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딘 이스라엘리트
주연 : 조니 웨스턴, 소피아 블랙 디엘리아
개봉 : 2015년 2월 26일
관람 : 2015년 8월 16일
등급 : 15세 관람가
시간여행 소재 영화는 항상 나를 기대하게 만든다.
아주 오래전 우연히 명절 특선영화로 TV에서 방영해주던 [백 투 더 퓨쳐]를 본 이후 시간여행 소재의 영화는 항상 제 기대작이었습니다. 그만큼 시간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제 호기심을 자극했고, 무궁무진한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낼 수 있습니다. 특히 저는 [백 투 더 퓨쳐]의 영향 때문인지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를 바꾸면 현재와 미래까지 바뀌는 스토리 전개를 좋아합니다.
그렇기에 지난 2월 26일 개봉한 [백 투 더 비기닝] 역시 제 기대작이었습니다. 제목 자체가 [백 투 더 퓨쳐]와 비슷하고 (원제는 [프로젝트 알마낙]입니다. '알마낙'은 연감을 뜻하는 것으로 [백 투 더 퓨쳐 2]에서 미래에 간 마티가 '스포츠 연감'을 샀다가 비프의 손에 넘어가 과거와 현재, 미래가 송두리째 바뀌어버린 것에 대한 오마쥬라고 합니다.) 영화의 내용도 우연히 시간여행기계를 완성한 10대 청소년들이 과거를 바꾸기 위한 여행을 하지만 그로인해 세상의 미래 역시 바뀌었다는 것을 발견한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백 투 더 비기닝]은 국내 흥행에 실패했고, 결국 제가 극장으로 달려가기 이전 극장 상영이 끝나버렸습니다. 오랜만에 개봉한 시간여행 영화였는데, 제가 [백 투 더 비기닝]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이 영화가 개봉된지 무려 6개월의 시간이 흐르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페이크 다큐의 한계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일까요? 일요일 밤, 구피와 함께 [백 투 더 비기닝]을 보고난 후 밀려든 것은 영화에 대한 실망감 뿐이었습니다. 일단 이 영화는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모든 장면이 비디오 카메라로 찍은 영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페이크 다큐 방식은 한때 신선했지만 솔직히 지금은 어지러움증 유발 외에는 특별함이 없습니다.
[백 투 더 비기닝]의 페이크 다큐 형식은 어지러움증 유발이라는 문제 외에도 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시간여행기계를 완성한 데이비드(조니 웨스턴)는 친구들과 두가지 원칙을 세웁니다. 첫번째는 시간여행은 모두 함께 할 것과 두번째는 모든 것을 기록할 것입니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짝사랑하는 제시(소피아 블랙 디엘리아)의 마음을 얻기 위해 스스로 세운 첫번째 원칙을 무시합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입니다. 첫번째 원칙이 무너지면서 영화는 긴박하게 흘러갑니다. 그런데 데이비드는 첫번째 원칙보다 덜 중요한 두번째 원칙만큼은 철저하게 지켜냅니다. 페이크 다큐 형식을 영화의 끝까지 유지시키려는 감독의 의지인데, 굳이 신선함이 퇴색된 페이크 다큐 형식을 억지스럽게 고집해야만 했는지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10대들에게 시간여행이란...
사실 [백 투 더 비기닝]은 페이크 다큐의 형식을 억지스럽게 고집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영화의 중반까지는 나름 좋았습니다. 데이비드와 친구들은 시간여행기계라는 엄청난 것을 만들어내지만 그들이 기껏 하는 것은 망친 시험을 다시 보기,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를 골탕먹이기, 놓쳤던 락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등 아주 사소하고 개인적인 것들 뿐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이 저는 이해가 되는데, 아직은 어린 아이들에 불과한 데이비드와 친구들로써는 시간여행을 통해 하고 싶은 것이라고는 그러한 것들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특히 저는 데이비드의 선택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대학입학금 마련과 짝사랑하는 제시의 사랑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여행을 통해 그는 대학입학금을 마련하는데 성공합니다.
문제는 제시의 사랑을 얻는 것입니다. 아직 사랑에 서툰 그는 어떻게해야 제시의 사랑을 얻을 수 있는지 몰랐고, 락 페스티벌에서 제시에게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자신이 세운 원칙을 무시하고 혼자 락 페스티벌로 다시한번 시간여행을 해서 결국 제시의 사랑을 쟁취해냅니다. 하지만 영화는 데이비드가 제시의 사랑을 얻어내면서 갑자기 급변합니다.
제시의 사랑을 쟁취한 후에 갑자기 긴박해진 전개
[백 투 더 비기닝]의 문제는 후반부에 가서 갑자기 분위기가 긴박해진다는 점입니다. 제시의 사랑까지 쟁취하고 이제 만사오케이가 된 상황에서 데이비드의 친구들은 그들의 시간여행으로 인하여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던 참사들이 생겨났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시간여행을 처음 했던 그때로 돌아가 모든 것을 원상태로 돌려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 데이비드는 마치 엄청난 잘못을 한 것처럼 행동하며 친구들을 속입니다. 물론 그는 어렵게 쟁취한 제시의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고해서 혼자 시간여행을 했던 것이 무슨 엄청난 잘못인양 행동하며 자신 혼자 이 모든 것을 되돌려 놓을 수 있다며 허둥지둥댑니다.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과는 상관없이 데이비드 혼자 분위기를 긴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차라리 데이비드가 혼자 시간여행을 한 탓에 일어나지 않아도 될 참사가 일어난 것이라면 데이비드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결국 데이비드 혼자 이해할 수 없는 오버를 하며 분위기를 긴박하게 만들고, 그렇게 억지스럽게 긴박해진 분위기는 영화를 이상한 방향으로 이끌어나갑니다. 시간여행을 한 사람은 과거의 자신과 만나면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는 이론을 중심으로 완성된 [백 투 더 비기닝]의 긴박한 후반부는 솔직히 억지스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은 정해져 있었다.
[백 투 더 비기닝]의 애초의 설정은 모든 것은 이미 정해진 것이라는 점입니다. 데이비드는 죽은 아버지의 비디오 카메라에서 자신의 7살때 생일파티 영상을 보다가 현재의 자신이 찍혀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바로 아직 벌어지지 않은 데이비드의 미래는 이미 정해진 과거와 연결되어 있음을 뜻합니다. 다시말해 데이비드는 시간여행기계를 완성할 운명이며, 7살때 생일파티로 시간여행을 하는 것 역시 이미 정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백 투 더 비기닝]은 데이비드의 시간여행과 아버지의 죽음을 연결시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데이비드가 아버지를 만나면서 영화의 전개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영화의 첫장면과 서로 연결지어져야합니다. 애초의 설정이 그러했으니까요. 하지만 데이비드와 제시를 다시 연결시켜줘야한다는 욕심때문인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백 투 더 비기닝]의 모든 설정을 뒤집어 버립니다.
저처럼 시간여행 영화를 좋아하는 구피는 [백 투 더 비기닝]이 끝나자 아쉬운 표정으로 "어설픈 [나비효과]같은 영화였어."라며 짧게 이 영화를 정의했습니다. [나비효과]는 예전의 일기를 통해 과거로 갈 수 있는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과거로 가서 불행했던 기억들을 바꾸려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의 현재는 더욱 불행해져만갑니다. [나비효과]는 제가 [백 투 더 퓨쳐 3부작]이후 가장 좋아하는 시간여행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문제점
결국 [백 투 더 비기닝]의 문제점은 명확합니다. 일단 페이크 다큐 형식을 고집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이 영화의 페이크 다큐 형식은 영화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기만 할 뿐입니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 데이비드의 이해안되는 행동에 대한 정리가 필요했습니다. 영화의 긴박감을 데이비드의 오버로 해결하려 했던 것은 너무 안일한 대처였습니다.
마지막으로는 굳이 영화의 설정을 뒤집어 엎으면서 데이비드와 제시를 연결시켜주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데이비드가 제시의 자동차키체인을 들고 과거의 아버지를 찾아가는 것은 정해진 운명입니다. [백 투 더 비기닝]은 이 정해진 운명을 영화의 첫장면과 연결시키며 끝을 맺었어야 했습니다. 이 문제점들이 한데 뭉쳐져 [백 투 더 비기닝]을 어설픈 시간여행 영화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시간여행 영화는 시나리오의 치밀함이 정말 중요합니다. 시간여행을 한다는 것은 단순한 SF의 소재가 아닌, 과거와 현재, 미래가 서로 뒤엉켜버린다는 것을 뜻합니다. 현재에서 과거로 시간여행을 해서 아주 작은 것만 바꾸어도 현재와 미래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뀌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백 투 더 비기닝]은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데이비드와 제시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 억지스러운 마지막 장면을 위해 스스로 치밀함을 걷어 차버렸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백 투 더 비기닝]은 제게 시간여행 소재 영화로써의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실망스러운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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