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곽경택
주연 : 김윤석, 유해진
개봉 : 2015년 6월 18일
관람 : 2015년 6월 23일
등급 : 15세 관람가
내가 블로그를 하는 목적
제가 2002년 1월부터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하다가 2009년 12월에 Daum 블로그로 옮기면서 가장 놀란 것은 Daum에서 지원금을 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할 당시에는 웹호스팅 비용등 홈페이지 운영비용을 직접 지출해야 했지만, 블로그를 시작하니 따로 운영비용이 들어가지도 않을 뿐더러 잘만 운영하면 짭짤한 용돈도 벌 수 있었습니다.
Daum의 지원금을 받으려면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Daum view 추천을 많이 받아 베스트글이 되어야 했습니다. 결국 저는 언제 글을 올리고, 어떤 글을 올려야 베스트글이 되는지 연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사이 제가 블로그를 하는 목적이 영화가 좋고,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좋아서가 아닌, Daum view의 추천을 많이 받아 베스트글이 되어 순위를 올리고 Daum 지원금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함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것인지... 그깟 돈 몇푼 안되는 Daum 지원금 때문에 저는 진정한 즐거움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2002년 1월에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제가 본 영화들에 대한 나름의 감상평을 적으며 그 영화들을 영원히 추억하는 것. 그것이 애초의 목적이었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라는 사실을 저는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즘도 저는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제 블로그에는 영화에 대한 홍보글을 써주면 원고료, 혹은 경품을 주겠다는 제의가 심심치 않게 들어옵니다. 하지만 제 원칙은 단 하나입니다. 제가 기대하지 않은 영화에 대한 홍보글은 절대 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스스로가 보고 싶지 않은 영화를 다른 분들에게 보라고 홍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리고 가끔은 제게 블로그 친구 신청을 하시며 "내 블로그에도 놀러오세요."라며 블로그 방문을 유도하시는 분들도 보게 됩니다. 물론 제가 그 분들의 블로그에 방문해서 댓글도 남기고 방명록에 안부 인사를 남기면, 그 분들도 제 블로그를 방문하여 댓글과 방명록을 남기실 것이라는 것쯤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 글이 Daum 메인에 오르지 않는한 하루종일 단 한 개의 댓글도 없는 날이 허다합니다. 그럴때마다 저는 블로그를 하는 이유가 방문자수를 늘리고, 이모티콘이 가득한 예쁜 댓글과 방명록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각인시킵니다.
모든 일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상은 부수적인 것입니다. 보상을 위해 목적이 바뀌어서는 안됩니다. 저는 믿습니다. 제가 영화에 대한 나의 즐거움을 진솔하게 블로그에 써내려간다면 언젠가는 제 블로그에도 순수하게 제 글을 읽기 위해 찾아주시는 분들로 가득할 것임을...
이 영화의 몇가지 키포인트
제가 이렇게 뜬금없이 블로그를 하는 나의 목적을 이야기한 이유는 [극비수사]를 봤기 때문입니다. [극비수사]는 1978년 부산에서 실제 일어난 유괴사건을 담은 스릴러 영화입니다. 지난 6월 18일 개봉해서 [쥬라기 월드]와 아슬아슬한 박스오피스 1위 승부를 벌였을 만큼 개봉 첫주 흥행 성적도 꽤 만족스러운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는 많은 키포인트가 있습니다. 첫번째 키포인트는 부산을 대표하는 곽경택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점입니다. 곽경택 감독은 2001년 [친구]로 흥행감독에 등극한 이후 유난히 부산과 강한 남자들의 이야기에 애착을 보여왔습니다. [극비수사]도 부산을 주요 배경으로한 영화입니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 곽경택 감독은 이전 영화들과는 달리 어깨의 힘을 약간 뺐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공길용(김윤석), 김중산(유해진)은 강한 남자들이라기 보다는 소시민적 아버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조금 부드러워진 곽경택 감독의 연출은 [극비수사]를 요즘 한국영화의 대세인 독한 스릴러가 아닌, 인간미가 넘치는 스릴러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극비수사]의 두번째 키포인트는 연기력만 따진다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김윤석과 유해진이 호흡을 맞췄다는 점입니다. 김윤석은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 [해무], [타짜 : 신의 손] 등에서의 강한 캐릭터의 옷을 벗고 예전의 푸근한 소시민 캐릭터로 돌아갔으며, 유해진은 코미디 전문 조연이라는 기존의 이미지를 깨기 위한 진지한 연기를 펼쳐 보였습니다. 이 두 배우의 호흡은 [극비수사]의 새로운 재미가 됩니다.
[극비수사]의 세번째 키포인트는 복고입니다. 이 영화를 보며 우리나라 최고의 스릴러 영화로 회자되는 [살인의 추억]이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살인의 추억]은 1986년 경기도 화성의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고, [극비수사]는 1978년 부산을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두 영화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영화 속에서 표현하는데 주력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마지막 키포인트는 점술가와 형사의 협력이라는 독특한 스토리 전개입니다. 스릴러 영화에서 형사의 활약은 흔한 전개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점술가가 끼어드니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스릴러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적인 증거에 입각하여 수사를 해야하는 형사와 점술이라는 전혀 사실적이지 않은 감각을 이용해서 미래를 예언하는 점술가의 만남은 [극비수사]를 색다른 버디무비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저 역시 영화의 중반부까지는 제가 언급한 키포인트를 중심으로 [극비수사]를 즐겼습니다. 여전히 부산을 무대로 하고 있으면서도 [친구]와는 달리 부드러워진 곽경택 감독의 연출력, 영화의 복고적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김윤석과 유해진의 연기력. 그리고 형사와 점술가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콤비의 활약까지. 하지만 영화가 후반부로 가면서 [극비수사]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공길용 형사와 김중산이 은주 유괴사건에 뛰어든 목적과 그에 대한 결과입니다.
그들의 목적인 범인 검거가 아닌 은주 살리기이다.
여러분은 혹시 경찰차가 사건 현장으로 출동할 때 사이렌을 울리는 이유를 아시나요? 영화에서 사이렌을 울리며 출동하는 경찰차가 등장할 때마다 사이렌을 울리지 않고 조용히 출동하면 범인을 잡을 수 있을텐데, 시끄럽게 사이렌을 울려서 범인을 도망가게 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는 경고를 통해 범인의 범행을 막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누군가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에 놀라 범행을 멈추고 도망을 가게 된다는 것이죠. 경찰차가 조용히 사건 현장에 가게 된다면 범인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범인의 범행을 막지는 못할 것입니다. [극비수사]에서 공길용과 김중산의 목적도 그러합니다. 다른 형사들은 유괴된 은주가 죽었을 것이라 확신하고 범인을 잡는데 주력하려합니다. 하지만 공길용은 은주가 살아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범인 검거가 아닌 은주를 살려서 부모의 품에 데려오는 것에 주력합니다.
영화의 제목인 '극비수사'는 그러한 공길용의 목적을 의미합니다.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서는 공개수사를 통해 목격자 확보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범인을 자극해서 유괴한 은주를 죽이게 할 수도 있는만큼 공길용은 끝까지 '극비수사'를 주장합니다.
사실 공개수사를 주장하는 유반장(장명갑)의 주장도 타당한 부분이 있습니다. 범인으로부터 은주가 유괴된지 보름이나 지난 후에서야 돈을 요구하는 전화를 걸어왔고, 사건 발생 한달이 지나도록 범인의 윤곽조차 찾지 못했습니다. 유반장은 이러다가 범인을 놓치기라도 하면 그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질 것이냐고 공길용을 압박합니다.
하지만 유괴된 은주가 아들의 반친구이기도 했던 공길용 입장에서는 지금 그깟 책임 따위를 걱정하고 있을 여유가 없습니다. 딸같은 은주를 살려서 가족의 품으로 돌려 보내는 것, 그것에만 집중한 것입니다. 사실 은주가 살아 있다는 증거는 많지 않습니다. 고작 김중산의 확실하지 않은 예언이 전부입니다.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은주 엄마(이정은)의 심정처럼, 공길용은 이 말도 안되는 작은 희망에 모든 것을 겁니다.
하나의 사건을 수사하면서 유반장은 범인 검거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고, 공길용은 은주 살리기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은 사사건건 부딪힐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극비수사]는 형사와 유괴범의 대결 외에도 각자 목적이 다른 형사들 간의 충돌로 또다른 영화적 재미를 완성해냅니다. (이후 영화의 결말부분을 언급합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가져간다?
실화를 소재로한 영화인 만큼 [극비수사]의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범인은 잡히고, 김중산의 예언은 적중해서 은주는 무사히 가족의 폼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은주 유괴사건이 끝이난 후에도 영화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유괴사건을 소재로한 영화에서 범인이 잡히고 유괴된 아이가 가족의 폼으로 무사히 돌아갔다면 더이상 할 이야기가 없을텐데... [극비수사]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더 남아 있는 것일까요?
사실 저는 김중산이 꿈에서 봤다던 공범의 존재가 영화의 마지막 반전으로 깜짝 등장하는 것은 아닐까? 은근히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기대했던 공범의 존재는 흐지부지 마무리됩니다. (아마도 김중산이 봤다던 두번째 범인은 은주가 두번째로 유괴된 사건의 범인이었나봅니다.) 그 대신 [극비수사]는 반전보다 더욱 의미심장한 마무리를 준비했습니다.
은주를 무사히 구해내고 범인을 잡은 공길용과 김중산. 하지만 그들의 공로는 다른 이들에게 넘어갑니다. 사건 해결에 그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방해만 했던 유반장을 비롯한 중부서 형사들이 특진을 하고, 은주는 이미 죽었다며 김중산에게 호통을 치던 김중산의 스승 백도사(이재용)는 자신이 은주가 살아있다는 예언을 했다며 김중산이 받아야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혼자 독차지합니다. 그야말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받은 격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해피엔딩입니다. 만약 공길용과 김중산이 애초에 얻고자 했던 것이 각각 특진과 용한 점술가라는 명성이었다면 분명 이 영화는 해피엔딩이 아닙니다. 그러나 공길용과 김중산은 은주를 살리겠다는 목적으로 수사를 했고, 그 결과 은주를 살려서 가족에게 돌려 보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이미 이뤄졌으니 그들도 만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들도 사람이기에 속상하고 억울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공로를 경찰국장에게 유반장과 중부서 형사들이 도왔다고 거짓 보고해야 했던 공길용의 눈에는 눈물이 고입니다. 김중산도 "나도 사람인데 왜 섭섭하지 않겠어요."라며 공길용에게 고백합니다. 하지만 그들 가족이 계곡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웃음짓는 마지막 장면은 비록 보상은 받지 못했지만 목적을 이룬 이들의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의 초반, 공길용은 버스안내원을 폭행한 범인을 잡아 동료 경찰에게 넘깁니다. 그리고 그 댓가로 뒷돈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뒷거래가 영화 후반부에 공길용의 발목을 잡습니다. 공길용은 범인 검거라는 목적을 이루는데 있어서 그에 대한 보상에 치중하다가 오히려 부메랑을 맞은 것입니다. 세상살이가 그러지 않을까요? 영화의 엔딩크레딧 바로 전에 결국 경찰로써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던 공길용이 뒤늦게 특진을 거듭했고, 김중산도 유명한 점술가가 되었다는 자막은 결과에 대한 보상 때문에 목적을 잊지 않았던 그들의 억울함을 어루만집니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당연히 결과에 대한 보상을 기대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한 보상이 목적보다 우선시되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무엇을 목적으로 이 일을 하는지 결코 잊지 않고 노력한다면
언젠가 보상은 자연스럽게 따라오지 않을까?
'영화이야기 > 2015년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쥬라기 월드] - 가공할만한 가짜를 무찌른 진짜의 위력 (0) | 2015.07.02 |
---|---|
[19곰 테드 2] - 인간의 조건 (0) | 2015.06.29 |
[샌 안드레아스] - 우리는 재난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가. (0) | 2015.06.18 |
[은밀한 유혹] - 판이 커질수록 위험해지는 인생이라는 이름의 도박 (0) | 2015.06.09 |
[무뢰한] - 너는 내 약점 (0) | 2015.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