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아론
주연 : 오지호, 강예원, 하주희
개봉 : 2015년 5월 7일
관람 : 2015년 7월 7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가벼운 영화 제 2탄
'이브 생 로랑'의 일대기를 다룬 프랑스 전기영화 [생 로랑]의 후유증을 꽤 컸습니다. 한번 보기 시작한 영화는 웬만하면 중간에 포기하지 못하는 성격이기에 이틀에 나눠서 2시간 30분 영화를 버텼더니 [생 로랑]을 보고나서는 그저 가벼운 영화로 후유증을 떨쳐내야 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생 로랑]을 보고나서 곧바로 선택한 영화가 [트레이서]였고, 다음날 선택한 영화가 [연애의 맛]입니다.
[트레이서]가 전형적인 할리우드의 B급 액션영화라면, [연애의 맛]은 전형적인 우리나라의 B급 로맨틱코미디입니다. 두 선남선녀가 만나 티격태격하다가 사랑에 빠진다는 로맨틱코미디의 전형적인 설정을 가지고 있는 이 영화는 남자 주인공인 왕성기(오지호)의 직업을 산부인과 전문의로, 여자 주인공인 길신설(강예원)의 직업을 비뇨기과 전문의로 설정하며 주인공의 직업을 통해 다른 로맨틱코미디와의 차별화를 선언합니다.
게다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고집함으로써 로맨틱코미디 + 에로 영화의 마케팅 전략을 선보입니다. 과연 그러한 전략은 성공적이었을까요? 개인적으로 [연애의 맛]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성인 로맨틱코미디로써 어느정도는 만족할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은 되지 못한 딱 상업장르영화의 의무에 충실했던 영화였습니다.
남자 산부인과 전문의와 여자 비뇨기과 전문의가 특별한 이유
[연애의 맛]의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는 앞서 언급한 두 주인공의 직업에 있습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왕성기는 주로 여성의 은밀한 곳을 진찰합니다. 그와는 반대로 비뇨기과 전문의인 길신설은 남성의 은밀한 곳을 진찰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남녀의 성기는 더이상 은밀한 곳이 아닙니다. 그것은 낮에는 성 전문가이지만 밤에는 연애 초보자라는 왕성기와 길신설이 가진 공통적인 문제가 됩니다.
직업적인 이유로 매일 여성의 성기를 봐야하는 왕성기는 언제부턴가 심리적 문제에 의한 발기부전에 시달립니다. 길신설도 마찬가지입니다. 맞선을 보러 나가도 그녀가 비뇨기과 의사라고 말하면 맞선남은 "남자의 성기가 긴게 좋아요? 굵은게 좋아요?"라고 짖궃게 물으며 색안경을 끼고 그녀를 바라봅니다. 왕성기와 길신설은 직업 때문에 연애 불능자가 된 것입니다.
게다가 그 둘은 직업으로 인하여 생긴 트라우마도 안고 있습니가. 왕성기는 자신의 판단 착오로 인하여 산모의 뱃속 아기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산부인과 전문의면서도 임산부는 받지 않습니다. 길신설은 유명한 비뇨기과 전문의인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에 여자로써는 드물게 비뇨기과 전문의를 선택했지만 편견의 벽에 부딪혀야만 했습니다. [연애의 맛]의 영화적 재미는 이렇게 두 주인공의 직업에 의해서 완성됩니다.
성인 코미디는 그녀에게 맡겨라.
로맨틱코미디는 대부분 15세관람가 등급의 영화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로맨틱코미디라는 장르 자체가 사랑의 환상을 담고 있는데, 여기에 섹스가 끼어들면 환상이 깨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맨틱코미디의 섹스는 적절한 수위조절이 필요합니다. 과도한 노출은 로맨틱코미디 장르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재미를 해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연애의 맛]은 주인공의 직업이 산부인과, 비뇨기과 전문의로 설정하다보니 아무래도 남녀의 성에 대한 비속어들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다시말해 이 영화는 어쩔수 없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영화라는 사실입니다. [연애의 맛]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면 성인 관객이라도 확실하게 노리겠다는 전략을 폅니다. 그렇다고해서 주인공을 벗기면 로맨틱코미디의 재미가 해쳐질 수 있으니 그 대신 맹인영(하주희)이라는 인물을 내세웁니다.
사실 영화의 초반, 느닷없이 등장하는 맹인영의 노출씬은 조금 뜬금없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맹인영이 왕성기를 꼬시기로 결심하면서 맹인영이라는 캐릭터의 진가는 발휘됩니다. 맹인영이 발기부전인 왕성기를 유혹하기 위해 온갖 교태를 부리는 장면은 [연애의 맛]의 또다른 재미가 됩니다.
하지만 결국 전형적이 되어 버린다.
이렇게 영화의 중반까지 [연애의 맛]은 제법 색다른 로맨틱코미디의 재미를 관객에게 선보입니다. 하지만 왕성기와 길신설이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사랑에 빠지는 후반부부터는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독특함은 서둘러 사라지고, 로맨틱코미디의 전형적인 해피엔딩만이 남아 버립니다.
왕성기와 길신설이 가지고 있던 트라우마는 서둘러 봉합되고, 서로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되는 두 사람의 관계 또한 급진전됩니다. 왕성기가 길신설의 아파트에서 확성기로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은 너무 전형적이어서 오글거리기까지 할 정도입니다. 꼭 저렇게 오글거리는 장면으로 두 주인공을 맺어줘야하나 생각할 정도로 초반과 중반까지 다른 로맨틱코미디와 차별화에 성공했던 영화는 급속도로 로맨틱코미디의 전형적인 틀 속으로 들어섭니다.
하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끝까지 색다른 로맨틱코미디는 굉장히 힘든 일인 것을... 괜히 [내 연애의 기억]처럼 독특한 로맨틱코미디를 만들겠다며 억지 공포스릴러를 영화 후반에 끼어 넣는 것보다 훨씬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이 로맨틱코미디를 통해 얻고자 하는 재미가 무엇인지 파악해서 적당히 그러한 재미를 채워주는 것, 그것이 상업 장르영화의 의무라고 한다면 [연애의 맛]은 그러한 의무에 충실한 로맨틱코미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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