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마크 버튼, 리처드 스타잭
더빙 : 저스틴 플레쳐, 존 스파이크
개봉 : 2015년 8월 13일
관람 : 2015년 8월 15일
등급 : 전체 관람가
[치킨 런]과 초계탕의 추억
며칠전 메가박스에 갔다가 제 마음을 사로 잡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숀더쉽 콤보'입니다. 영화 관람료보다 비싼 가격 때문에 웬만하면 절대 구입하지 않는 팝콘 세트에 '숀더쉽' 인형이 포함되어 있는 '숀더쉽 콤보'. 결국 저는 "이건 꼭 사야돼"를 외치며 귀여운 '숀더쉽' 인형을 득템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저희 집 거실에는 구피가 득템한 무민 인형과 제가 득템한 '숀더쉽' 인형이 어깨동무를 하며 나란히 앉아 있답니다.
나이 마흔이 훌쩍 넘은 제가 이렇게 '숀더쉽' 인형에 필이 팍 꽂힌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이번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숀더쉽]이 아드만 스튜디오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아드만 스튜디오와의 인연을 이야기하려면 15년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유난히 추웠던 2000년 겨울, 저는 당시 사귀던 여친과 [치킨 런]을 극장에서 보며 크리스마스를 맞이했습니다.
[치킨 런]은 드림웍스가 디즈니를 넘어서기 위해 영국의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명가 아드만 스튜디오와 함께 제휴해서 만든 영화입니다. 1950년대 영국의 닭 농장을 배경으로 주인인 트위디 여사가 치킨파이를 만들어파는 사업을 개시하려하자 농장의 모든 닭들이 탈출을 계획한다는 내용입니다. 멜 깁슨이 더빙한 미국산 수탉 록키의 하늘을 날 수 있는 법을 알려주겠다는 말을 믿은 순진한 영국 닭들의 모험은 지금 생각해봐도 상당히 유쾌했던 영화입니다.
하지만 [치킨 런]을 봤을 때의 추억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문제는 [치킨 런]을 보고나서입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너무 추운 날씨 탓에 따뜻한 국물이 있는 음식을 먹고 싶었던 저와 여친은 종로거리를 헤매다 우연히 초계탕집을 발견했습니다. 초계탕이라는 것을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저는 당연히 삼계탕과 비슷한 따뜻한 국물이 있는 닭요리일 것이라 생각을 했고, 여친을 끌고 당당하게 초계탕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막상 제 앞에 차례진 초계탕을 본 저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습니다. 한 겨울에 얼음이 동동 띄어진 초계탕이라니... 하지만 기왕 시킨 것이니 안 먹을 수는 없었죠. 그날 저는 온 몸이 얼얼해지는 차가움을 참으며 초계탕을 억지로 먹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지나 그녀에게 이별통보를 받았습니다. 한 겨울에 먹는 초계탕처럼 아픈 이별을 말입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초계탕을 먹지 못했습니다. (근처에 초계탕을 파는 곳이 없기도 합니다.)
어쩌면 닭이 주인공인 [치킨 런]을 본 후 닭요리를 먹으려 했던 것에 대한 저주였을지도 모릅니다. (닭들아! 미안해~) 하지만 지금도 [치킨 런]을 생각하면 초계탕에 대한 기억과 함께 어리숙했던 28살 청년 쭈니의 어이없는 실수가 생각나 미소를 짓게 됩니다. 15년전 어이없는 실수도 시간이 지나니 이젠 아련한 추억이 되어 버렸네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과는 또 다른 재미
아드만 스튜디오의 대표작은 [치킨 런]과 더불어 윌레스와 그로밋]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단편 애니메이션인 '화려한 외출', '전자바지 소동', '양털 도둑'을 묶은 [월레스와 그로밋]이 1997년에 개봉되었고, 드림웍스와 함께 제작한 장편 애니메이션 [월레스와 그로밋 : 거대 토끼의 저주]가 2005년에 개봉했었습니다. 이번 [숀더쉽]은 단편 애니메이션 '양털 도둑'의 말썽쟁이 양 캐릭터를 발전시킨 것으로 그로밋을 연상키시는 양치기 개 비쳐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사실 [숀더쉽] 개봉 소식을 들은 저는 웅이와 함께 "이 영화는 꼭 봐야해!"를 외쳤지만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메가박스에서 '숀더쉽 콤보'를 팔았던만큼 [숀더쉽]이 개봉된 후 상영관을 팍팍 밀어줄 것이라 기대했지만, 제 기대와는 달리 [숀더쉽]은 하루에 한번, 그것도 거의 아침 이른 시간대에 상영하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금요일부터 시작된 3일 연휴가 없었다면 시간이 맞지 않아 [숀더쉽]을 극장에서 놓칠뻔 했습니다.
금요일에는 광명동굴에 다녀온 덕분에 토요일에는 [숀더쉽]을 보기 위해 모든 일정을 비워둘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침 일찍 서둘러 웅이와 함께 [숀더쉽]을 봤는데,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굉장히 유쾌했습니다. 숀을 비롯한 양 캐릭터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또한 예측불허였습니다. 게다가 영화의 마지막엔 감동까지... 잘 만들어진 할리우드 블럭버스터 애니메이션에서는 느낄 수가 없는 아드만 스튜디오만의 재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숀다쉽]의 내용을 잠시 소개하겠습니다. [숀더쉽]은 평화로운 목장이 배경입니다. 한때는 농부, 양치기 개 비쳐와 사랑이 넘쳐나는 가족같은 관계로 행복한 일상을 보냈던 숀과 양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일상은 반복되는 일과속에 지쳐만 갑니다. 이에 숀은 특별한 하루의 휴가를 위해 묘책을 생각해내는데, 그것은 바로 농부를 잠재우고, 비쳐를 따돌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숀과 양의 특별한 휴가는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숀도 예측하지 못한 사고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농부를 잠시 잠재웠던 캠핑카가 그만 빅시티까지 가버린 것입니다. 게다가 농부는 충격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농부를 찾아간 비쳐는 야생동물 감금시설에 갇혀 버립니다. 이제는 숀이 나설 차례입니다. 숀과 친구들은 한적인 목장을 벗어나 사람들로 북적대는 빅시티로 농부를 찾아 모험을 떠납니다.
[숀더쉽]의 모험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 못지 않게 흥미진진합니다. 농부는 우연히 양털깎는 기술을 발휘해서 빅시티 최고의 헤어디자이너로 거듭나고, 숀과 비쳐는 야생동물 감금시설의 소장을 피해 위험천만한 모험을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인 떠돌이 개가 도와줍니다. 영화 후반부에 농부를 다시 목장으로 데려오기 위해 고안된 거대한 로봇(?) 말은 [숀더쉽]의 기발함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일상에서 찾는 행복
이렇게 숀과 친구들의 기상천외한 모험을 즐기다보면 영화의 후반부에 감동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사실 이 소동은 평범한 일상의 권태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들. 누구가 한번쯤은 쳇바퀴도는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합니다. 특히 반복되는 일상에 갇힌 직장인이라면 출근길에 회사가 아닌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으로 훌쩍 여행을 떠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을 것입니다.
숀과 양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때는 가족같은 관계였지만, 이젠 매일 해야할 일들을 기계적으로 체크하며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을 아무런 감정없이 수행하는 양과 농부, 그리고 비쳐. 그들에겐 일상의 권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모험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덕분에 농부는 빅시티 최고의 헤어디자이너가 되어 유명세를 떨치고, 숀과 비쳐는 목장에서는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위험천만한 모험을 실컷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한 모험들은 결국 내 소중한 일상을 위한 잠시동안의 일탈이어야 합니다. 농부는 빅시티 최고의 헤어디자이너가 되지만, 그것이 만약 일상이 된다면 매일 사람들의 머리를 똑같은 스타일로 깎는 헤어디자이너의 일 역시 지겨운 일상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숀과 비쳐는 빅시티에서 평화로운 목장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모험을 하지만 그것이 매일 반복된다면 그들의 하루는 매일 위험 속에 노출된 위태로운 일상이 됩니다.
돌아갈 집이 있고, 나를 반겨줄 가족이 있기 때문에 일탈은 특별한 것입니다. 숀과 농부는 짧은 일탈과 모험 끝에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느끼게 됩니다. 한바탕 소동을 겪은 이후 양들과 농부의 일상은 여전하지만 영화의 처음처럼 권태로 가득한 짜증나는 일상이 아닌 행복한 일상이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요즘 웅이는 여름방학이 끝나가고 있음을 아쉬워합니다. 개학을 하면 다시 예전처럼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갔다가 집에 돌아와 숙제를 하고, 학원에 가는 일상을 또다시 반복해야할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1년 365일동안 방학이라면 어떨까요? 과연 그런 방학은 즐거울까요?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일상이 있기에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이 특별하고 즐거운 것이겠죠.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름휴가도 끝났고, 광복 70주년을 맞이한 3일 연휴도 끝나버렸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9월 추석 연휴 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직장을 관두고 매일 집에서 논다면 과연 행복할까요? 열심히 일했기에 휴일이 더욱 특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숀더쉽]은 비록 귀여운 양을 내세운 어린이 애니메이션이지만, 그 뒤에는 우리의 반복되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게 하는 마법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제겐 더욱 특별한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우리는 가끔 특별한 하루를 꿈꾼다.
하지만 잊지말자.
평범한 오늘이 있기에 특별한 하루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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