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데이비드 O. 러셀
주연 : 제시카 비엘, 제이크 질렌할, 제임스 마스던, 캐서린 키너
개봉 : 2015년 5월 7일
관람 : 2015년 7월 10일
등급 : 15세 관람가
드림팀이 만든 병맛 코미디?
지난 5월에 [엑시덴탈 러브]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파이터]로 이름을 알린 후 [실버라이닝 플레이북]과 [아메리칸 허슬]로 제 마음을 사로잡았던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투모로우]로 스타덤에 오른 후 [브로크백 마운틴], [조디악], [러브 & 드럭스], [나이트 크롤러]등의 영화로 연기파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제이크 질렌할이 주연을 맡았으니 [엑시덴탈 러브]는 장르, 내용과는 별도로 제 기대작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촌스러운 영화의 포스터에서부터 제 고개를 갸유뚱하게 만들더니, 영화의 예고편에서 보여준 병맛 코미디는 더더욱 제게 [엑시덴탈 러브]에 대한 의구심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과 [아메리칸 허슬]로 고품격 코미디를 만들어냈던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이 왜 갑자기 유치찬란한 병맛 코미디를 연출한 것일까요?
[엑시덴탈 러브]의 기본적인 내용은 이러합니다. 애인인 스캇(제임스 마스던)에게 기다리고 기다렸던 청혼을 받던 날, 앨리스(제시카 비엘)는 머리에 못이 박히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당합니다. 하지만 의료보험이 없는 그녀는 거액의 치료비를 감당하던가, 아니면 죽음을 기다려야합니다. 스캇마저 파혼을 선언하자 앨리스는 자신의 처지를 구원할 사람은 정의로운 정치인 하워드(제이크 질렌할) 뿐이라는 생각에 친구들과 워싱턴으로 향합니다.
미국의 의료보험에 대한 신랄한 풍자
[엑시덴탈 러브]의 시작은 미국의 의료보험에 대한 풍자입니다. 머리에 못이 박힌 긴박한 상황에서 의사는 앨리스가 의료보험이 없다는 사실에 수술을 중단하고 그 옆에서 태연하게 햄버거나 먹습니다. 사고를 일으킨 식당에서 치료비를 받으려면 민사소송을 내야 하는데, 민사소송은 수년이 걸리기 때문에 앨리스가 죽은 이후에야 마무리됩니다.
앨리스는 부모님의 의료보험에 피보험자로 가입이 되어 있었지만, 20대 초반의 나이에 의료 보험과 용돈을 선택하라는 부모님의 말에 용돈을 선택했고, 약혼자인 스캇에게도 의료보험이 있지만, 결혼 전의 사고라 스캇의 의료보험 헤택을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엑시덴탈 러브]를 보다보면 국가에서 전국민에게 강제로 의료보험을 들게 한 우리나라의 의료보험 제도가 굉장히 좋아보입니다. (의료보험 민영화 결사반대!!! ^^)
결국 앨리스는 발기지속증과 항문탈출증을 앓고 있지만 의료보험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두 친구와 함께 하원의원인 하워드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바로 이때부터 미국 의료보험에 대한 풍자는 미국의 정치 풍자로 범위를 넓힙니다.
정의로운 정치인은 과연 있긴 한걸까?
TV에서 어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자신을 찾아달라며 미소를 짓는 하워드. 앨리스는 하워드가 자신을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 철썩같이 믿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앨리스의 순진한 생각일 뿐입니다. 하워드는 유력한 하원의장 후보인 팸 헨드릭슨(캐서린 키너) 하원의원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할뿐, 앨리스의 일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결국 하워드가 앨리스를 돕겠다고 나서긴 했지만 그 이유는 정의, 봉사 때문이 아닙니다. 머리를 다쳐서 가끔 섹스 충동증에 시달리는 앨리스와 우발적인 섹스를 나눴고, 뇌에 못이 박힌 앨리스를 이용해서 팸 헨드릭슨 의원이 밀고 있는 달기지 개발법을 홍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앨리스에게 달기지 개발법을 홍보해주면 달기지 개발법이 국회에서 통과될때 긴급의료보험법도 꼽사리로 통과시켜 주겠다고 속입니다.
[엑시덴탈 러브]를 보면서 하워드의 임기웅변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났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는 현실 정치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선심성 공약을 내세워 당선된 후, 말바꾸기하는 것은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대부분 하는 것들이죠. 하워드는 그저 그러한 보통(!) 정치인들의 전형을 보여주는 캐릭터일 뿐인 것입니다.
툭하면 세금 폭탄이 일어날 것이라며 국민을 협박하기
[엑시덴탈 러브]는 미국의 정치를 풍자하는 영화이지만 가만히 영화를 보다보면 우리나라 정치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국민 복지을 위한 법에 대해서는 인색하게 굴며 이 법이 통과되면 세금 폭탄이 일어날 것이라며 국민을 협박하는 장면입니다.
여성 우주인 출신인 팸 헨드릭슨 의원은 달기지 개발법 통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겁니다. 그는 달기지가 통과되면 미국은 안전하고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내세웁니다. 하지만 정작 국민이 필요로하는 긴급의료보험법에 대해서는 국민들에게 세금 폭탄을 안겨줄 것이라며 결사 반대합니다.
자! 가만히 생각해보죠. 과연 달에 기지를 만드는 것과 앨리스처럼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한 국민을 위한 의료보험을 개정하는 것중에서 세금이 더 많이 들어가는 것은 어느 것일까요? 이건 마치 4대강 사업으로 어마어마한 국민 세금을 축내고, 복지와 관련된 법에 대해서는 세금 폭탄이 일어날 것이라 떠들어대는 우리나라 정치 상황을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영화도 정치도 병맛이다.
앨리스를 응원하는 걸스카웃 아이들이 서로 손을 잡고 있는 화면을 포착한 팸 헨드릭슨 의원은 '동성연애가 미국을 망친다.'며 보수층을 선동합니다. 이 장면은 자신과 반대진영을 툭하면 친북세력으로 몰아세워 여론재판을 하는 우리나라 정치 상황과도 비슷합니다. 이런 병맛 코미디 영화를 보며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이 떠오른다는 사실 자체가 참 서글픕니다.
[엑시덴탈 러브]는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 하워드의 기지로 앨리스가 원했던 긴급의료보험법을 통과시킵니다. 하지만 과연 그렇다고해서 이 영화는 해피엔딩일까요? 아뇨.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하워드가 통과시킨 긴급의료보험법은 머리에 못이 박힌 사람, 발기지속증, 항문탈출증, 그리고 마시멜로우를 굽다가 입게된 화상 등 거의 벌어질 가능성이 없는 일부 사람들(딱 꼬집어 이야기하자면 앨리스와 그녀의 친구들)을 위한 법일 뿐입니다.
물론 이것에 대해서도 팸 헨드릭슨 의원은 세금폭탄이 일어날 것이라며 헛소리를 하지만, 그보다 저는 국민을 위한 법이 아닌 사심을 위한 법을 통과시킨 하워드도 실망스러웠습니다. 물론 그로인하여 하워드가 앨리스가 사랑에 빠지며 로맨틱 코미디의 라스트가 완성되지만, 정치 풍자 코미디의 측면에서 본다면 자기네들끼리 북치고 장구친 병맛 결말인 셈입니다. 결국 [엑시덴탈 러브]는 병맛 정치를 병맛 코미디로 풍자한 병맛 영화였습니다.
'아주짧은영화평 > 2015년 아짧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드래곤 블레이드] -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배우들. (0) | 2015.07.31 |
---|---|
[세레나] - 행복을 위해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 (0) | 2015.07.24 |
[해피 홀리데이] - 부모라서 더욱 공감이 되는 영화 (0) | 2015.07.20 |
[기생수 파트 1] - '기생수 파트 2'를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0) | 2015.07.10 |
[연애의 맛] - 상업 장르영화의 의무에 충실했다. (0) | 2015.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