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5년 아짧평

[타임 랩스] - 돼지목의 진주목걸이

쭈니-1 2015. 4. 3. 16:54

 

 

감독 : 브래들리 킹

주연 : 다니엘 파나베이커, 맷 오리어리, 조지 핀

개봉 : 2015년 1월 29일

관람 : 2015년 4월 2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봄비가 무지막지하게 내리던 날.

 

지난 목요일 저녁. 하늘에서는 마치 구멍이 뚫린 듯 어마어마한 비가 쏟아부었습니다. 그래도 그 비는 오랜 가뭄으로 인한 사람들의 한숨을 해소시킨 고마운 단비라고 하네요. 하지만 우산도 필요없게 만들 정도로 강풍을 동반한 비는 저를 상당히 당혹스럽게했습니다. 

목요일 저녁, 잠시 우산을 들고 집 밖으로 나갔던 저는 때마침 거세진 바람과 비로 인하여 온 몸이 흠뻑 젖어 버렸습니다. 신발엔 비가 들어가 양말이 축축해져 버렸고, 바지도 비에 젖어 묵직하게 무거워졌습니다. 저는 이렇게 옷이 젖으면 기분이 굉장히 불쾌해집니다. 그래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온갖 짜증을 내며 젖은 옷을 몽땅 벗어던지고 샤워를 했습니다.

사실 그날은 [분노의 질주 : 더 세븐]을 보러 갈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비로 인해 불쾌해진 마음은 밖으로 나갈 기분을 싹 사라지게 만들었고, 결국 [분노의 질주 : 더 세븐]을 보러 가는 것 대신 거실에서 [타임 랩스]를 보는 것으로 목요일의 일정을 마무리지었습니다. 이렇게 불쾌한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영화를 봤기 때문일까요? 저는 [타임 랩스]를 그다지 재미있게 보지 못했습니다.

 

 

 

내일을 찍는 카메라를 갖게된 사람들

 

[타임 랩스]는 꽤 독특한 소재의 영화입니다. 함께 살고 있는 친구들인 핀(맷 오리어리), 제스퍼(조지 핀), 그리고 핀의 연인이기도한 칼리(다니엘 파나베이커)는 내일을 찍는 신비한 카메라를 발견합니다. 이 카메라는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을 향해 고정되어 있으며, 매일 저녁 8시에 다음날 저녁 8시의 사진을 찍습니다.  

문제는 이 카메라의 원래 주인인 과학자가 시커멓게 탄 시체가 되어 발견되었다는 점입니다. 칼리는 과학자의 일기장을 통해 그가 사진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봤다는 점과 미래를 바꾸면 안된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다시말해 그들은 사진에 찍힌 자신의 모습을 다음날 저녁 8시에 똑같이 재현을 해야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과학자처럼 의문의 죽음을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금은 위험하지만 그래도 미래의 사진을 볼 수 있는 거대한 카메라를 얻게된 그들은 과학자의 죽음을 숨기고 카메라를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로 합니다. 뭐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만약 제게도 미래를 알 수 있는 카메라가 생긴다면 욕심이 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욕심이 조금은 어이없는 곳으로 향해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내일을 찍는 카메라를 통해 그들이 얻고자하는 것.

  

우리나라 속담에 '돼지목의 진주목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귀함을 알지 못하는 이에겐 무용지물이라는 뜻입니다. [타임 랩스]의 주인공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과학자의 죽음을 숨기면서까지 내일을 찍는 카메라에 욕심을 냅니다. 하지만 그들의 욕심이 영화를 보는 제겐 "겨우?"라는 의문을 갖게 만듭니다.

제스퍼는 내일을 찍는 카메라를 이용해서 경마로 큰 돈을 벌으려하고, 미술가가 꿈인 핀은 내일 사진 속에 찍힌 자신의 그림을 그리며 만족감을 느끼며, 핀을 사랑하는 칼리는 내일을 찍는 카메라를 이용해서 권태기를 극복하려합니다.

경마로 승승장구하는 제스퍼를 의심하는 마권업자 이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제스퍼를 위협해서 내일을 찍는 카메라의 존재를 알아내지만 그 역시도 제스퍼와 마찬가지로 경마를 통해 돈을 버는 것밖에 생각하지 못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돼지목의 진주목걸이'입니다. 내일을 찍는 카메라라는 엄청난 물건을 손에 넣었으면서도 그들은 고작 경마, 그림, 사랑에만 매달리고 있으니까요.

 

 

 

내일을 찍는 카메라의 문제점. (이후 결말 포함)

 

제스퍼와 이반이 내일을 찍는 카메라를 통해 돈을 버는 방법은 굉장히 단순합니다. 경마에서 우승할 말의 이름을 종이에 적어 내일을 찍는 카메라 앞에서 서서 사진을 찍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전날 그 사진을 보고 경마를 하게 되고, 돈을 버는 것이죠.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러한 방식에는 심각한 문제점이 뒤따릅니다. 왜냐하면 핀과 칼리, 제스퍼는 내일의 사진을 그대로 재현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당일 저녁 8시에 찍힌 사진에 제스퍼가 '1번 말 우승'이라고 쓴 종이를 들고 있다면, 다음날 저녁 8시에는 1번 말이 우승을 하지 않더라도 '1번말 우승'이라 쓰고 카메라 앞에 서있어야하는 것입니다. 미래를 바꿨다가는 의문의 죽음을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진부한 질문과 비슷합니다. 내일을 찍는 카메라에 '1번말 우승'이라는 글이 있었기에 다음날 경마에서 1번 말이 우승하는 걸까요? 아니면 다음날 제스퍼가 1번말 우승을 목격했기 때문에 내일을 찍는 카메라에 '1번말 우승'이라는 글이 찍힌 것일까요? 차라리 제스퍼가 경마 결과가 실린 신문을 들고 있는 사진이 찍혔다면 이런 복잡한 질문은 필요가 없었을텐데 말입니다.

 

 

 

무리한 반전, 스토리를 더욱 꼬아 버리다.

 

[타임 랩스]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영화의 후반부에 무리한 반전을 집어넣습니다. 칼리가 핀과의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내일을 찍는 카메라를 이용한 것입니다. 사실 내일을 찍는 카메라는 저녁 8시에만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닌, 아침 8시에도 사진을 찍는 것입니다. 내일을 찍는 카메라를 가장 처음 발견한 칼리는 오전 8시에 찍힌 사진을 핀과 제스퍼에게 감춥니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에 칼리가 핀에게 오전 8시에도 사진을 찍히는 사진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타임 랩스]는 갑자기 저를 혼란에 빠뜨립니다. 칼리는 핀에게 "아침 사진은 전날을, 저녁 사진은 다음 날을 보여준 거야." 아침 사진은 전날을 보여준 것이라는 칼리의 설명은 쉽게 납득이 안됩니다. 자막이 잘 못된 것인지...(누가 내게 설명좀...)

게다가 칼리는 광기에 휩싸인 제스퍼를 죽이고, 내일을 찍는 카메라를 부수려는 핀에게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을 합니다.  "우리가 바꿀 수 있다고 했지? 오늘 밤 찍힐 사진을 위해 메세지를 창에 붙이면 돼. 그럼 내가 어젯밤에 메시지를 받았을 때 오늘 일을 피할 수 있어. 넌 숨긴 사진들을 찾지 못할 거야. 이런 대화조차 없을거라구." 왜 갑자기 내일을 찍는 사진이 타임머신이 되어버리는 것일까요?

 

 

 

독특한 소재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다.

 

브래들리 킹 감독은 "모르는 것에 대한 인간의 공포심리를 역설적으로 알게 되면서 느낄 수 있는 공포감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라는 제작의도를 밝혔다고 합니다. 분명 제작의도도 좋았고, 내일의 내 모습을 찍는 카메라로 인해 칼리, 핀, 제스퍼가 점점 변해가는 과정은 꽤 짜임새가 있었습니다.

특히 미래를 바꾸면 죽는다는 확실하지 않은 전제에 집착한 나머지 점점 살인마가 되어가는 제스퍼의 변화가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예술가가 되고 싶다던 핀은 사진에 찍힌 그림을 따라 그리며 '드디어 내 그림을 그렸어.'라며 만족하고, 핀을 사랑한다는 칼리는 제스퍼와의 불륜 사진을 감추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렇게 덜떨어진 캐릭터로 이뤄진 영화이니 내일을 찍는 카메라를 두고도 그따위로 밖에 사용을 하지 못하는 것이겠죠.

그것은 브래들리 킹 감독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예산인 탓에 제한된 공간으로 영화를 찍어야 했던 사정은 알겠지만, 내일을 찍는 카메라에 의한 주인공의 불안심리를 그리는 방식이 투박했고, 마지막 반전은 그렇지 않아도 짜임새가 부족한 스토리 전개를 더욱 복잡하게 꼬아버리기만 합니다. 독특한 소재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 감독의 역량이 아쉬운 영화였습니다.