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5년 영화이야기

[암살] - 비장함과 코믹함의 조화 속에 담아낸 시대적 아픔의 여운

쭈니-1 2015. 7. 29. 14:44

 

 

감독 : 최동훈

주연 : 전지현, 하정우, 이정재, 오달수, 조진웅, 최덕문, 이경영

개봉 : 2015년 7월 22일

관람 : 2015년 7월 24일

등급 : 15세 관람가

 

 

내가 최동훈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흥행의 마술사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제게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죠스]를 시작으로 [E.T.],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쥬라기 공원 시리즈] 등 수 많은 흥행작을 배출한 감독겸 제작자입니다. 그리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타이타닉]과 [아바타]를 통해 전세계 흥행 신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눈을 돌린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강제규 감독입니다. [은행나무 침대]로 감독 데뷔를 한 그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시작을 알렸던 [쉬리]와 천만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연출하며 흥행 감독으로써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여기에 [해운대]와 [국제시장]이라는 두편의 천만 영화를 보유한 윤제균 감독도 빼놓을 수가 없죠.

상업영화 감독이라면 흥행성적은 곧바로 감독의 능력과 직결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흥행의 마술사라는 칭호가 붙은 감독이라 할지라도 흥행 실패작은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카데미 트로피에 유난히 집착하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아카데미용 영화를 다수 만들어서 흥행 실패작도 꽤 많은 편이며,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경우는 작품성과 상관없이 흥행성적만으로는 [어비스]가 옥의 티입니다. 강제규 감독은 [마이웨이]가 흥행에 실패했고 최근작인 [장수상회]도 흥행성적이 신통치 않았습니다. 윤제균 감독 역시 [낭만자객]이라는 잊고 싶은 영화를 연출했었습니다.

 

제가 갑자기 흥행의 마술사 이야기를 꺼낸 것은 최동훈 감독때문입니다. 최동훈 감독은 현재까지 흥행 실패작이 단 한편도 없는 거의 유일한 감독입니다. 2004년 [범죄의 재구성]을 시작으로 2006년 [타짜], 2009년 [전우치]로 흥행 성공의 신화를 이어나가더니 2012년에는 [도둑들]로 천만영화 감독의 자리도 차지했습니다. 최근 개봉한 [암살]도 개봉 첫주 파죽지세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최동훈 감독의 명성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언젠가는 최동훈 감독도 흥행 실패의 쓴맛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 관객들은 최동훈 감독의 영화를 좋아합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 역시 최동훈 감독의 영화는 모두 극장에서 봤고, 그들 영화를 모두 재미있게 관람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최동훈 감독의 영화에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은 탄탄한 이야기 덕분입니다.

최동훈 감독은 타고난 이야기꾼입니다. 그는 상업영화 장르의 틀을 깨지 않는 범위내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창출할줄 아는 감독입니다. 그가 범죄스릴러 영화에서 재능을 발휘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범죄스릴러 영화의 경우는 치밀한 스토리 라인이 뒷받침되어야 영화적 재미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최동훈 감독은 2004년 당시 불모지에 가까웠던 한국형 범죄 스릴러 장르를 [범죄의 재구성]로 가능성을 보여줬고, [도둑들]로 한국형 범죄스릴러를 완성해냈습니다. 자칫 유치해지기 쉬운 한국형 슈퍼 히어로 영화인 [전우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치밀한 이야기의 힘이죠. 그리고 그러한 그의 이야기꾼의 기질은 [암살]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영화의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라는 배경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암살]은 1933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한 영화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두 거물인 김구와 김원봉(조승우)은 조선주둔군 사령관 카와구치 마모루와 친일파 강인국(이경영) 암살작전을 함께 펼쳐 나가기로 합니다. 암살작전을 위해서 일본측에 노출되지 않은 세명의 독립 투사가 필요한데,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전지현),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조진웅), 그리고 폭탄 전문가 황덕삼(최덕문)이 지목됩니다.

사실 여기까지는 아주 평범한 독립투사의 영웅담입니다. 하지만 안옥윤 일행의 암살작전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며 이야기가 다소 복잡하게 진행됩니다. 김구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임시정부 경무국 대장 염석진(이정재)의 배신과 살인청부업자 하와이 피스톨(하정우)의 개입, 그리고 강인국과 안옥윤의 관계까지 밝혀지며 암살작전은 더욱 알수없는 미궁으로 빠져듭니다.

일제강점기는 반만년이라는 유구한 우리 역사에서 고작 35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부분이며, 아직까지 치유되지 못한 상처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대부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한 영화는 비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비장함이 영화 흥행적으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최동훈 감독도 분명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면서 영화의 분위기를 마냥 가볍게 할 수만은 없습니다. 2008년에 개봉해서 흥행에 실패한 정지우 감독의 [모던보이]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박해일과 김혜수가 주연을 맡은 [모던보이]는 1937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조선총독부 1급 서기관 이해명(박해일)이 신비한 매력을 지닌 댄서 조난실(김혜수)에게 첫눈에 반하면서 벌어지는 멜로 영화입니다. 

물론 [모던보이]의 마지막 부분은 비장하게 마무리되었지만, 귀여운 바람둥이 이해명에 의해서 영화 전반적인 분위기는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로 포장되었습니다. 문제는 귀여운 바람둥이 이해명과 섹시한 팜므파탈 조난실의 로맨틱 코미디와 일제강점기라는 비장한 분위기가 부조화를 이뤘다는 것인데, 결국 그러한 문제는 [모던보이]를 흥행 실패의 길로 안내하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한 영화는 너무 비장해도 안되고, 너무 가벼워도 안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최동훈 감독은 이 난관을 어떻게 해쳐나갔을까요? 최동훈 감독은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비장하게 이끌고 나가지만 속사포와 황덕삼, 그리고 하와이 피스톨의 동료인 영감(오달수) 등 코믹한 조연 캐릭터를 이용해서 영화가 너무 비장하게 진행되는 것을 막습니다. 결국 비장함과 코믹함의 조화인데, [모던보이]가 상반된 두 분위기의 조화에 실패했다면 [암살]은 완벽한 조화를 자랑합니다.

 

 

안옥윤을 중심으로 본 비장함과 코믹함의 조화

 

[암살]의 비장함과 코믹함의 조화는 안옥윤을 중심으로 영화를 보면 더 잘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안옥윤은 일제강점기에 어울리는 비장한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최동훈 감독은 관객이 안옥윤이라는 캐릭터의 과도한 비장함에 지치지 않게끔 여러 장치들을 마련해놓습니다. 우선 안옥윤과 하와이 피스톨의 멜로 라인입니다. 안옥윤이 비장한 캐릭터라면 하와이 피스톨은 살인청부업자이지만 영감과 함께 영화의 가벼운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그런데 안옥윤과 하와이 피스톨이 의외로 잘 어울립니다.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지 내 한 카페에서 안옥윤과 하와이 피스톨이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부부행세를 하는 장면만 봐도 그렇습니다. 커피를 꼭 한번 마셔보고 싶다는 안옥윤은 비장한 독립투사이지만 한편으로는 소녀 감성을 지닌 평범한 여성이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그녀가 얼떨결에 능구렁이같은 하와이 피스톨과 부부행세를 하며 위기를 모면하는 장면은 비장함이 코믹함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게다가 하와이 피스톨은 마냥 가볍기만 한 캐릭터가 아닙니다. 영화 후반부 그가 살인청부업자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아픈 사연이 소개됩니다.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 아버지를 죽여야만 했던 젊은 애국 청년단 살부계의 사연은 시대를 잘못 태어난 안옥윤과 하와이 피스톨를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줍니다. 그렇기에 둘의 사랑은 비장하고 가벼우면서도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의 아픔과 잘 어울렸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와이 피스톨과 [모던보이]의 이해명이 서로 다른 부분입니다.

 

최동훈 감독의 역량이 돋보이는 부분은 또 있습니다. 바로 안옥윤에게 쌍둥이가 있다는 설정입니다. 사실 쌍둥이라는 설정은 자칫 잘못 이용하면 억지설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관객에게 쌍둥이 설정이 억지가 아님을 먼저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최동훈 감독은 영화의 오프닝을 1911년으로 시작합니다. 강인국이 본격적으로 친일파로써 활동을 시작하는 1911년.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바로 그날의 사건에서부터입니다.

모든 영화에서 오프닝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최동훈 감독은 1911년을 담은 오프닝에서 [암살]의 모든 것을 담아 냅니다. 안옥윤과 강인국의 관계가 설명되었고, 그녀가 쌍둥이라는 사실도 밝힘으로써 억지설정이라는 비난도 피했습니다. 그리고 염석진의 배신도 암시함으로써 복잡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런히 정리정돈해 놓습니다. 몇분에 불과한 오프닝으로 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게다가 안옥윤이 쌍둥이라는 설정은 신의 한수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거친 독립투사가 된 안옥윤과는 달리 강인국의 밑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미츠코는 시대의 아픔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가벼운 캐릭터입니다. 결국 안옥윤이 [베를린]의 련정희라면 미츠코는 [도둑들]의 예니콜입니다. 이러한 전지현의 1인 2역을 통해 최동훈 감독은 전지현의 연기변신과 매력발산이라는 두가지 효과를 얻어냈고, 비장함과 코믹함의 조화도 보여준 것입니다. 

 

 

시대의 아픔이 만들어낸 지옥도

 

결국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한 모든 영화들의 종착지는 시대의 아픔을 표현한 비장함일 수 밖에 없습니다. [암살]도 마찬가지입니다. [암살]에서 비장함의 정점은 바로 미츠코와 카와구치의 결혼식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서 제가 눈여겨 본 것은 바로 악역이라 할 수 있는 친일파 강인국입니다. 강인국은 돈과 성공이라면 매국노가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초반 그는 자신의 이러한 매국노 행위가 쌍둥이 딸들을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강인국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습니다. 그 덕분에 그는 그토록 원했던 돈과 성공을 움켜 잡았습니다. 하지만 그 댓가로 아내와 쌍둥이 딸 중 하나를 잃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스스로를 위로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에겐 아직 한 명의 딸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미츠코의 모습을 보면 그녀가 얼마나 강인국의 애지중지 속에 온실의 화초처럼 자랐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악마에게 영혼을 판 댓가는 그의 가장 소중한 것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분명 미츠코와 카와구치의 결혼은 강인국이 그토록 원했던 돈과 성공의 마침표와도 같습니다. 이 결혼만 이뤄진다면 그는 최고의 권력을 움켜잡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강인국은 안옥윤이 22년전 사라진 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주저하지 않고 총을 쏩니다. 하지만 드디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믿었던 바로 그 순간 강인국의 지옥도가 펼쳐집니다.

 

흥미롭게도 강인국의 지옥도는 1949년 염석진의 지옥도로 이어집니다. '물지 못한다면 짖지도 말아야 한다'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배신하고 일본에 가담했던 염석진. 그는 해방 후에 친일 행적으로 재판에 넘겨지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무죄가 선고됩니다. 어쩌면 바로 그 순간 그는 '이제 되었다.'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경찰 고위간부인 그는 부하의 호위를 거부하고 여유롭게 거리를 거닐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바로 그 순간 염석진의 지옥도가 펼쳐집니다. 과거의 악령이 되살아난 것입니다. 그는 '해방될줄 몰랐다. 알았으면 배신을 했겠나?'라며 변명하지만 자신의 안위를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판 댓가는 강인국이 그러했듯이 염석진에게도 가혹했습니다. 그리고 최동훈 감독은 바로 그 순간 [암살]의 마지막 여운을 완성해냅니다.

일제강점기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아직 일제강점기동안 고국을 배신하고 부와 권력을 움켜 잡았던 친일파를 단죄하지 못했습니다. 해방이 된 1949년에도 염석진이 경찰 고위직 간부로 있다는 것은 그러한 우리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비록 염석진은 과거의 악령에 의해 죄의 댓가를 받았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합니다. [암살]에서 조국의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던 독립투사들이 '우리를 잊지 마세요.'라고 절규하는 것은 그러한 이유입니다. 독립투사는 잊혀지고, 친일파는 여전히 부와 명예를 움켜쥐고 있는 현실. [암살]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한 액션활극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최동훈 감독의 이야기와 만나 여운이 남는 영화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최동훈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암살]은 [도둑들]처럼 코믹하다가도 [베를린]처럼 비장하다.

최동훈 감독의 흥행의 마술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비장함과 코믹함의 조화를 잘 이뤄내기 때문이 아닐까?

게다가 [암살]에는 시대의 아픔과 그로인한 여운까지 있으니

당분간 최동훈 감독의 명성은 계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