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테렌스 데이비스
주연 : 레이첼 와이즈, 톰 히들스턴, 사이몬 러셀 빌
개봉 : 2015년 4월 23일
관람 : 2015년 9월 5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오랜만에 레이첼 와이즈의 영화를 만나다.
[미이라]와 [미이라 2]를 통해 제 눈동장을 확실하게 받았던 레이첼 와이즈. 제가 [미이라 3 : 황제의 무덤]에서 실망스러웠던 것중의 하나가 에블린 역을 레이첼 와이즈에서 마리아 벨로로 교체되었다는 점이었을만큼 레이첼 와이즈는 제가 좋아하는 여배우중의 한명입니다. 특히 [콘스탄틴 가드너]에서의 연기는 제가 레이첼 와이즈를 왜 좋아할 수 밖에 없는 확실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지난 몇년동안 저는 레이첼 와이즈의 영화 [아고라]의 국내 개봉을 기다렸습니다. 로마제국이 최후를 맞이하는 격변의 시기를 배경으로 천재 천문학자 히파티아이 실화를 다룬 [아고라]는 2011년 2월 개봉예정이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개봉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만 조용히 잊혀진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국내 개봉이 무산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아고라]의 아쉬움을 저는 [더 딥 블루 씨]로 풀기로 결심했습니다. [더 딥 블루 씨]는 1950년대를 배경으로 보수적인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고, 보수적인 남편 윌리엄(사이몬 러셀 빌)과 사랑이 없는 따분한 결혼생활을 하던 헤스터(레이첼 와이즈)가 젊고 활기찬 군인출신 프레디(톰 히들스턴)과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비록 [아고라]와 같은 시대극의 스케일과 재미를 느낄 수는 없을테지만, 레이첼 와이즈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기를 기대하며...
그녀는 왜 자살을 시도했나?
[더 딥 블루 씨]는 헤스터가 프레디에게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시도하면서 영화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플래쉬백을 통해 왜 그녀가 자살을 시도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주는 형식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문제는 헤스터의 자살시도가 관객인 저를 이해시키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영화의 오프닝에 레이첼 와이즈의 나래이션으로 등장하는 헤스터의 유서부터가 그러합니다.
사랑하는 프레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조금 전까지 알았는데... 마음 속으로 수없이 곱씹었던 편지야. 하지만 설득력 있는 글을 쓰고 싶어도 마땅한 글이 떠오르지 않네. 아마도 이번엔 정말... 죽고 싶기 때문인가 봐.
프레디에게 남긴 헤스터의 편지 그대로 [더 딥 블루 씨]는 자살을 시도한 헤스터의 심정을 설득력있게 선보이지 않습니다. 윌리엄과의 답답한 결혼생활은 시어머니 집에 방문 장면으로 짧막하게 넘기고, 프레디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은 톰 히들스턴의 매력에 가볍게 기댑니다. 윌리엄과의 결혼생활을 정리하고 프레디와 동거를 시작한 헤스터. 헤스터의 자살시도 이유가 아마도 경제적 이유 때문일 것이라 예상은 되지만, 헤스터가 경제적 이유로 심각한 압박을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영화에서는 제대로 표현되지 않습니다.
자살하려는 여자, 떠나려는 남자
헤스터의 자살시도 사실을 안 프레디는 헤스터의 곁을 떠납니다. 헤스터가 아무리 잘못했다고 빌고, 매달리지만 프레디는 냉정하기만합니다. 그러면서 [더 딥 블루 씨]는 주인공인 헤스터와 프레디의 매력을 모두 잃고 맙니다.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이유로 자살을 시도한 헤스터, 그러한 헤스터를 버리고 도망치듯이 남미로 떠나려는 프레디. 그들의 사랑은 헤스터가 그토록 원하던 열정이 아닌, 그저 잠깐동안의 욕정은 아니었을까요?
저는 사랑이란 상대방에 대한 책임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헤스터는 프레디와의 사랑을 위해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프레디를 따라 나섰습니다. 그렇다면 프레디 역시 헤스터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야합니다. 비록 헤스터의 자살 시도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헤스터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헤스터의 곁을 지켜줘야 합니다. 그것이 헤스터를 향한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요?
하지만 프레디는 잠깐의 고민도 없이 헤스터를 떠납니다. 마치 헤스터를 떠날 명분을 기다렸다는 듯이... 오히려 프레디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을 떠난 헤스터에게 다시 돌아오라고 말하며 진정으로 걱정해주는 윌리엄이 프레디보다 더 멋있어 보일 정도입니다. 매력이 없는 주인공이라니... 이 영화의 장르가 멜로임을 감안한다면 그 자체가 [더 딥 블루 씨]의 아쉬움이 됩니다.
사랑의 본질을 탐구하기엔 90분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다.
[더 딥 블루 씨]는 영국의 유명 극장가 테렌스 라티건의 동명 희곡이 원작이라고 합니다. 그렇기때문에 영화도 연극적인 요소가 강합니다. 장소도 한정되어 있고, 등장인물도 극히 제한적입니다. 영화의 거의 대부분이 헤스터, 프레디, 윌리엄의 대화로 이루어졌습니다. 문제는 영화의 러닝타임이 고작 90분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90분동안 [더 딥 블루 씨]는 자살을 시도한 헤스터의 이유도, 헤스터를 떠나려는 프레디의 선택도 무엇하나 제대로 잡아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레이첼 와이즈, 톰 히들스턴, 사이몬 러셀 빌의 연기력은 빛났습니다. 특히 레이첼 와이즈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는데, 비록 사랑 때문에 비참해졌지만 결코 자존심만큼은 잃지 않으려는 모습이 레이첼 와이즈와 잘 어울렸습니다. 아직까지 '로키'라는 캐릭터 이미지가 강한 톰 히들스턴도 인상깊은 연기를선보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명, 사이몬 러셀 빌의 연기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른 남자와의 사랑 때문에 자신을 떠난 아내에 대한 질투와 사랑을 절제된 감정으로 표현하는 윌리엄. 이 영화에서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 유일한 캐릭터는 윌리엄이 아니었을까요? [더 딥 블루 씨]는 비록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들의 지루한 대화로 가득찬 영화이지만, 이렇게 배우들의 연기력 만큼은 빛났던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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