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이인항
주연 : 성룡, 존 쿠삭, 애드리언 브로디
개봉 : 2015년 3월 12일
관람 : 2015년 7월 26일
등급 : 15세 관람가
내게 성룡도 이제 한물 갔단 말인가?
지난 3월 12일에 개봉한 영화 중에서 단연 제 기대작은 [채피]였습니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감정을 지닌 인공지능 로봇 '채피'가 인간 사회에 일대 혁신을 불러 일으킨다는 내용의 [채피]는 제가 좋아할만한 모든 요소를 갖춘 SF영화입니다. 하지만 그날 [채피] 외에도 많은 준기대작이 개봉했었습니다. 2015년 아카데미에서 남우조연상, 편집상, 음향상을 수상한 [위플래쉬], 한국형 스릴러 영화인 [소셜 포비아]와 [살인의뢰], 그리고 영원한 내 마음 속의 '따거' 성룡 주연의 [드래곤 블레이드]가 3월 12일 개봉한 영화들입니다.
그들 영화 중에서 저는 [드래곤 블레이드]를 제외한 모든 영화를 극장에서 봤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드래곤 블레이드]를 기대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성룡 주연의 영화는 웬만하면 극장에서 챙겨보는 제게있어서 성룡 외에도 할리우드 스타인 존 쿠삭, 애드리언 브로디가 주연을 맡았고, 우리나라의 최시원까지 출연하는 영화를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저는 [드래곤 블레이드]가 그다지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중국의 전쟁, 사극 영화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이인항 감독의 영화라면 [삼국지 : 용의 부활]도 재미있게 봤었는데 이상하게 [드래곤 블레이드]만큼은 그다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가 보고 싶지 않았던 이유
[드래곤 블레이드]가 다운로드 시장에 출시되었고, 저는 서둘러 [드래곤 블레이드]를 다운로드받아 제 스마트폰에 저장했지만, 그런 후에도 한동안 [드래곤 블레이드]를 플레이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거의 한달 가량 제 스마트폰 깊숙한 곳에서 잠들어 있던 [드래곤 블레이드]를 결국 지난 주말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제가 이 영화를 보고 싶어하지 않았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선 [드래곤 블레이드]의 내용부터 소개하자면... 이 영화는 2000년전 서양과 동양의 문화 교류의 창고였던 실크로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인종이 충돌할 수 밖에 없는 실크로드의 평화 유지를 목표로 하는 도호부의 대장 후오안(성룡). 그는 누명을 쓰고 부하들과 옌먼관의 보수공사 노역에 투입됩니다. 그리고 운명처럼 탐욕스러운 로마의 황제 티베리우스(애드리언 브로디)에게 쫓기는 로마 장군 루시우스(존 쿠삭)와 만나 우정을 쌓게 됩니다. 하지만 실크로드를 장악하려는 야망을 품은 티베리우스로 인하여 후오안과 루시우스는 위기를 맞이하고, 결국 실크로드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후오안은 티베리우스에 맞서 최후의 전쟁을 벌입니다.
[드래곤 블레이드]의 제작 의도는 명확합니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혼란의 시대를 배경으로 동양과 서양의 손을 잡고 이상적인 도시국가인 리검을 건설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평화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건 실화냐? 아니면 전설이냐?
분명 제작의도는 좋았지만 그것을 영화로 재현하는 과정은 굉장히 서툽니다. 우선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영화의 오프닝에 밝힙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나오는 자막은 제 눈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2015년, 미국의 민간 발굴업체는 한 왕조시대의 군사기록을 발견한다. 2천년 전 중국으로 건너간 로마 군대가 고대도시 '리검'을 세웠다는 내용이다. 고고학계에선 위조문건으로 여겼으나 발굴단은 추가 탐사를 결정한다."
자! 여러분은 이 부분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셨나요? 문제는 바로 2015년이라는 연도입니다. 이 영화가 국내에 개봉된 것이 2015년 3월입니다. 그렇다면 영화 제작시기는 아무리 빨라도 2014년입니다. 그러니 2015년 미국의 민간 발굴업체가 한 왕조의 군사기록을 발견했다는 영화 오프닝 자막은 실제상황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처음부터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민간 발굴단이 리검 유적지를 발굴하지만 "이곳은 우리만 알고 있자."라며 마무리짓습니다. 그러한 부분만봐도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한 것이 아닌 이상적인 도시국가 '리검'의 전설을 영화화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어쩌면 별것 아닌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실화냐, 전설이냐의 문제는 영화를 받아들이는 관객의 입장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드래곤 블레이드]는 실화와 전설의 어정쩡한 사이에서 영화를 보는 제게 혼란만 안겨준 셈입니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배우들
하지만 [드래곤 블레이드]가 실화냐? 전설이냐?의 문제는 영화를 보고난 이후의 문제입니다. [드래곤 블레이드]를 보며 느낀 가장 큰 문제는 배우들이 한결같이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했다는 것입니다. 성룡은 물론 존 쿠삭과 애드리안 브로디까지... 이들 모두 연기력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배우들이지만, 그들의 연기력은 [드래곤 블레이드]와 어울리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로마 장군 루시우스를 연기한 존 쿠삭은 어울리지 않는 것을 넘어서 어색하기까지 했습니다. 그가 연기한 루시우스는 [드래곤 블레이드]에서 굉장히 중요한 캐릭터입니다. 후오안이 동양을 대표하는 캐릭터라면 루시우스는 서양을 대표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드래곤 블레이드]가 동양과 서양의 조화를 다룬 영화이니만큼 둘의 우정은 영화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하지만 후오안과 루시우스가 우정을 나눠는 장면은 감동적이기보다는 어색했습니다. 그 중에서 루시우스가 티베리우스에게 죽음을 당하는 장면은 제 눈물샘을 자극해야 했지만,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후오안과 루시우스의 우정이 감동을 주지 못하니 동양과 사양의 화합이라는 [드래곤 블레이드]의 주제 역시 허공 속의 메아리처럼 공허할 뿐이었습니다.
혼란의 시대에 피어난 평화의 메시지
이인항 감독은 [삼국지 : 용의 부활]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삼국지 : 용의 부활]은 조자룡(유덕화)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영화입니다. 태평성대를 이루어 화목한 가정을 가지고 싶다는 평범한 꿈에서부터 시작한 조자룡의 영웅담은 촉나라의 백전백승의 영웅이 되지만, 결국 유비, 관우, 장비처럼 천하통일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합니다. 전쟁이 빈번했던 혼란의 시대에 평화를 꿈꿨던 주인공의 모습만으로도 [삼국지 : 용의 부활]과 [드래곤 블레이드]는 서로 닮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삼국지 : 용의 부활]은 재미있었지만, [드래곤 블레이드]는 그다지 재미가 없었습니다. 옌먼관의 서로 다른 민족들이 서로 협력을 하여 후오안과 함께 목숨을 걸고 티베리우스와 맞서 싸우는 영화 후반부의 장면도 공감되지 않았고, 그로인하여 이상적인 도시국가 '리검'이 건설되는 마지막 장면도 전혀 감동적이지 못했습니다.
그저 성룡과 존 쿠삭, 애드리언 브로디가 같은 영화에서 한 화면에 등장한다는 것의 신기함과 잉포로 출연한 최시원의 분량이 거의 우정출연급이라는 사실에 대한 실망감만 남은 영화였습니다. 암튼 [드래곤 블레이드]는 성룡 주연의 영화 중에서 제게 실망감을 안겨준 몇 안되는 영화로 제게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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