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5년 영화이야기

[인사이드 아웃] - 어른이 된다는 것은 감정을 억누르기 시작한다는 것

쭈니-1 2015. 7. 17. 18:38

 

 

감독 : 피트 닥터

더빙 : 에이미 포엘러, 필리스 스미스, 케이틀리 디아스, 다이안 레인, 카일 맥라클란

개봉 : 2015년 7월 9일

관람 : 2015년 7월 12일

등급 : 전체 관람가

 

 

지금 나의 감정은 버럭이가 지배하고 있다.

 

우리 인간들은 수 많은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는 사랑, 기쁨과 같은 좋은 감정도 있지만, 슬픔, 우울과 같은 감정도 있고, 분노, 짜증, 미움과 같은 안좋은 감정들도 많습니다.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이면 저는 특히 짜증, 무기력 등의 감정에 쉽게 지배당합니다. 별 것 아는 일에 버럭 짜증을 내고, 해야할 일이 많은데도 일을 미루다가 무기력하게 하루를 보내고는 합니다. 

[인사이드 아웃]을 웅이와 함께 본 것은 장마비가 내렸던 지난 일요일입니다. 일요일에 본 영화를 5일이나 지나서야 영화 이야기를 쓰다니... 그만큼 제 하루는 요즘들어서 귀차니즘과 무기력에 휩싸여 있습니다. 특히 지난 일요일에 얻은 알레르기에 의한 가려움증은 제 무기력을 더욱 부채질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발목에 피가나도록 긁다가, 긁어도 시원하기는커녕 더 가려워져서 내 스스로에게 짜증을 내며 지난 5일을 보낸 것 같습니다.

이제 무더위도 한풀 꺾인 것 같고, 제가 짜증내며 긁었던 곳에는 자그마한 수십개의 딱지가 생겨서 이제 더이상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가렵지도, 따갑지도 않습니다. 그 덕분에 오늘은 5일동안 미뤄두었던 회사일도 처리하고, 이렇게 [인사이드 아웃]의 영화 이야기를 쓰겠다며 컴퓨터 앞에 앉을 여유도 생겼습니다.

 

무기력증에서 벗어나 지난 일요일에 봤던 [인사이드 아웃]을 다시한번 떠올려보니 이 영화의 소재가 지금의 제 상황과 딱 맞는 것 같습니다. 아마 제 머릿속의 상황을 영화화한다면 다섯개의 대표 감정 중에서 버럭이가 감정 컨트롤 본부를 지배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그만 기쁨이에게 지배권을 넘겨주면 좋겠네요. ^^ 

[인사이드 아웃]을 아직 못보신 분이라면 '이게 무슨 말인가?'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인사이드 아웃]의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인사이드 아웃]은 열두살 소녀 라일리(케이틀린 디아스)의 머릿속 이야기입니다. 라일리의 머릿속에는 다섯개의 감정인 기쁨(에이미 포엘러), 슬픔(필리스 스미스), 버럭, 까칠, 소심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 감정들은 기쁨의 리드 아래 라일리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자상한 부모님,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던 라일리. 그런데 아빠(카일 맥라클란)의 사업 때문에 낯선 도시로 이사를 하면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하는 라일리와 그러한 라일리가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어느때보다 바쁘게 움직이던 기쁨이. 하지만 도움이라고는 전혀 되지 않는 슬픔가 사고를 칩니다. 그로인하여 기쁨이와 슬픔이는 본부를 이탈해서 라일리의 기억들이 저장된 머릿 속 세계에 떨어지고, 그 사이 라일리는 가출을 결심하는 등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기쁨이와 슬픔이.

 

[인사이드 아웃]은 인간의 감정을 캐릭터화한 어린이 애니메이션입니다. 그동안 어린이 애니메이션은 동물의 인격화가 가장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픽사의 [토이 스토리]가 장난감을 인격화하면서 어린이 애니메이션의 상상력 폭이 넓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젠 인간의 감정을 인격화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기에 [인사이드 아웃]은 과연 픽사 애니메이션답다라는 생각이 드는 영화입니다.

[인사이드 아웃]은 처음부터 다섯개의 감정이 생겨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라일리가 갓난 아기였을 때에는 기쁨이만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라일리가 성장하면서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 등이 생겨난 것이죠. 어쩌면 기쁨이는 라일리가 성장하면서 생겨나는 새로운 감정들이 싫었을 것입니다. 라일리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만 있으면 충분할텐데, 다른 감정들은 라일리의 행복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어떻게 보면 오히려 라일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슬픔이는 라일리의 행복을 위해서 전혀 불필요한 존재라고 기쁨이는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슬픔이가 나설때마다 기뻤던 기억들이 한순간 슬픈 기억으로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기쁨이는 슬픔에게 '제발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고 말하지만, 결국 슬픔이가 사고를 치고, 그로인하여 기쁨이와 슬픔이는 본부를 이탈하는 대형 사건에 직면하게 된 것이죠.

 

사실 저 역시 기쁨이와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라일리의 행복을 위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슬픔이를 보면서 민폐 캐릭터라고 생각했습니다. 슬픔이의 만행은 기쁨이와 함께 본부를 이탈해서 라일리의 머릿속 세계로 떨어지면서도 계속됩니다. 마치 어제의 제 모습을 보는 듯한 무기력한 슬픔이의 모습은 '도대체 쟨 왜 저러는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본부로 돌아가기 위한 기쁨이와 슬픔이의 여정을 함께 하다가보면 그러한 제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게 됩니다. 물론 행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감정은 기쁨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장하면서 기쁨 외에도 슬픔, 분노 등 다른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러한 감정들을 억누르기만 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겉으로 괜찮은 척, 행복한 척하는 사람들은 과연 진짜로 행복한 것일까요? 슬플 땐 펑펑 울어버리고, 화날 땐 화도 내야 속도 후련해지고, 다시금 기쁨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어린 아이들이 어른보다 행복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법을 어쩔 수 없이 배우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 어른들은 어린 아이들처럼 행복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 시작한 [인사이드 아웃]을 보다가 사회 생활을 위해 감정을 숨겨야 하는 내 자신을 뒤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잊어버리게 되는 것들

 

[인사이드 아웃]은 우리 인간의 머릿 속을 신나는 모험의 공간으로 만들어냈습니다. 꿈 제작소에서는 마치 드라마를 찍듯이 연출자와 배우가 무대 위에서 꿈을 제작하고, 두려운 기억들을 가두는 공간도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기억들 중에서 더이상 필요없는 잊혀진 기억들을 폐기하는 곳도 있습니다. 이들 모두 우리의 뇌가 하는 일들입니다.

그 중에서 제가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라일리의 어릴적 상상의 친구인 빙봉입니다. 한때 라일리의 최고 친구였던 빙봉은 그러나 라일리가 성장하면서 점점 잊혀진 존재가 됩니다. 빙봉은 기쁨이와 슬픔이가 감정 콘트롤 본부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기쁨이도 라일리의 행복을 위해 빙봉의 기억을 되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른인 우리는 압니다. 빙봉은 결코 라일리가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님을...

빙봉이 예전처럼 라일리를 상상의 행복한 세계로 초대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러기엔 라일리가 너무 커버렸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적에 우리가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은 크면서 추억 이외엔 아무 것도 아닌 존재들이 됩니다. 빙봉은 바로 우리가 성장하면서 잊어버리게 되는 추억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어린 시절의 소중한 것들을 잊으면서 우리는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인사이드 아웃]은 기쁨이와 슬픔이의 모험을 통해 이렇게 라일리의 성장을 담고 있습니다.

 

지금 웅이에게도 라일리의 빙붕과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모자룡입니다. 모자를 쓴 공룡의 모습을 하고 있는 모자룡은 2014년 웅이의 이름으로 저작권이 등록되었을 만큼 웅이에겐 특별한 친구입니다. 웅이는 매일 노트에 모자룡을 그리고, 친구들과 모자룡의 모험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모자룡과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 요즘들어서 모자룡에 대한 웅이의 사랑이 조금은 덜해졌습니다. 예전에는 툭하면 노트에 모자룡을 그렸지만, 요즘은 모자룡보다는 아이언맨을 더 자주 그립니다. 예전에는 친구들과 모자룡 이야기를 지어내며 놀기를 즐겼지만, 요즘은 더이상 모자룡의 모험 이야기를 지어내지 않습니다. 이러다가 언젠가는 웅이도 모자룡을 잊을 것입니다. 라일리가 빙봉을 잊었듯이...

[인사이드 아웃]을 보며 저는 나의 어릴 적 상상 속의 친구는 무엇인지 기억해 내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더군요. 어릴 적에 밖에서 뛰어 놀기 보다는 방에서 상상하며 그림그리고 놀기를 더 좋아했기에 분명 제게도 빙봉, 모자룡과 같은 상상 속의 친구가 있을 법한데, 이제 그 상상 속의 친구가 무엇이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바로 이렇게 어릴 적의 무언가를 잊어가는 것입니다.

 

 

신나지만 슬프다.

 

[인사이드 아웃]은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어린 아이에서 사춘기 소녀로 성장하는 라일리의 모습을 기쁨이와 슬픔이의 모험으로 표현한 영화입니다. 영화의 분위기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이 그러하듯이 신나고 즐겁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겨진 여운은 픽사 애니메이션답게 아련하고 슬픕니다.

제가 픽사 애니메이션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웅이는 [인사이드 아웃]을 신나게 즐기며 봤지만, 저는 영화가 끝나고 짙은 여운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험이 처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토이 스토리 3]를 봤을 때도 그랬고, [월 -E]와 [업]을 봤을 때도 그랬습니다. 픽사 애니메이션은 어린 관객에겐 신나는 재미를, 어른 관객에겐 아련한 여운을 안겨줍니다. 그러니 제가 새로운 픽사 애니메이션이 개봉되기를 웅이보다 더 기다리는 것이죠.

[인사이드 아웃]에 담겨진 아련한 여운은 '성장'입니다. 영화 속 라일리의 성장을 보며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엄마(다이안 레인), 아빠의 품 속에서 맘껏 우는 라일리를 보며 한편으로는 부러워졌습니다. 저는 라일리처럼 마음 속 슬픔을 한바탕 눈물로 쏟아낸 적이 언제였던 가요? 그렇게 한바탕 울고나서 그 동안의 소동을 마무리짓는 이 영화가 저는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라일리 외에도 다른 수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 세계를 보여줍니다. 그러한 장면을 보면서 저는 제 머릿속 세계의 풍경도 궁금해졌습니다. 아마도 버럭이와 소심이가 리더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것은 비단 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감정 콘트롤 본부의 리더 자리에서 기쁨이가 내려오는 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속의 라일리의 나이는 열두살입니다. 지금 웅이의 나이와 같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인사이드 아웃]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분명 웅이도 이제 사춘기에 접어들 것입니다. 지금의 웅이는 구피의 통통한 볼을 매만지며 행복을 느끼고, 제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며 매달리는 어린 아이입니다. 하지만 이제 웅이도 사춘기에 접어들 것이며, 그땐 라일리처럼 기쁨이 아닌 다른 감정들에게 감정 콘트롤 본부의 리더 자리를 내주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제가 막는다고해서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라일리가 그랬듯이 웅이도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울고 싶을 땐 저와 구피의 품에서 맘껏 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른이 되면 울고 싶어도 울 수 없을테니 어른이 되기 전까지만이라도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인사이드 아웃]을 본 후 웅이를 더욱 꼭 끌어앉으며 머리를 쓰다듬은 이유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감정을 억누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감정에 충실하면서도 적당히 억누를 수 있는 것.

이것이 진정 어른을 위한 행복의 조건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