착했던 이유는 자신이 이루어놓은 거대한 제국을 영원히 유지시키고 싶었던 욕심 때문입니다. 울브라이트 박사는 데미안에게 '바디쉐딩'을 권하며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 세상 위대한 위인들이 몇 년만 더 살았다면 더 많은 업적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하지만 데미안이 '바디쉐딩'을 선택함과 동시에 울브라이트 박사의 말은 거짓이 됩니다. 왜냐하면 데미안은 더이상 데미안이 아닌 키드너라는 새로운 신분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데미안이 키드너가 된 이상 그는 자신의 사업을 이어나갈 수도 없고, 클레어와의 화해도 할 수 없습니다. 공식적으로 데미안은 이미 사망했기에 데미안으로써의 인생은 끝이 난 것입니다.
젊은 육체를 얻은 데미안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젊음과 쾌락을 즐기는 것 뿐입니다. 하지만 쾌락은 삶의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쾌락이 삶의 이유가 되는 순간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되고, 쾌락의 한계점에 도달하면 허무감만 밀려 올 뿐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데미안도 쾌락에 빠져듭니다. 하지만 쾌락이 삶의 이유가 될 수 없었기에 결국엔 '바디쉐딩'의 진실에 집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데미안이 영생을 선택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면, 그래서 영생과 양심사이에서 갈등했다면 영화는 훨씬 더 흥미진진했을 것입니다. 데미안이 어떤 선택을 할것인지 자체가 영화의 재미 요소가 될테니까요. 하지만 [셀프/리스]는 DC코믹스의 슈퍼히어로인 '그린랜턴'과 마블코믹스의 인기 캐릭터인 '데드풀'을 연기한 라이언 레이놀즈의 매끈한 액션을 내세울 뿐입니다.
[셀프/리스]는 북미에서 지난 7월 10일 개봉했지만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8위라는 부진한 성적을 냈고, 최종 흥행수입도 1천2백만 달러로 흥행에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9월 10일 개봉한 이 영화는 주말동안 7만 관객을 동원하며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7위에 머물렀습니다. 아마도 이 영화의 이러한 흥행실패는 데미안의 선택과 그로인한 긴장감 부재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사실 [셀프/리스]를 다른 분들에게 추천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객관적으로 재미있는 영화라고 할 수는 없고, 단순히 킬링타임용 영화라고 평가하는 편이 맞을 것같습니다. 하지만 [셀프/리스]는 영생을 이룬 자의 양심이라는 새로운 소재로 이야기를 시작했고, 부성애라는 키워드로 결국 점점 마크가 되어가는 데미안의 모습을 흥미롭게 잡아냈습니다. 그렇기에 마지막 장면도 굉장히 인상깊었고요. 저는 그것으로 만족하렵니다.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그에 대한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뜻한다.
영생을 갖고 싶다고?
그렇다면 영생에 대한 책임과 도덕적 양심을 먼저 준비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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