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5년 영화이야기

[샌 안드레아스] - 우리는 재난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가.

쭈니-1 2015. 6. 18. 14:31

 

 

감독 : 브래드 페이튼

주연 : 드웨인 존슨, 칼라 구기노, 알렉산드라 다드다리오, 폴 지아마티

개봉 : 2015년 6월 3일

관람 : 2015년 6월 16일

등급 : 12세 관람가

 

 

미생물에 덜덜 떨 수밖에 없는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가.

 

최근 저는 만물의 영장이라며 으스대는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새삼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과학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하늘에서 비 한방울 내리게 하지 못해 최악의 가뭄으로 농민들은 한숨만 쉬고 있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인 메르스 바이러스로 인하여 대한민국은 지금 공포의 도가니 속에서 난리 법석입니다. 

특히 메르스 사태는 제 일상생활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웅이네 학교는 벌써 일주일이 넘도록 휴교를 하고 있으며, 바깥 출입을 자제해달라는 학교의 지침으로 인하여 주말에도 꼼짝 없이 집에서 갇혀있어야 합니다. 웅이와 함께 극장에서 보려했던 영화 [샌 안드레아스]와 [쥬라기 월드]를 포기해야 했던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메르스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회사 동료들과의 술자리도 당분간 갖지 말라는 구피의 간곡한 부탁까지 있었으니, 이쯤되면 메르스 바이러스가 무서워 집과 회사 외에는 어디도 가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하긴 그동안 수도 없이 봐왔던 바이러스의 공포를 다룬 영화들을 생각해보면 메르스 바이러스에 대한 이러한 소동이 오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는 우리나라 영화 [감기]를 비롯하여 [아웃 브레이크], [컨테이전], [월드워 Z],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등이 바이러스의 공포를 담은 영화들입니다.

 

제 가장 큰 즐거움 중의 하나인 웅이와 함께 극장에서 영화 보기가 메르스로 인하여 연달아 좌절되었습니다. 메르스 사태가 조금 진정되면 웅이와 극장에 가려고 [샌 안드레아스]와 [쥬라기 월드]를 저또한 안보고 기다렸지만, 보고 싶은 영화를 안보고 버티는 것도 굉장한 괴로움이더군요. 그래서 참다 못해 결국 [샌 안드레아스]를 혼자 보고 왔습니다.

불특정 다수가 꽉 막힌 곳에서 2시간 가량 함께 있어야 하는 극장에 갔다가 메르스에 감염되는 것이 두렵지 않냐고요? 솔직히 약간은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막상 극장에 가니 메르스 때문인지, 아니면 [샌 안드레아스]의 흥행이 신통치 않아서인지, 극장안은 썰렁했습니다. 넓은 극장 안에 띄엄띄엄 앉은 세, 네명의 관객들 사이에서 메르스에 감염될 일은 없을 듯. 덕분에 조용한 극장에서 여유롭게 영화에 집중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샌 안드레아스]도 하필 재난영화입니다. 물론 바이러스의 공포를 다룬 재난영화는 아니지만,  미국을 강타한 규모9 이상의 강력한 지진에 의한 거대한 재난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가족애가 [샌 안드레아스]의 기본 내용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니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 다시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설정 자체가 워낙 뻔하다.

 

사실 [샌 안드레아스]는 굉장히 뻔한 설정을 가진 영화입니다.  특히 이 영화의 주인공인 레이(드웨인 존슨)의 캐릭터 설정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남주인공의 특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습니다. 레이는 온갖 위험한 전쟁터를 누비던 참전용사이고, 아내인 엠마(칼라 구기노)와 이혼 직전의 위기에 몰려 있으며, 딸인 블레이크(알렉산드라 다드다리오)를 끔찍히도 아끼는 딸 바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레이의 캐릭터 만으로도 [샌 안드레아스]가 어떻게 영화의 스토리를 진행시킬런지는 굳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예상할 수가 있습니다. 지진이라는 거대한 재난 속에서 블레이크를 구하기 위한 레이의 눈물겨운 노력이 펼쳐질 것이며, 그러한 가운데 엠마와의 관계도 회복될 것입니다. [샌 안드레아스]는 그러한 제 예상에서 단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영화입니다.

물론 [샌 안드레아스]는 레이의 활약이 전부인 영화는 아닙니다. 할리우드의 신성 알렉산드라 다드다리오의 매력을 활용하기 위한 블레이크와 조비(콜튼 하인즈)의 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풋풋한 사랑을 전개시키고, 지진을 예상하고 방송을 통해 경고하는 로렌스(폴 지아마티) 교수의 활약도 간간히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러한 부분은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그저 스토리 라인의 구색을 맞추기 위한 장치에 불과합니다.

 

물론 [샌 안드레아스]도 뻔한 캐릭터를 내세웠지만, 그래도 새로운 스토리 라인 전개를 위해 노력한 흔적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다니엘 레딕(이안 그루퍼드)이라는 캐릭터에서 드러납니다. 다니엘이 이 영화에서 색다르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재난영화에서 이례적인 악역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엠마의 새 애인으로 조만간 엠마와 합치기로 예정된 상태입니다. 영화의 초반 그는 매력적이면서도 돈많은 아주 이상적인 엠마의 재혼 상대로 보였습니다. 이는 다시말해 레이와 엠마의 재결합을 방해하는 장애물과도 같은 존재인 것입니다. ([2012]에서도 비슷한 캐릭터가 나왔었습니다.) 결국 레이와 엠마의 재결합을 위해서 다니엘은 어느정도 망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당연한 수순이죠. 그런데 [샌 안드레아스]는 조금 도가 지나치게 다니엘을 망가뜨립니다. 

사실 데이빗이 지하 주차장에 갇힌 블레이크를 버리고 혼자 도망가는 장면만으로도 레이와 엠마의 재결합을 방해하는 장애물 역할은 끝이 납니다. 아무리 돈 많은 매력남이라도 위기의 순간에 자신의 딸을 버리고 도망가는 남자와 재혼하는 여자는 없을테니까요. 그런데 데이빗은 장애물 역할이 끝난 후에도 계속 밉상짓을 하다가 끔찍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래도 한때 [판타스틱 4]에서 마블의 슈퍼히어로인 미스터 판타스틱을 연기했던 배우인데, 이안 그루퍼드가 사정없이 망가지는 모습은 조금 안쓰럽기까지 했답니다. 

 

 

내가 원한 것은 거대한 스펙타클이다.

 

물론 다니엘은 제대로된 악역이 되지는 못합니다. 악역이 되기엔 거대한 재난 앞에서 그는 너무 나약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굳이 악역이 필요없는 재난영화에서 다니엘을 이렇게까지 망가뜨려야만 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샌 안드레아스]에서 가장 의외의 전개는 다니엘의 밉상짓이었습니다.

다니엘의 예상외의 밉상짓을 제외하고는 [샌 안드레아스]의 스토리 라인은 특이할 것이 전혀 없이 뻔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아쉬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샌 안드레아스]를 선택하고 극장을 찾는 이유가 현실감 넘치는 재난영화를 기대한 것도 아니고, 새로운 캐릭터와 스토리 라인을 지닌 웰메이드 재난영화를 기대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샌 안드레아스]를 관람하는데 있어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캐릭터도, 스토리 라인도 아닌, 영화 속의 재난이 얼마나 스펙타클하게 재현되었느냐라는 부분입니다. 특히 [샌 안드레아스] 입장에서는 지난 2009년에 개봉했던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2012]의 스펙타클을 넘어서는 것이 급선무였을 것입니다.  

 

[2012]는 2012년을 배경으로 지진, 화산폭발, 거대한 해일 등 각종 자연재해가 한꺼번에 발생하면서 인류가 멸망의 위기를 맞이한다는 내용의 재난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놀라운 점은 그 어디에도 안전한 곳이 없는 재난의 지옥도를 완성했다는 점입니다. 실제 [샌 안드레아스]는 무너지는 건물 사이로 헬기가 비행을 하는 장면에서 [2012]를 떠오르게 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샌 안드레아스]가 [2012]를 넘어서는 것은 조금 힘에 부쳐보입니다. 일단 [2012]는 범지구적인 스케일의 재난영화였지만, [샌 안드레아스]는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의 몇몇 도시에 국한된 재난영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대신 [샌 안드레아스]는 거의 SF 영화에 가까웠던 [2012]와는 달리 현실성을 확보할 수가 있었습니다.

[2012]는 고대 마야 문명에서부터 끊임없이 회자되었다는 인류 멸망의 예언을 근거로 하고 있지만, [샌 안드레아스]는 '샌 안드레아스' 단층으로 인하여 1906년 샌프란시스코에 지진이 발생하여 3000명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로렌스 교수가 '샌 안드레아스' 단층은 거의 80년마다 대지진을 일으키는데 1906년 대지진 이후 80년이 훨씬 지났다고 설명하는 부분에서 [샌 안드레아스]는 단순한 재난영화를 넘어선 현실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재난, 막을 수는 없을까?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복의 기본 요소는 바로 안전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지속적으로 위험에 노출이 되어 있다면 아무리 돈이 많고, 이루고 싶은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해도 결코 행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인간들은 각종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예방책을 미리 세워둡니다. 막상 재난이 닥쳤을 경우에는 그것을 막아내는데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끔(아니, 거의 대부분) 우리는 재난을 대비해서 세워둔 우리의 예방책이 실제 재난 앞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곤 합니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그 이유는 바로 돈 때문입니다. [샌 안드레아스]에서도 만약 지진에 대비하여 건물이 지었다면 지진으로 인하여 이토록 건물들이 모래성처럼 무너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영화일 뿐이지만, 실제로 지진에 대비한 건물을 짓는 것은 비용이 몇배가 더 들어간다고 합니다. 언제 일어날지 모를 지진 때문에 당장 눈 앞의 내 돈을 쓰지 못하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들입니다.

로렌스 교수는 끊임없이 지진을 경고했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고 오히려 비웃었다고 말합니다. 내일을 위한 대비보다 당장 오늘을 위한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 어쩌면 인간이 나약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러한 욕심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메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우리 정부가 메르스에 좀 더 예방책을 세워뒀다면 지금처럼 메르스가 대한민국을 공포로 몰아넣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 정부는 그러지 못했고, 결국 메르스가 확산된 후에서야 부랴부랴 대응을 하면서 메르스 확산을 방조한 꼴이 되었습니다.

영화는 현실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샌 안드레아스]를 보며 영화 속의 무시무시한 재난을 단순하게 즐긴 후 극장 밖을 나설 수가 있습니다. 만약 [샌 안드레아스]의 상황이 바로 우리들에게 일어난다면 결코 우리는 영화를 볼 때처럼 재미있게 재난을 즐기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현실은 영화가 아닙니다. 그렇기에 현실 속의 재난은 영화에서처럼 즐길 수가 없습니다. 당장 내가, 그리고 내 가족이 메르스에 감염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메르스에 감염되어 격리되고 사망하는 것을 보며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영화를 본 후 극장 밖을 나서니 마스크를 한 사람들이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실제 일어났다면 메르스보다 '샌 안드레아스' 단층에 의한 지진이 훨씬 무시무시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세계에서 벗어나고 보니 거대한 지진보다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이 훨씬 무섭네요. 저 역시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록 눈에 안보이는 미생물에 의한 재난이지만,

현실의 재난이 영화보다 훨씬 무서운데 굳이 극장까지 가서 재난영화를 봐야할까?

[샌 안드레아스]를 본 후 극장 밖 두려움에 가득찬 사람들을 보니,

극장 안이 썰렁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