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5년 아짧평

[손님] - 나에게 공포를 느끼게 하는데 실패한 공포영화

쭈니-1 2015. 8. 7. 18:38

 

 

감독 : 김광태

주연 : 류승룡, 이성민, 천우희, 이준

개봉 : 2015년 7월 9일

관람 : 2015년 8월 6일

등급 : 15세 관람가

 

 

무더운 여름밤에는 공포영화가 제격?

 

연일 계속되는 열대야로 인하여 밤잠을 설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 같습니다. 제 경우는 자면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기는 하지만 그러면서도 잠은 잘 자는 편인데, 민감한 구피는 밤새 선풍기를 틀었다가 껐다가하며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고 합니다. 구피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어서 빨리 이 지긋지긋한 무더위가 물러가야할텐데 걱정입니다.

이런 무더운 밤에는 등골이 오싹한 공포영화가 제격이죠. 저와 구피는 워낙 겁이 많아서 제대로된 공포영화는 보지 못하는 편이지만, 공포의 강도가 조금 약한 영화라면 열대야로 인하여 잠못드는 목요일 밤을 위해 도전을 해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개봉한 우리나라 공포영화인 [경성학교 : 사라진 소녀들]과 [손님]을 두고 고민을 했고, 그 중 덜 무서워보이는 [손님]이 선택되었습니다.

[손님]의 장르는 판타지 공포입니다. 그렇기에 아무래도 머리 풀어헤친 귀신이 등장하는 우리나라의 정통 공포영화와 비교한다면 공포의 강도는 약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저는 머리 풀어헤친 귀신이 가장 무섭습니다.)  게다가 예고편에서 [7번방의 선물]을 연상하게 하는 류승룡의 순박하고 구수한 연기가 돋보여 겁많은 저희 부부를 위한 공포영화로 선택된 것입니다.

 

 

 

피리부는 사나이

 

[손님]은 중세시대 독일의 도시 하멜른에서 내려오는 전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동화인 <피리부는 사나이>를 기본 골격으로 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피리부는 사나이>의 내용은... 쥐가 많아 골치였던 작은 도시 하멜른에서 어느 낯선 남자가 도시의 쥐를 모두 없애줄테니 금화 천냥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시장은 남자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남자는 마법의 피리로 쥐들을 강가로 데려가 모두 물에 빠뜨려 버립니다. 하지만 시장은 약속한 돈의 일부만 주고 남자를 내쫓아버립니다. 그러자 남자는 다시 하멜른에 나타나 피리를 불어 도시의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외딴 동굴로 사라져 버립니다.

이 동화는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김광태 감독은 이러한 <피리부는 사나이>를 토대로 1950대를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산골마을에 우연히 들어가게된 떠돌이 악사 우룡(류승룡)과 그의 아들 영남(구승현)의 이야기를 완성해냈습니다. 동화의 내용 그대로 이 마을에도 쥐 때문에 골치인데, 우룡이 피리와 약초 지식을 이용해서 쥐떼를 마을에서 몰아냅니다.

하지만 마을 촌장(이성민)은 약속한 돈을 주지 않았고, 오히려 우룡을 간첩으로 몰아 세우며 마을 밖으로 내쫓아버립니다. 그러한 가운데 영남마저 죽음을 당하자 우룡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복수를 결심합니다.

 

 

 

중반까지 너무 무섭지 않았던 것이 문제이다.

 

[손님]은 지난 7월 9일 개봉 당시 [인사이드 아웃]과 더불어 제 기대작이었습니다. 제가 [손님]을 기대했던 이유는 <피리부는 사나이>를 토속적 공포영화와 연결시킨 김광태 감독의 아이디어가 돋보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류승룡의 연기 변신도 기대가 되었고, 이 영화의 결말 또한 제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손님]을 보고나니 영화에 대한 실망만이 밀려오네요.

우선 [손님]의 문제점은 안무서워도 너무 안무섭다는 점입니다. 물론 제가 공포의 강도가 낮은 영화를 골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한여름밤의 무더위를 날려줄 오싹함은 기대했는데, [손님]은 어느 부분에서 무서워해야할지 분간이 안갈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손님]이 공포영화이면서 안무서운 이유는 전적으로 류승룡의 탓이 큽니다. 영화의 중반까지 류승룡은 순박한 연기로 오히려 웃음을 안겨줍니다. 게다가 뜬금없는 마을 선부당 미숙(천우희)과의 로맨스라니... 사정이 이러하니 영화 후반부 우룡이 복수를 결심하는 장면에서도 섬뜩함을 느껴야하는데, 그냥 멀뚱거리며 별 감정없이 영화만 바라보며 "이렇게 끝이야?"라는 허무감만 느껴야 했습니다.

 

 

 

가장 섬뜩했던 것은 마을 사람들의 집단광기

 

물론 그렇다고해서 [손님]이 전혀 무섭지 않은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전쟁을 피해 살아남아야 했던 마을 사람들의 집단 광기가 섬뜩했고,  무당이 저주를 내리는 장면에서 약간의 오싹함을 느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손님]이 진정 공포영화로써의 재미를 가지려면 결국 영화 후반부에 폭발하는 우룡의 복수에서 그 어떤 장면보다도 더한 섬뜩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영화 초중반부의 우룡 캐릭터 분위기가 너무 코믹하게 흘러가지 않도록 조절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우룡의 복수 방식도 공포를 느끼기엔 부족했습니다. 동화 <피리부는 사나이>는 피가 난무하는 살벌한 공포는 없지만, 자식을 가진 부모 입장에서는 죽음보다 더한 공포를 안겨주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우룡의 복수는 피가 난무하지만 쥐에 의한 복수이다보니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만 들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마을의 아이들을 처리하는 우룡의 모습을 통해 <피리부는 사나이>의 내용으로 선회하여 영화의 섬뜩함을 극대화시키려는 김광태 감독의 의도가 드러났지만, 그러한 의도와는 달리 영화를 보고난 후의 찝찝함만 남겨 버렸습니다.

 

 

 

이 영화가 안무서운 것일까? 내가 공포영화를 의외로 잘 보는 것일까?

 

[손님]을 보기 시작했을 때는 오랜만에 보는 공포영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나름 긴장하며 영화에 몰입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중반부까지 도대체 공포스러운 장면이 나오지 않았기에 긴장감은 풀렸고, 결국 후반부에는 며칠전 배달시켰다가 남은 차가운 후라이드 치킨에 캔맥주를 마시며 편안하게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제 걱정과는 달리 공포를 전혀 느끼지 못한채 [손님]을 보고나니 공포영화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어쩌면 나도 겁쟁이가 아닌 공포영화를 잘 보는 담대한 심장을 가진 사나이일지도 모른다는... 그래서 이번엔 [경성학교 : 사라진 소녀들]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한때 여름 극장가엔 블럭버스터 틈바구니에서 틈새시장을 노린 공포영화들이 심심치 않게 개봉했었습니다. 하지만 공포영화들의 흥행이 부진하자 언제부턴가 공포영화는 여름 극장가에서 사라졌습니다. [손님]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드네요. 어쩌면 공포영화의 흥행이 부진한 이유가 공포영화로써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고작 [손님] 한편으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공포영화를 못보는 저마저도 공포를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면 공포영화로써는 전혀 기능을 하지 못한 빵점 영화입니다. 아쉽게도 [손님]이 바로 그러한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