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콜린 트레보로우
주연 : 크리스 프랫,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빈센트 도노프리오
개봉 : 2015년 6월 11일
관람 : 2015년 6월 28일
등급 : 12세 관람가
메르스 공포를 뚫다.
오랫동안 제 글을 읽으신 분이라면 웅이의 장래희망이 공룡박사, 좀 더 유식한 전문용어로는 고생물학자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어렸을적부터 유난히 공룡을 좋아했던 웅이. 처음엔 남자아이들은 으레 공룡을 좋아하기 때문에 좀 더 크면 공룡사랑이 식을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벌써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웅이는 고생물학자에 대한 꿈을 더욱 구체화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당연히 저는 웅이가 어렸을적부터 공룡을 소재로한 영화들을 챙겨서 웅이에게 보여줬습니다. 특히 [쥬라기 공원 3부작]의 경우는 공룡이 사람을 잡아 먹는 장면이 나와서, 어린 웅이에겐 너무 잔인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당시 유치원생이었던 웅이는 [쥬라기 공원 3부작]을 열광하면서 보더군요.
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 의해 탄생한 [쥬라기 공원]은 1997년 [쥬라기 공원 2 : 잃어버린 세계], 2001년 [쥬라기 공원 3]까지 만들어지며 할리우드의 대표적 흥행 시리즈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전편과 비교해서 흥행성이 확연하게 떨어진 [쥬라기 공원 3]의 미지근한 흥행성적 탓에 더이상의 시리즈는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안전은 보장할 수 없음]이라는 저예산 SF영화로 주목을 받은 콜린 트레보로우를 감독으로 내세워 새로운 [쥬라기 공원]인 [쥬라기 월드]가 2015년에 개봉한 것입니다.
웅이가 [쥬라기 월드]의 개봉을 손꼽아 기다린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저 역시 20여년 전에 개봉한 [쥬라기 공원]을 극장에서 두번보며 열광했었기에 [쥬라기 월드]가 개봉하면 웅이와 함께 손을 잡고 극장으로 달려갈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복병이 저와 웅이의 발목을 붙잡았습니다. [쥬라기 월드]의 개봉 즈음에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메르스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웅이가 다니는 학교가 무려 2주간이나 휴교를 선언할 정도로 심각했던 메르스 사태는 [쥬라기 월드]와의 가슴 떨리는 만남을 막아섰습니다. 구피는 "극장에 갔다가 웅이가 메르스에 감염되면 어쩌려고 그래?"라며 저와 웅이의 [쥬라기 월드] 관람을 결사반대한 것입니다. 결국 메르스를 제대로 막지 못한 무능력한 정부를 원망하며 저와 웅이는 [쥬라기 월드]와의 만남은 무기한 연기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쥬라기 월드]는 국내 개봉 이후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이는 메르스 사태만 진정된다면 [쥬라기 월드]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 있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제가 기다렸던 기회가 왔습니다. 메르스 확진 환자가 5일간이나 입원했던 저희 집 근처 종합병원의 폐쇄조치가 풀린 것입니다. 이를 토대로 저는 더이상 [쥬라기 월드]의 극장 관람을 미룰 수 없다며 구피에게 간절히 애원(?)했고, 드디어 승낙을 얻어냈습니다.
[쥬라기 공원]과의 차별화에 성공하다.
제가 더이상 [쥬라기 월드]의 관람을 미룰 수 없었던 것은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의 개봉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쥬라기 월드]와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는 공통점이 있기에 [터미네이터 제니시스]가 개봉하면 [쥬라기 월드]의 상영관이 대폭 줄어들 것임이 분명했습니다. 상영관이 줄어든다는 것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을 뜻합니다.
제 간절한 눈빛으로 인하여 결국 구피는 [쥬라기 월드]의 극장 관람을 승낙했지만 한가지 조건을 달았습니다. 그것은 영화 관객이 많지 않은 조조 타임대에 영화를 보라는 것입니다. 메르스 사태로 사람 많은 곳을 피해야 하기에 구피의 조건은 타당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요일의 늦잠을 포기하고 조조 타임대로 [쥬라기 월드]를 예매한 후 웅이와 함께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웅이로써는 5월 31일 [투모로우 랜드]를 본 이후 거의 한달만의 극장 나들이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부푼 마음으로 극장 안에 들어선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저도 가끔 조조 타임대에 영화를 보러가는데 조조 타임대의 영화를 보는 가장 큰 장점은 조용히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날은 극장 안의 남은 좌석이 안보일 정도로 관객들이 꽉 들어찼더군요. 그리고 저를 더욱 놀라게 했던 것은 [쥬라기 월드]가 12세 관람가 영화이긴 하지만 분명 어린이 영화가 아닌데 부모와 함께 온 초등학교 저학년 관객들이 굉장히 많았다는 점입니다.
사람많은 곳을 피해 조조 타임대의 영화를 예매했는데 그러한 선택이 무색할 정도로 극장안을 가득채운 관객들을 보며 저는 참 난감했습니다. 게다가 초등학교 저학년 관객들은 영화 상영 중에 화장실을 가겠다며 몇번이나 왔다갔다하고, 자기네들끼리 떠들고, 정말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구피가 챙겨준 마스크를 쓰고 조용히 영화를 관람한 웅이는 영화가 끝나고나서 "영화는 별 다섯개 만점인데, 관객들은 빵점이었어요."라며 아쉬워하더군요.
비록 [쥬라기 월드]는 극장안의 시끄러운 분위기 속에서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며 봐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웅이의 평가대로 영화는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특히 저는 [쥬라기 월드]가 [쥬라기 공원]과의 차별화에 성공했으면서도 [쥬라기 공원]의 향수를 아련하게 블러 일으켰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쥬라기 공원]은 공룡을 소재로한 영화입니다. 문제는 공룡을 소재로 했기 때문에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공룡을 전면으로 내세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가장 널리 알려진 육식 공룡 티라노사우루스입니다. 흥행의 마술사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쥬라기 공원]을 이끌어나가는데 있어서 티라노사우르스를 잘 활용하면서도 벨로시 랩터라는 당시에는 조금 낯설었던 공룡을 전면에 내세우며 새로운 스타 공룡을 발굴하는 수완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스타 공룡 발굴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스타 공룡 탄생!!! 인도미누스 렉스
조 존스톤 감독이 [쥬라기 공원 3]에서 스피노사우르스를 등장시킨 것도 새로운 스타 공룡 발굴의 일환이었습니다. 하지만 [쥬라기 공원 3]에서 스피노사우르스는 멋진 꺾기 한판으로 티라노사우르스를 쓰러뜨렸지만 벨로시 랩터처럼 새로운 스타 공룡으로 등극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마도 [쥬라기 월드]이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도 그러한 새로운 스타 공룡 발굴이었을 것입니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인도미누스 렉스입니다. 공룡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들이라도 분명 처음 듣는 이름일 것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인도미누스 렉스는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가상의 공룡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도미누스 렉스는 [쥬라기 월드]가 그토록 원하는 스타성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티라노사우르스의 큰 덩치와 강력한 힘, 벨로시 렙터의 영리함과 사악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니까요.
인도미누스 렉스라는 가상의 유전자 조작 공룡의 등장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기존의 공룡 중에서 티라노사우르스와 벨로시 랩터를 능가하는 스타 공룡을 발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요. [쥬라기 월드]는 스피노사우루스를 내세웠다가 결과적으로 흥행에 실패한 [쥬라기 공원 3]의 교훈을 잊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인도미누스 렉스를 내세우는 것에는 한가지 함정이 있습니다. [쥬라기 월드]가 너무 인도미누스 렉스에 기댔다가는 공룡 영화라는 명성이 무색해질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쥬라기 월드]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거의 대부분 공룡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것입니다. 유전자 조작으로 인하여 태어난 공룡을 닮은 괴물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쥬라기 월드]는 이러한 함정도 슬기롭게 해쳐나갑니다. 바로 [쥬라기 공원]의 스타, 벨로시 랩터를 내세운 것입니다. [쥬라기 월드]는 공룡 조련사인 오웬(크리스 프랫)과 벨로시 랩터의 관계를 통해 [쥬라기 공원]을 성공적으로 [쥬라기 월드]에 이식시켜 놓습니다. [쥬라기 공원]에서 벨로시 랩터의 무시무시함을 목격한 관객들은 그러한 벨로시 랩터를 능숙하게 조련하는 오웬의 활약을 통해 [쥬라기 월드]가 [쥬라기 공원]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공룡 영화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쥬라기 월드]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의 후반부 벨로시 랩터, 티라노사우르스, 모사사우르스 등 진짜 공룡들이 합동하여 가짜 공룡인 인도미누스 렉스를 물리치는 장면입니다. [쥬라기 공원]과의 차별화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인도미누스 렉스라는 가공할만한 가짜 공룡을 내세웠지만, 결국 진짜 공룡의 승리로 영화를 마무리함으로써 [쥬라기 월드]는 공룡영화의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어린 두 형제의 모험에서 드러난 [쥬라기 공원]의 기시감
[쥬라기 월드]의 승부수는 바로 인도미누스 렉스라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지구상 가장 강력한 공룡입니다. 그러면서 기존의 공룡들로 하여금 사람들의 무기조차 어쩌지 못하는 이 강력한 살인병기를 해치우게 만듬으로써 공룡영화로써의 정체성을 지켜낸 것입니다. 가공할만한 가짜 공룡을 무찌르는 진짜 공룡의 위력을 통해 공룡 영화의 통쾌감을 느끼게 해준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공룡영화라고해도 공룡만 나올 수는 없는 법입니다. 결국 영화의 주체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드라마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잭과 그레이 형제의 모험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잭과 그레이 형제의 모험을 보면서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들지 않던가요? 만약 그런 느낌이 들었다면 분명 [쥬라기 공원]에서 해몬드의 손자, 손녀인 팀과 렉스의 모험을 떠올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팀과 렉스는 육식공룡들이 득실대는 '쥬라기 공원'에서 헤매다가 앨런 그랜트(샘 닐)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남습니다.
이런 식으로 [쥬라기 월드]의 캐릭터는 [쥬라기 공원]과 묘하게 맞물리는데 잭과 그레이 형제는 팀과 렉스 남매로, 오웬은 앨런 그랜트 박사로, 클레어(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엘리 새틀러(로라 던) 박사로 연결됩니다. 이런 식으로 [쥬라기 월드]는 [쥬라기 공원]과 캐릭터를 연결시키다보면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도 [쥬라기 공원]과 비슷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쥬라기 월드]는 인도미누스 렉스라는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가공할만한 괴물 공룡을 통해 [쥬라기 공원]과의 차별화를 이루어냈으며, 벨로시 랩터와 티라노사우르스, 모사사우루스의 활약으로 공룡영화의 정체성을 지켜냈고, [쥬라기 공원]을 연상하게 하는 캐릭터 구성을 통해 [쥬라기 공원]의 추억도 되살려 놓았습니다.
[쥬라기 월드]는 6월 12일 북미 개봉 이후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으며, 지금 현재 북미 흥행성적은 5억 달러를 훌쩍 넘어가고 있습니다. 월드와이드 성적은 무려 12억5천만 달러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흥행은 아직 진행중이기에 최종 성적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쥬라기 월드]의 이러한 흥행 성적은 2015년 개봉작 중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흥행 성적을 뛰어넘어 최고 흥행 성적을 연일 갱신 중입니다. 전세계 영화팬들이 14년만에 돌아온 '공룡 세상'에 얼마나 열렬한 환호를 보내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저와 웅이 역시 [쥬라기 월드]의 국내 개봉 3주만에 우여곡절 끝에 영화를 봤고, 그 만족감은 높았습니다. 아마도 [쥬라기 월드]는 계속 속편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인도미누스 렉스가 유전자 조작 공룡의 기틀을 마련했기에 상상을 초월하는 가상의 공룡이 계속 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룡영화를 손꼽아 기다리는 저와 웅이에겐 정말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쥬라기 월드 2]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군요. 부디 그땐 제2의 메르스 사태가 벌어지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가짜는 진짜를 이기지 못한다. 아니, 이겨서는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쥬라기 월드]의 최고 명장면은
서로 힘을 합쳐 가짜를 이겨낸 진짜의 위풍당당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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