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세스 맥팔레인
주연 : 마크 월버그, 아만다 사이프리드, 제시카 바스, 지오바니 리비시
더빙 : 세스 맥팔레인
개봉 : 2015년 6월 25일
관람 : 2015년 6월 26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성인을 위한 곰인형 '테드'가 돌아왔다.
2012년 9월 27일 저는 혼자 [19곰 테드]를 보러 갔었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첫번째 이유는 그해 북미 박스오피스에서의 흥행 돌풍 덕분입니다. 2012년 6월 29일 북미 개봉한 [19곰 테드]는 개봉 첫주 5천4백만 달러의 성적을 올리며 [매직 마이크], [메리다와 마법의 숲]등 쟁쟁한 경쟁작을 물리치고 당당히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었습니다.
[19곰 테드]의 최종 흥행 성적은 북미 2억1천8백만 달러, 월드와이드 5억4천9백만 달러입니다. 순수제작비가 고작 5천만 달러임을 감안한다면 제작비 대비 10배 이상의 대박 흥행성적을 올린 셈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북미 흥행대박과는 별도로 우리나라의 흥행 성적은 미지근하기만 했습니다. 북미에서 6월에 개봉한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9월이 되어서야 개봉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나라 배급사들이 [19곰 테드]의 흥행성을 낮게 평가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19곰 테드]는 국내 박스오피스에서 개봉 첫주 6만명의 관객을 동원, 5위에 오르는 부진을 보이며 별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19곰 테드]를 봐야 했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된 두번째 이유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소년의 소원으로 생명을 가진 곰인형이라는 판타지적 소재입니다. 그런데 [19곰 테드]는 여기에 한발자국 더 나아가 귀여운 곰인형 '테드'(세스 맥팔레인)를 성인곰인형으로 성장시킵니다. 영화의 예고편에서 귀여운 외모와는 반대로 엽기적인 행동을 서슴치않고 하는 '테드'를 보며 저는 이 영화는 무조건 봐야 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만큼 [19곰 테드]의 소재가 제겐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진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니 [19곰 테드]의 진정한 재미는 성인엽기 곰인형 '테드'에 의한 기발한 스토리 전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저는 '테드'가 아닌 존 베넷(마크 월버그)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테드'와 평생 철없는 어른으로 인생을 즐기고 싶지만, 사랑하는 로리(밀라 쿠니스)를 위해서는 책임감있는 어른으로 성장해야 하는 존 베넷의 모습에서 저를 발견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났습니다. 여전히 저는 마흔이라는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철이 없습니다. 하지만 [19곰 테드]를 보며 깨달은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족을 위해서라도 어느정도는 철이 들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내 자신을 위해서는 인생을 즐길 수 있을만큼 적당히 철이 없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을 위해서는 가장의 책임을 다할 수 있게 적당히 철이 드는 것도 중요한 것이죠. 이 적당히라는 것이 굉장히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저는 적당히 철이 들기 위해 나름 열심히 노력중이랍니다.
그러는 와중에 [19곰 테드 2]가 개봉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니지만, 북미에서 [19곰 테드]는 흥행 대박을 기록했으니 속편이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번에도 저는 주저없이 [19곰 테드 2]를 보기 위해 혼자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이미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엽기적인 행동을 하는 성인곰인형 '테드'에 의한 신선한 재미는 반감되었을테지만, 그래도 3년이라는 세월동안 존과 '테드'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제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번엔 존이 아닌 '테드'의 이야기이다.
사실 [19곰 테드]는 제목과는 달리 '테드'의 이야기가 아닌 존의 이야기였습니다. 어린시절부터 왕따였던 존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곰인형이 살아움직일 수 있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었고, 다음날 마법처럼 곰인형 '테드'는 생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테드'라는 진정한 친구를 갖게된 존은 이후 행복했지만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테드'와 함께 철없는 행동만을 일삼습니다.
결국 존과 '테드'의 철없는 행동들에 지친 로리는 존에게 최후통첩을 하게 되고, 사랑하는 로리와 헤어질 위기에 처한 존은 '테드'와 로리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테드'에게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도니(지오바니 리비시)의 '테드' 납치극이라는 엄청난 소동을 겪으며 존은 한단계 성장하게 됩니다. [19곰 테드]는 이렇게 철없는 어른인 존의 성장이라는 평범한 이야기를 성인곰인형 '테드'를 통해 특별하게 펼쳐놓은 것입니다.
[19곰 테드]가 존의 성장을 담은 영화라면 [19곰 테드 2]는 존이 아닌 '테드'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영화의 오프닝에서부터 '테드'와 타미 린(제시카 바스)의 결혼식으로 시작하고,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도 물건이 아닌 인간으로써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테드'의 법정 투쟁을 담고 있습니다.
[19곰 테드 2]가 이야기의 포커스를 존에게서 '테드'에게로 옮긴 것은 영화 자체적으로는 굉장히 큰 사건입니다. 사실 [19곰 테드]는 말하는 곰인형 '테드'라는 설정을 제외하고는 상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였습니다. 저 역시 결혼 초기에 친구들과의 잦은 술자리와 술기운에 저지른 철없는 행동으로 구피와 갈등을 겪었기에 영화 속의 존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테드'는 다릅니다. 마법의 힘으로 생명을 가진 곰인형이라니... 제가 '테드'의 이야기에 공감을 가질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영화의 후반부까지 그러했습니다. 결혼 후에도 마트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며 생활고를 겪는 왕년의 인기스타 '테드'의 이야기는 어느정도 공감이 되었지만, 타미 린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아기를 입양하기로 결심하면서 겪게 되는 인권 소동극은 솔직히 공감하기 어려웠습니다.
특히 공공시설에서 대놓고 마약하기, 새벽에 조깅을 하는 사람에게 사과던지며 약올리기, 공연장에 가서 공연 분위기에 찬물 끼엊기 등 존과 '테드'가 하는 장난들은 더더욱 공감이 되지 않았습니다. [19곰 테드]는 철없는 존의 성장기였기에 초반의 철없는 행동들을 넘어갈 수 있었지만, [19곰 테드 2]는 '테드'의 인권찾기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였기에 과도한 존과 테드의 철없는 행동들은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그러한 행동들에 초보 변호사 사만다(아만다 사이프리드)까지 가세하며 자기네들끼리 낄낄거리는 모습은 아무리 문화차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심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테드'는 물건인가? 인간인가?
오히려 철없는 행동들이 1편보다 강화된 존과 '테드'의 행동들에 공감을 할 수 없다보니 자연스럽게 영화의 재미는 [19곰 테드]보다 떨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테드' 일행이 찾아간 인권변호사 패트릭(모건 프리먼)이 '테드'에게 해준 따끔한 한마디가 저는 오히려 속시원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공공연하게 마약을 하며 법 따위는 지킬 생각도 없고,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열심히 사는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며 자기네들끼리 낄낄거리는 '테드'를 향해 패트릭은 사회에 그 어떤 기여를 할 생각조차 없는 '테드'의 인권 찾기 소송을 도와줄 생각이 없음을 선언한 것입니다. 그 순간 '테드'의 행동에 눈쌀을 찌푸렸던 저는 오히려 패트릭의 한마디에 통쾌감을 느낀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테드'의 철없는 행동들에 제가 공감을 하지 못한채 영화가 끝이 났다면 아마도 [19곰 테드 2]는 1편의 재미마저 송두리째 앗아가는 최악의 속편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19곰 테드 2]는 후반부에 가서 다시금 제 공감을 이끌어 냈습니다. 그리고 1편에서 '테드'를 납치했던 도니의 등장은 또다시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그것은 이미 학창시절에 배운 사실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닌, 무리를 지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이렇게 우리 인간들이 사회적 동물이다보니 우리에겐 사회 구성원으로써 어떤 역할들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가끔 그러한 역할을 개인의 자유보다 우선시되고는 합니다. 책임, 애국, 도덕, 법 등의 이름으로...
우리는 사회에 그 어떤 기여를 하지 못하고 오히려 타인에게 해만 끼치는 사람들을 '인간 쓰레기'라며 욕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쓰레기' 앞에 '인간'이라는 단어를 붙임으로써 그들 또한 인간임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테드'가 인간인가? 물건인가? 라는 얼핏 보기에 어려워 보이는 문제의 정답은 바로 이것입니다. 패트릭의 말대로 지금까지 '테드'는 사회에 기여를 하지 못했지만, 그것이 '테드'가 인간인가? 물건인가? 라는 문제를 결정지어서는 안됩니다.
만약 사회의 기여가 인간의 조건이라면 '테드'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사람들의 인권은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인권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넌 인간이고, 넌 인간이 아니다.'라고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닌, 우리가 인간으로써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부여된 권리입니다. 비록 '테드'는 처음엔 물건으로 만들어졌지만, 존의 소원으로 인하여 생명을 가진 그 순간부터 '테드'에게도 자연스럽게 인권이 부여되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인간의 조건
결국 [19곰 테드 2]는 '테드'의 인권 찾기 소동을 통해 영화를 보는 관객들 모두에게 화두를 던집니다. [19곰 테드]가 존의 성장이라는 아주 작은 이야기라면, [19곰 테드 2]는 인간의 조건과 인권이라는 굉장히 큰 이야기를 시작한 셈입니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 존재를 인간이 아닌 물건이나 짐승으로 치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멀리갈 것도 없습니다. 불과 몇백년전만해도 백인들은 흑인을 인간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생김새가 자신과 다르고, 그들의 문명이 미개하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백인들은 흑인들을 노예로 삼았고, 물건을 팔듯이 거래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것이 잘못된 행동임을 압니다. 사만다는 '테드'의 인권 찾기 첫 공판에서 배심원들에게 그러한 과거의 사례들을 어필합니다.
영화를 보며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테드'가 물건이라면, 그래서 '테드'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를 가두고 거래할 수 있다면, 그것은 굉장히 잔인한 짓이 될 것입니다. 아무리 곰인형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테드'는 엄연히 자의식이 있고 감정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건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이러한 화두를 던진 것은 [19곰 테드 2]뿐만이 아닙니다.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개봉한 [채피]에서도 인간의 마음을 가진 로봇 '채피'를 두고 과연 그는 로봇에 불과한 존재인지, 아니면 다른 형태의 인간인지에 대한 화두를 던졌었습니다. 이렇게 [19곰 테드 2]와 [채피]가 던진 화두는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실제로 고민해야할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제가 [19곰 테드 2]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일지도 모릅니다. 1편이 존의 이야기를 했기에, 2편에서는 자연스럽게 '테드'의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테드'의 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펼쳐진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테드'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지는 존을 보며 누군가에게 저렇게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만으로도 '테드'는 충분히 인간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이 찡했습니다.
[19곰 테드 2]는 비록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영화의 형식은 매우 가볍습니다. 특히 리암 니슨이 카메오로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영화를 보며 실컷 웃을 수 있었고, 할리우드 영화 특유의 성인, 화장실 코미디도 가볍게 웃으며 즐길 수 있었습니다. '테드'의 도가 지나친 장난들에 눈쌀을 찌푸리긴 했지만 그것을 제외한다면 가볍게 즐긴 후에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꽤 의미있는 영화였습니다.
가볍게 웃기 위해 극장 안에 들어섰다가,
인간의 조건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하며 극장 밖을 나섰다.
만약 '테드'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나는 그를 인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이러한 질문을 내 자신에게 진지하게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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