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5년 아짧평

[해피 홀리데이] - 부모라서 더욱 공감이 되는 영화

쭈니-1 2015. 7. 20. 13:26

 

 

감독 : 앤디 해밀턴, 가이 젠킨

주연 : 로자먼드 파이크, 데이비드 테넌트, 빌리 코놀리

개봉 : 2015년 5월 14일

관람 : 2015년 7월 16일

등급 : 12세 관람가

 

 

무더위에 지친 목요일 밤의 선물.

 

무더위에 지친 나른한 목요일 밤, 구피와 저는 찜질방같은 안방을 나와 그나마 조금이라도 바람이 통하는 거실에 이불을 깔고 누웠습니다. 베란다 창문과 현관문을 열어두니 시원한 바람이 거실로 솔솔 들어오더군요. 하지만 요즘처럼 무서운 때에 현관문을 열고 잘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거실에서 뒹굴거리며 영화 한편 가볍게 보다가 안방에 들어갈 생각이었습니다.

구피는 제게 "영화보다가 잠들면 깨우지마."라고 신신당부를 합니다. 하긴 저보다 더위를 더 잘타는 구피는 요즘들어서 도통 잠을 못이룹니다. 그래서 제가 영화를 보는 동안 거실에서 잠시라도 꿀잠을 자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구피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심사숙고해서 고른 영화인 [해피 홀리데이]가 예상외로 재미있어서 구피도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해피 홀리데이]는 이혼 위기에 처한 더그(데이비드 테넌트)와 아비(로자먼드 파이크) 부부가 암으로 살 날이 며칠 남지 않은 더그의 아버지인 고디(빌리 코놀리)의 생일 파티 참석을 위해 세 아이들과 함께 스코틀랜드로 여행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일단 기본적인 설정은 평범합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에서 벌어지는 소동은 모든 예상을 뒤엎어 버립니다.

 

 

 

스코틀랜드에서 벌어진 사건들

 

고디의 생일파티 참가를 위해 스코틀랜드에 오게된 더그와 아비. 두 사람은 이혼 위기에 처한 부부들이 그러하듯이 눈만 마추지만 서로 못잡아먹어서 으르렁대며 싸웁니다. 문제는 고디가 심장이 좋지 않아 그들의 별거 사실을 숨겨야 한다는 점입니다. 스코틀랜드에 도착한 더그와 아비는 억지로 사이가 좋은 척 연기를 하지만 천방지축 세 아이들의 입을 막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제가 [해피 홀리데이]를 보기 전에 예상한 스토리 라인은 이러합니다. 부모의 이혼을 막으려는 세 아이들과 고디의 노력으로 더그와 아비의 관계가 회복되고, 고디의 생일 파티가 끝날 때쯤에는 다시 행복한 가족으로 돌아간다는... 전형적인 가족 코미디를 저는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해피 홀리데이]는 점점 예측불허의 이야기 속으로 저를 안내합니다. 생일 파티 준비로 바쁜 사람들을 뒤로 하고 해변가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고디와 세 아이들. 그런데 고디가 그 와중에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할아버지의 갑작스로운 죽음은 동심으로 가득한 아이들의 엉뚱한 사고를 불러일으키는데, 아이들은 바이킹식의 장례식을 원했던 고디의 말을 기억하고, 뗏목을 만들어 그 위에 고디의 시체를 싣고, 불을 질러 바다 한가운데로 떠나보냅니다.

 

 

 

아이들의 순진한 사고는 과연 용서받을 수 있을까?

 

아무리 어린 아이들이 할아버지의 유언대로 바이킹식 장례식을 직접 치뤄준 것이라고는 하지만, 현실에서 그러한 상황이 발생했다면 그것은 결코 웃고 넘어갈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것입니다. [해피 홀리데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 언론은 어린 아이들의 친할아버지의 시신을 훼손했다며 연일 대서특필하고, 집 밖에는 취재를 나온 기자들로 아수라장이 됩니다. 게다가 아동보호국에서 아이들을 조사하기 위해 들이닥칩니다.

자칫 잘못하면 세 아이들은 친할아버지의 시신을 훼손한 패륜아로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며, 더그와 아비는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 죄로 아동보호국에 아이들을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해피 홀리데이'라는 국내 개봉명과는 달리 '악몽과도 같은 홀리데이'기 될 가능성이 큽니다. 과연 더그와 아비는 이 위기를 어떻게 넘어갈까요?

솔직히 저는 영화 후반부에 고디가 '짠'하고 나타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고디만 다시 나타난다면 이 상황은 한바탕 웃지못할 소동으로 마무리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며 저는 계속 조마조마해야 했습니다.

 

 

 

모든 것은 어른들의 잘못이다.

 

할아버지에게 바이킹식 장례식을 치뤄 드리겠다며 시체를 훼손한 아이들. 만약 제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 이야기를 신문기사로 보게 되었다면 아마도 "세상 말세다."라며 혀를 찼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고디에게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을 알게 된 상황에서는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어른들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해피 홀리데이]의 어른들은 한결같이 한심합니다. 더그와 아비는 이혼 위기에 처해있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툭하면 아옹다옹 싸우기만 합니다. 더그의 형인 개빈(벤 밀러)는 자신의 사회적 성공에만 집착하고 그로인하여 그의 아내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습니다. 개빈의 아들 또한 강압적인 아버지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소심한 아이가 되었습니다.

사실 세 아이들이 처음부터 할아버지의 죽음을 어른들에게 숨기려 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생일 파티 준비를 하면서도 계속 싸우기만 하는 어른들을 보며 아이들은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스스로 해줘야 겠다고 생각한 것이죠. 영화의 후반, 그러한 속사정을 알게된 어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그들 역시 이 모든 사건이 자신들의 잘못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나와 구피는 웅이에게 어떤 어른일까?

 

제 블친 중의 한명이신 '살다보면'님이 [해피 홀리데이]를 추천해주시면서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부모면 공감이 가는 그런 영화예요." 맞습니다. [해피 홀리데이]는 딱 그런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저와 구피는 웅이에게 어떤 어른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그와 아비처럼 싸우기만 하는 어른일까요? 아니면  개빈처럼 재미없는 어른일까요?

저와 구피도 결혼 초에는 참 많이 다퉜습니다. 당연합니다. 살아온 환경도, 생각도, 가치관도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한 집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으니 다툴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가지 원칙은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웅이 앞에서는 싸우지 말기.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행복한 가정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란다고 합니다. 결국 아이들이 올바른 생각과 행동을 하도록 하는 것은 어른들의 몫인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 어른들도 [해피 홀리데이]를 보며 더그와 아비, 개빈처럼 자기 자신을 뒤돌아봐야하지 않을까요? 그렇기에 [해피 홀리데이]는 '살다보면'님의 추천글처럼 부모라서 더욱 공감이 되는 그런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