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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플레이스] - 과거의 진실에 갇혀버린 영화적 재미

쭈니-1 2015. 10. 2. 18:12

 

 

감독 : 질스 파겟-브레너

주연 : 샤를리즈 테른, 니콜라스 홀트, 타이 쉐리던, 클로이 모레츠

개봉 : 2015년 7월 15일

관람 : 2015년 9월 29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나를 찾아줘]의 길리언 플린이 쓴 또 다른 소설

 

2014년 개봉한 스릴러 영화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영화는 무엇일까요? 저는 감히 데이빗 핀처 감독의 [나를 찾아줘]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겉보기엔 완벽한 아내이자 여자인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의 실종 사건으로 유력한 용의자가 된 남편 닉(벤 애플렉)이 에이미의 숨겨진 추악한 진실을 밝혀나가는 [나를 찾아줘]는 영화를 본 후 잠든 구피의 모습마저 섬뜩하게 느껴지게 만들 정도로 유부남에게는 세상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무서웠던 영화였습니다.

[나를 찾아줘] 덕분에 저는 로자먼드 파이크라는 이름의 낯선 여배우에게 호기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후 [꾸뻬씨의 행복여행], [해피 홀리데이]에서 로자먼드 파이크는 [나를 찾아줘]와는 180도로 다른 귀여운 연기로 저를 사로 잡았습니다. 

[나를 찾아줘]는 로자먼드 파이크 외에도 또 한명의 여성 이름을 제게 각인시켰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를 찾아줘]의 원작 소설가인 길리언 플린입니다. 제가 [다크 플레이스]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샤를리즈 테른, 니콜라스 홀트, 클로이 모레츠라는 매력적인 주연배우들보다는 길리언 플린의 또 다른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과연 길리언 플린은 [다크 플레이스]에서는 또 어떤 섬뜩한 스릴러를 제게 보여줄까요?

 

 

 

오빠가 엄마와 두 언니를 살해했다.

 

[다크 플레이스]는 어느 가정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살인사건으로 영화를 시작합니다. 범인은 사탄 숭배에 빠져 있던 장남 벤(타이 쉐리던). 그는 어머니(크리스티나 헨드릭스)와 어린 두 여동생을 잔혹하게 살해했습니다. 유일한 생존자는 막내 리비입니다. 리비의 증언으로 벤은 감옥에 수감됩니다. 그리고 25년이라는 시간이 흐릅니다.

리비는 후원자들이 보내준 후원금과 그날의 끔찍한 사건을 담은 책의 판매 수익으로 근근히 살아갑니다. 하지만 일정한 직업이 없는 리비의 통장 잔고는 바닥을 드러냈고, 그러한 와중에 25년 전 사건에 의구심을 품은 탐정 클럽의 라일(니콜라스 홀트)에게 연락을 받습니다. 결국 돈이 필요한 리비는 라일의 초대에 응하게 됩니다.

이제 리비는 결코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던 25년전 악몽을 다시 들춰내야 합니다. 오빠 벤이 사랑하는 가족들을 죽였다는 사실에 단 한치의 의심도 없었던 리비는 라일과 함께 과거의 진실을 하나씩 풀어나가며 자신이 미처 몰랐던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소재, 하지만 실망스러운 전개

 

사실 저는 [다크 플레이스]를 보기 전, 이 영화에 대해서 상당히 기대를 했었습니다. [나를 찾아줘]의 길리언 플린의 탄탄한 원작, 그리고 매력적이고 믿음직한 배우들과 이 영화를 먼저 본 구피의 추천까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제겐 그냥 그랬습니다. 특별히 실망스러웠던 영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를 찾아줘]처럼 충격적인 영화도 아니었습니다.

[다크 플레이스]는 분명 흥미로운 소재를 가지고 있습니다. 25년전의 끔찍한 사건. 이미 밝혀진 범인. 그리고 25년이 흐른 뒤에 밝혀지는 진실. 만약 [다크 플레이스]가 리비(샤를리즈 테른)의 시선으로 25년전 사건의 진실을 하나씩 벗겨나가는 형식이었다면 저 역시도 리비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진실 밝히기에 몰입하며 스릴러 영화로써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다크 플레이스]는 25년전 사건에 대해서 리비 뿐만 아니라 벤과 리비의 어머니인 패티의 시선까지도 관객에게 친절하게 보여줍니다. 그럼으로써 관객 스스로 리비와 함께 진실을 파헤치게 하는 것이 아닌, 수동적으로 그저 25년전 사건을 바라보게 만들어버립니다. 결국 이 영화가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과거의 진실이 아닌, 과거의 거짓에 갇힌 리비의 성장이었던 셈입니다. 그럼으로써 스릴러 영화의 재미를 스스로 잃어버린 것이죠.

 

 

 

과거의 거짓에 갇힌 리비의 성장 (결말 포함)

 

이 영화는 25년전 사건의 진실이라는 스릴러 영화로써의 재미를 포기하고 리비의 성장에 주목합니다. 실제 리비는 끔찍한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라는 세간의 관심때문에 25년전과 비교해서 전혀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채 과거의 거짓에 갇혀 있는 생활을 합니다. 25년만에 감옥의 면회장에서 만난 벤(코리 스톨)은 리비에게 "갇혀 있는 것은 나인데, 밖에 있는 네가 더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이는구나."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리비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려면 좀 더 리비의 캐릭터를 세삼하게 잡았어야 했다는 점입니다. 실제 리비가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라일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탐정 클럽 회원의 비난에 발끈해서 25년동안 외면했던 진실을 파헤치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분명 영화 초반 리비는 어른이라 하기엔 무책임한 성장이 멈춘 철부지의 모습이었는데, 갑자기 진실을 파헤치겠다고 나서니 당혹스럽더군요.

그리고 25년전 패티의 선택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파산 직전인 그녀가 아이들을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어느정도 이해가 되지만, 살인자를 아이들이 자고 있는 집으로 불러들인다는 설정은 한 아이의 아버지로써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선택이었습니다.

 

 

 

정해져 있었던 결말에 짜맞춘 느낌

 

[다크 플레이스]는 25년전 과거의 플래쉬백을 리비와 벤, 그리고 패티의 시선으로 너무 친절하게 관객에게 보여줌으로써 스스로 스릴러 영화의 재미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리비의 캐릭터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함으로써 리비의 성장을 담아내는 것도 실패했습니다. 게다가 크리시의 거짓말, 패티의 극단적인 선택, 디온드라(클로이 모레츠)의 광기 등 영화 속의 캐릭터들의 행동 역시 전혀 공감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결말을 미리 정해놓고 그 결말에 모든 이야기를 억지로 짜맞춘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크 플레이스]는 1시간 55분동안 그럭저럭 즐길 수 있는 스릴러 영화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다크 플레이스]가 개봉하기 전에 이미 [나를 찾아줘]라는 같은 작가의 걸출한 스릴러가 있었다는 점을 우리는 명심해야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 영화에 그럭저럭한 재미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한가지 기대이상이었던 부분이 있다면 샤를리즈 테른의 연기입니다. 처음 그녀를 봤을땐 전형적인 금발 미녀 배우인줄 알았는데, [몬스터]로 저를 깜짝 놀라게 하고,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로 저를 열광시키더니, [다크 플레이스]에서도 과거의 거짓으로 피폐해진 리비의 모습을 안정적으로 담아냈습니다. 비록 [다크 플레이스]는 스릴러 영화로써 제게 실망스러운 영화였지만 저는 그냥 샤를리즈 테른의 연기만으로 만족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