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5년 영화이야기

[사도] - 한 나라의 성군이기보다, 한 아이의 자상한 아버지이고 싶다.

쭈니-1 2015. 9. 24. 17:06

 

 

감독 : 이준익

주연 : 송강호, 유아인, 문근영, 김해숙, 전혜진

개봉 : 2015년 9월 16일

관람 : 2015년 9월 24일

등급 : 12세 관람가

 

 

조선시대 최악의 비극

 

인간의 본성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권력에 대한 욕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뭉쳐서 생활을 해야만합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무리의 우두머리가 생기기 시작하고, 우두머리는 자신의 권력을 키우기 위해 주변의 다른 무리를 공격하고 점령합니다. 그러한 인간의 권력에 대한 욕심은 국가를 이루는 요소가 되었지만, 전쟁이라는 잔혹한 역사가 되기도 합니다.

권력에 대한 욕심이 진정으로 무서운 것은 권력을 위해서라면 살인이라는 끔찍한 범죄도 거리낌없이 자행된다는 점입니다. 세계의 거의 모든 독재자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폭력과 탄압, 대량 학살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독재자가 권력을 움켜잡고 있는 이상 독재자의 범행을 처벌하기 어렵습니다. 독재자의 범행에 대한 죄의 댓가는 독재자가 권력을 잃었을 때에 비로서 실행됩니다. 그렇기에 독재자는 자신의 권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더욱 잔혹한 범행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절대권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왕(王)은 어떠했을까요?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왕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부모를 배신하고 조카는 물론 형제를 죽이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졌습니다. 그렇게 왕의 자리에 오른 후에도 왕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수 많은 정적을 역모로 몰아 죽이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권력에 대한 욕심은 그렇기에 무서운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그러한 권력에 대한 욕심으로 벌어진 참극이 많습니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을 통해 고려의 왕과 최영, 정몽주 등 고려의 충신을 죽여 조선을 세웠고, 이성계의 아들 태종 이방원 역시 아버지의 왕좌를 빼앗기 위해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조전을 비롯한 조선건국 충신과 형제를 수도 없이 죽였습니다.

왕이라는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암투와 참혹한 살인은 조선시대 내내 계속되었는데, 그 중 최악의 비극은 사도세자의 죽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세자의 죽음이 조선시대에 벌어진 비극 중에서도 최악인 이유는 사도세자를 죽인 장본인이 그의 아버지인 영조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권력에 눈이 멀었다고 하지만 아버지가 아들을 뒤주에 가둬 참혹하게 죽이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그런데 영조는 보통 사람들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아들을 향한 참혹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사도]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이 어쩌다가 일어난 것인지 그 내막을 들여다보는 영화입니다. 왜 영조(송강호)는 41세에 얻은 늦둥이 아들이자 장차 자신의 뒤를 이을 사도세자(유아인)를 무려 9일 동안이나 뒤주 속에 가둬 죽이는 역사에 남을 참혹한 살인을 저질렀던 것일까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왜 그랬는지 정확하게 아는 이가 없는 이 비극을 이준익 감독은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려 노력합니다.

 

 

영조의 이중성

 

조선의 21대 왕인 영조는 22대 왕 정조(드라마 <이산>으로 유명한)와 함께 조선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왕으로 후세에 평가되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탕평책을 통해 과열된 붕당 간의 경쟁을 완화했으며, 무엇보다도 민생을 위한 정치를 펴나감으로써 조선시대 몇 안되는 성군 중의 한명이라는 칭송도 얻어냈습니다. 게다가 영조는 조선왕조 역대 왕 중에서 재위 기간이 가장 긴 왕으로도 유명한데, 1724년부터 1776년까지 무려 52년간 왕좌를 지켜냈습니다.

하지만 영조는 컴플렉스도 많은 인물이었습니다. 영조는 조선의 19대 왕인 숙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그의 어머니는 무수리 출신의 미천한 신분이었습니다. 영조가 조선의 20대 왕이자 이복형인 경종의 뒤를 이어 21대 왕위에 오르는 과정도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경종의 어머니이자 조선 왕조의 대표적인 악녀로 악명을 떨친 장희빈을 죽이는데 앞장선 노론은 보복이 두려워 영조를 옹호했지만, 이로 인하여 영조는 역모죄로 죽을 위기를 여러번 넘겼다고 합니다.

심신이 허약하던 경종이 재위 4년만에 후사없이 요절하는 덕분에 영조는 왕의 자리에 올랐지만, 왕의 자리에 오른 후에도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혹과 영조가 왕의 자리에 오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노론의 등쌀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러한 장면은 [사도]에서도 나오는데 특히 사도세자의 대리청정 장면에서 병권을 장악한 노론을 견제하려는 사도세자의 결정에 노론의 당수인 김상로(이대연)가 반발하고, 영조가 사도세자의 결정을 꾸짖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역사의 기록에 따르면 사도세자는 어릴적부터 매우 총명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무인적 기질을 드러냈는데, 미천한 출신이라는 컴플렉스로 인하여 학문에 지나치게 집착한 영조는 사도세자가 학문을 게을리 한다며 자주 꾸짖었다고 합니다. 유교중심의 조선 사회에서 무인보다 문인이 더 대접을 받다보니 영조는 사도세자의 무인적 기질이 못마땅했던 것입니다.

[사도]에서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가 멀어지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대리청정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처음 대리청정에 나선 사도세자는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며 군주로써의 자질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자신의 결정에 대한 영조의 꾸짖음이 반복되자 그의 당당한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결국 작은 문제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채 영조에게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는 나약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저 역시 한 아이의 아버지로써 그러한 사도세자의 모습이 안쓰러웠습니다. 칭찬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는 매사에 적극적입니다. 하지만 꾸짖음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는 소극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사도세자가 어릴적의 총명을 잇지 못하고 점점 삐뚤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영조가 아버지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영조는 조선의 성군일지 모르지만 아버지로써는 최악이었던 셈입니다.

 

 

철저하게 혼자일 수 밖에 없었던 사도세자의 울부짖음

 

이준익 감독이 최대한 객관적인 자세로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을 담아내려 노력했지만 영화를 보는 제 시선은 점점 사도세자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기울어졌습니다.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아들이었던 사도세자.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아픔은 최고 권력자인 영조의 눈 밖에 나자 모두가 그에게서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결국 사도세자는 철저하게 혼자가 됩니다.

학창시절 TV에서 방영하던 <조선왕조 500년 한중록>을 본 적이 있습니다. 시아버지인 영조에게 지아비인 사도세자를 잃고, 아들인 세손(훗날 정조)을 지켜내야 했던 혜경궁 홍씨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담은 <조선왕조 500년 한중록>은 철저하게 혜경궁 홍씨 위주의 이야기였습니다. 하긴 <한중록>자체가 혜경궁 홍씨가 쓴 일기이니 <한중록>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조선왕조 500년 한중록>은 혜경궁 홍씨를 위한 이야기일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에서 혜경궁 홍씨(문근영)는 가녀린 외모와는 달리 냉혹한 면을 보여줍니다. 그녀에게는 지아비인 사도세자를 지키는 것보다는 아들인 세손을 지키는 것이 더 우선입니다. [사도]에서 사도세자가 혜경궁 홍씨에게 "자네, 참 무서운 사람이군."이라며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장면은 그렇기에 참 의미심장합니다.

 

사도세자의 친모인 영빈(전혜진)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사도세자가 영조에 대한 역모죄로 처형을 받게 된다면 사도세자의 아들인 세손도 무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영빈은 세손을 지키기 위해 영조에게 사도세자가 마음의 병이 걸렸다고 말하고 이에 대한 결단을 촉구합니다.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가 자신의 비행을 영조에게 일러바친 인물이 자신의 생모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슬픈 눈빛은 결코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권력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여건인 비정한 궁에서 최고 권력자의 눈 밖에 난 사도세자는 이렇게 아내에게도, 어머니에게도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사도세자의 가장 큰 적은 영조가 아닌 자신의 아들 세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세손이 없었다면 후사가 없었던 영조도 섣부르게 사도세자를 제거할 수 없었을 것이고, 영빈과 혜경궁 홍씨도 사도세자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을테니까요. 결국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은 영조-사도세자-세손이라는 3대에 걸친 애증의 역사가 됩니다.

하지만 영조와는 달리 사도세자는 끝까지 아버지로써의 자신의 역할을 잊지 않습니다. 모두가 세손을 살리기 위해 사도세자를 죽이려할 때도, 사도세자는 세손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영조는 조선의 성군이고,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죽은 미치광이 왕자이지만, 영화를 보는 제 마음은 사도세자를 응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아들조차 지키지 못하는데 성군이 무슨 소용이랴. 

 

[사도]를 보며 저는 마음 속으로 영조에게 욕을 한바가지 쏟아냈습니다. 자신의 컴플렉스 때문에 아들인 사도세자를 망가뜨리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절대 저런 아빠가 되지 말아야 겠다고 수도 없이 다짐을 했습니다. 영조는 자신이 조선의 왕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조선의 왕이면 뭐합니까? 자신의 아들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데...

[사도]는 인간의 권력에 대한 욕심의 이야기입니다. 영조는 자신의 컴플렉스를 딛고 우여곡절 끝에 조선의 최고 권력자가 됩니다. 그리고 어렵게 얻은 권력을 무려 52년이나 지켜냅니다. 그렇기에 어쩌면 그는 성공적인 왕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난 왕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지만,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양위파동을 반복해서 일으키며 끊임없이 사도세자를 괴롭혔습니다. 그러한 영조의 권력에 대한 욕심은 사도세자를 망가뜨렸고, 결국 그를 처참한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왕의 자리가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요? 자신의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 정도로? 아니,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왕이라는 자리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할 수도 있지만, 아버지라는 자리는 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할 수가 없는 자리입니다. 한 아이의 아버지 노릇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조선이라는 나라의 왕 노릇을 제대로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그런 의미에서 [사도]는 제게 굉장히 의미심장한 영화였습니다. 조선의 성군이지만 실패한 아버지에 불과한 영조의 이중성을 잡아낸 송강호의 연기와 모두에게 버림받은 사도세자를 연기한 유아인의 연기만으로도 영화 관람료가 아깝지 않은 이 영화는, 한 나라의 왕이라는 거대한 권력과 한 아이의 아버지라는 인간으로써의 기본적인 의무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제게 안겨줬습니다.

특히 저는 이준익 감독의 진중한 연출이 좋았습니다. 이준익 감독은 사극 전문 감독이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93년 [키드캅]으로 감독 데뷔를 했지만, 2003년 [황산벌]을 통해 다시한번 주목을 받았고, 2005년 [왕의 남자]로 천만영화 감독의 자리까지 거머쥐었습니다. 그 외에도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평양성]등 주로 사극영화를 많이 연출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왕의 남자]를 제외하고 그의 다른 사극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는 진중함의 결여였습니다. 물론 [황산벌], [평양성]에서 역사의 큰 흐름 속에 소모품으로 희생되어야 했던 민초의 고통을 잡아내려 했던 의도는 좋았지만, 역사의 비극을 가벼운 코미디로 희석시키려는 억지 웃음이 싫었습니다. 하지만 [사도]는 웃음에 대한, 흥행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진중한 자세로 접근함으로써 제게 감동을 안겨줬습니다. [소원]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이준익 감독이 은퇴결정을 번복한 것은 한국영화를 위해서라도 참 잘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이 서로 사랑해야할 아버지와 아들을

서로 죽고 죽이는 살벌한 관계로 만들었을까?

그것이 권력의 속성이라면

난 권력이 아닌 평범하지만 행복한 한 아이의 아버지를 선택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