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5년 아짧평

[쓰리 썸머 나잇] - 90년대 감성으로는 웃기기 힘들다.

쭈니-1 2015. 9. 16. 16:44

 

 

감독 : 김상진

주연 : 김동욱, 손호준, 임원희, 윤제문, 류현경

개봉 : 2015년 7월 15일

관람 : 2015년 9월 14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코미디 영화에 일가견이 있었던 김상진 감독

 

90년대 한국영화의 주류 장르는 코미디였습니다. 코미디영화는 제작비가 적게 들고, 좋은 각본과 웃길줄 아는 배우만 있다면 삶에 지친 관객들을 실컷 웃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너나 할 것 같이 코미디 영화를 만들었고, 그 중 가장 뛰어난 능력으로 단숨에 흥행감독이 된 인물이 강우석 감독입니다. 강우석 감독은 [미스터 맘마]에서부터 코미디적 능력을 발휘하더니 [투캅스], [마누라 죽이기], [공공의 적]을 연달아 흥행시키며 당시 최고의 흥행감독으로 우뚝 섰습니다.

코미디영화를 잘만드는 감독 중에서 강우석 감독 외에 제 기억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인물이 바로 김상진 감독입니다.  김상진 감독은 [미스터 맘마]의 조감독, [마누라 죽이기]의 각본을 담당하며 강우석 감독의 밑에서 연출 수업을 받았고, 1995년 [돈을 갖고 튀어라]로 감독 데뷔를 합니다. 이후 [깡패수업], [투캅스 3]를 연출했으며, 1999년 [주유소 습격사건]과 2001년 [신라의 달밤], 2002년 [광복절 특사]가 연달아 흥행에 성공하며 강우석 감독의 뒤를 이은 흥행 감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감싱진 감독의 영화 중에서 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영화는 [주유소 습격사건]입니다. 당시 무명 배우들이었던 이성재, 유오성, 강성진, 유지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영화는 심심하고 할 일 없는 청춘 4명이 무작정 주유소를 털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주유소 습격사건]은 개봉 당시 강도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이유로 큰 논란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주유소 습격사건]을 보며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김상진 감독의 코미디적 감각이 무뎌지다.

 

저 역시 [주유소 습격사건]을 너무나도 재미있게 봤습니다. 노마크(이성재), 무대포(유오성), 딴따라(강성진), 뻬인트(유지태)가 돈 밖에 모르는 주유소 사장(박영규)을 혼내주는 장면이 왜그리도 속시원하던지... 아마도 노마크 일당의 활약은 IMF로 인하여 취업전선에 뛰어들지 못하고 청년 백수가 되어야 했던 당시의 제 답답함을 잘 어루만져줬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김상진 감독은 꾸준히 코미디 영화를 만들었지만 그의 영화를 보는 저는 웃음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광복절 특사]에서부터 약간 불안하더니 [귀신이 산다]에서는 제 영화 이야기 제목이 '김상진 감독의 유머 감각은 전부 어디로 가버렸는가?'였을 정도입니다. 결국 저는 김상진 감독의 영화에 대한 기대를 포기했고,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 [주유소 습격사건 2], [투혼]은 아직까지 보지 않고 있습니다.

김상진 감독의 코미디에 대한 제 기대를 다시 되살린 것은 지난 7월 개봉한 [쓰리 썸머 나잇]입니다. 이 영화는 삶이 고달픈 세 친구가 술을 마시고 무작정 부산 해운대에 가면서 겪게 되는 난동 코미디입니다. 출연 배우들도 매력적이고, 소재도 잘만 다듬는다면 충분히 예전처럼 제게 큰 웃음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장된 연기, 억지스러운 상황설정

 

비록 [쓰리 썸머 나잇]은 극장에서 놓쳤지만 큰 기대를 안고 다운로드로 봤습니다. 하지만 보는 내내 '이게 뭐야?'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분명 코미디영화인데 전혀 웃기지 않았고, 너무 과장된 연기와 억지스러운 상황설정으로 영화를 보는 제가 부끄럽기까지 하더군요. 한때 저를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던 김상진 감독이었는데, 제 웃음이 말라 비틀어진 것인지, 아니면 김상진 감독의 코미디 감각이 무뎌지다 못해 사라져버린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습니다.

우선 이 영화의 주인공 캐릭터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명석(김동욱), 해구(손호준), 달수(임원희)는 고등학교때부터 꼭 붙어다녔던 절친입니다. 그들은 선생님한테 혼나면서도 동네를 활보하는 바바리맨을 잡겠다는 정의감으로 똘똘 뭉쳐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어른이된 그들에게 학창시절의 정의감은 온데간데없습니다.명석은 만년 고시생으로 성공한 약혼녀 지영(류현경)에게 꽉 잡혀 살고 있고, 해구는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발기부전 치료제를 팔기위해 노력하지만 정작 자신의 발기부전은 감추고 있습니다. 달수는 콜센터 상담원으로 고객 상담으로 지친 일상을 걸그룹에 환호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풉니다.

한심하다면 한심하고, 딱하다면 딱한 청춘들인 명석, 해구, 달수. 그들은 함께 술을 마시다가 충동적으로 부산 해운대에 가서 마지막 청춘을 불사르기로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해운대행은 신종마약 사건과 겹치며 일대 파란을 예고합니다.

 

 

 

한국판 [행오버]?

 

일단 소재 자체는 흥미롭습니다. 명석 일행은 마약조직의 실수로 신종 마약을 손에 넣게 되고, 마약을 자양강장제로 오해한 그들은 마약을 복용하고 맙니다. 그리고 필름이 끊긴 상황에서 마약이 든 가방을 잃어버립니다. 잃어버린 마약을 되찾기 위해 지영을 납치한 마약조직의 보스 기동(윤제문)은 명석 일행에게 지영을 살리고 싶으면 마약이 든 가방을 되찾아오라고 시킵니다. 이제 명석 일행은 잃어버린 기억을 되짚어 가방을 되찾아야 합니다.

이는 마치 미국의 코미디 [더 행오버]와 교묘하게 겹칩니다. 문제는 이 소재를 풀어나가는 방식입니다. 달수는 대책없이 무식하고, 해구는 여자만 밝힙니다. 그들 사이에서 명석은 한심하게 이리저리 휘둘리기만합니다. 그들의 행동을 조금 적당하게 조절하면 좋았을텐데, 김상진 감독은 웃기려면 무조건 오버해야한다고 생각한 것같습니다. 하지만 오버 연기로 웃기는 것은 90년대 방식입니다. [주유소 습격사건]때만해도 오버연기는 통했지만 이젠 자연스러운 웃음이 대세입니다.

캐릭터 자체가 오버스럽다보니 기동에게 지영이 납치되었어도 전혀 긴장되지 않습니다. 그냥 손꼽놀이같습니다. 잃어버린 하룻밤의 기억들도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데 성인 코미디를 시도하려다가 어정쩡하게 멈춘 듯, 개운하지가 않습니다. 도대체 김상진 감독은 오버연기를 제외하고 무엇으로 관객을 웃기려 했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90년대 감성으로는 웃기기 힘들다.

 

[쓰리 썸머 나잇]을 보다보면 이 영화가 최근 개봉한 영화가 아닌 90년대 만들어진 영화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생각을 들게하는 대표적인 장면이 해운대에서 명석 일행이 쫓기는 장면입니다. 처음엔 기동 일행에게 쫓기지만 나중엔 해운대의 수많은 관광객들도 명석 일행의 추격전에 나섭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코미디는 요즘 쓰지 않습니다. 

예전부터 명석 일행과 악연이 있는 기동이 트라우마를 떨치기 위해 명석 일행과 레슬링으로 대결하는 장면도 어이가 없어서 실웃음만 났습니다. 아마도 레슬링 복장으로 웃기려한 것 같은데, 긴장감도 없고, 웃기지도 않아서 영화를 보는 제가 다 민망했습니다.  

세상은 변합니다. 그렇기에 영화라는 대중적인 문화매체를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변화하는 세상에 재빨리 적응해야합니다. 하지만 [쓰리 썸머 나잇]을 보니 김상진 감독은 아직도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을 빅히트시켰던 그 시절 감각에 멈춰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영화 관객들은 어떤 부분에서 웃고, 어떤 부분에서 즐거워하는지 연구하지 않는다면 예전의 흥행성공과 같은 달콤한 열매는 맛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한때 김상진 감독의 영화를 좋아했던 입장에서 [쓰리 썸머 나잇]은 참 안쓰러운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