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써니 렁, 렁록만
주연 : 장가휘, 장학우, 장첸, 왕학기, 지진희, 최시원, 윤진이
개봉 : 2015년 5월 28일
관람 : 2015년 8월 19일
등급 : 15세 관람가
이 영화때문에 불쾌지수가 올라가버렸다.
요즘 날씨가 너무 더워서인지 제 불쾌지수는 연일 최고치를 기록중입니다. 불쾌지수가 오르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짜증을 내게 됩니다. 문제는 짜증을 내는 대상이죠.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 짜증을 낼 수는 없으니 결국 자신보다 약한 상대에게 짜증을 내게 됩니다. 직장에서는 부하직원에게, 집에서는 가족에게 불필요한 짜증을 내게 되죠. 하지만 짜증이 난다고 마구 짜증을 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결국 참는 것이 상책입니다.
저는 제 짜증을 꾹꾹 참아냈다가 집에 와서 프로야구와 영화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이번주는 그것도 여의치가 않습니다. 제가 응원하는 프로야구팀인 두산 베어스가 연이틀 삼성 라이온즈에게 경기 후반 무기력한 역전패를 당해서 오히려 제 짜증을 부추겼고, 최근 봤던 영화들도 제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부실한 재미로 저를 폭발 일보직전으로 몰고 갔습니다.
특히 지난 수요일은 최악이었습니다. 제 정신건강을 위해 프로야구를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6회까지 4대0으로 두산 베어스가 앞서고 있기에 기대하며 봤다가 결국 또다시 무기력한 역전패를 목격하고 말았습니다.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참기 위해 급하게 영화를 골랐는데, 하필 [적도]였습니다. 저는 한중 합작영화인 [적도]가 시원한 액션으로 제 스트레스를 날려줄 것이라 기대했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나니 스트레스를 날려주기는 커녕 오히려 증폭시킨 역할만 하고 말았습니다.
대한민국 핵폭발 장치 도난으로 한국과 홍콩, 중국 경찰이 뭉쳤다.
분명 [적도]는 매력적인 설정을 가진 영화입니다. 한국에서 개발한 핵폭발 장치가 도난 당한 후 홍콩에서의 암거래가 포착되자, 한국, 중국, 홍콩은 연합작전을 벌입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무기 전문가 최민호(지진희)와 최고의 국정원 요원 박우철(최시원)이 홍콩으로 파견되고, 중국의 특사 송국장(왕학기) 역시 발 빠르게 홍콩으로 파견됩니다. 그들은 '적도'(장첸)라고만 알려진 테러리스트를 상대로 어렵게 핵폭발장치를 되찾지만, 무기의 한국 반입을 반대하는 송국장으로 인하여 일이 묘하게 꼬여만갑니다.
[적도]는 테러리스트와 경찰의 대결 뿐만 아니라 한국, 중국, 홍콩이 정의가 아닌 국제 정세와 자국의 이익 때문에 대립하며 색다른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여기까지는 꽤 좋았습니다. 한국과 중국, 홍콩이 핵폭발 장치를 사이에 두고 각 국가의 이익을 위해 암투를 벌이는 것은 지금까지의 첩보, 액션영화에서 찾기 어려운 재미였으니까요.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적도]는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테러리스트는 느와르의 주인공들처럼 멋지게 포장되어 있고, 이에 맞선 한국, 중국, 홍콩의 대표들은 테러리스트와는 정반대로 전혀 매력적이지 못합니다. 이건 마치 주인공이 테러리스트이고, 이에 맞서는 삼국의 대표는 그냥 멍청이들의 집합소인 듯 보일 정도입니다.
상업영화의 존재가치
영화는 왜 만드는 것일까요? 저는 영화의 존재가치는 두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메시지를 위한 영화와 다른 하나는 재미를 위한 영화입니다. 흔히 우리는 전자를 예술영화라고 하고, 후자를 상업영화라고 합니다. 상업영화 자체가 재미를 위해 만들어지다보니 관객이 원하는 재미에 따라 장르도 나눠집니다. 멜로, 코미디, 액션, 공포 등등...
[적도]는 액션장르의 영화입니다. 액션영화의 재미는 정의의 편에 선 주인공이 악당을 시원한 액션으로 무찌르면서 영화의 재미를 안겨주는 장르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적도]는 그러한 액션장르의 역할을 해냈을까요? 아닙니다. 전혀 해내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의 악은 간단합니다. 정체를 알 수없는 무기밀매업자인 '적도입니다. 문제는 선인데... 한국, 중국, 홍콩의 대표들은 '적도'를 막고 위험한 핵폭발 장치를 회수한다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자국의 이익을 위해 각자 다른 행동들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해도 '적도'가 악이고 삼국의 대표들이 선인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당연히 삼국의 대표들이 아웅다웅해도 결국 '적도'를 무찌르기를 바라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적도]는 그와 정반대의 결말을 준비합니다.
매력이 부족한 주인공들, 매력이 넘쳐 흐르는 악당들
영화의 후반부에 가면 최민호와 박우철은 '적도' 일당의 총에 맞고 쓰러집니다. 영화는 그들의 죽음을 무슨 비장미넘치는 영웅의 죽음으로 포장하지만 그들의 캐릭터 매력이 부족하다보니 영화의 비장미가 전혀 공감되지 않습니다. 홍콩의 경찰들은 무기력하고, 중국의 특사인 송국장은 얄밉기만합니다.
영화 후반부 '적도'가 홍콩의 대테러 대응부대 팀장인 이언명(장가휘)에게 "그러게 여자는 때리지 말았어야지."라며 그를 살해하는 장면은 분노가 치밀어 오르게 합니다. 여자라고요? 아뇨... 그녀는 여자가 아닌 그냥 테러리스트입니다. 수명의 경찰을 죽였고, 이언명도 거의 죽일뻔 했던... 원래대로라면 그 장면에서 통쾌했어야 했는데, 정의의 편인 이언명이 무기력하게 살해당하는 장면을 보며 화만 치밀어 올랐습니다.
끝까지 살아남아 일본에까지 '적도'를 추적한 송국장. 하지만 결국 영화는 '적도'의 승리로 영화를 마무리지어 버립니다. '적도'가 괴도 루팡처럼 비록 범죄자이지만, 서민의 편에 선 의적이라면 이러한 결말이 납득은 갈테지만, '적도'는 루팡이 아닙니다. 그냥 자신의 목적을 위해 서민들의 죽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극악무도한 테러리스트에 불과하기에 영화가 끝나고나서 찝찝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테러리스트는 괴도 루팡이 아니다.
[적도]는 정말 이상한 상업영화입니다. 테러리스트를 굉장히 멋지게 포장해놓고 테러리스트를 막으려는 삼국의 대표들은 뭔가 나사 하나씩 빠져 있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결말에서도 테러리스트인 '적도'의 승리로 영화를 마무리함으로써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테러리스트의 멋진 활약을 보며 쾌감을 느끼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기대한 한국 배우들의 활약도 미비합니다. 지진희와 최시원의 연기는 굉장히 어색하거나 오버스러웠고, 국제비밀요원 심미경을 연기한 윤진이의 발랄한 연기 또한 영화의 분위기와 전혀 맞지 않아 따로 노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외에 김해숙, 이태란 등 많은 한국배우들이 출연했지만, 그냥 영화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써니 렁과 렁록만 감독은 제가 재미있게 봤던 [콜드 워]를 연출했었습니다. [콜드 워] 역시 테러 진압작전의 지휘권을 두고 두 명의 부처장이 대립하면서 만들어내는 다각작인 대결구도가 매력적인 영화였습니다. 이러한 [콜드 워]의 다각적인 대결구도는 [적도]와 닮았습니다. 하지만 [콜드 워]는 치밀한 이야기 전개로 액션 스릴러 장르의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가 있는 영화였고, [적도]는 테러리스트를 멋지게 포장함으로써 영화를 보고나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 영화였습니다. 같은 감독이 비슷한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어쩌다가 [콜드 워]과 [적도]는 이렇게 다른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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