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임상수
주연 : 류승범, 고준희, 류현경, 샘 오취리, 김응수, 정원중
개봉 : 2015년 6월 25일
관람 : 2015년 9월 9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요즘 액션영화의 화두는 쾌감이다.
2015년 여름, 한국영화의 가장 큰 화두는 [베테랑]의 천만관객 돌파입니다. 사실 [베테랑]에 앞서 천만관객을 돌파한 [암살]의 경우는 어느정도 예상이 되었습니다. [암살]의 최동훈 감독은 이미 [도둑들]을 통해 천만관객의 기쁨을 누렸었고, [도둑들]에서 호흡을 맞췄던 이정재, 전지현과 [암살]을 함께 했으니 많은 영화 관계자들이 '이번에도 또?'라고 기대한 것이죠.
하지만 [베테랑]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차라리 류승완 감독의 전작인 [베를린]이 천만관객을 돌파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베를린]은 [7번방의 선물]의 돌풍에 밀려 700만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습니다. 그 대신 류승완 감독 스스로 500만 관객만 돌파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던 [베테랑]은 1,200만관객을 훌쩍 넘어 이젠 1,300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베테랑]은 남성취향의 액션영화라는 장르의 한계가 있지만 이렇게 모두의 예상을 깨고 흥행에서 승승장구중입니다.
그렇다면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많은 분들의 [베테랑]의 흥행의 비결에 대해서 '쾌감'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안하무인 재벌 3세 저테오(유아인)에게 멋진 한방을 날리는 서도철(황정민)에게 쾌감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진 자들을 향한 못가진 자들의 못진 한방을 통한 쾌감을 다룬 영화가 [베테랑] 뿐이던가요?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최근 개봉한 [치외법권]도 그렇고, [베테랑]보다 앞서 개봉한 [나의 절친 악당들]도 못가진자들의 한방을 다룬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들 영화는 흥행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죠?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의 절친 악당들]은 왜 [베테랑]이 되지 못했나?
지난 6월 25일에 개봉한 [나의 절친 악당들]은 [19곰 테드 2]와 더불어 제 기대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19곰 테드 2]를 먼저 본 후, 기대작인 [나의 절친 악당들]이 아닌 [연평해전]을 극장에서 봤고, 결국 [나의 절친 악당들]은 놓쳤습니다. 제가 기대작인 [나의 절친 악당들] 대신 [연평해전]을 선택한 이유는 흥행성적 때문입니다. [나의 절친 악당들]은 부진한 흥행을 기록했고, [연평해전]은 뒷말은 많았지만 좋은 흥행을 기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래도 흥행하는 영화는 재미가 있고, 흥행하지 못하는 영화는 재미가 없습니다. 물론 그것이 모든 영화에 적용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영화에 적용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결국 저는 제 기대와는 다른, 재미있는 영화를 선택한 셈입니다. 그리고 [나의 절친 악당들]은 영화가 개봉한지 2개월이 훌쩍 지난 후에야 다운로드로 봤습니다.
솔직히 [나의 절친 악당들]을 다운로드하면서도 영화에 대한 기대는 버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제 기대를 완벽하게 채워준 영화들이 상당히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막상 [나의 절친 악당들]을 보며 저는 점점 실망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영화의 중반부까지는 못가진 자들의 활약을 통한 쾌감을 느끼게에 부족했고, 영화의 후반부에는 오히려 너무 과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제가 느낀 것은 쾌감이 아닌 찝찝함이었습니다. 그것이 [나의 절친 악당들]이 [베테랑]과 다른 이유입니다.
임상수 감독답지 않았다.
[나의 절친 악당들]은 임상수 감독의 영화입니다. 임상수 감독은 성인여성들의 솔직하고 과감한 결혼과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보였던 [처녀들의 저녁식사]로 감독 데뷔를 했습니다. 그후 그의 영화는 항상 과감했습니다. 10대의 탈선을 담은 [눈물], 콩가루 집안을 통해 중산층의 폐부를 보여준 [바람난 가족], 그리고 박정희 전대통령 암살사건을 풍자코미디로 표현한 [그때 그 사람들]과 최근에는 상류층에 짓밟히는 하류층 사람들의 몰락을 담아낸 [하녀]와 [돈의 맛]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언제나 과감한 영화로 저를 만족시켰던 임상수 감독이기에, 저는 [나의 절친 악당들]에서도 어떤 과감함으로 저를 깜짝 놀래킬지 기대했습니다. 실제로 임상수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리 저리 치이는 우리나라의 청춘들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임상수 감독의 의도대로라면 지누(류승범)와 나미(고준희)는 돈많고, 권력을 움켜쥔 상류층 사람들에게 통쾌한 한방을 날려줄 것이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까지 통쾌한 한방은 없었습니다. 분명 [나의 절친 악당들]은 거대기업의 비자금을 우연히 손에 넣은 지누, 나미, 정숙(류현경), 야쿠부(샘 오취리)의 좌충우돌 코미디를 담고 있지만, 임상수 감독이 이전 영화에서 보여줬던 과감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쾌감을 느끼기엔 너무 약하다'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대결
[나의 절친 악당들]의 대결구도는 단순합니다. 주인공은 정규직을 눈 앞에둔 인턴사원 지누와 부모형제없는 렉카차 운전사 나미입니다. 그리고 불법 이민자 야쿠부와 그의 부인 정숙도 지누와 나미의 편에 섭니다. 그들은 모두 한국사회의 약자를 대표하는 캐릭터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반대편에는 정부의 고위 공무원 인수(김응수)와 대기업의 비서실장 상호(정원중)입니다.
우연히 대기업의 비자금을 손에 넣은 지누 일행은 그 돈으로 인생역전을 꿈꾸지만 돈의 행방을 추적하는 인수와 상호에게 덜미가 붙잡힙니다. 그 결과 지누 일행은 혹독한 댓가를 치룹니다. 문제는 지누 일행이 당하는 장면이 영화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인수와 상호는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두르면서도 죄책감 따위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지누 일행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합니다. 지누의 복수가 시작되는 것은 영화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 이뤄집니다. 하지만 반격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USB는 설득력이 약하고, 지누 일행의 복수는 너무 과하게 느껴집니다.
결국 [나의 절친 악당들]의 패착은 강약조절이 전혀 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영화의 초, 중반까지는 너무 약해서 영화적 재미라고 할 수 있는 쾌감을 느끼기에 부족했고, 영화의 후반부는 오히려 너무 강해서 눈쌀을 찌푸리게 만듭니다. 임상수 감독의 영화가 원래 조금 강한 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영화내에서는 일관성을 유지했는데, [나의 절친 악당들]은 일관성도 없고, 약하다가 너무 강해버리니 오히려 거부감만 들었습니다.
두리뭉실한 복수극
[베테랑]의 서도철은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조태오에게 복수를 합니다. 그는 법을 집행하는 경찰이고,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해야한다는 원칙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실현해보여줍니다. 하지만 지누 일행은 정도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납니다. 그들은 나쁜 놈들을 무찌르기 위해서는 더 지독한 나쁜 놈이 되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를 내세워 끔찍한 범죄를 저지릅니다. 이쯤되면 지누 일행의 복수를 보며 쾌감을 느끼기엔 무리가 따릅니다.
게다가 지누 일행의 복수는 두리뭉실합니다. 사실 지누의 복수대상인 인수와 상호는 위에서 시키는대로 하는 하수인에 불과합니다. 그들보다 더 위에 있는 우두머리에게 지누와 나미는 복수시늉만 할뿐,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네들끼리 복수했다며 키득거립니다. 서도철의 복수가 하수인에 불과한 최상무(유해진)가 아닌 그의 우두머리린 조태오를 직접 겨냥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나의 절친 악당들]의 복수는 오히려 [베테랑]보다도 과감하지 못한 셈입니다. 분명 복수의 방식은 너무 과감해서 과하다는 느낌인데, 복수의 대상은 너무 소심합닙니다. 이건 뭐 어쩌라는 것인지...
그래도 [나의 절친 악당들]에서 좋아던 것은 류승범, 고준희의 연기입니다. 류승범은 역시나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고준희는 [레드카펫]에 이어 멋진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이 두 배우의 연기외에 [나의 절친 악당들]은 제 기대의 그 무엇도 채워주지 못한 아쉬운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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