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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골드] - 돈이 아닌 정의와 과거를 위한 싸움

쭈니-1 2015. 9. 18. 16:26

 

 

감독 : 사이먼 커티스

주연 : 헬렌 미렌, 라이언 레이놀즈

개봉 : 2015년 7월 9일

관람 : 2015년 9월 17일

등급 : 12세 관람가

 

 

구스타프 클림트와 아델레 블로흐-바우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초상화는 과연 무엇일까요? 정답은 오스트리아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가 1907년에 그린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입니다. 이 그림은 2006년 에스티 로더 창업자의 아들 로널드 로더에게 1억3천500만 달러에 팔려 역사상 가장 비싼 값에 거래된 그림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천문학적 가치를 지닌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에는 얽힌 비화가 많습니다.

초상화의 주인공인 아델레는 1881년 오스트리아의 부유한 유태계 금융업자의 딸로 태어났고, 이른 나이에 자신보다 18살 많은 유태계 설탕 제조업자이자 금융업자인 페르디난트 블로흐와 결혼을 했습니다. 이렇게 유부녀인 아델레는 클림트가 그녀의 초상 주문을 맡은 1899년부터 급속도로 가까워졌다고 합니다. 당시 아델레의 나이가 18살, 클림트의 나이는 37살이었습니다.

아델레는 클림트가 죽은 이듬해인 1919년 자신의 집에 클림트를 기리는 방을 만들었는데, 이 클림트홀에는 클림트가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었고, 탁자에는 클림트의 사진이 놓여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델레도 1925년 44세의 이른 나이에 뇌수막염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물론 클림트와 아델레의 관계는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 오스트리아 사교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었다고 합니다.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에 얽힌 또 다른 비화

 

[우먼 인 골드]는 클림트와 아델레의 알려지지 않은 사랑을 담은 영화는 아닙니다. 그 대신 이 영화가 주목한 것은 이 그림이 어떻게 오스트리아 정부의 소유에서 아델레의 조카인 마리아 알트만(헬렌 미렌)에게 되돌아갔는지에 대한 8년간의 여정을 담아 냅니다.

사연은 이러합니다. 나치의 마수가 온 유렵을 휩쓸었던 암흑기, 마리아의 가족은 유태인이라는 이유 만으로 나치에 의해 재산을 몰수당합니다. 이렇게 부당하게 나치에게 몰수당한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은 초상화의 주인공이 유태인이라는 사실을 감춘채 <우먼 인 골드>라는 이름으로 오스트리아 박물관의 소유가 됩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아델레의 유언장(혹은 편지)을 근거로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의 소유권을 주장했지만, 마리아와 그녀의 변호사 랜드 쉰베르크(라이언 레이놀즈)는 8년이라는 기나긴 법정 투쟁 끝에 그림의 소유권을 되찾아온 것입니다.

[우먼 인 골드]는 힘없는 고집불통 늙은이에 불과한 마리아와 초짜 변호사 랜드가 오스트리아 국가를 상대로 벌인 법정 싸움을 담아내면서도 그들이 왜 그러한 싸움을 해야만 했는지에 주목합니다. 과연 그들이 이 힘든 싸움을 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처음엔 돈 때문이었다.

 

사실 랜드가 처음 이 사건에 뛰어든 것은 단순히 돈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엔 어머니의 부탁으로 마리아를 만났지만 그는 예술품 회수에 대한 경험도 지식도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관심조차 없던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의 회수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이 그림이 가진 경제적 가치 때문이었습니다.

랜드는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가 이미 망한 경험이 있습니다. 아내인 팸(케이티 홈즈)은 둘째 아기를 가진 상태에서 랜드는 가장으로써 경제적 안정이 절실했습니다. 그렇기에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가치는 그에게 기회였던 것입니다. 만약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의 회수에 성공한다면 그는 어마어마한 성공 보수료를 챙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리아와 함께 부모님의 고향인 오스트리아에 방문한 랜드는 그동안 자신이 잊고 있었던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정의입니다. 

실제 마리아는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을 오스트리아 정부로부터 돌려받은 후, 로널드 로더에게 거액의 돈으로 팔았지만, 작품을 팔면서 '작품은 항상 공공에서 전시되어야 한다.'는 단서를 덧붙엿다고 합니다. 그림을 판 돈으로 거액을 손에 쥔 마리아는 이후에도 평범한 생활을 지속하다가 2011년 9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돈이 아닌 정의와 과거를 위한 싸움

 

랜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그림을 파는 과정에서 얻은 거액의 성공 보수료의 일부를 로스엔젤레스에 위치한 홀로코스트 박물관의 부속건물 건립기금으로 기부했고, 이후 예술 작품 반환을 위한 회사를 창립함으로 마리아와 마찬가지로 부당하게 개인 소유의 예술품을 빼앗긴 사람들을 도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오스트리아에서 랜드를 변하게한 정의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과거에 대한 반성입니다.

많은 오스트리아인들이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했을때 환호하며 반겼습니다. 그리고 나치가 유태인에게 부당한 폭력을 가햇을 때도 박수를 쳤습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끝에 나치는 패망했습니다. 그러자 오스트리아 정부와 사람들은 그 모든 과거의 과오를 숨기려했습니다. 마리아가 오스트리아 정부 관계자에게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을 오스트리아 박물관에 전시하도록 놔두는 대신 이 그림을 부당한 방법으로 갈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림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마리아에게 지불할 것을 요구했지만, 오스트리아 정부는 마리아의 제안을 거부합니다.

오스트리아 입장에서는 국가적 보물인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을 지키는데 있어서 과거의 과오를 인정하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마리아와 랜드의 8년이라는 기나긴 싸움은 바로 과거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은 오스트리아 정부를 향해 정의와 과거를 위한 싸움입니다.

 

 

 

마리아의 과거 회상으로 영화적 재미를 획득

 

[우먼 인 골드]는 1998년부터 시작된 마리아와 랜드의 법정 투쟁을 담아냄과 동시에 마리아의 과거 회상을 통해 나치의 만행을 함께 보여줍니다. 사실 마리아와 랜드의 법정 투쟁만으로는 [우먼 인 골드]는 영화적 재미를 획득하지 못합니다. 마리아는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을 되찾기 위해 8년이라는 세월을 오스트리아 정부와 싸웠지만, 영화에서 드러난 그녀의 모습에는 간절함이 없습니다. 단지 찾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입니다.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을 되찾는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 할 수 있는 오스트리아에서의 최후 조정 장면도 그다지 극적으로 담아내지 않았습니다. 오스트리아 정부가 승리를 장담했던 조정 신청이 어떻게 마리아의 승리로 돌아갔는지 [우언 인 골드]는 제대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 대신 마리아의 과거 회상씬으로 [우먼 인 골드]는 영화적 재미를 획득합니다. 고혹적인 매력을 지닌 아델레(안체 트라우) 숙모와의 추억, 그리고 나치에 의해 점점 조여오는 불행, 특히 마리아와 그녀의 남편 프리츠가 병든 부모님을 남겨두고 미국으로 도망치는 장면은 제 눈시울을 뜨겁게 함과 동시에 긴장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딸을 떠나보내야 하는 부모의 마음, 부모를 남겨두고 도망쳐야 하는 딸의 마음까지... [우먼 인 골드]의 영화적 재미는 마리아의 과거 회상씬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아닙니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있는가?

 

오스트리아의 국가적 보물인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을 되찾으려는 마리아에게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과거 따위는 이제 그만 잊으라고... 어쩌면 그들에게 있어서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렸기에 과거에 연연하는 것보다 현재에 충실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과거가 없다면 현재도, 미래도 없습니다. 단채 신채호 선생은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우먼 인 골드]는 과거를 잊으려 했던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결코 과거의 과오를 잊어선 안된다는 사실을 따끔하게 알려준 마리아와 랜드의 이야기입니다. 이는 비단 오스트리아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민족에게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남겨준 일본 또한 과거를 잊음으로써 우리에게 또다른 아픔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처음 [우먼 인 골드]를 보려고 마음 먹었을땐 명화에 담긴 비화라는 흥미로운 소재가 끌렸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마리아와 그녀의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이 제 눈시울을 뜨겁게 했고, 마지막 오스트리아 정부에 대한 마리아의 따끔한 일침에 제 속을 시원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먼 인 골드]를 혼자 보고나서 여운에 젖어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고, 일찍 잠자리에 든 구피를 깨워 "[우먼 인 골드]는 꼭 봐!"라며 추천까지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