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데미안 스지프론
주연 : 리카도 다린, 레오나르도 스바리글리아
개봉 : 2015년 5월 21일
관람 : 2015년 8월 24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아르헨티나영화라서 궁금했다.
지구에는 참 많은 국가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많은 국가들 중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곳도 많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보는 영화들은 거의 한정되어 있습니다. 외국에 나가서 직접 그 국가의 영화를 보지 않는다면 대부분 국내 수입업자들이 수입한 영화들을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이죠. 영화 수입업자들은 아무래도 흥행성을 따져야 하기 때문에 돈이 되는 국가의 영화를 수입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외국영화는 대부분 미국영화들입니다.
물론 일본, 중국, 프랑스 등 미국이 아닌 국가들의 영화들도 심심치 않게 국내에 소개되지만, 아무래도 편수는 미국영화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습니다. 그나마 일본, 중국, 프랑스 영화들은 나은 편입니다. 그 외에 영화들은 국내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제가 [와일드 테일즈 : 참을 수 없는 순간]이라는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러한 이유입니다.
[와일드 테일즈 : 참을 수 없는 순간]은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의 합작영화입니다. 지금까지 한국영화, 미국영화, 그리고 간간히 중국, 일본영화를 위주로 영화를 즐겼던 저는 아르헨티나영화는 어떤 분위기일지 궁금했습니다.
여섯가지 분노상황을 담은 옴니버스 영화
[와일즈 테일러 : 참을 수 없는 순간]이 국내에 소개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영화가 2014년 칸 국제영화제황금종려상과 2015년 아카데미 영화제 외국어영화상에 노미네이트 되었기 떄문입니다. 그만큼 영화에 대한 작품성은 어느정도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해서 이 영화가 어렵운 영화는 아닙니다. [와일드 테일즈 : 참을 수 없는 순간]은 영화의 부제 그대로 여섯개의 에피소드에서 각각의 주인공이 참을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조금 과장하게 담은 코미디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분위기는 첫번째 에피소드인 '웰컴 투 땅콩항공'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한 비행기에 탑승한 승객들. 하지만 그들에겐 모두 한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 모두 한 사람을 알고 있다는 것이죠. 결국 비행기는 자신을 화나게 했던 모든 이들을 향한 복수의 수단인 셈입니다.
[와일즈 테일러 : 참을 수 없는 순간]은 이런 식입니다. 어찌보면 별것 아닌 일인데, 주인공들은 화를 참지 못하고 복수를 함으로써 모두를 파멸에 빠뜨립니다. 자신을 화나게 했던 사람들을 모두 태운 후, 역시 자신을 화나게 했던 부모의 집으로 추락하는 비행기처럼...
분노는 파멸을 부른다.
이후의 에피소드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번째 에피소드인 '원수는 식당에서'는 어느 평범한 웨이트리스가 아버지의 원수였던 남자를 손님으로 맞아들이며 벌어집니다. 그녀의 동료는 쥐약을 주며 원수의 음식에 넣으라고 부추기고, 주인공은 망설입니다. 하지만 결국 쥐약은 음식에 들어갔고, 그로인해 아버지의 원수는 갚았지만 주인공은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세번째 에피소드인 '분노의 질주 18'은 더욱 노골적으로 분노로 인하여 파멸하는 두 남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처음엔 그저 단순한 도로 위에 작은 시비였습니다. 하지만 그 시비가 점점 커지며 결국 살인 충동으로 이어지고, 결국 고급 승용차를 몰던 주인공과 고물 화물차를 몰던 시비남은 함께 끔찍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 영화의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네번째 에피소드인 '합법주차 불법견인'입니다. 자신의 차가 억울하게 견인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주인공. 하지만 견인업체도, 공무원도 주인공의 항의를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분노가 치밀어올라 시청에서 횡패를 부른 주인공은 그에 대한 댓가로 직장과 가정을 모두 잃게 됩니다. 더이상 잃을 것이 없게된 주인공은 치밀한 복수를 계획하고 그로인하여 감옥에 수감됩니다.
조금은 낯설다.
사실 '합법주차 불법견인'을 제외하고는 이 영화의 에피소드가 그렇게 마음에 와닿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복수 역시 통쾌하지 않습니다. 그 중 가장 낯선 것은 다섯번째 에피소드인 '뺑소니의 최후'입니다. 말썽꾼 아들이 뺑소니 사고를 저지르자 이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주인공은 자신의 고문 변호사를 부르고, 정원사에게 아들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면 거액의 돈을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이 제안을 경찰이 눈치채는 바람에 모두를 매수해야 하는 주인공은 점점 많은 돈이 들어가게 되고, 모두 자신의 돈을 노리며 한탕하려하자 결국 주인공은 폭발하고 맙니다. 이 에피소드에서 과연 아들의 범죄를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주인공의 분노가 합당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더군요.
마지막 여섯번째 에피소드인 '이판사판 결혼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식장에서 남편과 바람피웠던 여자가 결혼식 하객으로 참가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주인공은 결혼식장을 난장판으로 만듭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다시 남편과 화해를 하며 끝을 냅니다. 아무래도 [와일드 테일즈 : 참을 수 없는 순간]은 우리나라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 정열적인 그들의 문화가 만들어낸 복수극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통쾌한 복수극은 아니었다.
사실 저는 [와일드 테일즈 : 참을 수 없는 순간]이 통쾌한 복수를 담은 영화일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주인공들에게 참을 수 없는 순간에 처하게 만들고, 통쾌한 복수로 마무리하는 그런 영화를 예상한 것이죠. 만약 흥행을 염두에둔 미국영화라면 어쩌면 그런 식으로 영화가 진행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 관객이 원하는 것은 그러한 통쾌감일테니까요.
하지만 [와일드 테일즈 : 참을 수 없는 순간]은 통쾌한 복수보다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폭발한 주인공이 떠안아야하는 댓가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기에 영화는 과장된 코미디 분위기이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약간의 여운이 남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화낼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화를 참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화가 나는 일이 많지만, 화가 난다고 화를 낸다면 직장도, 가정도 잃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결국 [와일드 테일즈 : 참을 수 없는 순간]는 그러한 현대인의 자화상을 담은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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