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5년 아짧평

[생 로랑] - '이브 생 로랑'의 그 무엇도 담아내지 못한 전기영화

쭈니-1 2015. 7. 8. 16:59

 

 

감독 : 베르트랑 보넬로

주연 : 가스파르 울리엘, 레아 세이두, 루이스 가렐

개봉 : 2015년 4월 16일

관람 : 2015년 7월 6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패션에 대해서 문외한인 내가 이 영화에 관심을 가진 이유

 

대부분의 남성들이 그렇겠지만, 저도 패션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패션에 문외한이라고 해도 아는 패션 디자이너는 있습니다. 바로 '코코 샤넬'과 '이브 생 로랑'입니다. 패션에 대해서 잘 모르고 관심조차 없다고해도 그들의 이름 정도는 어디에선가 주워 들 수밖에 없을 정도로 '코코 샤넬'과 '이브 생 로랑'은 패션의 아이콘과도 같은 인물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코코 샤넬'과 '이브 생 로랑'의 일생은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2009년 8월에 국내 개봉한 앤 폰테인 감독의 [코코 샤넬]은 제목 그대로 '코코 샤넬'의 일생을 다룬 영화로 오드리 토투가 '코코 샤넬'을 연기했습니다.

'이브 생 로랑'의 전기 영화는 우연히도 비슷한 시기에 두편의 영화가 국내에 개봉했었습니다. 2014년 6월에는 자릴 라스페르 감독, 피에르 니네이 주연의 [이브 생 로랑]이, 2015년 4월에는 베르트랑 보넬로 감독, 가스파르 울리엘 주연의 [생 로랑]이 개봉한 것입니다. 비록 패션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지만 '이브 생 로랑'이 어떻게 패션의 아이콘이 되었는지 궁금했던 저는 일요일 저녁 [생 로랑]에 도전하였습니다.

 

 

 

나는 프랑스 전기 영화와는 맞지 않나보다.

 

하지만 저는 [생 로랑]을 보며 이 영화에 도전한 제 선택에 대해 후회를 했습니다. 우선 너무 재미가 없었고, 뭔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않았으며, 영화가 끝나고나서는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라는 삐딱한 의문만 남았습니다. 러닝타임은 또 어찌나 길던지 2시간 30분 영화를 이틀에 걸쳐 졸음을 쫓으며 겨우 봐야 했습니다.

물론 제가 이 영화에 만족하지 못했다는 것이 [생 로랑]의 만듦새에 대한 객관적인 척도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생 로랑]은 제 영화적 취향과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영화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생 로랑]을 보며 느꼈던 실망감은 2009년 [코코 샤넬]을 보면서도 똑같이 느꼈으니 어쩌면 저는 프랑스에서 제작한 전기 영화와는 취향이 맞지 않는 것인지도...

그리고 이렇게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은 영화를 본 후, 영화에 대한 제 감상평을 쓴다는 것은 더욱 난감한 일입니다. 재미가 있고, 없고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든지 쓸 자신이 있지만,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굉장히 곤욕스러운 일이죠. 그래도 [생 로랑]이 왜 제 취향이 맞지 않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브 생 로랑'의 전기 영화에 무엇을 담으려 했나?

 

전기 영화란, 어느 인물의 일생, 혹은 중요한 어느 시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그렇기에 전기 영화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실존 인물의 우리가 몰랐던 숨겨진 모습을 담아낸다던가, 아니면 실존 인물의 감동적인 일생을 통해 관객에게 교훈을 주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재구성해서 색다른 재미를 주던가... 

최근 케이블 TV에서 우연히 봤던 [42]가 대표적입니다. [42]는 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거인 재키 로빈슨의 이야기를 담은 전기 영화로 그가 인종차별이 심했던 당시 메이저리그에서 어떻게 버텨냈고, 어떻게 전설이 되었는지 감동적으로 보여준 영화입니다. 야구에 관심이 없는 구피조차 [42]를 보며 재키 로빈슨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을 정도로 잘 만든 전기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생 로랑]은 '이브 생 로랑'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려한 것인지 불분명합니다. 21세의 나이로 크리스찬 디올의 수석디자이너가 된 이브 생 로랑(가스파르 울리엘)의 천재성을 부각시킨 영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생 우울증, 약물 중독, 알코올 중독에 시달렸던 천재의 불행한 인생을 다룬 영화도 아니었습니다. 도대체 '이브 생 로랑'의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 저로써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불친절한 설명, 나는 '이브 생 로랑'을 잘 모른단 말이다.

 

제가 [생 로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이유는 영화의 불친절한 설명 탓도 있습니다. 물론 유명한 인물의 경우는 구구절절하게 설명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그 정도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마도 [생 로랑]은 그렇게 생각한 듯합니다. 유명한 패션 다자이너인 '이브 생 로랑'에 대해서 관객들은 어느정도 알고 영화를 볼 것이라는...

하지만 저처럼 '이브 생 로랑'의 이름만 알고 있을 뿐, 그가 무엇을 해냈고,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전혀 몰랐던 관객에게 이러한 영화의 불친절함은 당혹스러움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생 로랑]을 보며 이유도 모르는채 괴로워하는 '이브 생 로랑'의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그래서 뭘 어쨌다고?' [생 로랑]을 보고나서 기억에 남는 것은 그저 파격적인 '이브 생 로랑'의 동성애 장면 뿐이었습니다. [생 로랑]을 보며 '이브 생 로랑'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싶었던 제 소망은 그렇게 무너져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