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마이클 카튼 존스
주연 : 샤론 스톤, 데이빗 모리세이
개봉 : 2006년 3월 30일
관람 : 2006년 3월 31일
등급 : 18세 이상
그녀가 돌아왔다.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정확히 1992년 6월 23일 허리우드 극장에서 저는 [원초적 본능]을 관람했습니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라는 명함을 앞세워 당당하게 극장으로 입장한 저는 이 당돌한 에로틱 스릴러 영화에 한동안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커다란 극장 화면으로 보게된 매혹적인 여인의 나체와 당시로는 파격적이었던 자극적인 장면들, 그리고 마지막에 범인의 정체를 모호하게 처리함으로써 영화가 끝나고나서도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곰곰히 생각하게만드는 열린 결말 등. [원초적 본능]은 에로틱 스릴러로써의 장점을 십분 살린 정말 완벽한 상업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15년후 [원초적 본능 2]가 개봉하였습니다. [쇼걸], [스타쉽 트루퍼스], [할로우 맨]의 실패로 재기불능 상태에 빠진 폴 버호벤 감독 대신 마이클 카튼 존스라는 새로운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샤론 스톤과 치열한 본능 게임을 벌이던 마이클 더글라스는 데이빗 모리세이라는 낯설은 배우로 교체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샤론 스톤의 나이가 이제 50살을 바라보는 중년의 나이가 되었으니, 사실 [원초적 본능 2]를 기대하기엔 장애물이 너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원초적 본능 2]를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불안 요소도 많았지만 분명 영화 그 자체만으로도 제 마음을 설레이게할 이유는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기전 [원초적 본능]으로부터 비롯된 과도한 기대감을 버리고 [원초적 본능 2] 그 자체만으로 영화를 보자고 수없이 제 자신에게 다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결국 [원초적 본능 2]는 제겐 상당히 실망스러운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폴 버호벤이 그립다.
2년전 여름, 반가운 친구와도 같은 영화 한편이 개봉되었었습니다. 무려 13년만에 돌아온 [터미네이터 3 : 라이즈 오브 더 머신]이었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이 전설적인 SF 시리즈의 3번째 영화는 그러나 제임스 카메론 대신 조나단 모스토우라는 새로운 감독을 맞아 들였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아놀드 슈왈츠네거를 제외하곤 린다 해밀턴, 에드워드 펄롱 등 전편의 영웅들이 대거 빠져버리고 닉 스탈, 클레어 데인즈 등 새로운 배우들로 출연진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래서인지 [터미네이터 3]는 전편의 명성과 비교해서는 턱없이 모자란 그저 평범한 때리고 부수는 SF영화로 머물고 말았습니다. 13년만의 귀환치고는 실망스러운 영화였죠.
[원초적 본능 2]는 [터미네이터 3]와 비슷한 길을 걷습니다. 15년만의 속편이라는 태생적 한계에서부터 비롯된 감독 교체, 그리고 주요 출연진의 교체 등. 그 중에서도 역시 가장 아쉬운 것은 폴 버호벤이 메가폰을 잡지 못했다는 점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폴 버호벤 감독은 [원초적 본능]의 전세계적인 성공이후 하향세를 그렸습니다. 특히 제 2의 [원초적 본능]으로 기대를 모았던 [쇼걸]의 실패는 그에게 뼈아팠을 겁니다. 그런 까닭에 그는 자신의 필생의 역작이라는 십자군 전쟁에 대한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을 리들리 스콧 감독에게 빼앗기는 수모도 당했죠. [원초적 본능 2]의 연출 역시 타의에 의해 빼앗긴 것인지, 아니면 자의에 의해 포기한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폴 버호벤이 빠진 [원초적 본능 2]는 에로틱 스릴로 흉내만 내는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폴 버호벤의 빈자리를 대신 메꾼 마이클 카튼 존스 감독을 사실 저는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가 97년 만든 브루스 윌리스, 리차드 기어 주연의 [자칼]에 너무 큰 실망을 했었기에 그 실망감이 무려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져온 것이죠. 그리고 아쉽게도 [원초적 본능 2]는 그러한 실망감을 더욱 부채질만 했습니다. 암튼 이래저래 폴 버호벤 감독이 그립네요.
도대체 이 남자는 뭐란 말인가?
그리고 바로 이 남자, 데이빗 모리세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샤론 스톤의 적수가 되지 못하는 듯이 보입니다.
[원초적 본능]은 샤론 스톤의 매력이 돋보이는 영화이긴 했지만 그 다른 축으로는 마이클 더글라스라는 걸출한 배우가 있었기에 영화는 더욱 재미있을 수 있었습니다. 매력적인 팜므파탈과 거친 마초의 대결은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채 영화의 마지막 그 순간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그것은 폴 버호벤 감독의 철저하게 계산된 캐스팅의 묘미였습니다. 당시 무명 배우에 불과했던 샤론 스톤에 비해 마이클 더글라스는 이미 인지도가 높은 배우였기에 그러한 그의 인지도를 이용하여 관객의 시선이 너무 샤론 스톤에게 기우는 것을 미연에 방지한 겁니다.
하지만 [원초적 본능 2]의 데이빗 모리세이는 전혀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시종일관 샤론 스톤에게 끌려만 다니던 그는 마치 그녀의 조종에 반항할 힘마저 느껴지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합니다. 그의 그런 무기력한 연기는 영화의 추가 너무 샤론 스톤에게 기울어 버림으로써 긴장감을 떨어뜨립니다.
마이클 더글라스라는 걸출한 배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초적 본능]이 샤론 스톤의 영화로 기억되고 있는 현실에서 데이빗 모리세이라는 매력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배우의 존재는 먼훗날 [원초적 본능 2]를 이야기할때에 까맣게 잊혀질 듯이 보입니다. 15년후쯤 '그런데 그 영화에 남자 배우가 출연했던가? 글쎄 생각이 안나네. 그냥 샤론 스톤만 기억나.'라고 말할지도 모르죠. 과연 마이클 카튼 존스 감독은 무슨 생각으로 그를 캐스팅했을까요?
차라리 흉내라도 내지 말던가.
이렇듯 저는 아무리 몸부림쳐도 [원초적 본능]을 잊고 [원초적 본능 2]를 감상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저만의 탓은 아닙니다. [원초적 본능 2] 역시 전편과는 차별화된 전략 대신 전편의 스토리 라인을 교묘하게 기대는 모양새를 취했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시작부터가 비슷합니다. 전직 로큰롤 가수의 죽음과 그로인해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그의 여자친구 캐더린(샤론 스톤), 그리고 그녀를 의심하면서도 그녀의 매력에 점차 빠지는 형사 닉(마이클 더글라스)으로 시작되는 [원초적 본능]. [원초적 본능 2]는 형사 닉대신 정신과 의사 마이클(데이빗 모리세이)으로 남자 주인공의 직업이 바뀌었을 뿐입니다.
닉의 부패를 수사하던 동료 형사 닉슨의 죽음은 마이클의 과거 실수를 기사화하려던 잡지사 기사의 죽음과 맞물리고, 닉의 애인인 가너(진 트리플혼)와 캐더린의 관계는 마이클의 전부인과 캐더린의 관계를 연상하게 합니다.
마지막 열린 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범인이 가너로 밝혀진후 닉과 캐더린의 섹스씬에서 폴 버호벤 감독은 침대밑에 놓여진 얼음 송곳을 보여주며 '과연 범인이 가너였을까?'라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관객에게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질문은 마이클 카튼 존스 감독도 던집니다. 마지막 마이클과 캐더린의 만남 장면에서...
이렇듯 이 영화 자체가 전편과 동일한 스토리 전개를 보여주며 철저하게 전편을 흉내냅니다. 하지만 감독의 연출력도, 남자 주연 배우의 인지도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샤론 스톤의 매력도 전편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닫고 오히려 전편과는 차별화된 스토리 전개를 보여주며 '전편은 잊으라니까...'라고 호기있게 관객에게 주문을 했다면 차라리 더 좋았을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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