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5년 아짧평

[폭스캐처] - 그의 섬뜩한 무표정만으로도 볼 가치는 충분하다.

쭈니-1 2015. 9. 1. 14:05

 

 

감독 : 베넷 밀러

주연 : 스티브 카렐, 채닝 테이텀, 마크 러팔로

개봉 : 2015년 2월 5일

관람 : 2015년 8월 29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제87회 아카데미 화제작중 내가 아직 보지 못한 영화들

 

지난 2월 23일 개최된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화제가 되었던 영화는 거의 빼놓지 않고 챙겨보았습니다.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수상한 [버드맨]을 비롯하여, 에디 레드메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사랑에 대한 모든 것]과 줄리안 무어가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스틸 앨리스], 그리고 J.K. 시몬스가 신들린 연기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위플래쉬]까지... 패트리샤 아퀘트가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보이후드]만 다운로드로 봤을 뿐, 대부분의 영화는 극장에서 봤습니다.

하지만 제 관심사는 수상작 뿐만이 아닙니다. 노미네이트된 영화들도 국내에 소개된 영화라면 챙겨보는 편입니다. 그러나 제가 아무리 영화를 많이 본다고해도 결국 놓치는 영화가 있죠. 그 중에는 이상하게 끌리지 않는 영화가 대부분인데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며칠 전까지만해도 [폭스캐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제87회 아카데미에서 감독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각본상에 노미네이트되었던 이 영화는 아쉽게도 그 어느 부분도 수상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2014년 제67회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할만큼 작품성만큼은 인정을 받은 영화입니다. 오랫동안 제 스마트폰에 저장된채 제게 잊혀졌던 [폭스캐처]. 결국 저는 지난 주말에 이 영화를 보고야 말았습니다.

 

 

 

나는 이 영화가 왜 끌리지 않았을까?

 

[폭스캐처]는 굉장히 흥미로운 소재를 지닌 영화입니다. 미국의 억만장자 존 듀폰(스티브 카렐)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미국의 레슬링 영웅 데이브 슐츠(마크 러팔로)를 살해한 충격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왜 존 듀폰은 데이브 슐츠를 살해한 것일까요? 정확한 범행 동기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존 듀폰은 2010년 감옥에서 사망했습니다. [폭스캐처]는 미스터리에 빠진 이 사건을 세 인물의 심리상태로 재조명한 영화입니다.

분명 흥미로운 소재를 가지고 있지만 제가 이상하리만큼 이 영화가 끌리지 않았던 것은 영화의 예고편에서 보여준 스티브 카렐의 섬뜩한 모습 때문입니다. 스티브 카렐이라고 한다면 제겐 코미디 전문 배우라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그의 대표작은 [40살까지 못해본 남자], [에반 올마이티], [겟 스마트] 등 코미디 영화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세상의 끝까지 21일]과 같은 진지한 영화에도 출연하긴 했지만 그러한 영화에서도 그는 순박하고 친숙한 이미지를 보여줬었습니다.

그런데 [폭스캐처]의 예고편에서 보여준 스티브 카렐의 모습은 이전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러한 스티브 카렐의 섬뜩한 표정이 제 뇌리에 남아 [폭스캐처]는 흥미로운 영화이지만 결코 보고 싶지 않은 이상한 상황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폭스캐처]가 개봉한지 6개월만에 저는 용기를 내서 스티브 카렐의 그 섬뜩한 표정과 마주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할리우드 스타급 배우들의 파격적 연기변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폭스캐처]는 할리우드 스타급 배우들의 파격적인 연기변신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엔 스티브 카렐 외에도 채닝 테이텀과 마크 러팔로가 출연합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스티브 카렐처럼 [폭스캐처]를 통해 이전의 이미지를 모두 깨버렸습니다.

채닝 테이텀은 [지. 아이. 조 : 전쟁의 서막]과 [지. 아이. 조 2]를 통해 우리 관객에게 익숙한 배우입니다. 그는 [스탭업], [매직 마이크] 등 주로 자신의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영화에서부터 [디어 존], [서약]등 로맨스 영화, [21 점프 스트리트]와 같은 코미디 영화까지 폭 넓은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제겐 [화아트 하우스 다운]과 같은 액션 배우로 더 친숙합니다.

그런 그가  형인 데이브 슐츠의 그늘에 가려진 레슬링 선수 마크 슐츠로 완벽 변신했습니다. 미국의 국민적인 영웅인 형에 대한 열등감, 그리고 자신에게 처음으로 찾아온 기회인 존 듀폰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감, 하지만 결국 존 듀폰조차 데이브를 선택하자 급격하게 무너지는 모습까지... 채닝 테이텀은 탄탄한 근육질의 레슬링 선수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어린시절 부모의 이혼이후 성장이 멈춰버린 마크 슐츠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했습니다.

마크 러팔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정말 [어벤져스]의 브루스 배너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가족에 대한 사랑과 성장이 멈춰버린 동생 마크에 대한 의무감으로 똘똘 뭉친 데이브 슐츠를 오나벽에 가깝게 재현해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스티브 카렐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마크 러팔로는 남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었습니다.

 

 

 

결핍에 의한 비극

 

스티브 카렐, 채닝 테이텀, 마크 러팔로의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폭스캐처]는 2시간 14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전혀 아깝지 않은 영화입니다. 이렇게 배우의 완벽한 연기로 캐릭터를 완성한 베넷 밀러 감독은 왜 남부러울 것이 없는 억만장자 존 듀폰이 데이브 슐츠를 죽일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조용한 탐구를 시작합니다.

사실 존 듀폰이 영원히 입을 다물어 버린 상황에서 정확한 내막을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단지, 존 듀폰에게 정신병 경력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단서가 될 뿐입니다. 베넷 밀러 감독은 바로 그 부분에 집중합니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결코 부모의 사랑을 가지지 못했던 존 듀폰. 그가 어머니에게 잘보이려 노력하는 장면은 우스꽝스럽기까지합니다. 그러한 존 듀폰의 부모의 사랑에 대한 결핍은 마크 슐츠와 묘하게 겹칩니다.

그와는 달리 데이브 슐츠는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존 듀폰이 가져본 적이 없는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고, 마크 슐츠와는 달리 존 듀폰 앞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합니다. 한번도 진정한 친구를 가져본 적이 없는 존 듀폰으로써는 처음으로 친구라고 생각했던 마크 슐츠를 데이브 슐츠가 빼앗아갔다고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애증의 관계였던 어머니의 죽음으로 존 듀폰의 내면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무너집니다.

 

 

 

스티브 카렐의 연기는 역대 최강이었다.

 

영화의 후반부...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데이브 슐츠를 찾아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에게 총을 쏘는 존 듀폰의 모습은 섬뜩했습니다. 제가 오랜 시간동안 이 영화를 의식적으로 외면했던 이유가 바로 그러한 섬뜩함인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결국 스타브 카렐의 미친 연기가 폭발하고 만 것입니다. 데이브 슐츠도, 그의 가족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저 역시 너무 갑작스러워서 더욱 충격적이었나봅니다.

[폭스캐처]에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캐릭터는 존 듀폰이 아닌 마크 슐츠입니다. 그렇기에 영화의 정보에 대해서 제대로 몰랐던 처음엔 데이브 슐츠를 살해한 것이 존 듀폰이 아닌 마크 슐츠일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형에 대한 열등감과 존 듀폰마저 자신이 아닌 데이브를 선택했을 때의 증오가 폭발 직전까지 갔기 때문입니다.

그와는 달리 존 듀폰은 시종일관 무표정했고,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데이브를 총을 쏘아 죽이는 존 듀폰의 모습이 더욱 섬뜩하게 느껴졌습니다. 지금까지 스티브 카렐은 제게 그냥 미국식 코미디에 자주 등장하는 웃기는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앞으로 스타브 카렐의 영화를 볼때마다 [폭스캐처]의 그 무표정이 자꾸 떠오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