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5년 아짧평

[헬머니] - 답답한 세상 욕으로 푼다더니, 영화를 보고나서 더 답답해져 버렸다.

쭈니-1 2015. 4. 16. 11:36

 

 

감독 : 신한솔

주연 : 김수미, 정만식, 김정태, 이영은

개봉 : 2015년 3월 5일

관람 : 2015년 4월 13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극장보다는 다운로드 시장을 노린 [헬머니]의 마케팅 전략

 

제가 극장에서 놓친 3월 개봉작 중, 제 호기심을 가장 많이 자극한 영화가 바로 [헬머니]입니다. 사실 이 영화가 개봉할 당시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김수미를 내세운 그저 그런 코미디 영화처럼 보였으니까요. 하지만 [헬머니]는 개봉 후 의외의 흥행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같은 날 개봉한 흥행 기대작 [순수의 시대]를 뛰어넘는 52만 관객을 기록하였습니다.

[헬머니]의 의외의 흥행으로 저는 뒤늦게 [헬머니]를 보러 가려고 마음을 먹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헬머니]는 극장 상영 와중에 다운로드 서비스를 오픈하는 발빠른 행보를 보여줬습니다. 예전에 비디오대여점 시절에는 코미디 영화는 극장보다는 비디오대여 수익이 훨씬 높았다고 합니다. [헬머니]의 다운로드 서비스가 다른 영화들보다 빨랐던 것은 그러한 점을 염두에 둔 마케팅 전략이었을 것입니다.

암튼 저는 극장에서 [헬머니]를 보겠다는 계획을 수정하고 [헬머니]의 다운로드 가격이 만원(극장동시 상영작은 만원입니다.)에서 4천원으로 내릴 때를 기다렸다가 지난 월요일에 드디어 감상을 했습니다.

 

 

 

우리가 욕을 하는 이유

 

[헬머니]는 전국의 욕쟁이들을 모아놓고 욕배틀을 한다는 설정의 영화입니다. 그렇기에 당연히 온갖 쌍욕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이 영화의 관람등급이 욕만으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고하니 영화 속에 나오는 욕의 수위가 얼마나 높을지 기대가 되는 부분입니다.

사실 욕이라는 것은 상대방에게 모욕을 주는 수단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욕은 다른 용도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가끔 길을 걷다가 중학생, 고등학생의 대화를 듣다보면 대화의 거의 대부분이 욕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욕은 자기과시임과 동시에 친밀함의 수단인 것이죠.

요즘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전화상담원등 감정노동자의 고통은 거의 대부분 고객의 욕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잘 알지도 못하는 감정노동자들에게 다짜고짜 욕을 하는 사람들은 왜 그런 것일까요? 그들은 자신의 스트레스를 자신보다 약자인 감정노동자들에게 욕을 함으로써 풀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외에도 맛집이라며 소개되는 욕쟁이 할머니 밥집의 경우는 고객 스스로 욕을 들으며 즐거워하는 독특한 공간입니다. 그렇게 욕을 듣다보면 고향 생각, 어머니 생각이 나기도 한다고 하니 욕은 상대방에게 모욕을 주는 수단에서 벗어나 자기과시, 친구들과의 친밀, 스트레스 해소, 노스텔지어 등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욕을 통한 코믹 휴먼 드라마.

 

그렇기에 [헬머니]의 기획은 꽤 신선해 보입니다. 요즘 TV를 켜면 노래, 연기, 요리 등 각종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가 넘쳐납니다. [헬머니]는 바로 그러한 요즘의 추세에 욕을 집어 넣은 것입니다. 2013년 개봉했던 강우석 감독의 [전설의 주먹]과 비슷한 기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한가지 기대가 되는 것은 욕 배틀인 '욕의 맛'에 출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각자의 사연을 안고 욕을 하기 위해 '욕의 맛'에 출연합니다. 욕을 해야 뭔가 멋져 보이고 강해보인다는 착각에 빠져 사는 고삐리 일진에서부터 고객에게 매일 욕을 듣는 전화 상담원, 가끔 인터넷 공간에서 화제가 되는 막말녀, 매일 조폭과 주먹다짐을 하다보니 자신이 경찰인지 조폭인지 헷갈린다는 경찰, 욕 자체가 예술이라는 힙합랩퍼 등등. 그들의 사연을 잘 풀어나간다면 [헬머니]는 욕을 통한 코믹 휴먼 드라마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 중심엔 주인공인 자칭 '헬머니' 김영옥(김수미)의 사연이 자리를 잡아야 할 것입니다. 전과 3범인 그녀는 감옥에서 출소하고 두 아들을 찾아 나섭니다. 첫째 아들 승현(정만식)은 부잣집 미희(이태란)와 결혼했지만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기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며 억눌려 살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 주현(김정태)는 전형적인 날건달입니다.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 그녀는 뒤늦게 아들들에게 그동안 하지 못한 엄마 노릇을 하려합니다.

 

 

 

코믹도, 감동도 모두 놓쳤다.

 

제가 [헬머니]에 기대한 것은 바로 그러한 것들입니다. 욕을 통한 소시민의 속시원한 한풀이, 그리고 '헬머니'의 사연을 통한 감동과 속시원한 욕의 향연에 의한 웃음 한마당. 그런데 제가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일까요? 저는 이 중에서 그 무엇도 만족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우선 [헬머니]에 나오는 욕부터 기대이하였습니다. 영화의 초반에는 자체 음소거로 욕을 걸러내더니, '욕의 맛' 배틀이 시작한 이후에는 뭔가 뻔한 욕만 펼쳐 보여줍니다. 고작 이럴려고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 매겨진 것인지... 굉장히 자극적인 욕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실컷 웃을 수 있는 신기한 욕의 향연을 기대했는데 실망스럽기만 했습니다.

'욕의 맛'에 출연하는 각종 사연을 안고 있는 출연자도 [헬머니]는 제대로 표현하려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들은 영화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잠시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소모품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그만큼 김영옥의 사연을 상세하게 잡아냈을까요? 아뇨, 그렇지도 않습니다. 김영옥의 사연도 대충 넘어가고, 마지막 무당 할매(김영옥)과의 '욕의 맛' 결승전과 가족간의 화해도 감동을 느끼기에 한없이 부족하기만 했습니다.

 

 

 

영화를 대충 만든 느낌, 나만 그런가?

 

그 중에서 제가 가장 [헬머니]에 실망한 것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이미 [헬머니]는 초반부터 여러 복선들을 깔아 놓습니다. 김영옥 덕분에 자살을 하려다가 다시 삶의 희망을 갖게된 방송국 이사장(김종구), 그리고 감옥에서 김영옥의 도움을 받은 장관(조영진), 유명 한복 디자이너이지만 김영옥에게 빚이 있는 한복집 회장(정혜선) 등. 영화는 영화의 초반부터 그들과 김영옥의 인연을 소개하며 후반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총 출동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감동보다는 너무 뻔해서 짜증이 나게 만듭니다. 특히 승현의 장모(박준금)가 "어이구, 우리 회장님과 잘 아는 사이인줄도 모르고..."라며 고개 숙이는 장면에서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만 났습니다. 뭔가 속시원한 마지막 결말을 기대했건만 [헬머니]는 그냥 서둘러 영화를 끝내는 선에서 마무리짓습니다.

[헬머니]를 보고나니 영화가 굉장히 대충 만들어진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그럴리가 없겠지만, 욕 배틀이라는 소재 하나로 시나리오가 대충 똑딱하고 만들어진 듯 했습니다. 김수미의 연기도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했고, 코미디 영화인데 웃기지 않았고, 그렇다고 감동도 받지도 못했습니다. 이쯤되면 '내가 이 영화를 왜 봤을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답답한 세상 욕으로 푼다더니, 영화를 보고나서 더 답답해져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