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5년 영화이야기

[연평해전] - 그들은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아버지였다.

쭈니-1 2015. 7. 14. 14:52

 

 

감독 : 김학순

주연 : 김무열, 진구, 이현우

개봉 : 2015년 6월 24일

관람 : 2015년 7월 10일

등급 : 12세 관람가

 

 

전쟁기념관에서 만난 영웅들

 

저는 가족들과 가끔 전쟁기념관을 찾습니다. 전쟁기념관에서 웅이가 볼만한 전시를 자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어벤져스 스테이션>이 전쟁기념관에서 전시되었었습니다.) 전쟁기념관에 가면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살아야할 웅이가 보고 느낄 수 있는 전쟁의 상처들을 간접 체험할 수 있기에 전쟁기념관을 자주 찾습니다.

그 중에서 저는 전쟁기념관의 야외에 전시된 참수리 357호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참수리 357호는 제2차 '연평해전' 당시 북한해군과의 교전에 벌였던 함선입니다.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참수리 357호는 비록 복제품이긴 하지만, 제2차 '연평해전'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서 찾을 때마다 제 마음을 찡하게 했습니다.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참수리 357호에는 제2차 '연평해전'으로 전사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해군 6명의 유품과 당시 상황을 극화한 영상이 상영되고 있습니다. 아직 어려서 같은 민족인 북한과 왜 저렇게 잔인한 전쟁을 벌여야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웅이도 제2차 '연평해전'을 극화한 영상을 보며 저와 함께 숙연해졌습니다. 

 

지난 6월 24일 제2차 '연평해전'을 영화화한 [연평해전]이 개봉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연평해전]을 그다지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의 정치색 색깔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제가 전쟁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전쟁영화는 몇몇 영화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70년대 TV에서 애국심 고양을 목적으로 방영했던 <배달의 기수>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연평해전]에 대한 관객들의 평을 좀 더 지켜봐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연평해전]은 개봉 첫주에 [쥬라기 월드]를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왜냐하면 [연평해전]의 제작을 지원한 군에서 단체 관람을 하며 흥행 분위기를 이끌었다는 소문이 들렸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에 대한 관객의 진정한 평가는 군의 단체 관람이 시들해지는 개봉 2주차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연평해전]은 개봉 2주차에도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라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개봉에도 불구하고 9.8%라는 낮은 드롭율을 기록하며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 고작 24만명 뒤진 2위를 기록했습니다. 이쯤되면 [연평해전]이 최소한 억지 감동만을 내세운 영웅주의 영화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저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연평해전]이 개봉한지 16일만에 극장을 찾았습니다.

 

 

일단 감동을 쥐어짜지 않아서 좋았다.

 

[연평해전]을 보기로 결심은 했지만 [연평해전]을 보러가면서도 계속 걱정이 앞섰습니다. 차라리 [손님]을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고민이 [연평해전]이 시작되는 그 순간까지 계속된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가 시작되니 다행스럽게도 제가 우려했던 부분은 영화에서 크지 않았습니다. 제가 우려했던 부분들을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저는 [연평해전]이 흥행을 위해서 초반에 어울리지도 않는 코미디를 선보이는 것을 걱정했습니다. 사실 군대라는 조직 자체가 어리버리한 고문관 하나만 내세우면 쉽게 코미디가 될 가능성이 짙습니다. 실제 [연평해전]은 영화의 초반에 화장실에서 밥을 먹는 어리버리한 신병을 통해 제가 우려했던 부분들이 현실화되는 듯했습니다. 초반에 웃기다가, 후반에 울리는 것이 우리나라 흥행작의 특징이기에 흥행 성과가 간절한 김학순 감독이 제2차 '연평해전'과는 어울리지 않는 코미디로 욕심을 부리지나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제가 [연평해전]을 보기 전에 두번째로 우려했던 것은 어설픈 러브라인입니다. 사실 이 영화에 이청아가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이청아가 연기한 최대위와 윤영하(김무열) 대위의 러브라인이 예상되었습니다. 실제 최대위가 윤영하 대위와 함께 찍은 사진을 사랑스럽게 어루만지는 부분에서 두 사람의 러브라인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 또한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김학순 감독이 꽤 능수능란하게 제2차 '연평해전'에 희생된 우리들의 영웅 이야기를 영화 속에 충실하게 재현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쭙잖은 코미디로 영화의 흥행에 욕심부리지도 않았고, 어설픈 러브라인으로 영화의 감동을 증폭시키려는 시도 역시 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이 영화가 채우고 있는 것은 바로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윤영하 대위는 아버지(송재호)의 뒤를 이어 해군이 됩니다. 그가 편한 보직을 놔두고 굳이 최전방의 함선에 배치되기를 원했던 것은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과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박동혁(이현우) 상병은 청각장애인인 어머니(김희정)의 외동아들로 군에서 어머니에게 꼬박 꼬박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효자입니다.

한상국(진구) 하사는 사랑스러운 아내(천민희)의 듬직한 남편이자 이제 곧 태어난 아기의 아버지입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어쭙잖은 코미디와 어설픈 러브라인으로 후반부의 감동을 극대화시키지 않아도 됩니다. 제2차 '연평해전'으로 희생된 그들이 이처럼 누군가의 평범한 아들, 누군가의 평범한 아버지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멋진 영웅담이 아닌, 전쟁의 아픔을 담다.

 

제가 전쟁영화를 싫어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전쟁영화가 영웅담으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국가를 위해 정의를 위해 전쟁터에 뛰어든 분들은 모두 영웅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영웅담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적군을 우후죽순처럼 쓰러뜨리는 초인적인 활약을 부각시키고는 하는데, 저는 그것이 불편합니다. 결국 아군도 적군도 모두가 같은 사람인데, 무슨 전자오락 하듯이 적군을 죽이며 희열을 느껴야하다니...

그런 면에서 [연평해전]에는 제가 불편해하는 전쟁영화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우선 이 영화는 엄밀하게 따진다면 전쟁영화가 아닙니다. 제2차 '연평해전'이 벌어진 당시의 상황을 본다면 우리나라는 일본과 함께 월드컵을 개최하였기에 북의 도발에 쉽게 전면 대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않아도 대외적으로 전쟁 위험 국가라는 인식이 강했기에 최소한 월드컵으로인하여 전 세계 국민의 시선이 집중된 상황에는 북의 도발에도 평화적으로 넘어갈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인 것입니다.

상황이 그러하니 참수리 357호는 북의 도발에 대응이 늦을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참수리 357호의 참혹한 패배와 직결됩니다. 결국 [연평해전]은 전쟁을 그린 영화가 아닌, 쏟아지는 적의 총탄과 쓰러지는 동료 속에서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었던 그날의 참혹한 현실을 담아낼 수 밖에 없었던 영화인 것입니다.

 

저는 [연평해전]에서 분단국가의 국민인 우리가 직면해야할 지옥도를 보았습니다. 같은 민족끼리 서로 총을 겨누고, 왜 그래야만하는지도 모르는 전쟁을 해야만 하는 우리. 이념이라는 허울밖에 없는 명분과 높은 곳에 앉은 인간들의 명령 하나에 누구는 무턱대로 총을 쏘고, 누구는 영문도 모르는채 총에 맞아 쓰러집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제발 그만해 새끼들아!"라고 울부짖으며 이 지옥도가 끝나길 간절히 바라는 것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와중에 '람보'처럼 비처럼 쏟아지는 총탄을 피하며 적을 쓰러뜨리는 초인적인 영웅은 없습니다. 윤영하 대위는 쓰러져 피를 흘리며 죽는 그 순간까지 명령을 내리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한상국 하사는 함선의 키를 죽는 그 순간까지 놓지 않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일 뿐입니다. 이 무기력한 상황. 어찌 지옥도라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연평해전]을 보며 우리는 제2차 '연평해전'으로 장렬히 전사한 6명의 영웅을 영원히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러한 참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을 게을리해서도 안됩니다. 이제 그 누구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유로 지옥도에 끌려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희생된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해야할 숙제가 아닐까요?

 

 

나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영화의 후반부, 나도 모르게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제2차 '연평해전'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김학순 감독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지을지 뻔히 예상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저 역시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연평해전]은 어쩌면 우리의 아들, 우리의 친구, 그리고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더욱 영화를 보는 제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었습니다.

[연평해전]을 보며 정치적 논란을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연평해전]의 후반부에 2002 월드컵 결승전 관람을 위해 추모식에 참여하지 않은 대통령에 대한 불평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사자 유족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논란이 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좌익과 우익이라는 정치적 논란 따위는 필요없는 명백한 우리 주위의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아버지의 이야기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지옥도를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유로 겪어야하는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제 웅이도 몇년 후에는 건강한 청년으로 성장해서 국방의 의무를 위해 군대에 갈텐데... 이런 분단국가를 물려줘서 미안하다는 생각만 듭니다.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연평해전]은 바로 우리들이 직면한 이야기이다.

이 영화를 정치적 논란을 이해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현실로 이해해야 하고,

미래에 이러한 현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해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