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주연 : 랄프 파인즈, 레이첼 와이즈
개봉 : 2006년 5월 4일
관람 : 2006년 4월 17일
등급 : 15세 이상
난 그녀를 단번에 알아봤다.
이번 아카데미 수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은 [콘스탄트 가드너]의 레이첼 와이즈가 받았습니다. 레이첼 와이즈를 [미이라]의 여주인공으로만 인식하고 있었던 분들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을테지만, 저는 비로서 그녀의 능력이 인정을 받았다는 것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레이첼 와이즈... 제가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체인 리액션]이라는 영화에서였습니다. 키아누 리브스, 모건 프리먼 주연의 액션영화인 [체인 리액션]은 솔직히 그저 뻔하디 뻔한 헐리우드 액션 영화의 범주에서 단 한발자욱도 벗어나지 못한 그런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뻔한 영화에서도 레이첼 와이즈는 빛이 났습니다. 다른 헐리우드의 늘씬한 미녀들에 비해 결코 예쁘다고 할수 없는 외모이지만 당당하면서도 호감이 가는 그녀의 인상은 굉장히 강렬했습니다.
그러나 [체인 리액션]이후 3년동안 전 그녀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영화가 국내에 개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러다 무심코 봤던 [미이라]에서 다시 그녀의 얼굴을 발견했을때 전 마음속으로 환호를 질렀습니다. 3년만에 다시 찾아온 그녀는 여전히 당당했으며, 여전히 매력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국내에 소개된 레이첼 와이즈의 영화는 [체인 리액션]을 비롯하여 [미이라 1, 2], [콘스탄틴] 등 헐리우드 오락 영화가 주를 이룹니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인 [어바웃 어 보이]와 섬뜩한 스릴러인 [런어웨이]에서도 그녀의 매력은 돋보이지는 않지만 잘 녹아드는 것을 보면 결코 그녀를 액션 영화의 들러리같은 여주인공으로 매도해서는 안될것 같습니다.
그리고 결국 [콘스탄트 가드너]에서 레이첼 와이즈는 자신의 진가를 발휘합니다. 당당함, 활활 타오르는 열정, 그리고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모습까지... 비록 그녀의 출연분량은 랄프 파인즈에 비해 적었지만 명백히 [콘스탄트 가드너]는 레이첼 와이즈의 영화였습니다. 이렇듯 그녀의 매력이 이렇게 완벽하게 발휘될때까지 [체인 리 액션]이후 무려 10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그녀의 매력을 만끽할수 시간은 아직 몇십년이나 남아 있기에 전 행복합니다.
사랑이 그를 바꿨다.
[콘스탄트 가드너]는 기본적으로 스릴러 영화입니다. 아프리카의 빈민들을 상대로한 영국의 거대 제약회사의 음모를 그린 이 영화는 최근에 봤던 아랍에서의 미국과 미국의 거대 석유 회사의 음모를 그린 [시리아나]와 비슷한 느낌의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시리아나]와는 달리 [콘스탄트 가드너]는 저스틴(랄프 파인즈)과 테사(레이첼 와이즈)를 중심으로 사건을 풀어나감으로써 영화적인 재미를 획득합니다.
영화는 테사의 의문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조용하고 온화한 성품의 외교관인 저스틴은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담담한 표정으로 슬픔을 감추려 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영화는 과거 테사의 모습을 잡아냅니다. 다소 공격적이지만 진실과 정의, 그리고 삶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테사의 모습은 저스틴의 회상속에서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그려집니다.
아내를 잃은 슬픔도 잠시, 이제 저스틴은 테사의 죽음에 무언가 음모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를 지키기위해 저스틴에게만은 이야기하지 않았던 테사의 비밀을 밝혀내며 점차 저스틴은 변해갑니다. 테사가 밝히기에는 너무 거대하고 위험했던 음모에 조금씩 다가서는 동안 저스틴은 죽음조차도 초월한 용기를 발휘합니다. 아마도 테사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용기를... 그렇게 사랑이 저스틴을 바뀌어놓습니다.
[콘스탄트 가드너]는 스릴러 영화이지만 동시에 애닮픈 러브 스토리이기도 하며, 모든 것에 방관자적인 태도를 보였던 한 남자가 점차 진실을 파헤치는 열정적인 인권 운동가로 변해가는 하나의 성장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서로 상반된 장르들이 서로 충돌하며 영화를 어지럽힐만도 하지만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은 놀랍게도 이 충돌을 오히려 서로의 장르에 대한 상호 보완적인 역할로 바꾸어 놓습니다.
거대 기업의 음모라는 스릴러 장르에선 흔히 사용되는 소재가 저스틴과 테사의 사랑이라는 소재와 만남으로써 신선함을 안겨줬으며, 이들의 사랑은 저스틴의 변화에도 관객의 입장에서 충분히 납득할만한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영화의 감동을 키워줍니다. 결국 테사의 사랑이 영화의 재미와 감동을 몇배로 키워준 셈입니다.
스릴러를 보고 잔잔한 여운을 느껴본적이 있는가?
긍극적으로 저는 스릴러는 관객과의 두뇌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독은 영화속에 비밀을 꽁꽁 숨겨두고 관객은 그 비밀을 스스로 찾음으로써 영화적인 쾌감을 느끼는 장르가 스릴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스릴러 영화에서 잔잔한 여운은 가장 어울리지 않는 악세사리와도 같으며 오히려 영화의 재미를 해치는 요소가 될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예외도 있었습니다. 2004년 최고의 스릴러라고 제 스스로 생각했던 [나비효과]의 경우 마지막 두 주인공의 엇갈리는 시선의 그 찡한 여운은 한동안 절 사로잡았었죠. 하지만 거대 기업의 음모라는 전통적인 스릴러의 스토리 라인을 가진 영화에서 찡한 여운을 느낄줄 이 영화를 보기전까지만해도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아프리카의 그 광할한 자연과 그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실험쥐가 되어야했던 빈민들... 테사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이 추악한 음모를 밝히려 했던 것처럼 영화를 보고있던 저 역시 지구의 반대편 '동물의 왕국'에서나 봤음직한 너무나도 낯설은 검은 대륙의 비극이 가슴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저스틴을 사랑했기에 저스틴에게만은 목숨을 빼앗아갈 수도 있는 위험한 음모를 숨겼던 테사, 하지만 테사의 그러한 사랑은 저스틴에게 더욱더 테사가 밝히려했던 진실에 대한 목마름으로 다가왔던 겁니다. 아내의 진실한 사랑조차 방관자적인 태도로 일삼았던 저스틴의 죄책감은 정의에 대한, 진실에 대한 활활 타오르는 열정으로 단 한순간 그 모든것을 불태웁니다. 그렇게 저스틴은 테사와의 사랑을 완성시킵니다.
마지막 테사를 바라보던 저스틴의 그 눈빛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바로 그 눈빛이었습니다. 비록 그 사랑으로 인하여 그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반대로 그 사랑으로인하여 추악한 진실을 밝힐수 있었고, 그것으로 인하여 테사에 대한 그 나태했던 사랑의 죄책감에서 벗어난 가장 편안하면서도 행복한 눈빛이었습니다.
사랑으로 모든 것을 변화시키자.
영화를 본 후 집으로 향하던 길, 문득 외국의 어떤 제약 회사에서 약을 팔기위해 존재하지도 않은 병을 퍼트려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났습니다. 그리고 최근 현대그룹에 대한 검찰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뉴스도 요즘 제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우린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와 반대편에서 팽팽하게 대립했던 공산주의는 이제 몰락의 길을 가고 있고, 무한 경쟁 시대인 자본주의가 지구촌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에는 물질만능주의라는 치명적인 함정이 있습니다. 인간의 건강을 책임져야할 제약 회사가 오히려 인간의 건강을 해침으로써 돈을 벌어 보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른 것도 바로 이 물질만능주의에 의한 것이며, 너무 거대해져 부정부패를 일삼는 회사의 비리에 맞서는 정부의 힘겨운 싸움 역시 이 물질만능주의를 파타하려는 의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이 모든 노력은 다시 제자리 걸음을 할지도 모릅니다. 약을 팔기위한 제약 회사의 음모는 잠시 해외 토픽으로 떠올랐다가 사라질 것이며, 거대 회사의 부정부패는 어마어마한 현금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눈가리고 아웅식의 대처로 그대로 묻혀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조금 낙천적인 생각이겠지만 사랑이 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람에 대한 사랑, 진실에 대한 사랑, 삶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면 물질만능주의로 치닫고 있는 우리 자본주의 사회도 어쩌면 살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저스틴과 마찬가지로 방관자적 삶을 지지하는 제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결국 테사의 사랑이 영화를 본 관객조차 바꾸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시... 사랑이 모든 것을 바꾸었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변화가 얼마나 지속될수 있는가겠죠.
IP Address : 218.49.84.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